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계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시 26:8)
주님, 주님께서 계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그 곳을 내가 사랑합니다.
오늘은 예배당 부채상환을 위한 건축 헌금 작정하는 날입니다.
건축헌금에 대하여 설교하려 합니다.
저는 솔직히 건축헌금에 대하여 광고만 하려고 했습니다. 아주 쿨하게 “부담갖지 마세요. 마음이 생기시는 교인들은 오세요! 그러면 충분합니다.” 광고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건축헌금에 대하여 설교하기 싫었습니다.
제게 예배당 건축에 대한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 것은 예배당 건축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심장이 안 좋아지셨지만 그 때가 온 교회가 예배당 건축에 매달리던 때라 병원에 가지를 않으셨습니다. 큰 돈이 들까봐 집에서 링거 주사만 맞고 버티다 결국 병을 키워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 경로로 오늘 건축헌금에 대하여 설교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미 시편 27편 설교 준비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기에, 정말 오늘 건축헌금에 대하여 설교해야 하는지, 표징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선명하게 지난 주 본문인 시편 26:8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시 26:8 주님, 주님께서 계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머무르는 그 곳을 내가 사랑합니다.
지난 주에 결재하였던 교회 건물 안전진단 보고서가 생각났습니다.
본당 완공 5년 만에 건물 전체의 안전진단을 하였는데, 지난 주 두툼한 보고서가 제 책상에 올라왔습니다. 결재서 앞장에는‘결론은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튼튼하게 잘 건축되어 아직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꺼운 책을 읽어 볼 필요도 없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서 끝까지 훑어 보았는데, 마지막에 눈에 뜨이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옥외 지상 주차장에서 행사를 할 때,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박자 맞추어 발을 구르면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몸 무게가 적어도 리듬을 타면 엄청난 힘을 받게 되어, 진동이 합쳐지면 건물에 심각한 힘이 주어져 균열이 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번뜩 생각나기를 사람들이 구호에 맞추어 동시에 발을 구르면 튼튼한 건물도 균열이 갈 수 있다면 교회 건축 부채도 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헌금하면 얼마든지 무너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건축헌금을 할 마음이 있는 사람만 헌금하라는 것은 헌금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주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 깨달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성전 건축에 별 마음이 없으시다고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주심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의 영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를 아주 단절하지 않으시고, 성소를 두셔서 사람들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천막 형태인 성소에는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지팡이를 둔 법궤를 모셔 두었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법궤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올 때, 다윗은 춤을 추며 좋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늘 함께 있게 되었다고 믿은 것입니다. 다윗은 곧 법궤를 모실 성전 건물을 지으려 했습니다. 법궤를 천막에 모셔두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 것입니다.
그러나 뜻 밖에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그랬다고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성전 건물에 소극적이심을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 건물이 중요했다면 먼저 지시를 하셨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 할 계명을 다 말씀하셨지만 천막 형태의 성막만 지시하셨지, 성전 건물에 대하여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위하는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애급에서 거대한 우상들과 그 우상을 둔 거대한 신전들을 보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지시였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애굽의 우상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상과 건물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을 오히려 제한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했기에 솔로몬도 열왕기상 8장 27절을 보면 성전 봉헌식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우상섬기듯 할 때, 하나님은 법궤도 외면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우상처럼 여길 때, 바벨론의 손에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헤롯이 지은 성전에 가셔서 채찍을 드사 상을 뒤엎으시고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는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이 모든 성도들에게 마음에 오셨습니다. 건물에 임하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에 임하셨습니다.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하신 일이 회복된 것입니다. 이제 성전은 그리스도인들의 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예배당 건물이 크고 아름답다고 주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우리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배당을 이렇게 크게 짓고 건축헌금을 20년씩이나 계속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게 이 교회에 부임해 올 때, 예배당 건축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당시 저희 교회는 건축 중단 상태였는데, 부채는 이미 150억이 넘고 지하 본당이 다 완공되려면 100억에서 200억은 더 들어야 할 상황에 교인들은 600명 정도 남아 부도 직전에 몰려 있었습니다.
저는 빚을 내어 예배당을 크게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제가 이 교회 담임목사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오셔서 교회의 어려운 형편을 눈물로 호소하실 때, 난감하였습니다. 솔직히 당시 저를 청빙하겠다는 교회가 몇군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조건의 교회이기에 옮겨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에 고려하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문제를 안고 너무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갑니다 할 수 없어서 기도는 해 보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주님은 제가 이 교회에 가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가르치신 것이 교회 건물을 우상처럼 만들지 말라,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대 교회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건축 마무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만 저는 건축을 위하여 목회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저와 교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이끄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겠습니다. 건축은 주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때부터 주님만 바라보고 가는 목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교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는 성전 건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안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짓지도 못할 성전 건축을 위한 자재들과 건축비를 다 모았습니다. 나무며 돌이며 금이며 은이며 다 모았습니다. 다윗에게는 성전 건축이 부담이 아니라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이처럼 사랑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의 마음이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전을 사모하는데는 하나님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는 역대상 18-23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복을 주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한 것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라는 대로 사는 것도 힘들다고 할 것인데, 다윗은 하지 말라고 한 것 까지 열심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구나! 복을 받는 비밀이구나.’ 깨달아졌습니다.
저는 다윗의 이 마음을 이 교회에 부임해 와서 보았습니다.
건축과정이 너무 오래되고, 온갖 시험이 겹친 중에도 남아있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집 팔고 땅 팔아 헌금하고 그래도 끝나지 않은 얘배당 건축 현장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부임하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전 이 본당에 내려왔을 때 보았던 콘크리트 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빼곡히 기도제목을 쓰여 있었습니다. 이 본당 전체에 말입니다.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기둥에 까지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동이었습니다. 예배당 공사가 중단된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도가 쌓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눈물의 헌금을 많이 받았습니다.“권사님은 하지 마세요!”하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왜 목사님이 막으십니까?”교회가 부도 위기에 처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 외부 사람들이 1억 헌금을 하는 등 이해가 되지 않는 헌금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는데는 이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9년 동안 많은 분들이 새로이 교인으로 오셨습니다. 그런 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좋은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에는 어려운 문제도 함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딸과 며느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르다고 합니다. 딸은 딸이니까 사랑합니다. 다른 이유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런데 며느리는 흔히 “딸 처럼 하니까” 사랑한답니다. “딸 처럼 하니까?” 그러면 속썩였다는 뜻입니까? 자꾸 돈 달라, 옷 사달라, 공부시켜 달래서 사랑한다는 것입니까? 말은 딸 처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잘해 주니까, 사랑받게 하니까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딸은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고 며느리는 하는 것을 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 사랑은 어떻습니까?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서 그가 가족인지 손님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조만간 건축 부채는 다 갚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이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교회와 진정 한 가족이 된 사람은 아닙니다. 교회 건축비 부채가 남은 것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한목자교회 교인이 되게 하셨다고 믿으시는 분은 학개서를 주목해야 합니다. 성전 건축에 대하여 소극적이신 하나님께서 학개서에 보면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학 1:6 너희는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학 1:11 내가 땅 위에 가뭄을 들게 하였다. 산 위에도,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 위에도, 밭에서 나는 모든 것 위에도, 사람과 짐승 위에도, 너희가 애써서 기르는 온갖 것 위에도 가뭄이 들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학 1:2-4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때가 되지 않았다. 주님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 "성전이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지금이 너희만 잘 꾸민 집에 살고 있을 때란 말이냐?
9 너희가 많이 거두기를 바랐으나 얼마 거두지 못했고, 너희가 집으로 거두어 들였으나 내가 그것을 흩어 버렸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나의 집은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너희는 저마다 제집 일에만 바쁘기 때문이다.
성전이 낡고 허물어져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전을 고쳐야 되겠네요. 새로 지어야 되겠네요."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집을 짓는데는 너무 관심이 많은 것을 보고 하나님이 마음이 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목자교회 교인이라면 “왜 교회 건물은 이렇게 크게 지은 거야? 언제까지 건축헌금할 거야. 하나님은 건물을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아, 마음이라고 마음!” 이렇게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의 집은 어떻게 해서든지 좀 더 크고 편하게 살려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말씀을 바로 깨달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소홀히 하고 무시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내 집 보다 더 위하십니까? 그러면 충분합니다. 사람에게 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께 더 감사하십니까? 그러면 충분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복을 걷어차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아직까지 건축헌금을 해야 합니까? 20년 장난입니까? 오랜 건축헌금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10년 세월이 건축헌금하고 빚 갚다 세월을 다 보낸 줄 알았는데, 교회가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선한목자교회 하면 부채 많은 것이 먼저 생각납니까? 건물 큰 것이 생각납니까?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 는 것이 더 생각나십니까?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목회하시는 아버님께서 예배당을 건축하시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으시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머님은 예배당 건축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저희도 지금까지 목회가 건축헌금의 세월이었습니다. 부목사 시절에 매년 건축헌금을 했습니다. 군목 시절, 두 개의 교회 건축, 두 개의 교회 개축을 했습니다. 부산에 담임 목회를 하러 갔을 때, 건축은 마쳤지만 부채가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건축헌금하고 매일 만나를 의지해서 살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제 평생에 모을 수 없는 액수를 헌금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헌금하며 살면서 재정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고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받았습니다. 제 영혼과 삶이 거룩해졌습니다. 헌금때문에 포기했던 수많은 것들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님은 채워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완공하던 때, [목회와 신학] 잡지사에서 2006년 6월 호에 탐방 기사를 실었습니다. 한마디로 왜 이런 예배당을 지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썼습니다.“이 예배당을 건축할 때, 지금 규모의 교회가 정말 필요했는지 알 수 없지만, 출석 교인 1000명 정도에 알맞은 크기는 2,000평 남짓이다. 성도들의 수에 걸맞은 적당한 크기의 5배가 넘는 규모의 예배당을 짓기 위해 많은 성도들이 감당해야 했던 경제적 부담은 상당히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회를 돌아보면서 400억 원이 넘는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성도들과 교역자들이 완공된 교회를 보고 느꼈을 감동과 감격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교회 신축을 시작했던 시점에서 너무나 무리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부담스러운 공사비와 본당을 최대한 크게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적으로 아무런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들이 아쉬웠다.
사는 집이 커지면 사람은 집에 매이게 된다. 관리를 걱정해야 하고 방범을 걱정해야 하며, 가격의 하락을 걱정하고 결국 집에 집착하게 되면서 집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성전이 어떤 것인지, 교회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건물에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 신축된 교회, 건물이 아름다우면 교회 부흥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부흥이 진정한 것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꼭 이렇게 써야 합니까? 너무 솔직한 것 아닙니까? 어지간하면 좋게 써주는 잡지 기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항의할 만한 기사였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항의합니까? 당시에는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말, [목회와 신학] 에서 취재 의뢰가 왔습니다. 2011년에 한국 교회 중 대표적인 교회들을 탐방하는 특집 취재를 기획하는데, 저희 교회를 두번째 교회로 선정하고 취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님은 어떻게 교회를 세워가실지 흥미진진합니다,
9년이 지나면서 건축비 부채가 많은 것 공개하며 지냈지만 교인들이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늘었습니까? 예배당이 어느덧 비좁아졌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건축을 감당해 오면서 교회는 영적 체질이 강하여 졌습니다.
오늘 건축헌금하는 날입니다. 솔직히 건축 부채문제, 부담스러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모으고 뜻을 합하면 이 부채의 짐도 쉽게 무너질 것이라 믿습니다.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일에 여러분이 함께 참여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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