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 2:14-17)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을 이렇게 정의 해보면 어떨까요? '예수 냄새나는 사람들' 괜찮습니까? /할/
본문의 배경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에게 근심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본질이 고린도교회에서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거짓선지자들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바울은 너무도 달라진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팠습니다. 복음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 흘리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갑니다. 그 편지를 디도를 통해서 전달합니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 전달한 눈물의 편지가 고린도교회에 어떠한 반응 변화를 보여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디도를 드로아에서 서로 만날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디도와 약속한 시간보다 수일 먼저 드로아에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디도를 만날 수 가 없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는데도 그는 복음을 전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12절과 13절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가진 교회에 대한 열정과 생각을 맛볼 수 있습니다.
12절을 가만히 보시면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12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무엇 위에 세워졌으며 고린도 교회가 무엇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교회론의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멘!/
교회는 복음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사람 위에 세워진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어떤 조직위에 세워진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어떤 행정질서 위에 세워진 공동체도 아닙니다. 어떤 목적 지향적인 공동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예수 냄새가 나야 합니다. /할/
본문에서 바울은 '냄새'란 말과 '향기'란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냄새란 말은 헬라어로 '호스메'인데 이것은 로마황제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개선을 축하하기 위하여 길가에 피우는 향냄새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또 '유오디아'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희생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는 것만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온갖 고난과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었습니다.
로마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보무 당당하게 개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자신 위에 서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 저 군대처럼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승전의 향냄새가 자신에게는 예수 냄새임을 알았습니다. /할/
저는 그리스도인 됨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현재 주안에서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 됨 이후에 달라진 은혜가 몇 가지 있습니다.
①성숙한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지극히 이생 적인 것뿐입니다. 현재적입니다. 경제와 잘사는 것과 즐기는 것 그 이상은 없습니다. 돈은 있는데 사용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속에 철학이 없습니다. 뜻이 없습니다. 모두 즐기는 이야기뿐입니다. 마시고 취하고 즐기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적어도 영적 안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계관이 다릅니다. 인생관도 다릅니다. 삶의 목적이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종말관이 있습니다. 이미 죽음을 준비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천국이 있고 장래가 있고 하늘의 뜻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할/
얼마나 성숙한 인생입니까? 이것이 모두 우리가 예수를 알고 난 후에 주어진 은혜들입니다. 예수를 앎으로 우리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안목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인생이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냄새요 향기입니다. /아멘!/
②세상을 보는 눈이 뜨였습니다.
기독교가 어둑한 이 땅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변화를 준 것이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 준 일입니다. 세상을 향해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로소 세상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말고 더 넓은 땅과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눈도 뜨게 해 주었고 영적 세계를 보게 해 주었습니다.
이 눈은 마침내 저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안목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 눈이 뜨이고 보니 넓은 세계도 보이고 저 높은 영적 세계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닫혀있던 것이 열린다는 것과 감겨있던 것이 뜨여진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뜨여지고 열리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이 땅에 와 있던 선교사 언더우드 부인과 민비가 참 가까이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자주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하루는 대화도중 민비가 언더우드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미국은 땅이 넓어서 4계절이 언제나 공존하는 나라'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민비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민비에게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없고 죽거나 아프거나 병들거나 침략을 받는 일이 없고 눈물과 탄식이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천국입니다.' /할/
그 말을 듣고 민비는 '그런 나라가 다 있느냐, 그렇다면 나도 그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민비가 일주일 후에 시해 당해서 죽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할/
③복음은 개인도, 민족도 개척의지를 갖게 합니다.
우리 민족이 마침내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사고와 생활태도에 상당한 변화를 안겨 주었습니다. 마침내 운명신앙을 타파하고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며 만들어나가는 의지를 발휘하고 앞날을 돌파해 나가는 정신을 가진 민족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할/
이곳이 막히면 뚫고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개척정신을 심어준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우리민족에게 준 영향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받은 축복의 통로인줄 믿습니다. /아멘!/
④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배운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듯이, 가진 사람에게도 사명이 있듯이, 예수를 알고 눈을 뜨고 보니까 한 가지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내가 눈을 뜨고 보니까 아직도 그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을 눈뜨게 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입니다. /할/
우리에게는 그런 책임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를 알게 해 주어서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에게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를 전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 삶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세상에 예수에 대한 향기를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향기는 본체를 알리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서 향수냄새를 나타내게 되면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는 시간에 향수를 만든 회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그 회사제품은 향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향의 역할입니다.
나무 중에 라일락의 향이 가장 좋습니다. 지나가다가 냄새가 풍기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여기 어디에 라일락 나무가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라일락의 향이 그 나무를 선전하고 알리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향기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생각, 모습에서 예수의 향기가 풍겨지고 묻어날 때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예수를 생각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선전하고 보여주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향기가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향기가 마침내 세상을 정화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살면서 이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명은 아주 소박한 사명입니다. 이런 사명을 이루며 살려면 더 이상 현실과 야합하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시대를 예언자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이상이 있고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매사 현실과 야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도 자기입장만 위해서 살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이고 남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하등인간입니다. /할/
우리 기독교는 조용히 앉아서 도나 닦고 수양이나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나만 죄짓지 않고 살면 된다,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입니다.
기독교인의 사명은 먼저 나 자신을 구원시켜야 합니다. 구원도 분명하고 확신 있는 구원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예언자적인 삶을 살게 되는 동기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신앙인은 정신, 철학, 삶 중심,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기독교는 영적인 삶인데, 저 높은 곳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겨우 목적이 이생, 현실, 잘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이 무슨 신앙인입니까?
우리는 예언자적인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몫입니다. 그렇게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대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너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라'는 명령이십니다. /믿/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입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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