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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강림! (행 2:1-4)

by 【고동엽】 2022. 3. 19.

오순절! 성령 강림! (행 2:1-4)

 

  이대교수였고 한국의 지성인 이어령 박사가 73살에 예수를 깨닫고 회개하고 일본 동경에서 공식적인 집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하용조 목사님 앞에서 세례 받고 구원받아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딸이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갈 때 하와이 한 카페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딸아이가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 가는데 정말 살아 계시거든 우리 딸을 고쳐 주세요. 내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자식이 죽어 가는데 기도 안 할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이어령 박사 같은 지식인도 딸이 후두암으로 죽어가니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도 포기한 그 딸을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목소리를 회복하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충격을 받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게된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할/
  기독교는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결단을 하고 그리스도를 모셔서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세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

 

  ①성령 강림의 배경은 무엇인가?(1)
  ⑴'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성령 강림의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⑵'저희가 다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⑶'한 곳에 모였더니' 성령 강림의 장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 점은 사람이나 장소에 있지 않고 때에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성령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따라서 이 날, 곧 오순절에 반드시 오시도록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멘!/
  성경의 예언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구적 예언'과 '상징적 예언'입니다.
  어구적 예언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그대로 말씀한 것입니다. 사7: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의 이 '어구적 예언'은 마1:22-23절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으로 말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상징적 예언'은 앞으로 되어 질 일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 방에 발랐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 그 피를 보시면 그 집은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이 때를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양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세례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한 이 어린양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양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예언입니다.
  오순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50일째 되는 날로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음으로서 온전히 조직된 광야교회로 출발할 수 있었고, 또 오순절에 성령을 주심으로 신약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오순절 날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건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첫 열매를 바치는 날이었으나 신약시대에서는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 자신을 교회에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영이십니다. /할/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여기 '다 같이'는 당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될 때에 진정한 교회의 연합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멘!/

 

  ②성령 강림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는가?(2-3)
  ⑴홀연히 임하십니다. 별안간 갑자기 주십니다. 주의 성령은 계단적으로 임하지 않고 갑자기 임합니다. 어떤 자에게 임하는가? 기도하고 준비된 마음 위에 성령은 홀연히 임합니다.
  여기 '홀연히'란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주의 재림도 홀연히 임하십니다. 계22: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주의 은혜도 '홀연히' 임하십니다. 능력도, 축복도, 응답도 홀연히 임하십니다.
  ⑵급하게 임하십니다. 이 표현은 갑작스럽게, 빠른 속도감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일을 시작하게 되면 신속하고 민첩하게 일하십니다.
  우리는 매사에 계획을 신중하고 철두철미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 계획이 완성되면 가장 신속한 행동으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⑶강하게 임하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강하게, 아무도 저항할 수 없도록 능력 있게 나타납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아무도 폭풍과 소나기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초자연적으로 강하게 나타납니다.
  ⑷바람처럼 임하십니다. 헬라어도, 히브리어도 모두 '바람과 성령'을 똑같은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한 부분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람의 신비와 성령의 신비성이 같기 때문입니다.
  즉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불어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또 그 방향도 임의대로 붑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도 신비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성령의 뜻대로 역사 합니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성령은 바람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⑸가득하게 임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가득하게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하게 채워지는 것이 '성령 충만, 예수 충만'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 채워집니까? '저희 앉은 온 집에'라고 했습니다. 여기 '앉아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고, '집은 성전'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할 때, 가득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믿/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3시, 6시, 9시>입니다. 3시는 우리시계로 9시를 가리키며, 6시는 12시, 9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⑹불같이 임하십니다. 3절의 불의 모양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출3:2)하며, 또 정결케 하며, 거룩케 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상징한 것입니다(겔1:3/말3:2-3).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갈라졌다'는 말입니다. 어떤 한 사람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 모두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불은 죄를 태웁니다. 불은 정화시킵니다. 불은 정열을 상징합니다. 또 불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불같은 성령을 받으면 죄를 태우고, 심령이 깨끗해져서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주의 빛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바람 같은, 불같은 성령이 어디서 옵니까?
  2절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임하십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거룩하고 성결한 곳으로부터 성령이 오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성령이 그 전에도 세상에 계셨습니다. 시51:11절에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또 마16:16절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것도 성령으로 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어떤 성령이십니까?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요14: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란 '돕기 위해 부름 받은 자'로 '대언 자, 변호사'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보혜사의 직분을 가지고 오신 성령이십니다. 오순절 전에 역사하시던 성령과 보혜사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직분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형님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 형이 국회의원이라는 직분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동일한 형님이지만 그 직분을 받은 다음에는 하는 일이 다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과 못 박히신 후에 성령이 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멘!/

 

  ③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4)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우리는 '성령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됩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순간에 일회적으로 단 한번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이와는 다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엡5: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에 취해버리면 술로 충만해집니다. 그러면 술이 그 사람의 생각도, 말도, 행동도 다 지배를 해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성령이 우리의 삶을 사로잡습니다. 그리해서 성령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성령의 충만함'이란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장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얌전한 사람도 술에 취하면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또 힘도 세어집니다. 술기운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자신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우리가 계속 받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3절의 '혀같이 갈라졌다'는 말은 성령이 모든 것을 갈라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갈라놓습니다. 영의 것과, 육의 것을,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갈라놓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신앙의 덕목이 나옵니다.
  ▶한 자매님이 남편의 술 주정으로 가정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이 자매는 남편을 위해서 특별 기도를 하면서 '주님, 내 남편이 술도 끊고, 잘 못 산 것을 회개하고 돌아와 가정이 평화롭게 해 주옵소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딸아 네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 전에 내가 성령 충만을 받고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크게 감동을 받은 이 자매님은 그때부터 신앙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남편이 핍박해도 기도했고, 때려도 사랑했고, 가난해도 족했습니다. 더욱 남편을 존경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달라진 모습에서 남편이 감동을 받고 변화되어졌고,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간증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아멘!/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방언이 지금 우리가 흔히 하는 방언과 다릅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말로 설교를 하는데 로마에서 온 사람들은 로마말로 들려지고, 메대에서 온 사람에게 메대 말로 들려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방언과는 달랐습니다. 고전14장에 나오는 방언은 자기 개인 신앙의 영교를 위해 주신 방언이고, 본문의 방언은 하나님이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특별한 방언을 주신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창11:1-9절의 사건을 들어 하나님이 바벨탑의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이 성령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된 이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으로서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의 복음이 전 우주적으로 확산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할/

 

  ④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⑴그곳은 몸부림을 치고 나서 성령을 받은 곳, 그곳이 다락방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마가의 다락방인줄 믿습니다. /아멘!/
  ⑵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확신을 얻은 자리'입니다.
  ⑶다락방은 제자들을 '성숙하게 만든 곳'입니다.
  ⑷또 다락방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은혜 받은 곳'입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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