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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봉목사/전도의능력 (행 3:1-10)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능력으로 역사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영적 권위를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시키려는 특별한 은혜 중에 하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케 함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존재를 믿도록 하는 일이 성경에는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1. 전도(傳道)하는 일에는 언제나 능력이 따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려 들어가다가 성전(聖殿)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오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 세상 사람들이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 앞에서 합리적 인간 이성은 초개 같이 무너지는 법입니다.
아무리 세상 지식을 많이 가지고, 아무리 지성인이라고 자부해도 , 영적인 권위 앞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지성인(知性人)이라던 사람들이 더 쉽게 영적 세계로 넘어지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러기에 지성인들이 도리어 거짓 영(靈)의 역사에 미혹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얼마 전에도 보니, 거짓 사교 집단에 넘어가 많은 사람들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았다는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 넘어간 사람들 중에는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들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영적 세계는 무궁무진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면 영(靈)이라고 다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영(靈)도 영 나름입니다. 영에는 성령(聖靈)이 있고, 영도 악령(惡靈)이 있습니다.
악령도 성령과 같이 <능력>과 <이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애굽의 술사(術士)들이 행하였던 일입니다.
또 주님 당시에도 사귀 들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이 다 악령이 들어가 사람을 괴롭혔던 일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다 성령의 역사는 아닙니다. 거짓된 영들은 사람을 속여서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처음에는 모두 광명의 천사들로 가장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결과를 보아서 성령인지 악령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들어서 쓸 때 영적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저들을 일반 사람들과 구별시킵니다.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불러 올릴 때, 미리 백성들에게 고하도록 하였습니다.
3일 동안 모든 백성들로 정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산 위에 덮으리니 누구든지 산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세를 불러 산 위로 올라오도록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하였을까?’ 생각해 보니, 모세에게 영적 능력이 함께 함을 보여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그 영적 권위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능력을 행하도록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성경에 인물들을 다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에게, 엘리아와 엘리사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의 권능을 행하도록 성령을 부어 주었습니다. 그 힘으로 거짓 선지자 850:1로 싸워서 승리하게 하였고, 것 옷으로 요단 물을 쳐 갈라지게 하고 걸어갈 수 있게 하였고, 양식이 밑바닥이나 굶어 죽게 된 사렙다 과부에게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도록 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이것은 운동 선수들처럼 자신이 연마하여 단련하여 얻는 힘도 아닙니다. 하나님 당신이 스스로 필요할 때 행사케 하는 초자연적 능력입니다. 즉, ??전도하는 사람?? 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바로 이 능력 행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 는 하나님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지도자의 권위를 높여 주었습니다. 큰 능력을 행하는 것을 저들 스스로가 직접 봄으로 그 앞에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도 전도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이 능력으로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담력이 생깁니다. 돈 벌려고 나아갈 때는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비굴하게 되기 쉽지만 전도하는 일에는 이상하게 담대해 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 전도자들에게는 병든 자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능력으로 일으켰다고 하였습니다. 내용을 보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 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저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예수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또한 전도자들이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전도자는 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전도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전도하다가는 돈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지금 인도나, 파키스탄, 캄보디아, 네팔, 등지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질로 전도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밑 빠진 독과 같이 주면 줄수록 더 갈증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큰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봉사해야 할 일의 하나는 구제 사업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도와주어야 할 일이 가난하고 병든 자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잃어 버린 자 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단일 뿐입니다. 인도에 선교가 안 되는 것은 저들은 누구나 예수 믿으라고 하면 우선 에는 잘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받아먹을 때는 잘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떨어지면 기독교의 하나님도 여러 신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그 이상의 생각을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제일 안타까운 일이라고 선교사들이 보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선교가 돈과 함께 시작되는 일에서 결국 성공하는 비율을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선교의 성공 비결은 자급(self-support), 자치(self-government), 자전(self-propaganda) 정책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자급> 정책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가진 것은 은전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복음이었습니다.
오늘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사렛 예수입니다. 예수 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임을 분명히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가 세상에 오신 것은 은이나 금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고 자기를 내어 주어 <사망>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福音)입니다. 예수가 복음이란 말은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 나를 위하여 지금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있다는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쁜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전도자들이 줄 수 있는 유일 의 소유입니다. 이것을 떠나 은과 금으로 몇 닢씩 도와주는 것으로 예수 믿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관계에서는 100이면 100 다 실패합니다.
교인들 간에 금전 거래하다가 은혜 충만하게 받았다는 경우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주어야지 거기에 조건을 붙여 주면 그 조건으로 인하여 결실 하지 못합니다.
3. 전도의 능력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몇 푼의 동전을 요구하는 대로 주었다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웃음이 없이 살던 앉은뱅이가 입을 벌려 찬미했다고 하였습니다. 앉은뱅이는 서서 걸으며 또는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모습입니까! 이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본 앉은뱅이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구원의 감격을 체험한 성도들은 가만있을 수 없어 또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증거 합니다. 전도는 새 신자들이 하지 오래 믿은 사람들은 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래서 있습니다. 모태 신앙일수록 전도도 못하고, 감사도 못하는 그야말로 <못해 신앙>들이 많습니다.
금전은 사람을 일시적인 기쁨을 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으로 이간시키고, 친구를 잃게 하고, 형제간에도 멀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전도하는 일에는 사람으로 기쁨을 되찾게 만듭니다. 인생을 포기했던 사람들도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도리어 과거보다 더 기쁘게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놀라운 능력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었던 사람이 어떻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할 수 있겠는가? 다른 일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복음 전하는 전도하는 일에서는 가능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기쁨이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도리어 예수로 인하여 자신뿐 아니라 다른 불행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과 희망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참으로 기이(奇異)한 일입니다.
전도의 능력은 이렇게 사람이 변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그 변한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전은 일시적인 기쁨 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순간적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그 좋은 예가 미국의 조니 캐쉬(Johnny Cash)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니 캐쉬는 미국의 대표적인 Country Folk Singer(서부 음악 가수)로서 그 인기가 대단하였습니다. 그가 영국 런던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 관중 동원의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명성과 재산이 그에게 저절로 굴어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레코드판이 50만장, 100만장이 매진될 때마다 그에게는 점점 더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부귀와 명예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점점 혼돈과 불행을 향해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약을 복용하게 되었고, 결국 중독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약을 먹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 그의 코가 부러지고 이빨이 4개나 부러졌습니다. 그의 재물은 천하에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는 인간으로서는 폐인이 되어 갔습니다.
드디어 1971년 5월, 신록이 욱어진 계절인 5월9일, 그는 고향의 작은 교회에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가수인 조니 캐쉬는 눈물어린 눈으로 강단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 하나님의 손길은 와 닿았습니다. 목사님은 간절하게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후 그는 세상의 영광과 명예보다 이제 부터는 형무소를 찾아다니며 그의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며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전도자의 보람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영혼을 구원 얻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거의 절망 속에서 지나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느끼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전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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