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7)
독일의 마틴 루터가 천주교의 신부로서 사명을 갖고 로마에 갔을 때 그의 나이 30대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그가 동료 신부들과 같이 '스칼라 상타'라는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계단은 28층으로 되어있는데,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면서 올라가신 계단인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천사들이 로마로 옮겼다며, 누구든지 이 계단을 무릎으로 한번 오르내리면 15년 간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는 터무니없는 조작전설이 카톨릭 안에 있습니다.
루터가 반쯤 올라갔을 때 평소에 읽고 은혜를 받았던 롬1:17절의 말씀이 캄캄한 밤중에 샛별처럼 그의 마음을 밝혀 주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는 즉시 헛된 고행을 중지하고 뛰어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주교의 비 성경 적인 점이구나 생각하고 95개조의 항의문을 만들어 단독으로 로마 교황청에 도전하여 마침내 종교개혁의 위대한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할/
①루터는 개혁 당시 95조항을 내세우고 3대 원칙을 전했습니다.
⑴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키거나, 선행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⑵성경만이 신앙의 행위의 표준이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⑶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할/
②신, 구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⑴신교는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습니다. 구교는 성경 뿐 아니라 교회 전통, 교황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교황이 신앙 문제나 행위 문제에 대해서 확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봅니다.
⑵신교는 예수 그리스도 만을 속죄 자로 믿습니다. 구교는 성모 마리아를 속죄 권능이 있다고 믿고 성자를 믿습니다.
⑶신교는 죽은 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믿으며, 구교는 연옥(중간 지점)을 믿습니다.
⑷신교는 성경 말씀과 교훈을 중심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구교는 예배의식을 존중히 여기며 여러 사람이 만든 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며 미사를 중히 여깁니다. 미사는 성경에 없습니다.
⑸신교는 집사로부터 장로를 택할 때 투표를 합니다. 구교는 신부가 기관장을 세웁니다.
⑹천주교회를 한 국가로 봅니다. 교황청과 성 베드로 성당이 있는 바티칸은 전 세계에 있는 로마교회의 주권자인 동시에 바티칸 국의 왕국입니다. 교황청은 각 나라에 바티칸 국의 대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바티칸을 한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한 교회로 인정합니다. /할/
③복음 만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이 말씀은 16절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은 '의'란 인간의 타고난 특성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발전시켜 나가야할 네 가지 덕목 즉 '지혜, 절제, 용기, 그리고 의 가운데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시 헬라인들이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의를 내세워 자기들의 의인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롬10;3절에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다'고 이들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롬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인간의 의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로만 가능하다고 천명했습니다. /할/아멘!/
그리고 바울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그는 오직 믿음으로만 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할/
④'의'는 언약 개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란 말로 이 말은 히브리어 '체덱'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언약 개념'입니다. 즉 성경이 말씀하는 의는 도덕적 기준에서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을 맺은 양자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의미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판결이 나는 개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할/
창17: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시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셨고, 저들이 죄를 범한 뒤에 회개하면 그들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하나님의 의라고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출9;27/삼상12:7 등). 결국 하나님의 의란 자신의 언약 백성에 대한 언약 적인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는 자주 '인자와 성실'이라는 말로 정의되기도 합니다(시98;2-3).
오직 이 의는 하나님을 믿을 때만이 덧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의를 덧입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십자가상에서 나타난 구원의 약속을 믿는 것, 즉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옛날 노아가 120년 간 그 약속을 믿으며 방주를 짓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⑴그럼 의가 무엇인가? 구약에 계시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51;5절에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이 말씀을 바울은 롬3;21-22절에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할/
⑵여러분!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면 왜 인류구원이 불가능합니까? 그것은 인간 시조인 대표자 아담에게 명하신 행위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입니다.
창2;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행위계약을 인간 편에서 일방적으로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관계에서 끊어지고 영적 죽음이 왔으며, 영과 육이 분리되는 죽음이 왔고, 영원히 버림받는 내세 지옥의 형벌인 둘째 사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롬3;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행위 계약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속성(공의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위 계약을 어긴 죄 값으로 당하는 형벌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행위 계약은 그대로 두시면서 인류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다른 법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청산케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사 하늘에 오르게 하시고 에덴동산보다 더 나은 하늘 낙원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것을 얻는 조건으로 믿기만 하면 인간의 첫 시조 아담이 범죄 하기 전 보다 더 나은 몸으로 부활시켜 영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은혜 계약'이라고 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인간의 영과 육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대로 인류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곧 예수를 믿어야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믿/
⑶'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 얻는 길은 오직 믿음 뿐이라고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의는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절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구약 합2:4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할/
⑤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갈3;11).
▶이스라엘의 우화 가운데 '새들의 불평'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동물의 창조를 끝냈을 때 새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들은 "짐승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안 주셨는데 왜 우리 새들에게만 짐을 지워서 이렇게 걷기도 힘들게 하십니까?"라고 투덜거리며 창조주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용기 있는 독수리가 먼저 어깨에 붙은 그 무거운 것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온몸이 갑자기 가벼워지면서 공중을 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부착물은 짐이 아니라 하늘을 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인 날개였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큰짐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짐으로 준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욱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믿/
▶바울 사도가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병이 생겨 갈라디아 지방에 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바울은 복음전파에 힘써 여러 곳에 교회까지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곳을 떠났는데 바울이 떠나가자 갈라디아 지방에 이상한 신앙을 가진 자들이 들어와 교인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미혹케 하는 자들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는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로서 그들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고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설파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영지주의자들로서 예수를 믿으므로 영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육적으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두 가지 거짓 사상이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히고 기독교 신앙을 변질시켜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은 다시금 유대교의 형식주의로 되돌아가거나 영과 육을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에 대한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한다고 가리켰습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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