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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행 1:1-5)

by 【고동엽】 2022. 3. 10.

《제1강》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행 1:1-5)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면,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후의 사역과 그의 승천으로 말미암은 성령강림과 성령의 역사 하심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결코 죽음으로 끝나버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성령강림, 교회탄생, 세계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특징 몇 가지 만 알아보겠습니다.
①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발자취가 기록된 역사적인 책입니다. 즉 사도행전은 예루살렘과 유다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초대교회의 발전 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②사도행전은 성령행전입니다. 성령행전이라고 해서 성령을 이론적으로 논하거나 설명해 나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성령이 제자들을 통하여 활동하신 그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은 본래 기록한 저자가 명칭 한 것이 아니라 주후 4세기를 전후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사도행전의 주제는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한마디로 주제를 요약한다면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며 주의 증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사도행전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증인'이란 히브리어로 '순교자'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전 생명을 바치기까지 피 흘리며 증거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순교자를 말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이런 증인이 되었습니다.

③사도행전은 설교 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본서에는 설교의 보고가 들어있습니다. 크게는 베드로의 설교, 바울의 설교, 스데반 설교, 야고보의 설교 등, 총24편의 설교가 들어있습니다.
④초대교회의 유명한 인물들이 총 망라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인물행전이라고도 합니다.
⑤저자와 기록연대를 알아보겠습니다. 저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썼고, 기록연대는 A.D. 61-63년 정도로 보고 있으며, 기록 장소는 대체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감금되어 있던 당시 그의 동료였던 누가가 로마에 머물면서 본서를 기록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제목소개▶

 

우리 한국 교회는 맨 처음 선교를 받을 때,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선교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은 처음 선교를 받을 때, 로마서를 중심으로 해서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은 삿뽀르 대학을 중심으로 복음이 들어갔는데 미국의 크라크 박사가 대학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교회에서 학자가 많이 나왔지만 교회 부흥은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먼저 대학으로 복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도 예수 믿어도 되느냐?'고 물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야 만 예수를 믿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양적으로 교회가 많이 부흥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1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1절과 2절은 사도행전의 서론입니다. 1절 속에선 본문의 저자와 수신자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로 보는 것이 전통적으로 일치된 견해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저자의 명칭을 밝히지 아니했으나 문장에 있어서나 본문에 기록된 데오빌로에게 보낸 글을 기록한 두 번째 책이라고 한 것을 보아 사도행전은 누가복음 다음에 기록한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의미합니다(눅1:1-4절 참조).
눅1:3절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본문 맨 처음은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이 누가복음 다음에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써 당시 사도바울이 몸의 가시로 인하여 여러 가지 병약한 몸이었으므로 그의 주치의로써 사도바울과 같이 수행하면서 치료도 하고 복음도 전하면서 바울과 끝까지 동행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마지막 서신인 딤후4:11절에 보면, 누가가 사도바울과 같이 있었다는 것이 나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사도바울의 신앙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신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권을 기록하였는데 두 권의 책의 분량이 신약성경 4분의 1의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바울서신 전부를 합한 것보다도 그 분량에 있어 40면이 나 더 많습니다. 물론 문헌의 가치란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분량문제는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데오빌로에 대하여" 본서는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눅1:3절에서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다고 했습니다. '각하'라는 칭호를 보면 데오빌로가 어떤 개인의 이름이며 그는 높은 관직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총독 이상을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한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분명히 존경받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데오스)와 사랑(로고스)의 합성어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께 친구와 같이 즉, 우정적인 사랑을 받는 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꼭 데오빌로에게만 쓴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쓴 글입니다. /믿/
학설에 의하면 누가는 의사였으며 또 그때 의사들은 귀족들의 종이었는데 누가는 데오빌로의 종으로써 주인의 중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데오빌로는 그 감사의 표시로 누가를 종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누가는 감사의 사례로 예수 그리스도의 스토리를 써서 보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누가복음을 가리킨 말입니다. 먼저 쓴 누가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제자들의 훈련과정, 기사와 이적사건, 그리고 십자가 부활 승천 등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이 두 편지 가운데 겹쳐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 1신, 즉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과 제 2신인 이 사도행전 처음 부분이 그것입니다.
눅24:44-53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울리우시니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 하니라."
약간의 단어의 사용은 달랐지만 이 내용은 중복되어 있었습니다. '이 성을 떠나지 말고'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같은 내용입니다. 또 '하늘로부터 능력 입히울 때까지 이성에 유하라.'는 말씀도 같은 말씀입니다.
또 행1:8절에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나, 눅24:47절 이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말씀이 중복된 내용입니다. 성경은 중요한 내용을 중복해서 우리들에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제자 훈련은 '중복, 반복'입니다. /믿/

 

▶2절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다시 누가복음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여기 "그의 택하신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를 가리킵니다.
"성령으로 명하시고" 예수님의 생애는 줄곧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하실 때, 성령에 이끌리어 하셨고, 부활 승천하실 때까지 그의 모든 사역이 성령의 인도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복음을 증인으로 삼으신 것을 약속하신 사실입니다.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이 기록되었느니라." 1절의 '시작에서'부터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지상사역을 가리킵니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누가복음에 밝혔습니다. 사도행전은 속 4복음서, 또는 제5복음서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계속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행7:5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스데반이 순교할 때 나타나셨습니다. 행9:19절을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각 권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누가복음에서는 '인자(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면, 사도행전은 '성령이신 예수'에 대한 기록으로 보면 됩니다.

 

▶3절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해 받으신 후에" 여기서 '해'란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을 의미하며 이 고난에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까지 포함합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실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본문 3절은 복음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해를 받으신 사건입니다. 롬6: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정하셨습니다. 그 법은 절대로 변경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자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이루신 것입니다. /믿/
그래서 예수님은 요11:25-26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확증해 주셨습니다.
'죽어도 산다'는 말은 육신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육신은 죽어도 다시 부활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 값을 다 청산하셨으므로 '죄의 삯은 사망'의 법이 무너지고 너는 죽어도 살겠다는 법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해 받으신 후'란 말이 그토록 중요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고후5: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나도 그 모든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15절을 보시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 내사"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확실히 나타내는 말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까지도 의심했습니다.
요20:27-30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때 도마가 대답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길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 /할/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기에 기독교가 희망의 종교입니다. 롬4:25절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할/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만약 부활하신 후, 그 이튿날 승천하셨다면 아마 의심 많은 제자들이 고개를 가우 뚱할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십자가를 지실 것과,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언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지 못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무서워 숨어서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신앙을 확실히 믿었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당시 제사장들에게 큰소리를 쳤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주님께서 분명히 살아나시리라! 나를 따라와 봐라" 큰소리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거창하게 준비했을 것입니다.
요20:19-20절에 보면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신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이 지상에 몇 년이나 있었습니까?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40일간이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40일간 계속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부활하신 자신을 증거 하셨습니다.
⑴마20:29절/ 막달라 마리아에게와, 또 다른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⑵눅24:13-/ 엠마오상에서 두 제자에게 오셨습니다.
⑶눅24:34절/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⑷눅24:30절/ 도마가 빠진 11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⑸요20:26절/ 도마가 있는 12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⑹고전15:6절/ 500여 형제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⑺요21:1-26절/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⑻고전15:7절/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⑼마28:16-20절/행1:8-11절/ 승천하시면서 감람산에서 500문도 앞에서 '다시 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승천하셨습니다.
⑽행9:3:6절/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오셔서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셨습니다. /할/
기독교는 40일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도 40일간 시내산에서 금식기도를 마친 후에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습니다.
삼상17:18절에 보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40일간 조롱한 후에 다윗의 돌팔매에 맞아 죽었습니다. 또 엘리야는 호렙산에 40일을 걸었으며 그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왕상19:8).
어떻게 보면 40일은 은혜의 측정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40일간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은 부활신앙에 합류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2제자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다가 다 순교했습니다. 오직 사랑의 사도 요한 만이 거의 백세가 될 때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귀향 가서 그곳에서 주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란 거짓말을 계속하다가도 죽인다고 하면 겁이 나서 참말을 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죽인다 해도 분명히 살아나신 주님을 보았기 때문에 "죽인다 해도 어찌 본 것을 모른다 하겠소?"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가장 의심했던 도마도 인도에까지 가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는 도마를 기념하는 도마스교단까지 생겼답니다.
도마가 죽을 때, 그냥 죽은 것이 아니고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핍박자가 다가와서 창으로 찔러 죽었다는 순교야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제자는 가죽이 벗겨 죽임을 당했습니다 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부활을 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지상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여기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중심주제일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①사9:1-7절∥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습니다.
②마12:28절∥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아니했습니다.
③마25:34절/요18:36절∥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절정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④시103:19절∥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나라는 영역을 가리키는 말도 되지만 일차적으론 통치, 주권, 왕권과 관련된 말로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4절의 말씀과 8절의 말씀입니다. 즉 성령의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세계선교의 비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는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계 선교를 명하고 계십니다.

 

▶4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본문의 이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12제자들과 함께 모인 120문도 들에게 마지막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고 나서 더욱 더 악랄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수배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는 예루살렘이 별로 매력이 없는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는 스승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흩어졌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였지만 이제 주님께서 승천하시니 제자들은 또 다시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온 것입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두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둘째,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분부이십니다.

먼저 '예루살렘을 왜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예루살렘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장소입니다(대하3:1). 창22:2,14절를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곳은 구약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올라가던 모리아 산상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도 구속사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이삭의 번제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먼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루살렘은 진리의 중심지로써 신약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교회에 센터가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더욱 성경적인 것은 구약의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사2:3절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똑같이 미가 선지자도 예언했습니다(미4:2). 또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주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곳이요,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곳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이 임하신 장소요 신약교회의 모체인 예루살렘의 교회가 탄생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 고향이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의 선생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머물고 싶겠습니까?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갈릴리로 가버립니다. 다시 옛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요21장을 보면, 예수님의 수제자라 하는 베드로도 물고기를 잡으로 갈릴리로 가버리지 말았습니다. 예수님 안 계신 예루살렘에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한번 고향을 떠났으면 이제는 다른 길을 가라, 이제는 널리 세계로 나아갈 것이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은 곳곳에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다림!, 이 대망이 곧 신앙입니다.
요15:26절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14: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눅24:49절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처소인 동시에 성도와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받는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루살렘에서 성취됩니다. 다른 장소가 아니라 예루살렘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은혜를 받고, 교회 안에서 성령의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은 해당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만날 장소는 교회이며 성령을 받는 곳도 교회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성전을 떠나지 마시고 성전 중심의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주님은 지금도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즉 교회를 떠나지 말라 명령하십니다. /할/ 예루살렘은 평화의 전당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의 삶이 평안해 집니다(요14:27).
▶우리들도 사도와 같이 모입시다. 그러면 지금 사도가 있는가? 주님을 따라 다니던 12사도는 2천 년 전에 부름 받아 천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 사도들과 같이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도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그 사도들이 믿었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성림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명 있는 성도들이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말씀으로 은혜 받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다가 능력을 받고 세상으로 나아가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맙시다. 왜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되는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갔던 모리아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내가 네게 지시한 산 거기서"(창22:2)라고 한 이 모리아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곳에 가서 제사 드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모셔온 시온성에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습니다(왕상8:1).
느혜이야는 이 성전을 중건했습니다. 허물어진 그 성벽을 재건하여 양문부터 세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제사를 회복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곳에서 성령이 강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으로 지상에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먼저 전한 말씀입니다. 눅3:16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요한은 구약과 신약의 다리 역할을 한 선지자로써 그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이며, 율법이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도래됨을 알림으로 주의 길을 평탄케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바로 너희가 기다리는 메시아임을 증거했으며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로써 회개를 촉구하고 물세례를 베풀다가 끝내 헤롯의 칼날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요한의 세례를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권능을 받을 수 있는 성령세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 받고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세례를 받아야 성도로써의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받읍시다.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할/아멘!/
눅11: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성령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증인의 삶을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증인의 삶을 살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게 합니다.
120여명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승천의 신비한 광경을 육안으로 본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 66권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잘 되는 숱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들어 있습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고야 맙니다. /할/ 다락방에 모인 저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열흘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십자가를 지시기 전후 예수님의 명령은 오직 이 한 가지 일에 집중된 것을 봅니다.
⑴성만찬 석상에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라고 하셨는데, 보혜사란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⑵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 와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으며,
⑶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관심은 오로지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면 성령 세례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
⑴요1:33절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⑵요16:7절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⑶행2:3절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목사가 주는 것이 아니요 무슨 기도원에서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불을 받아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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