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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봉목사/전도의 협력 (막 2:1-12)

by 【고동엽】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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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봉목사/전도의 협력 (막 2:1-12)
    
                                          
지난주일 교회의 <전도의 사명>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의 의의는 구령(救靈)사역에 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 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온 동네가 다 모여들었듯이, ① 우리도 예수의 대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 곧 <전도>라고 하였습니다. ② 그리고 각자 병인들을 데리고 나온 것처럼 우리도 가족이나 친지들을 데리고 주님께 나와야 함을 말씀 드렸고, ③ 주님께서 일일이 환자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여 고쳤던 것처럼, 전체적인 사랑보다는 개별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함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계속하여, 전도는 혼자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협력해야 함을 본문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주님께서 <가버나움> 동네에 들렀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도무지 용신 할 틈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2절 말씀에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道)를 말씀하시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한 중풍병 자를 네 사람이 메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사람들로 인하여 들어갈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유대인의 가옥 구조는 지붕이 우리처럼 되어 있지 않고, 스라브집 처럼 평평하게 되어 있음으로 올라가기 쉽습니다. 지붕으로 올라가 그 지붕을 뚫고 환자를 달아 내려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본 예수 님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여기서 저희의 믿음이란 환자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그 환자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말합니다. 저들의 협력하는 믿음에 감동을 받으시고 병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오늘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전도(傳道)에는 믿음의 협력(協力)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중풍병 자를 네 사람이 메고 주님 앞에 내려놓은 것은 전도의 협력의 모델입니다. ① 우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들은 다 같이 주님께 병자를 데리고 가면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도에는 믿음으로 하나 되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네 사람의 믿음이 하나 하나 한 믿음으로 뭉쳐졌습니다. 만일 이 네 사람 중에 어느 한사람이라도 다른 믿음을 가졌거나,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영원히 고침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전도하자고 하면 우선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하는 일에 가담하고,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한다면, 그 교회는 부흥되지 못할 것입니다. 구역에서도 보면, 구역장 이하 권찰과 구역 원들이 모두 믿음으로 하나가 된 구역은 활동이 활발해지고, 그런 구역은 새 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해 오는 일에 더욱 박자를 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구역은 제각기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는 믿음, 합심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② 그뿐 아니라 이들은 병자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중풍병 자처럼 자기 스스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의 잘못된 지식으로 풍 맞은 사람들도 있고, 세상 재물과 권력의 풍 맞은 사람들도 있고, 세상 향락과 일락의 발신 불수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세상의 단편적 지식으로 영적 불구자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안다고 하는 세상의 지식으로 영적 불구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메고 오려면 그들에 대한 영적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들을 보는 마음이 같아야 합니다. 협력이란 ‘힘을 합치는 것’이라면 한 사람의 병을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생각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전도도 이렇게 마음을 함께 하는 협동심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 개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양한 마음들이 하나가 되려면 그 하나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문 자로 협력(協力)이란 말을 풀이해 보면, 십자가 옆에 각자의 힘을 합치는 것이 됩니다. 십자가 없는 힘은 충돌이지만, 십자가를 세워 놓고는 모두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세워 놓고 각 양한 사람들이 전도에 협력해야 합니다.


2. 전도에는 함께 짐을 메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한 생명도 잉태하여 탄생시키기까지 10달 동안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야 하듯이 한 영혼을 구원시키는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만, 생각으로만이 아닌 직접 짐을 함께 지는 행동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들은 함께 침상을 메고 왔습니다. 오는 동안 땀으로 온 몸이 젖었을 것입니다. 더더욱 사람들이 운집한 것을 뚫지 못하여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내어 거기에서 환자를 달아 내려보냈다는 사실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남의 집에 천장을 구멍을 낸다는 것은 주인에 대한 손해 배상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멀쩡한 남의 집에 구멍을 내려면 그만큼 용기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에는 기도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찾아 나서야 합니다.
지금도 영적 반신불수들을 찾아 나서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려면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짐을 메고 와야 합니다.
물질로, 시간으로, 몸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한 영혼이 구원 얻게 된다면 그 수고와 희생은 값진 진주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다니엘 12: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전도 대원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특별한 시간을 내어 함께 전도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함께 수고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둘씩 짝을 지어내 보낸 줄 압니다. 혼자보다 둘 셋이 힘을 합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 팀을 구성하고 일정한 교육을 식혀 기도로 말씀으로 준비시켜 내 보냅니다. 세상에서 이처럼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은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해 온 일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보석처럼 빛나는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보석은 살아지고 없어지지만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메는 수고에 동참해야 합니다.


3. 전도에는 난관이 있게 마련이고, 또한 그것을 함께 극복해야 합니다.
전도가 한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라면, 그렇게 쉽게만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환자를 메고 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우선 사람들에게 막혀 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전도에 방해물은 사람입니다. 사람도 보통 사람들이 아닌 예수 님을 둘러싼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이 병자를 막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님을 둘러싼 구경꾼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동족인 유대인들이 제일 전도를 막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여러 지역에서 즉, 루스드라, 더베, 이고니온, 데살노니카, 예베소, 빌닙보, 등지에 당한 일들을 보면 이방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동족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고, 동족들이 거리에 깡패들을 동원하여 방해 공작을 폈습니다.

현재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다 낙심하고, 전도하는 일에 제일 큰 방해는 물질도 아니고, 자연 환경도 아니라, 사람들의 박해, 비난, 조롱, 그런 것들 때문에 전도에 좌절하기 쉽습니다. 더욱이 예수 님을 둘러싼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여기 예수 님을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겠습니까? 대부분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보다는 구경하려 호기심으로 나온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바로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진정으로 예수께 나와야 할 사람들을 막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환자를 데리고 나오지도 않고, 그냥 예수 님 주위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지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지는 수 10년이 되었어도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한 명도 예수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교회 주변을 떠나지 않고 나오려는 사람들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상처받은 심령들이 주님 앞에 나오려고 했다가 막혀 못 나오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지붕이 다시 저들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지붕을 뚫었습니다. 대단한 용기입니다.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지붕을 뚫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용기입니까!  전도에게는 이렇게 용기가 필요합니다. 난관이 가로막힐 때 그대로 물러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교회의 전도 사역에서 왕왕 보는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사람들이 먼저 막습니다. 다음에는 지붕이 가로 막혔습니다. 지붕을 뚫을 엄두를 못 냅니다. 지붕을 뚫는다는 것은 물질적 손해를 각오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말로 하되, 모두 손해를 보면서 하기는 주저합니다. 교회의 봉사와 전도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나도 한몫 메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시간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재능으로 한 몫 메야 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한 몫을 메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영혼에 대한 끊 질긴 집념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먼저 구하고, 그를 위한 관심으로 항상 그를 지켜보면서 그를 메고 나와야 합니다.
책 한 권을 팔려는 세일즈맨들의 집념도 보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없습니다.
계속 두드려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에 대한 꿈이 실현되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지붕을 뚫는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뉴욕에 가면 브루크린 다리(Brooklyn Bridge)를 보았을 것입니다.
뉴욕의 동쪽강 이스트 리버(East River)를 넘어 가로질러서 브르크린에서 부터 맨해튼을 연결하는 장관의 다리입니다. 처음에 여기에 다리를 놓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로우블링(A.J.Roebling)이었습니다. 그는 공중에 매어 다는 다리를 놓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그의 말을 다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로우블링은 끈질긴 확신으로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한 일이 닥쳤습니다. 난관이 닥쳤단 말입니다. 사고로 인하여 그만 로우블링은 평생에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혀 걸을 수 없는 장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의 확신을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들을 현장 책임자로 임명하고 자기는 집에서 공사 진행을 망원경으로 일일이 지적하며 아들을 지휘하였습니다. 드디어 다리는 착공 한지 14년만인 1883년 준공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비록 불구가 된 로우블링에 의하여 처음에 확신했던 것처럼 완성이 되어 지금껏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중도에 포기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일입니다. 다리 하나를 완공하는데도 그런데, 하물며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중도에 포기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 전도 대상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확신하고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산 믿음이요, 귀한 믿음이란 것입니다. 전도는 중도에 포기했어 는 안됩니다.
결국 주님도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한 영혼을 구원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금년이 다 가기 전에 전도의 협력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결실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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