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돕는 배필입니다! (창 2:18)
가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혼이란 말은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천에 하나 그 당시 이혼한 사람들을 보면 무슨 중대한 잘못을 범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현대인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을 보통으로 알고 있으며 이혼한 사람들조차도 이혼한 사실에 대하여 그저 감기 한 번 앓고 난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국가나 사회나 교회의 모든 기본 단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파괴는 국가의 파괴요 가정의 파괴는 사회의 파괴요, 교회의 파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시127-128편을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 하여 그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가 대부분이 가정 노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데 왜 가정 노래를 부를까요? 한마디로 가정에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은 성전에 올라갈 때, 떳떳하게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며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정을 주시고 맨 먼저 가정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신앙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정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아멘!/
①사람의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돕는 배필을 지어주신 하나님! (18)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이 가만히 생각해 보고 '아! 내가 고독해서 못 살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가정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위하여 창설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혼자 생활하는 것을 보니 좋게 보이지 않았기에 그를 위하여 최고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 선물이 누구인가?' 하와입니다.
그 후로 모든 것을 다 갖추어졌습니다. 먹을 것도 충분합니다. 보기 좋은 들판이며 아름다운 나무에 열매들이며 환경은 아주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다른 것이 있어도 자기와 진심으로 교제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 인간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의 가장 심각한 병은 고독이란 병, 즉 향수병입니다. 미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외로우면 L.A로 모인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주신 목적은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줄 때 다시 되돌아옵니다. /믿/
②가정은 어떤 곳인가?
⑴가정은 부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인격이 서로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도 몇 가지의 수칙이 필요합니다. 먼저 서로의 인격적 자존심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초의 보류는 인격적인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 때문에 만날 사람을 안 만납니다. 먹어야 할 것도 안 먹고, 받아야 할 것도 안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등의식, 신체적인 조건에 대한 열등의식, 가정에 대한, 사회적인 지위에 대한, 누구든지 열등의식을 안 갖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열등의식을 꼬집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는 상대방의 약점을 들쳐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약점을 감춰주고 장점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인격적인 존재란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⑵부부는 서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지요? 그런데 그 보다 더 정확한 답은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관심입니다.
⑶이해하고 동정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성격은 천태만상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심한 사람, 대담한 사람, 성급한 사람, 여유 있는 사람들의 성격 등등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성격은 인간이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왜 저 사람은 나와 같지 않은지 몰라!' 짜증 부리지 말고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두셨으니 내가 이해해야지 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해심이 없는 부부는 언제나 갈등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바울은 엡5:22-23절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모든 육체는 머리가 지배합니다. 한마디로 남편은 가정에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질서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남편보다 머리가 좋고 판단력이 좋다 하더라도 남편을 무시하고 자기 앞서 활개 치면 그 가정은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남편들은 군림하는 자세로 나오면 안 됩니다. 엡5: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헌신적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할 것은 주님을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⑷서로를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로 믿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아담이 원했기 때문에 여자와 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셔서 복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축복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
사람들은 돈을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명예를 귀하게 여기지마는 남편에게는 아내 이상으로 귀한 것이 없고, 아내에게는 남편 이상으로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로 믿으며 내 몸 이상으로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몸이 상하지 않고,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상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감사해야 합니다.
⑸서로에게 부끄럼이 없는 진실한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는 눈을 만족시켜 줄만큼 예쁘다고 해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를 만족시켜 줄만큼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함께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감추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간에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⑹몸도 마음도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혼의 공식은 1+1=1 입니다. 두 개의 돌이 합쳐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두 개의 물방울이 합쳐 하나가 되는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함께 고통을 느끼고, 함께 영광을 누려야 합니다. 한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고통을 당하는데 남편이 좋아한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남편이 슬퍼하는데 아내가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 가정의 행복은 뜬구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신뢰)으로, 사랑(희생)으로, 소망(꿈)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③'돕는 배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니라' 돕는 배필은 '조력자, 반려자'라는 말로 한마디로 '알맞은 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 돕는 배필은 '돕는 자'라는 말은 분명한데 오해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돕는 자의 원어 '에셀'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돕는 신하나 조수의 개념이 아니라 돕는 배필이라 하여 여자가 일방적으로 남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돕는 자 '에셀'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우실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왜 돕는 자로 두셨는가? 그것은 서로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들이 않을 만큼 그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서로의 허물을 거듭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싸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시119편에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오' 이 말씀은 '그는 너희의 에셀이시요'입니다. 그러므로 돕는다는 것은 계급의 개념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남성은 아내의 도움으로 완성되고 여성 또한 남편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공동체 속에서 철저하게 도움을 요구하는 자이기보다는 돕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나를 위해 서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나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가족을 주신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나를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또한 사람이 돕는 자로 삶을 사는 것은 신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늘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할/
▶어느 날 랍비 아케바에게 어떤 철학자가 물기를 '만일 그대의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신다면 어째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랍비 아케바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을 행할 기회를 우리에게 베푸시기 위하여 가난한 자를 우리 곁에 있게 하였다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관계들 속에서 만일 여러분이 돕는 자의 마음을 포기했다면, 돕는 자 되기를 미룬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평생에 도움만 필요로 하다가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지도 못한 채 끝나 버릴 수 있습니다. 벧후1:7절에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돕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빚을 갚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의 나 된 것은 부모님의 희생, 형제들의 희생, 선생님들의 도움, 주변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나의 나 된 것은 나 혼자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제일 무식한 사람 중에 하나가 자기 잘 난 맛에 자신의 능력인 줄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돕는 자로 사는 사람은 마음에 고마움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부부와 부모와 자녀 모든 관계에서 고마움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고마움을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잘 나가는 남편의 마음속에 아내를 보며 '네 주제에 나 만나서 이 만큼 사는 줄 알라' 하고 무시하면 물론 힘든 것은 무시당하는 아내가 힘든 것 같지만 오히려 불행은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행복하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손가락으로 한 번 꼽아보십시오. 나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또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 돕고 사는 이웃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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