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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871회] - 소녀 교육 - 기독교와 이슬람

by 【고동엽】 2023. 1. 14.
[오늘의 묵상 - 871회] - 소녀 교육 - 기독교와 이슬람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최근(2022년 12월) 보도에 의하면 정권을 잡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소녀들이 중,고등학교 가는 것을 금지 시키더니, 이제 대학에 가는 것도 금지 시켰다고 합니다. 여자들의 교육을 중지시킨 그 나라의 앞날이 암울해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19세기 말까지, 4,000년 동안 소녀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녀들은 말 할 것 없고, 일반 평민 아들들의 교육도 시키지 못한 것은 학교도 없었지만, 설령 있었다 해도 교육을 시킬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소년들뿐만 아니라, 소녀들 교육도 시작되었습니다. 최초로 근대식 여학교를 세운 이는 감리교회 의사이며 목사였던 William Scranton의 모친 Mary Scranton 여사로, 그녀가 세운 학교가 바로 이화학당(梨花學堂)입니다.
Scranton 여사는 1885년 6월 한국에 도착하여 서울 정동, 감리교 선교 본부가 있었던 지역에 미국 여자해외선교부의 도움으로 20여 채의 초가집과 빈터를 사서 ‘여자학당’과 ‘부녀원’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1886년 11월, 건물들이 완성되자, 이곳에 최초의 여학교를 시작하였는데, 스크렌톤은 이 여학교가 시작될 때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학교 사업이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이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학생은 어떤 정부 관리의 첩이었는데, 그 남편은 자기 첩이 영어를 배워 후일 왕비의 통역이 되기를 바랐다. 그 여자는 우리와 약 석 달 동안만 같이 지냈다. 제일 처음 재학생으로 입학한 생도는 김성녀(金姓女)보다 한 달 늦은 1886년 6월에 왔다.……두 번째로 들어 온 생도는 조그만 어린 거지아이였다.…언덕 위의 새 집으로 이사 갈 무렵에는 학생이 넷이 되고, 이듬해 1월에는 일곱 명으로 늘어났다.”
이 학교의 목적에 대해 길모어(G.W.Gilmore)선교사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생활환경에서 가정부인으로 모본이 되게 하며, 또한 친척과 친구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는 데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이 학교의 궁극적 목적은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기독교 학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스크랜톤 여사도 이 학교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목적을 적시하였습니다.
“[여기서]부녀자들을 우리 외국인의 생활양식과 의복 제도와 생활환경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따금 본국[미국], 또는 현지에서 우리가 학생들의 생활 전부를 뒤바꾸어 놓는 줄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우리는 [한국인]이 보다 좋은 한국인이 되는 것을 기뻐한다. 우리는 그들이 한국적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나아가 한국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통하여 훌륭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 글에서 ‘한국을 위한 한국인’을 만들려는 학교의 목적이 분명히 들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생활양식, 의복제도 등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미국 북장로교회가 한국 선교 25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각 부분의 선교 사역 보고 중, 여성사역에 관한 글을 쓴 마가렛 베스트(Margaret Best)는 한국 여성 교육의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미국화[서양화]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화 시키는 것"(not to Americanize, but to Christianize)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고종 황제의 어부인(御婦人) 민 왕후는 여자학당을 조선왕조의 꽃인 ‘배꽃’(梨花)을 이름으로 지어 주면서,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 부르게 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민족사에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한 오늘의 이화여자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여기서 출발하게 한 것입니다.
남자학교인 배재학당보다 먼저 출발한 한국 여성 교육은 4,000년 동안 교육을 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소녀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켜 남자들 못지않은 위대한 지도자들을 배출하였고, 또 하고 있습니다.
소녀들의 교육이 한 민족과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자 교육을 시킨 나라와 민족이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 시킨 탈레반 이슬람 국가와 여성 교육에 치중하는 기독교권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선교와 교육은 기독교 확장의 두 축으로 2,000년 동안 내려오는 변하지 않은 원칙입니다. 오늘도 선교사가 가는 곳에 교회와 학교가 세워지는 것은 이 두 축이 교회와 국가를 건실하게 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교육에 치중한 한국 선교가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많은 남, 여선교사들을 파송해 준 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그들의 후손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립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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