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눌린 자가 회복되는 비결! (시 61:1-4)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때때로 삶의 위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 낙심 속으로 빠져버리고 맙니다. 때로는 이런 위기가 누구 때문에 왔다고 원망도 해 봅니다.
낙심은 무서운 병입니다. 낙심은 '히'어로 '마사스'인데 '용해시키다, 황폐케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낙심은 건강도, 희망도, 행복도 용해시켜 버리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또 '헬'어로 낙심은 '카코스'인데 '무가치한, 해로운'이란 뜻입니다. 낙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백해무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한숨을 내쉬고 낙심과 좌절에 빠져있습니다. 물론 괜히 낙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낙심할 만한 이유가 있고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게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들을 보면,
⑴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실패, 질병, 그 어떤 사건 앞에 있을 때 사람들은 낙심을 합니다.
⑵사회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에 적응이 안 된다든지 뒤떨어진다든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든지 요즘 세상처럼 사회나 정치가 불안하다든지, 전쟁의 위험이 있다든지 이럴 때 사람들은 낙심을 하게 됩니다.
⑶정신적인 문제들 때문입니다. 정서적인 불안, 노이로제, 신경과민, 고독, 단절 때문에 낙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낙심의 또 다른 표현이 절망입니다. 실존 철학자 '키엘 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낙심이나 절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왔습니다. 이미 지나간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금 그것을 간직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절망이나 낙심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느냐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낙심과 절망을 술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건을 피함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술이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피한다고 모든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신앙인은 신앙의 방법으로 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자식 때문에 마음이 눌려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다윗이 기록한 시편입니다. 다윗의 임기 말년에 그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 아버지 다윗왕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밤중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마하나임이라는 작은 산골에 몸을 숨겼습니다(삼하15-17).
2절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여기서 '눌리다'는 말은 '상하다. 다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아들의 반역 때문에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고, 다칠 대로 다쳤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에 쌓여 답답하고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이럴 때 '우울증, 열등감, 두려움, 염려와 낙심과 근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원인은 각각 다릅니다만 모든 사람은 그 어떤 이유 때문에, 사건 때문에, 환경 때문에, 근심, 불안, 초조에 빠져 있고, 여기에 우울증이 오고 열등감이 오고, 두려움이 오고,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욥7:3절 이하에서 욥은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 구나!' 그렇습니다. 염려는 아무 것도 상황을 바꾸지 못합니다. 어떤 문제도 풀지 못합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염려한다고 미래를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염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염려는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염려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과장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염려는 우리의 건강을 해칩니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염려에서 옵니다.
다윗은 본문 2절에 '내 마음이 누릴 때에..'라고 탄식했습니다. 한마디로 욥이나 다윗은 자신들의 우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열등감, 두려움, 실패 감, 좌절감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목 소개!▶
①열등감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인생 그 자체가 문제와 더불어 살면서 문제와 씨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살이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앞에 부딪힌 문제를 훌륭히 잘 해결함으로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부딪힌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서 오히려 그 문제의 늪에 빠져 몸부림치다가 실패를 거듭한 나머지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열등감은 잘 극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소아마비환자였습니다. 하반신을 쓰지 못했습니다. 항상 신체적 결함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열등의식은 훌륭히 극복할 수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음악가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였습니다. 음악인이 소리를 못 듣는다면 그것처럼 치명적인 상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신체적 결함이라는 열등감을 훌륭히 극복함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글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모두 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열등감이란 '자기의 존재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자학증세, 즉 열등의식'입니다. 신체적으로 어떤 결함이 있다든지 지식 면으로나 어떤 기능 면에서 약정이 있다든지 가정이나 환경 속에 어떤 문제가 있다든지 또는 인간관계에 어떤 결합이 있다든지 또는 실패나 실수한 일이 있다든지 할 때에 열등감이 옵니다.
▶오래 전 어떤 여자가 고인이 된 자기 아버지와 관련된 여고시절의 이야기를 적어 라디오 프로그램에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더니 버스 운전사인 자기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딸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딸은 그 순간 창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못들은 척 하며 친구들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계속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친구와 버스를 탔습니다. 타고 보니 자기 아버지가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는 순간에 아버지가 운전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버스 운전을 한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탈수도 내릴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말하기를 '학생! 거기에 서 있으면 위험하니까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며 오히려 아버지가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 날 저녁에 이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일찍 자는 척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방안으로 들어오시더니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나지막하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딸은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고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최선을 다 하는 부모를 공경해야지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아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아버지 직업을 조사할 때 길거리에서 뻥튀기 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니?' 아들이 대답하기를 '곡물 팽창 업을 하십니다.' 또 아버지가 도둑질하는 아들에게 선생님이 '너희 아버지는 무슨 일 하니?' '귀금속 이동 판매업을 하고 계십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링컨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초등학교 좀 다니다 중퇴하였습니다. 학력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도도하고 지식 많은 귀족들이 아브라함 링컨을 헐뜯고 괴롭혔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서 연설을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당신 같이 무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다시없는 불행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 아니었소!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된 것이 매우 부끄럽다.'고 공격하면서 자기가 신고 있는 구두를 벗어 들고 말하기를 '이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이요'하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온 국민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입니다. 나도 어깨 너머로 구두 수선하는 기술을 조금 익혔습니다. 당신 구두가 해어지거든 내게 가지고 오십시오. 고쳐 드리겠습니다.'
필리핀 대통령 막사이사이 아버지는 대장간 땜장이였습니다. 아들이 대통령이 되자 '이제 땜장이를 그만 두시지요'라고 권하자 아버지는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하시면서 죽기까지 땜장이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직업에 열등감을 갖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아멘!/
▶오래 전에 조선일보에 이규태씨의 칼럼에서 본 기사가운데 '한국인의 의식구조'란 주제를 썼는데 그 글에 보면 '한국인의 의식 바탕에는 열등감이 잠재해 있어서 작은 것을 크게 보이게 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글을 썼습니다. 예를 들면 국토가 작다보니까 우리도 이만큼 크다는 것은 과시하기 위해서 무의식중에 노래로, 시로, 동요로, 표현된 말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삼천리하면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백리, 천리도 큰데 삼천리하면 얼마나 큽니까?
또 있습니다. 나라가 작다 보니까 어떻게든지 크게 보이려는 열등감에서 큰 대를 잘 씁니다. 그래서 대한제국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입니다. 한강에 놓인 다리마다 '한강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 등등,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식의 바탕에는 열등감이 깔려 있고 그 열등감의 다음에는 허위의식으로 발전되어 이 민족이 과소비 풍조가 늘어나고 있다고 이규태씨는 말했습니다.
▶열등감은 철저히 비 신앙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진단한 열등감에서 생기는 증세가 몇 가지입니다.
⑴열등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가면을 쏟는답니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돈 좀 벌면 커다란 캐딜락부터 산다고 합니다. 흑인이라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 근사한 자동차부터 산다는 것입니다.
⑵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합니다. 현실상황에 적응보다는 피하고 빠져 나가려고 합니다. 문제는 피한다고 능수는 아닙니다. 문제 속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⑶남을 잘 비판한다고 합니다. 남에 대해서 말할 때, 꼭 헐뜯거나 깎아 내려야 만이 직성이 풀린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을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고 칭찬해 주는 말은 잘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대화 때마다 헐뜯거나 비난하거나 누구를 깎아 내리는데 익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그 밑바닥에는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그런 어떤 열등감이 깔려 있다고 합니다.
⑷자기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변명의 잘합니다. 어떤 일에도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이라고 합니다.
⑸쉽게 의욕을 상실하고 체념적이랍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끝없이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아멘입니까?/
▶또 한번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도 사업에 두 번 실패해서 17년 간 빚 청산을 위해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다음에 정계에 투신해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무려 낙선을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그 후에 부통령에 출마해서도 낙선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8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한때의 승리를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니고 최후의 승리를 붙잡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붙들고 다시 시작하는 성도가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아멘!/
▶셰익스피어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가입니다. 작품마다 인간의 내면을 진솔하게 그려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의 작품을 따라 갈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날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식당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은 그렇게 유명한 분과 함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온통 시선이 그에게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 와서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때 그 식당 청소를 맡고 있는 젊은이가 투덜대며 빗자루를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구석진 의자에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이를 본 셰익스피어는 식사를 멈추고 그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자네. 왜 빗자루를 내던졌는가?' 그 청년이 대답하기를 '선생님과 저는 똑같은 남자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위대한 작품으로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존경을 받고, 저는 고작 바닥이나 청소하는 보잘것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제 자신이 한심할 뿐입니다. 너무나 열등감 때문에 내 신세가 한심하여 그럽니다.'
이 때 셰익스피어는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말했답니다. '그렇지 않다네. 자네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야. 자네와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네. 나는 펜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고 자네는 지금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청소하고 있지 않는가?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는 같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야. 안 그런가?' 이 후 청년은 어떤 궂은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였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열등감이 있고 열등감을 건드리면 아파합니다.
'말츠'의 말을 빌리면 94%의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어찌 열등감뿐입니까? 인간의 마음속에 많은 감정들로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②두려움입니다.
먼저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딤후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함에도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두려움에 눌려 있습니다. 아들놈에게 정권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건강에 두려움, 사업이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근심걱정, 두려움으로 삽니다.
욥기서를 보면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왜 욥이 시험을 당하느냐? 왜 욥이 그토록 엄청난 시험을 당하며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부딪힙니다. 왜냐하면 욥은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건강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재산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자녀의 축복도, 열 자녀, 지금 문화로는 욕하지만 당시 문화로는 다복한 집입니다.
또 욥은 욥1: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동방의 의인입니다. 선한 사람입니다. 죄를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왜 갑자기 하루아침에 시험을 만나서 재산이 날아가고 자녀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자기 몸에 중병까지 생기느냐 이 말입니다.
저도 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서 매우 궁금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견한 것은 욥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욥을 시험할 때 욥의 약점을 이용해서 시험했습니다.
욥의 약점은 바로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입니다. 어떤 두려움이 있었느냐 하면 '혹시 무슨 사건이 일어나서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까? 또 어떤 재난이 다가와 내 재산이 몽땅 날아가지는 아니할까? 또한 내 몸에 혹시 병이 생기지나 아니할까?' 자녀의 두려움, 재산의 두려움, 건강의 두려움이 왔습니다.
마귀는 그 두려운 마음을 이용해서 욥을 흔들어 대고 시험합니다. 욥이 엄청난 시험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욥3:25-26절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즉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마침내 내게 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자식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재산에 대하여' 어떤 두려운 마음을 가졌는데 바로 그 두려워하는 마음 그대로 나에게 현실로 '이루어 졌구나!'하는 탄식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 속에 어떤 문제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마귀는 그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나를 흔들어 대고 나를 고통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네가 너와 함께 있으니라' /할/ 주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20:8절에 보면 모세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아 놓고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용사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이 좋은 사람은 한때 이 두려움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아브라함을 꾸짖으시면서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창15:1절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다윗은 시23: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딤후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능력을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다이너마이트'입니다. 무엇을 폭발시키는 힘, 이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힘은 그 어떤 두려움도, 어떤 염려도, 어떤 근심도 걱정도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힘을 가리켜서 '두나미스'라고 하고, 이 능력을 성령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믿/
그 다음에 사랑의 마음이 우리 안에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요일4: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또 근신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근신이란 '자기의 통제'를 의미합니다. 자기 마음을 통제할 수 있고, 자기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랑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수1:7) /할/ 마음을 강하게 합시다. 좌우로 치우치지 맙시다. 여호와의 말씀을 늘 묵상하십시다. 이런 사람은 절대 두려움이 침노하지 못합니다.
③우울증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극심한 우울증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 수 없는 사람이 그럴 수 있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놀라운 보고는 '알게 모르게 80%의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우울증 증세를 몇 가지로 꼽았습니다. ⑴인생에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 하고 짜증나는 순간이 잦은 사람. ⑵항상 안절부절못하며 공연히 불안한 사람. ⑶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⑷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자기도 모르게 하는 사람. ⑸몹시 의심이 많아 남을 믿지 않으며 지나치게 공격적인 사람. ⑹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 폭발할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는 사람. ⑺사소한 일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너그러운 말보다는 상처가 나게 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 등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상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극심한 우울증에서 자기를 극복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40세에 민족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실패로 인하여 극심한 우울증 속에 40년 간을 미디안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할/
▶우리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힌 채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인정받지 못 하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망치를 들고 흑인 마을에 들어가서 집을 고쳐주고 여기저기 분쟁이 있는 곳을 다니며 평화의 사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퇴임 후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④실패감과 좌절감의 문제입니다.
인생이 실패 없이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살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시행착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내 인생의 실패로 생각하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의 문으로 들어간 이는 없습니다. 다 실패를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식을 몰아내야 합니다. 실패 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다음 일을 못 합니다.
▶어느 슈퍼마켓 점포에 불이 났습니다. 벽 하나 남지 않고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저 사람은 끝장이라고 생각하며 혀를 찼습니다. 그런데 이튿날이었습니다. 잿더미 위에 나무 선반을 만들어 놓고 물건을 파는 주인을 동네 사람들은 발견했습니다. 그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사람들은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이튿날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그 주인의 용기에 감탄하여 물건을 팔아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짧은 시간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할/
신앙인은 좌절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믿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또한 요14: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은 어떤 문제이건 그 문제에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믿/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욥5:18-19절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 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할/ 여러분, 지금 실패가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건강에 실패하고 어떤 분은 가정에 실패하고, 어떤 분은 사업에 실패하고, 어떤 분은 인간관계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피할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올 때는 하나님께서 피할 길도 주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지금 어떠한 실패가 왔다 하더라도 믿음 하나만 붙잡고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 그래요! 믿음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구원도, 회복도, 응답도, 승리도 다 믿음 안에 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다 실패하더라도 믿음을 절대 실패하지 마십시오, 믿음 안에는 칠전팔기의 능력이 있습니다. /할/
▶본문 속에 다윗을 보자!
본문의 다윗은 자기 자식놈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아버지의 왕권을 자식이 노리고 들어옵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2절에서 '내 마음이 눌렸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말한 '눌리다.'는 '상하다, 다치다.'란 뜻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그의 마음에 열등감, 두려움, 실패 감, 좌절감, 분노, 등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여러 가지 문제로 망한 것이 아닙니다. 일어났습니다. 회복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의 회복의 비결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할/
①다윗은 주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피난처라고 견고한 망대라고, 보호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짓눌리는 삶 속에서, 근심과 걱정, 두려움, 의기소침, 분노와 분쟁 등으로 우울하고 불면증이 생길 때, 우리가 이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믿/
다윗은 절박하고 절망적이고 너무나 마음이 아픈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식놈이 배반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의 편에 서서 다윗을 대적하는 상황에서 다윗은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과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는 도망치는 상황에서 시므이가 나와서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며 '비루한자여, 저주받은 자여 가라, 가라'하며 저주할 때 아비새라는 부하가 시므이를 죽여버리겠다고 할 때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내버려두라고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고 저주를 선으로 바꿔 주실 지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삼하16:5-14).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주님이 나의 모든 삶을 다스리시고 주장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요 주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 그 우울한 상황 속에 빠져 망하는 자리에 가지 않고 실패하는 자리에 가지 않게 한 것입니다. /할/ 이 믿음으로 오히려 자기를 저주하는 자를 향해 용서를 베풀 수 있었고 도망치는 가운데서도 제사장 사독이 다윗을 따르자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자리를 지키라고 돌려보내며 다시 돌아올 것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눅12:7절에서 우리 주님이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온전히 믿는 믿음입니다.
②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도입니다.
1절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절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무슨 소리인가? 기도입니다. 비록 내가 되돌아올 수 없는 땅 끝 벼랑으로 밀려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주님을 향해 부르짖겠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가고 있습니다. '땅 끝에서부터' 부르짖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피해갔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은 자식에게 왕 자리를 빼앗긴다는 그것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과 멀어진 것을 통탄'하고 있습니다. /할/
여러분! 성전이 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멀어지니 자기의 심령이 땅 끝에 와 있는 기분이라는 뜻입니다. 땅 끝은 구체적으로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갔던 요단 동편 땅 마하나임을 가리킵니다. 물론 요단 동편의 땅은 문자적 의미로는 땅 끝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하나님 성전에 있어야 할 자신이 타의로 인하여 버림을 받고 피해 온 것을 땅 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였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그 상황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마음에 눌려 있는 모든 것을 기도로 풀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43;3-4) /할/
하나님의 성격은 회복입니다. 크게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이 성경의 역사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 실낙원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락원하시고 요한계시록의 역사를 끝내시는 것이 성경역사입니다. /아멘!/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라는 복음 성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믿음을 줍니다. 우리는 본문 1-2절에서 기억해야 할 교훈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땅 끝에서도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바위 위에 인도하실 줄로 믿고 기도하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어떤 사건으로 땅 끝에 떨어져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부르짖는다는 것은 소리내어 기도한다는 것이요,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땅 끝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절망과 좌절과 우울의 벼랑에서도 열등감과, 두려움과,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아멘!/할/
우리 주님은 막9:29절에서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하면 주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3절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또 4절에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 망대, 날개'라고 노래합니다. 이 셋은 모두가 보호의 수단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마음의 모든 고통이 해결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할/
③다윗의 기도의 철학을 우리도 배우야 합니다(삼하22:1-7).
다윗은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고 추적할 때마다 은신처를 찾아 이 곳, 저 곳으로 숨어 다닌 적이 있습니다. 반석 뒤에도 숨은 적도 있고, 요새에 은신한 때도 있었고, 바위 굴속에 숨은 때도 있었습니다. 수풀 가운데 숨을 때가 있었는가 하면, 엔게디 굴속에 은신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숨길 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결국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시18:1절의 내용과도 같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삼하22:2-3절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을 때 이러한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할 때 힘있는 기도, 능력 있는 기도, 영통 하는 기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에 골자가 무엇입니까? 7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즉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입니다. ▶다윗의 기도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기도의 시간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언제 기도했습니까? 5절 이하에 '사망의 물결이 에워쌀 때, 불의의 창수가 두렵게 밀려올 때, 음부의 줄과 사망의 올무가 다가올 때, 그리고 환난이 닥쳐왔을 때' 기도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윗은 환난 중에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환란 당하고 게십니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할/
⑵그가 어디서 기도했나요? 기도의 장소입니다. 7절에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전이 어디인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또 아무 곳에서나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바울도 옥중에서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기도한 곳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할/ 그렇습니다. 이 전이 기도하는 전입니다. 예수께서 막11:17절에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이면 찬송하고, 말씀 듣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⑶다윗의 기도의 방법입니다. '나의 부르짖음의 그 귀에 들렸도다' 다윗의 기도방법이 무엇입니까? 부르짖은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기도할 때 묵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낮은 음성으로 조용한 음성으로 소곤소곤하는 음성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란 때에, 위급할 때에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아멘!/
④어떤 사람이 기도할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도 잔고가 없으면 핸드폰으로 '은행 잔고가 없습니다.' 라는 멧세지를 보냅니다. 이 보다 더 비참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영적 은행에 잔고가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큰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은행에 잔고를 채워야 합니다. 잔고가 없으면 역사가 없습니다.
⑴진실을 채워야 합니다. 왕하18:2-7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키며' 살았더니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진실은 영적 은행에 저축할 수 있는 품목입니다.
⑵필수과목이 있습니다. 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여 두면 쌓이고 쌓인 기도 때문에 나중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⑶구제도 영적 은행에 예금이 됩니다. 고넬료는 평소에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구제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행10:31절에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잠19:1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⑷십일조도 영적 은행에 저축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3: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십일조 잔고가 있어야 십일조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러분의 영적 은행에 십일조 잔고가 넘쳐 나기를 소원합니다. /할/
⑸봉사도 헌신도 다 영적 은행에 저축이 됩니다.
⑹가장 큰 이자는 전도입니다. 전도는 영원히 남게 저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12:3절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 /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영적 은행에 저축을 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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