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들은 무엇에 영향을 받는가(목회와 신학)
송인규/합신대 조직신학 교수
목회자도 인간인지라, 모든 인간이 그렇듯, 그는 자신의 내적 상태와 외부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영향력들을 들추어내어 그 정체를 밝히는 일은, 목회자 개인의 영성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의 목회 방침이나 공동체의 성숙과 연관해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면 과연 어떤 사항들이 목회자들의 심령과 인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서로 연관된 네 가지 사항을 손꼽을 수 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외적 증거 확립이다. 목회자의 정체감을 구성하는 가장 필수적 조건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역자(목회자)로 부르셨다는 개인적 확신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명감(소명의식)은 그 성격상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종종 그것을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외적 증거가 요구된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이를 목회자로 부르신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입증해 주는 외적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ꡐ목회의 열매ꡑ라는 것을 소위 교회의 양적 성장 - 교인 수, 헌금의 액수 등 - 에서만 찾고자 할 때, 목회자의 순수한 마음은 시험과 욕심으로 얼룩지기 시작한다.
목회자에게 있어 외적 확장이 최우선적 목표가 될 때 그는 교묘한 형태의 우상 숭배를 연출할 수 있다. 또 교우들을 더 이상 자신이 목숨 바쳐 섬겨야 할 고귀한 대상으로 여기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낼 값진 수단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목회자들은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 - 그것이 수평 이동의 결과이든 아니든 - 을 이룩하는 수도 있고, 또 심지어 올바른 동기에서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목회 현장을 냉정히 고려해 볼 때 ꡐ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ꡑ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는 종교적 신기루요, 하나의 허황된 야심으로서만 작용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양적 성장이라는 단편적 현상에서만 찾으려는 오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목회적 열매를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되 그것을 단지 ꡐ외적 확장ꡑ이나 ꡐ양적 성장ꡑ의 면에서만 그리하지 말고, 오히려 ꡐ사람들의 변화ꡑ, ꡐ하나님에 대한 성숙한 신앙 자세의 견지ꡑ, ꡐ헌신의 모습ꡑ 등 다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목회자의 자아상이라 할 수 있다. 자아상은 대부분의 경우 미완성적이요, 비고정성(非固定性)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이나 조건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이미 개인의 내면에 확립된 태도와 성향의 체계로서 작용한다.
목회자의 자아상 형성에 있어서는 주로 두 가지 사항이 대두된다. 하나는 집합적 성격의 요인으로서 그가 목회직을 다른 직종에 비해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것으로서, 목회 사역의 수행과 관련된 다양한 능력들을 들 수 있다.
기독교가 과거에 있어서보다 더 큰 성장과 영향력을 확보하면서부터 직종으로서의 목회직에 대한 인지도는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후자, 곧 개인적 역량에 대한 자기 평가에 있다. 설교, 리더십, 성품, 대인 관계, 목회 전략 등에 있어서 목회자는 쉬지 않고 자신을 평가한다.
목회자는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는 이상적 자아와 자신이 스스로에 대하여 깨달은 본 모습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둘 사이에 간격이 크면 클수록 그는 불행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 그 틈을 메우고자 한다. 까딱 잘못하면 목회자는 여기에서 균형을 잃을 수 있다. 그는 때로 자신을 너무 높이, 또 때로 너무 낮게 평가하곤 한다.
따라서 자신의 은사와 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분수와 그릇을 안 뒤, 욕심부리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시험받지 않으면서, 묵묵히 성실한 자세로 자기에게 맡겨진 바 자기만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목회 대상으로부터의 반응이다. 목회자가 깊은 영향을 받는 또 하나의 영역은 - 그가 인정을 하든지 않든지 - 바로 자신이 목회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교우들로부터의 반응이다.
인간의 기본 성정은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긍정적 반응을 필요로 한다. 목회자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교우들로부터 ꡒ잘 한다ꡓ라는 적극적 평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욕구는 자연스런 것이고, 또 많은 경우 동기 유발에 있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목회자가 교우들의 반응과 평판에 너무 비중을 많이 두고 귀가 엷어지면 그는 안정감과 여유를 잃게 된다. 어떻게든 실적(?)을 올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가 하면, 사역의 결과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떠벌리기가 쉽다. 교우들로부터의 부정적 피드백에 심한 상처와 타격을 입기도 하고, 부교역자에 대한 칭찬의 소리 한 마디에 그토록 위협을 느껴 폭군적이 되는 수도 있다. 목회자의 인정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요, 건강한 자기 평가에 기초한 것이다.
넷째는 동료 목회자들과의 상호 교류이다. 오늘날 목회자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선후배를 망라한 동료 목회자들로부터일 것이다. 교회 성장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노회와 목회자 연합 집회에 몸을 맡기는 순간부터 이런 영향력은 그 괴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기독교 관련의 각종 매체를 통한 광고와 선전, 소식 전달 등이 한층 기승을 더하도록 돕는다. 목회자는 다른 목회자들과의 장소적․매체적 접촉을 가지며 부정적인 비교 의식이 자라난다.
목회를 크게 하든지, 유명세를 타든지, 재주가 있어 ꡐ튀거나 뜨는ꡑ 목회자와 접촉하면 시기, 부러움, 질투, 고의적 무시 등으로 반응하고, 반대로 자기가 다른 목회자들보다 어떤 면으로든 우수한 점이 있다 싶으면 그들 앞에서 쾌재를 부르고 뿌듯함, 보람, 성취의식에 잠긴다.
대부분의 목회자가 목회자 모임 이후에 드러내는 천박한 즐거움, 경박스러움, 성마름, 씁쓸함, 우울한 모습, 처신의 불안정 등은 이런 것과 연관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목회자끼리의 경쟁적 분위기는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고 아울러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배출되는 목회자의 수는 많고 목회지가 제한되어 있다면, 자연히 ꡐ경쟁ꡑ이 등장하게 된다.
모든 이가 다 똑같이 설교로 뜰 수는 없으며, 모든 이가 다 언어 구사 능력이 같을 수는 없다. 모든 이를 다 집회의 주강사로 부를 수는 없으며, 모든 이가 다 총회장이나 대교회의 목회자로서 적합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함께 천국을 세워 나가는 동역자들로서 이러한 풍토의 개선에 능동적으로 이바지하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면에서든 많이 누리는 목회자라면 그렇지 않은 동료들에 대해 늘 겸손하고 비(非)자만적인 태도로 일관하여야 한다. 적게 누리는 목회자는 자기보다 더 누리는 동료들에 대해 시기, 좌절, 열등 의식, 경쟁 심리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인정해 주고 함께 기뻐해야 한다.
목회자는 함께 만나고 접촉하는 동료들로 인해 위로, 분발, 용기백배, 신앙의 자극, 동역자 의식의 함양, 공감대 형성 등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건설적인 결과를 맛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목회가 더 이상 우리의 죄성, 세속적 사고 방식, 사단의 시험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살펴본 이 네 항목의 영향력은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필수적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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