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참 중요합니다. (잠 4:23)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 공부입니다. 사실 종교는 마음 공부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 어떤 공부보다도 더 중요한 공부는 바로 마음 공부입니다. 이 마음공부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이 세상만사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있고, 마음 쓰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사뭇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건강하고, 마음이 아름답고,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어떤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 아무리 얼굴이 예쁘다할지라도 마음이 엉망이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마음이 병들면 불행한 것입니다. 집이 아무리 넓을지라도 마음이 좁으면 좁은 것이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어도 마음이 더러우면 더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더러운 자는 겉으로 보기에 깔끔하고 깨끗하게 보여도 본심이 더럽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더러운 것만 찾아다닙니다.
에디슨은 '그 사람의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천국을 만들면 어디를 가도 천국이고, 마음으로 지옥을 만들면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도 지옥같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감사와 원망도 환경이라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병은 마음의 병이 더 무섭습니다. 가난도 마음속에 가난의식이 더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고, 불황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불황의식이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만큼 마음이 중요합니다. 칼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독이 있으면 바로 그 마음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고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강도나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마음에 있느니라!' 마음을 가르쳤습니다.
마음에 천국을 이룬 사람은 환경의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실 때에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사람의 중심, 마음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사고를 저지르고 잡혀온 청소년들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마음은 분명 내 마음인데 나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처럼 ◀마음이 중요합니다!▶ /할/
▶미국의 어느 철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냉동차가 역에 정차하고 있는 동안 냉동차 내부를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냉동차 문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싸늘한 시체 한 구가 있었습니다. 냉동차 안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 냉동차 문을 잠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회사가 발칵 뒤집혀 졌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는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냉동차는 청소를 하기 위해서 스위치를 뽑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얼어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또한 산소도 충분해서 질식해 죽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청소부가 죽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그 청소부는 자기가 냉동차에 갇혔다는 것을 안 순간 '아- 나는 냉동차 안에 갇혔으니 이제 얼어죽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몸은 점점 얼어갔고, 맥박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을 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습니다. 아프지 않아도 될 사람이 아픕니다. 불행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불행해집니다.
▶중국의 명나라 유학자였던 '왕양명'이라는 사람이 산 속에 마적 단을 다 물리치고 개선하고 돌아올 때 환영 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산중여파적이나 심중난파적이라> 제가 문자 한 번 썼습니다. 이 말은 '산 속에 적은 물리치기 쉬우나 마음속에 있는 적은 물리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잠16:32절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 같은 적도 물리친 사람인데 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정욕을 물리치지 못해서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를 가지고 불레셋 사람 일천 명을 한꺼번에 물리친 용사인데도 드릴라의 요염한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한 번 유심히 생각해 보십시다. 모두 마음공부들이 부족해서 발생되는 사건들입니다. 이웃이 이웃을 속이고, 형제와 형제가 갈등하고, 자식이 부모를 잔인하게 죽이는 이런 일들은 모두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범죄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모두 마음공부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갈등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 그러는 것입니다.
1.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부패해졌습니까?
원래 인간의 마음은 부패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창1:27절을 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것이 원래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는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에게 세상을 정복하며 살라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축복 권이 언제 깨어졌습니까? 창3:1-15절에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떠난 그 날부터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 인간의 마음이 부패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행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은 파괴되고 마귀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소속이 바꾸어지고 부터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실패가 오고, 질병이 오고, 안식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참 행복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쾌락이 행복인줄 알고, 술과 도박과 오락에 빠지고 바람을 피우고, 마약을 먹고 쾌락을 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쾌락은 잠시입니다. 쾌락 뒤에 무엇이 옵니까? 허무, 저주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쾌락은 있어도 행복은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고 부터 이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렘17:9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원죄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부패한 마음을 정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2: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나의 마음속에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 다음엔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신앙이란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본문은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끊임없이 넘어지고 무너집니까? 아직도 우리 속에 원죄의 뿌리가 남아 있어 그렇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신앙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믿/
2. 우리가 마음을 지키려면 먼저 몇 가지 제거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①우리 마음속에서 탐욕부터 제거해 내야 합니다.
모든 사고나 모든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탐욕이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약1: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은 욕심이, 탐욕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추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망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왜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전혀 욕심이 없고 탐심이 없기 때문에 천진스러운 것입니다.
어느 외교관은 오늘의 이 복잡한 세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차라리 UN대표로 어린아이들을 파견하자고 했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왔습니까?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욕심이 없고 사심이 없고, 저울질도 없고 마음이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국제문제도 그렇게 쉽게 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국회도 어린아이들이 들어가면 싸우는 일 없고 정치가 잘 될 것입니다. 욕심이 문제입니다. 마음에 탐욕이 생기게 되면 모든 관계가 잘못되어 갑니다.
▶옛날에 아주 우애 깊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 형제는 서로 협조하면서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무엇이든지 서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비록 생활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늘 부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 형제가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 깊지 않은 강바닥에서 금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두 형제는 그 금 덩어리를 사이좋게 똑같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 형제들은 하늘이 주신 특별한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동생이 갑자기 자기의 금 덩어리를 깊은 강 물 속에 던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형이 동생을 나무랐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니? 우리 형제가 가난하게 살지만 서로 사랑하며 우애 깊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하늘이 주신 축복인데 그것을 왜 버리느냐?'고 꾸짖었습니다.
형의 꾸지람을 들은 동생이 정중하게 대답합니다. '형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금 덩어리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형님을 존경해왔는데 이 금을 나뉘어 가진 뒤에는 야릇하게도 형님이 갖고 있는 것까지 갖고 싶은 욕심스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 것을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손을 움켜쥐고는 '아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다네!'하고는 자기의 금 덩어리도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이 형제가 다행스럽게 그 마음을 잘 다스렸기 때문에 형제 우애는 유지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싸우고 갈등하고 불행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마음속에서 이 탐욕을 제거할 때까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탐욕이 사람의 마음을 불평하게 만들고 추하게 만들고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우애 있는 형제 사이도 갈라놓습니다. 이웃과 친구사이도 갈라놓습니다.
가롯 유다가 은30냥에 스승을 팔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네 마음을 지키는데 더욱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멘!/
②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악한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전9:3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물을 먹어도 뱀이 먹으면 독이 나오고, 양이 먹으면 젖이 나옵니다. 이 말은 선한 마음과 독한 마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같이 존재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인자함과 따뜻함과 선과 의만 가득 들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사람들 마음속에는 원한, 미움, 증오, 적대감, 시기, 질투, 분노, 이런 것들이 잠재해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인간은 원죄와 죄 성이 잠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때는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가 되면 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살며시 고개를 들고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되 더욱 지키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할/
▶어느 심리학자는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강물에서 두 연인이 행복하게 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 모습이 행복해 보이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저 보트가 한번 뒤집어 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저 높이 떠있는 비행기가 팍 떨어져 버렸으면, 철교 위를 달리는 기차를 보고 철교가 무너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이런 무서운 생각들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바로 타락한 아담의 피에서 이어 받은 부패한 마음입니다. 이 부패된 마음은 오직 예수의 마음으로 밖에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믿/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의 마음을 품어라'고 했습니다.
③우리들의 마음속에 시기하는 마음도 제거해야 합니다.
사람을 자꾸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시기하는 마음입니다. 이 시기하는 마음은 자기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지만 남들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조 500년 역사를 보십시오, 온통 시기로 인해 당파가 생겼고, 온갖 파벌이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시기는 무섭습니다. 가인은 이 시기심 때문에 동생을 죽였습니다. 약3:16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어떤 농부의 집에서 염소와 나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일 잘하는 나귀를 더 사랑했습니다. 염소는 이것을 알고 늘 시기심에 불타 나귀를 해치려고 했습니다. 하루는 염소가 나귀에게 '얘 나귀야! 주인은 너에게 너무해, 매일같이 무거운 짐만 지우고 꾸짖고 때리기만 하니' 아주 동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나귀도 염소의 이야기를 듣고 동조했습니다. '글쎄 말이야! 우리 주인은 인정이 없어' 그때 염소가 무릎을 치면서 말하기를 '주인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귀보고 '다음에 짐을 싣고 개천을 통과할 때 무릎이 피곤한 채 넘어지면 그 후부터 너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눈웃음을 치면서 염소가 나귀에게 말했습니다.
염소의 말대로 나귀는 개천을 건너다가 넘어졌고, 주인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수의사를 불러 보았더니 나귀의 다리가 상했다고 하면서 약으로는 염소간의 피를 바르면 즉시 낫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주인은 시기한 염소를 잡아 나귀의 다리를 치료했다는 우화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앙인의 시기심은 금물입니다. 우리는 격려하고 힘을 보태주어야 합니다. /아멘!/
④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불 신앙의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근심, 걱정은 우리 신앙의 큰 적입니다. 낙심도 좌절도 큰 적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였습니다. 너무나 핍박이 많고 어려워서 그만 마르틴 루터도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낙심하여 방문을 닫아 놓고 두문불출하고 꼼짝하지 않고 방에 들어앉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하루는 상복을 입고 방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놀라서 '아니 여보, 웬일이오? 누가 세상을 떴소?'라고 물으니까 부인이 '아이고- 하나님이 세상을 떴어요. 하나님이 죽으셨어요'라고 말하며 서글프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루터가 '아니, 세상에 당신 어째서 그런 망발을 하오?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떴다는 말이오?'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렇잖으면 왜 하나님의 종인 당신이 이렇게 낙심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당신이 낙심하고 좌절하여 두문불출하고 기도도 안하고 있는 것을 보니 당신의 하나님이 죽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하나님 장례식을 치러야지요' 이 말에 마르틴 루터가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무너져 낙심한 것을 회개하고 그때부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힘을 얻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종교개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3. 우리가 가지고 지켜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①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요한1서 4:7-8절에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또 주님은 마22:37절 이하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②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③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성찰하는 마음입니다. 눅6;25절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로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④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을 볼 때 참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진심으로 전도할 수 있고 이웃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⑤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고전2:12-16).
바울은 고전2:16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신령한 마음 즉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졌을 때 몇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⑴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12절).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노라면 실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은혜를 입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모든 사람이 다 기억하거나 갚으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은혜나 도움을 잊고 사는 사람도 있고 기억은 하지만 갚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갚기는커녕 배신하거나 배은망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고마움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은 그 어느 아름다움에도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일 년에 두 번 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추수감사절과 맥추감사절). ▶감사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지켜주신 은혜! 보호해 주신 은혜! 여러 가지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만은 독생자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시대는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부모, 형제, 이웃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불감증 중병에 걸려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불감증을 고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⑵신령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13절).
미국에서 진행된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려면 미국엘 가야 합니다. 그러나 TV 중계를 통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눈으로 관찰하고 세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천체를 보는 망원경이나 첨단 장비로 볼 수 있습니다. 육안으로 내장이나 위장을 들여다 볼 수는 없습니다만 내시경으로는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 역시 육안의 눈이나, 지식으로는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2:13절에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라고 했고, '신령한 일은 신령한 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신령한 지식으로만 분별합니다. 그래서 고전2:14절을 보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신령한 사건입니다. 그 신령한 사건을 세상 지식으로 믿으려고 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령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그 어느 것 하나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선물입니다. ▶지금 이 시간 신령한 믿음을 구하고, 신령한 마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믿고 풀어야 합니다.
⑶판단 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15절).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 판단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판단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판단을 받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 충만하고 신령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남의 눈에 거슬리거나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유익을 줄지언정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울지언정 깨뜨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사단이 그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귀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⑷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16절).
내가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순종하려면 주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4. 이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①주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면 끝이 납니다. 모든 것은 주인 맘대로 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누가 살고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무리 대궐 같은 집이라도 도둑이 살면 도둑의 소굴이 되고 초라한 집이라도 왕이 계시면 궁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죄가 속에 있으면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악이 있으면 악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주님을 모시고 살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은 주의 성령과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시51: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는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겉보다 속을 더 보십니다. 속이라 함은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주의 영은 진실과 성실과 자유 함이 있습니다. 거짓은 마귀의 습성입니다. 거짓의 아비가 마귀입니다(요8:44). 세상은 온통 마귀의 문화 속에 판을 칩니다. 그래서 진짜 참기름이라고 선전하고는 중국산 깨를 씁니다. 쌀도 수입쌀 가지고 경기미라고 속입니다. <신토불이 하면서 중국산이 판을 칩니다.> 농산물도 약초도 생선도 우리 것이라고 하면서 속입니다.
물건을 사는 것을 보면 그 나라 국민성을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묻는 말은 '이 물건이 튼튼합니까?'라고 묻고, 미국 사람들은 '이 물건 얼마인가?' 값을 먼저 따진답니다. 그러니까 '값만큼 품질이 따라 주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물건 진짜냐?'고 의심부터 합니다. 싸도 불안하고 비싸도 못 믿겠고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풍조가 막연합니다.
요8:44절에서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붙잡고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②근심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요14:1).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안 해도 될 걱정을 하지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나오고 건강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기쁘게 마음을 조정하기 바랍니다.
▶딤후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③죄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죄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죄를 마음에서 척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미 죄를 마음에 품으면 죄인인 것입니다.
롬3: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④마귀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딱 한 가지만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데 바로 예수만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으로 무장하면 마귀는 꼼짝을 못합니다. 성령 충만해야만 마음을 마귀로부터 지킬 수 있습니다.
약4:7-8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⑤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켜야 합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⑥우리의 마음을 신령한 생각으로 지켜야 합니다.
사람은 마음에 무슨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 인격이 결정됩니다. 선한 일도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악한 일도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롬8:5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육신의 생각만 하면 그 생각이 죄를 만들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생각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는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바라보고 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교(전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일 때문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을 하셨습니다.
성경의 모든 핵심은 바로 전도입니다. 역사의 모든 물줄기도 전도에 맞춰 흘러가고 있습니다. 마24: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마24:14대로 갑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는 여기에 맞추어 왔습니다. 이 일에 눈을 뜨는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성도가 마24:14절에 방법을 맞춰 달려가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목회자가 마24:14절의 방법을 맞춰 이끌고 가면 하나님이 교회를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라고 건강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조건을 주시고, 환경을 주십니다. 여기에 빨리 눈을 떠야 고생을 덜합니다. 시작이 절반입니다.
⑦우리들의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양심은 생명입니다. 딤전1: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세상의 부자들은 돈을 지키기 위해 힘씁니다. 정치인들은 자기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연애 중인 사람은 자기의 사랑을 지키려고 힘씁니다. 직장인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녀를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쌓이면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되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양심을 버리면 믿음의 배가 파선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양심이 깨어지면 사기를 치고 배신을 합니다. 양심이 깨어진 사람입니다. 남의 집 귀한 딸 잡아다가 팔아먹었습니다.
양심은 마음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양심은 우리 영혼의 지성소요, 마음의 등불입니다. 부부가 양심을 버리면 가정이 파탄이 됩니다. 사회가 양심을 버리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집니다. 회사는 한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망합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양심을 버리면 나라도 어지러워지고 종교인이 양심을 버리면 하나님은 그 역사를 심판하십니다. 신앙도 양심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5.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마음을 지킬 것인가?
①결단하고 지켜야 합니다.
신앙은 한마디로 '결단'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란 '그리스도를 향해, 혹은 위해 결단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결단이란 말은 이것을 택하기 위해서 저것은 버려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저 사람은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 할 줄 아는 결단이 지혜로운 결단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종으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삽니다. 외롭고 고달픈 종살이를 하는 동안 주인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이 유혹으로 변합니다. 아마 요셉은 외로운 마음에서 누구보다도 쉽게 그 유혹을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야 고생도 덜 하고, 편안히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단호히 뿌리칩니다. 그 결단이 마침내 요셉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캔들러'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이 사람은 코카콜라 창업자인데 그 전에는 본래 알콜 중독자였답니다.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의지력이 약해서 늘 결심하지만 그 모양 그 꼴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귀가하는데 도중에 이상하게 마음에 큰 벼락 소리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자기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해야 성공한다!' 그는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은 '바로 그 시간 남편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감동 받은 캔들러는 아내와 손잡고 기도했고, 그 순간 신앙의 결단을 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의미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도 결단합니다. 그 후 알콜 중독이 저절로 끊어졌고, 마침내 세계적인 대기업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때로 버려야 할 때는 과감하게 버리고, 미련 없이 떨쳐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결단을 보자!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②하나님은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을 쓰십니다.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그 사람의 입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결단에 따라 긍정적으로 역사하든지 부정적으로 역사하든지 하시는 것입니다.
③결심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해마다 1월이면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1월이면 담배 판매량이 대폭 줄어든다고 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결심은 좋은 것이지만 결심을 지속적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④복된 결심은 결단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마음에 결단을 내렸으면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⑤마음의 결단은 마귀를 이깁니다.
여러분, 마귀도 마음의 결단을 먼저 살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결단을 내리지 않고 있으면 마귀는 결코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⑥이제 우리들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넓혀야 합니다!(고후6:13)
사람의 마음은 묘한 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로 좁지만, 마음이 넓어지면 온 우주라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됩니다.
고후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평할 때 '마음이 좁다, 응졸하다, 인색하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넓은 마음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넓은 마음이 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⑴넓은 마음이란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이고, 치우치지 않은 마음입니다. 치우치거나 편견을 가지면 남을 포용할 수가 없습니다.
⑵넓은 마음이란 섬기는 마음입니다. 섬김에 본을 우리 예수님이 마지막 성찬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막10:45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⑶넓은 마음이란 큰 믿음의 마음입니다. 시119:32절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
⑷넓은 마음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도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또 한 가지 더 주신 것이 있는데 바로 '넓은 마음'입니다. 왕상4:29-30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우리 모두 마음을 지킵시다. 본문은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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