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 해 첫 주일과 첫 날이 겹쳤네요.
새 해에도 독자 여러분과 가정에 성 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넉넉히 임 하기를 축복합니다.
새 해 첫 주일에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같이 올려 드립시다.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습니다.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란시스코’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나병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칫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고맙겠습니다.”
문둥병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당장 안된다고
거절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사흘째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프란시스코’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웠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는 가기는
커녕 기침을 콜록 이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문둥병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문둥병환자에게
양보를 하고 할수없이
맨바닥에 자려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둥병 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문둥병환자의 요구에 당장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내 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대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문둥병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일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이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할 문둥병환자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냄새가 베어 있어야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 주님이셨군요.
주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프란시스코’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밤에 문둥병환자에게 불친절했던 자신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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