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하나님의 다림줄! (암 7:7-9)

by 【고동엽】 2022. 2. 8.

하나님의 다림줄! (암 7:7-9)

 

신앙 인들에게 큰 병이 있는데 그것은 '내일부터'라는 미루는 병입니다. '좀 있다가 하자' 그것도 병입니다. 내일부터가 아니고 '지금부터'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매사가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담배를 못 끊으신 분은 '내일부터 끊자'하면 끊지 못합니다. 내일부터가 아니고 '지금부터 끊자'입니다. 이렇게 한번 다짐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무서운 결단이 세워져서 반드시 담배를 끊게 될 것입니다. 결단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서운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성경을 읽는 일도 '내일부터 하자'하면 읽지 못합니다. 내일부터가 아니고 '지금부터 읽자'입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암시를 주면 용기가 생깁니다. /할/
▶마귀들이 전략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을까?' 하는 방안을 세우기 위해서 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그때 아주 신참 마귀가 경솔한 제안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죽입시다.' 그 제안을 들은 경험 많은 늙은 마귀가 반대를 했습니다. '안 됩니다. 그것은 순교자만 많이 낼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오히려 영광만 주게 됩니다. 효과적인 제안이 아닙니다.'
또 다른 마귀가 제안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모조리 잡아 감옥에 가둡시다.' 그랬더니 또 경험 많은 마귀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기도할 것이고, 그러면 더 성령이 충만해질 것인데 그것은 오히려 우리들이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늙은 마귀의 생각이 백 번 옳은 판단입니다.
그때 아주 베드랑 급에 속해 있는 어느 지혜 있는 마귀가 좋은 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열심히 전도하게 하고, 열심히 기도하게 하고, 열심히 사랑하게 합시다. 그러나 하되 '내일부터 하자'라는 마음을 넣어 줍시다.' 그때 많은 마귀들이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그 안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전도하려고 작정도 해보고, 사랑해 보려고 다짐도 해보고, 기도하겠다고 서원도 해보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내일부터 하자'라는 그 마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으면 '내일부터 하자'가 아니고 '지금부터 하자'입니다. /믿/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십시오. 전도도 지금부터! 기도도 지금부터! /할/
오늘 본문은 옛날 선지자 아모스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계시 중의 하나인 다림줄의 계시를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제목소개!

 

아모스선지는 하나님 앞에서 다섯 가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아모스서입니다. 그 중에 다림줄의 계시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는 계시입니다. 아모스 라는 이름의 뜻은 '짐 지는 자'란 뜻을 가진 선지자로서 그를 가르쳐 흔히 '의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하고, 호세아 선지자를 '사랑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모스선지를 '의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正義)를 하수같이'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정의'가 그의 예언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1.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에 예루살렘 남쪽 50리쯤 떨어진 곳에 '드고아'라고 하는 높은 산 위에 동네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은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그 동네에서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치고 또 양을 기르는 목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아모스라고 하는 젊은이입니다.
그는 예언자의 후예도 아니고, 또 선지학교에서 특별히 선지자의 교육을 받은 사람도 결코 아닙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누에를 치고 양을 키우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이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에게 임하겠습니까? 이 나라의 어지러움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나요!'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묻고 응답 받은 선지자가 바로 아모스선지입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남쪽 사람이지만 북쪽으로 올라가서 예언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그는 벧엘이라는 곳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쪽에 살고 있는 아모스는 북쪽으로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남한에 있는 하나님의 종은 북쪽에 보내어서 예언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와 똑같은 시대에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 선지자와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아모스선지는 소선지로 분류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시면 그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왕 앞에서든지 고관대작들 앞에서든지 일반 백성 앞에서든지 어디서든지 서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전한 자가 바로 아모스입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를 만나기를 예비하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너희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고관대작들에게는 '오직 공의를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어다.'라고 설파했으며, 또 그 시대에 영적인 암흑기였기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룰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그가 북쪽에 가서 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그 북쪽 사람들이 '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 남쪽 사람이 왜 북쪽에 와서 이렇게 쓴 소리를 많이 하느냐? 남쪽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그는 쫓아냈습니다. 그가 할 수 없어 예루살렘과 드고아로 돌아온 다음 '하나님께서 내 입에 담아 놓으신 말씀을 기록해서 후대에 남기리라'고 생각하고 기록한 책이 바로 아모스서입니다. /할/
아모스서는 모든 선지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으로 구약의 고전입니다. 어느 시대도 다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아모스가 예언하던 그 시대상은 아주 어두웠습니다. 남 유다는 그 유명한 임금이던 웃시야 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웃시아는 16살에 왕위에 즉위하여 52년 간 유대나라 제10대 왕으로, 그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잘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어 국방은 튼튼히 하고 최신 무기로 군사력을 증강시켰으며, 또 농업정책을 잘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하26:15절에 보면 '웃시아 왕이 기이한(하나님) 돌보심을 얻어 강성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의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떨쳤습니다. 이렇게 강해지자 그만 그가 교만이 들어와 하나님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제사장만이 드리는 제사를 자기가 분향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온 몸에 문둥병자가 되어 변방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죽어 열 왕이 묻히는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또 북쪽에는 여로보암 왕이 통치하였을 때인데 그도 하나님 앞에 악한 왕이었지만 그는 선대 어느 왕보다도 국경을 확장시키고 나라를 든든히 세운 왕으로서 수리아까지 쳐서 국토를 확장시킨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외형적으로는 남 유다나 북이스라엘이나 다 흥왕하던 그때에 아모스 선지가가 예언을 했습니다.

 

2. 그 당시 사회상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정치와 국방 모든 면에 있어서 굉장히 번영하였습니다. 나라의 살림이 점점 더 흥왕하고 외적인 생활이 그렇게 하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 타락한 모습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면 지금 우리 세대가 똑같습니다.
⑴성적인 타락의 극치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에게로 들어가 음행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엄청난 악입니다.
⑵탐관오리들이 득실거렸습니다. 얼마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악정을 했고, 수탈을 많이 했던지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까지 탐하는 세상'이었습니다.
⑶사람의 값어치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 세대는 모두가 굶주리던 그런 때라 사람을 사고 팔고 하는데 '사람값이 얼마나 헐값인가'하면 신 하나는 주고 사람 하나를 샀다고 합니다.
②상거래가 온통 속임수였고,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되는 적게 만들어서 이익을 보고 팔았고, 저울은 크게 만들어서 이익을 보고 샀고' 그러니까 서로 속이고 속는 상거래 관계가 성행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들에게는 의도 없고, 신도 없고, 인정과 도리가 없다'고 8장에 표현했습니다. 재판관들은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고 억울한 판결을 했습니다. 그래도 누구하나 바른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③이상하게도 그 당시 종교적인 의식이 얼마나 성대하게 베풀어졌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저들이 집회를 갖고 번제와 소제를 규례대로 드렸고, 굉장하게 주악을 올리며 살찐 희생의 제물들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그들은 엄하게 꾸짖고 책망하면서 '가증한 위선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모스 선지자가 그들에게 가장 강하게 주는 말씀은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런 중에 여러 계시를 아모스가 보았고, 그중 우리에게 가장 흥미로운 계시하나를 보여주셨는데 그것이 본문의 '다림줄'의 계시입니다. 그 당시에 성경이 다 기록되지 않은 때라서 주의 종들에게 계시하셨던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주신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꿈을 꿨는데 그 꿈 가지고 지나치게 영적으로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조 때 명신 이었던 '성현'이라는 학자가 쓴 '용재총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를 목전에 둔 세 젊은이가 기분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이 꾼 꿈을 해몽하기 위해서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는 출타하고 그의 아들이 대신해서 손님을 받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꾼 꿈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 번째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거울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두 번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강풍에 꽃이 꺾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세 번째 청년도 말했습니다. '나는 허수아비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니까 '깨어지고, 떨어지고, 거꾸로 매달리는' 꿈을 꾸었으니 걱정할 수밖에 없겠지요.
점쟁이 아들은 그 꿈들을 이렇게 해몽해주었습니다. '당신네들은 다 과거에서 낙제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아예 다른 길로 접어드세요.' 세 젊은이는 그 소리에 풀이 죽어서 점쟁이 집을 나왔습니다.
그때 출타했던 진짜 점쟁이가 들어오다가 낙심해서 나가는 세 젊은이를 보고서 어떤 영문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꾼 꿈과, 또 점쟁이 아들이 해몽해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점쟁이가 무릎을 탁 치면서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당신들은 지극히 좋은 꿈들을 꾸었습니다. 꿈이란 악몽길조를 대 원칙으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좋지 못한 꿈을 꾸고 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것입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은 낙심했다가 진짜 점쟁이의 말을 듣고서 마음에 큰 기쁨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
여러분, 꿈꾼 것 때문에 약해지지 마십시오! 꿈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 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을 우리가 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3. 다림줄이 무엇입니까?

 

⑴건축할 때 목수들이 가지고 있는 줄 가운데 길이를 재는 줄입니다. ⑵기둥이 바로 섰는가 보기 위하여 줄에다 추를 달고 혹을 달고 눈을 하나 지극히 감은 다음에 보는 줄입니다.
만일 벽이 다림줄과 평행선을 유지하지 못하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건물에는 설계도가 있습니다. 복잡하고 웅대한 건물일수록 설계도는 더욱 정밀하고 복잡합니다. 큰 건물일수록 설계도대로 시공을 해야 합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각종 사고가 꼬리를 무는 것은 우리나라 기술자들이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공사를 설계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실공사가 그 원인입니다.
성경에서는 다림줄을 여러 곳에서 '삼 줄'이라고 표현했고, '측량하는 장대'라고 표현한 곳도 있고, '측량 줄'이라고도 표현한 곳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림줄의 용도는 길이가 정확하게 놓였는지 세워진 기둥이나 문짝이 제대로 세워졌는지 기준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무려 다림줄이 4번이나 나오고 7절 한 절에서만 해도 다림줄이라는 말이 무려 두 번이나 나옵니다.
7절 '다림줄을 띄우고' 여기서 '다림줄을 띄웠다'는 말은 '건축을 시작할 때, 가령 기초는 어느 높이에 놓아야 하느냐? 현관은 어디에 놓고 응접실은 얼마만큼 놓고 혹은 거실은 어느 정도 놓고 침실은 어떻게 놓고 하는 것'을 그 설계대로 줄을 띄어 놓는 것이 다림줄입니다.
그 다음 7절에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래로 내려뜨리는 다림줄을 말합니다. 하나는 평면적인 것, 또 하나는 수직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담을 쌓을 때 수직을 맞추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고, 담이 똑바로 되었는가 안 되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다림줄입니다.
①'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심판주로 서셨다는 말씀입니다. 담이 바른지, 바르지 않은지를 심판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으로 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만약에 담이 과도하게 기울어져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저히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될 때 그것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이 아모스에게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묻자 '다림줄이니이다'라고 대답하자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이 말씀은 '내가 내 백성 사이로 들어가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그 옛날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와 같습니다.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정이 다릅니다.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는 담이 너무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제불능이 되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②여기서 '담'이라는 말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바로 이스라엘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수준이 이미 회생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기울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그 옛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실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의인 50명에서 시작해서 10명까지 내려갔지만 그 땅에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또 바벨론의 벨사살 왕 당시와 마찬가지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나님의 저울추에 달아서 기준에 미달된 것입니다.
사울이 교만할 때 하나님은 사울에게 주셨던 은총을 빼앗아서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세웠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자기 사명에 충성하지 못할 때 그것을 빼앗아서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에게 주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저버릴 때 하나님은 구원의 복음을 이방 민족에게 주셨습니다.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용서치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림줄로 측량해서 도저히 가능성이 없을 때, 무게가 차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가차없이 심판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믿/

 

4. 성경에서 다림줄의 경고들이 나옵니다.

 

①하나님의 다림줄이 맨 처음 적용된 곳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창조의 꽃이었던 인간에게 하나님은 온간 축복(생육, 번성, 충만, 다스림)을 주셨지만 보기 좋게 불순종으로 응답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다림줄이 작동하여 뱀에게는 흙을 먹고 여인의 후손으로 적이 되게 하며,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으로, 남자에게는 땀 흘리는 노동의 고통을 주었습니다.
②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의 원리는 일부일처제였고, 남성과 여성이 아름다운 성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무절제한 성적 타락은 하나님의 다림줄로 불의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③노아홍수 사건입니다. 노아홍수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인내의 극치였습니다. 더 이상 실망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하나님의 최종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이 얼마나 엄격하다는 것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④남북조의 멸망입니다. 하나님이 여지간만 하면 그들의 백성들을 멸하시겠습니까? 남북조의 멸망은 하나님의 인내를 넘어선 마지막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미 이 사실을 예고한 예고편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⑤바벨론의 멸망입니다. 단5:25-28절을 보면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가 보여 집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의 아들이었는데 교만과 하나님의 거역으로 하나님의 경고가 임하였는 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경구였습니다. 이것을 풀이하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모자라서 왕의 나라가 끝나고 그 나라를 메데와 바사로 나뉘게 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⑥신약의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나누어주고 떠난 주인의 비유는 종말론적인 비유입니다. 우리에게 제한된 시간과 재료를 주시고 자유와 책임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반드시 다림줄을 대시겠다는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입니다. /믿/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정확하게 그것도 불시에 그의 다림줄을 나의 삶에 나의 영혼에 갖다 대십니다. 그래서 어긋난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시정을 요구하십니다. 그 요구에 즉각 응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고집을 피우고 자기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그 결단은 전적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결과에 따라 영생인가 멸망인가도 판가름 날 것입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다림줄의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보통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을 정경이라고 합니다. 정경을 '캐논'이라고 합니다. '캐논'은 '갈대, 표준,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캐논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잴 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캐논'이라는 단어에는 다림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가지고 다림줄을 삼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림줄로 재보시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경을 가지고 우리를 제어 보십니다. /믿/
▶나의 생각과 행동이 바른지, 바르지 못한지를 가르쳐주는 다림줄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활의 척도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서 내 생활가운데 기울고 굽은 것이 있으면 시정하고 바로잡아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님의 다림줄을 무시해 버리고, 내 뜻과 내 생각과 내 주장대로만 고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다림줄이 되어서 판단해야 합니다. /아멘!/
▶우리의 신앙의 넓이와 길이를 재어보십니다. 구획이 설계대로 바로 맞았는가를 재보시는 것입니다. 다림줄이 제대로 쳐지지 못하면 기초가 제대로 쌓여지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신앙의 기초는 성경에 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신앙의 다림줄입니다. 성경대로 알고, 믿고, 행해야 합니다. /아멘!/
바울은 딤후3:16-17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 역사와 세계를 온전케 하는 치료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모든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역사학자 '벤륜'은 이스라엘의 5천년 역사는 그들이 그들의 자손에게 두 가지를 물려 준 역사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란 한 권의 책인 성경과 한 채의 건물인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즉 성경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켰고,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정신이 그들을 세계 제 일등 국민으로 만들었습니다. /할/
아브라함 링컨에게 기자가 '선생님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책이 있다면 무슨 책이냐?'고 묻자, 링컨은 두 말할 것 없이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또 기자는 '선생님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면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즉시 대답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할/

 

6. 하나님의 다림줄은 우리의 무엇을 재어보실 까요?

 

①사랑을 재어보십니다. 사랑을 재실 때 하나님의 표준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했고 또 '네 이웃 사랑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성경의 표준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표준이라는 캐논을 가지고 다림줄로 우리들을 재실 때에 '과연 우리들이 그 표준에 맞게 사랑을 행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뒤돌아보면 부끄럽지 않습니까? 저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그냥 부끄럽다고 포기하고 말아야 하는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해 보라는 것입니다. /할/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출20: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시91: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것입니다. 신6:5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아멘!/
②하나님이 '우리가 이웃을 케논대로 용서했는가?'를 재어보십니다.
사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감정의 동물이다 보니 격해질 수도 있습니다. 요즘 학교마다 왕따가 유행입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에 대하여 용서의 신학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어 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원수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마6:14절에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신다고 했으며, 막11:25절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극치는 마18:22절에 나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할/ 490번의 무한대의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용서는 어떻습니까? 용서해 준 것 같은데 마음이 어치 좀 찜찜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용서를 제보십니다. 하나님의 다림줄로 재보시고 케논으로 재보십니다. 우리 주님이 재보시고 '너의 용서의 줄이 좀 모자란다. 캐논으로 재보고 또 다림줄로 재보니까 네가 좀 부족하다'라고 하시면 아니 됩니다. 이웃을 용서하며 사십시다. 그래야 우리도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③충성을 재보십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합니다. 큰 것에도 충성, 남의 것에 대해서도 충성, 맡은 것에 대해서도 충성,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충성이라는 자를 가지고 다림줄을 가지고 우리를 재보실 때 함량미달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④인내심도 재보십니다. 사실 우리 인생살이가 다 인내입니다. 신앙생활도 인내입니다. '얼마나 오래 참느냐? 얼마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느냐? 욥처럼 인내하라'고 하나님은 다림줄을 주셨는데 과연 우리들은 조금 어렵다고 조금 시험이 있다고 신앙생활하면서 십자가가 조금 우리 앞에 있다고 얼마나 '그 십자가를 피해 나갔는가?'를 재보십니다.
여러분! 인내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약1: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할/
⑤하나님이 제일 비중 있게 다림줄로 재보시는 것이 또 하나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든든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면서 그 성전 앞에다 큰 기둥 둘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 기둥들에다 이름을 붙였는데 하나는 '야긴'이고, 또 하나는 '보아스'인데, 하나는 '든든하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곧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이 든든히 곧 바로 서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7. 다림줄이고 캐논인 성경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자신이 제일 잘 하거나 잘 부르는 노래를 일컬어 18번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일본의 대중 연극인 '가부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러 장(場)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부키에서 장(場)이 바뀔 때마다 막간극을 공연했는데, 17세기 무렵 '이치가와 단주로'라는 배우가 단막극 중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 극이 모두 18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18번째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하여 십팔번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일제 강점기에 대중 속으로 들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애창곡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내 노래의 18번, 애창곡이 있듯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서재에 꽂혀있는 많은 책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 18번의 책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 믿는 자들이 가장 사랑하고, 우리 자손에게 길이 물려줄 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성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내 인생과 삶에 가장 가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고, 나에게 바른 삶으로 이끄는 빛과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믿/
또한 성경은 객관적으로 이 세상에서 성경만이 유일하게 'The Book'(그 책)이란 명칭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현존하는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오늘날 많은 책들이 서점에 등장하지만 1,000권의 책 중에 5년 이상 살아남는 책은 1권 정도랍니다. 20년 이상 남는 책은 10,000권 당 7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100년 이상 지속된 책은 10만 권당 1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정도라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할/
▶시119편은 우리가 잘 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미입니다. 시인은 그곳에서 말씀에 대한 고백을 몇 가지로 했습니다.
①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시119:97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법을 주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법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아멘!/
그렇습니다. 시인은 바로 우리처럼 성경을 자기 인생에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47절과 48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말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책 성경이란 뜻입니다. 시인은 평생 성경이 가장 사랑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서 성경을 어떻게 사랑했는가를 알려줍니다. 무엇일까요?
⑴우선 묵상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48절에서는 '또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 여기 계명과 율례는 성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시인은 성경을 묵상하겠다고 말합니다. 특히 '내 손을 들고'라고 강조합니다. 여기 손을 드는 행위는 진심으로 받아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사랑하여 그 성경을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하여 묵상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묵상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묵상은 깊이,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은 말씀, 읽은 말씀, 깨달은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묵상은 단순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묵상은 '상고하다, 되새김질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17:11절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것이 묵상입니다. 당시에 묵상은 오늘날과 같이 고요히 앉아 성경 몇 구절을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듣고 또 읽고 듣고 읽고 그렇게 계속 되새김질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길입니다.
시119:47절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잘 묵상되고, 잘 되새김질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즐거워야 합니다.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멘!/
⑵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43절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인은 진리의 말씀을 자기의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않게 기도했고, 실제로 그의 삶에 말씀이 떠나지 않고 늘 가까이 했음을 간증합니다. 이것이 그가 성경을 사랑한 방법이고, 오늘 우리에게도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해 보십시오. 반드시 가까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해 보십시오, 반드시 그 사람을 늘 가까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까이 하면 사랑이요,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느냐는 얼마나 성경을 가까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길은 다른 것보다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아멘!/
⑶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44-45절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이것이 시인이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한 마지막 방법입니다. 그는 말씀을 '지켰다, 지키고 있다, 지킬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강조하는지 '항상, 영영히, 끝없이'라고 강조합니다.
⑷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행동을 조심했다는 말입니다. 시119:101절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발은 그 사람의 행보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발은 머리의 지시를 따라 행동합니다. 시인의 고백은 '나는 신앙과 양심의 소리를 듣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바로 발을 금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결단이 절대 필요합니다.
②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시119:102절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인간의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나무는 흙에 뿌리를 두어야 하고, 새는 창공을 날라야 하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믿/
③말씀이 맛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119: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맛을 그 맛 자체보다 건강과 직결이 됩니다. 산해진미도 건강이 나쁘면 모래알을 씹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시장이 반찬이니, 입맛이 반찬이니'라고 합니다.
내 영적 건강상태가 좋으면 말씀의 맛이 송이 꿀보다 더 달고 맛이 있습니다. 아멘이 절로 나옵니다. 설교가 달고, 성경공부가 즐겁고 예배시간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성경의 다림줄로 우리의 신앙을 재보십니다. /믿/아멘!/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같이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을 띄우고 너희 믿음을 바로 서라! 모든 세상을 향하여 이제 기울여지지 말고 믿음 안에서 바로 서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만 했으면 됐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 본문에 보니까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 하리니' 여기서 '용서하지 아니하겠노라!'는 말씀은 '이만했으면 됐습니다. 나는 조금 모자라지마는 모자라는 대로 그냥 있겠습니다. 사랑도 조금 모자라고 용서도 조금 모자라고 충성도, 인내도, 믿음도, 조금 모자라지만 나는 그냥 이대로 있겠습니다.'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모자라는 것은 알면 보충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 하나님의 다림줄에 함량이 차고 넘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인 일에 충성했으니 큰일에 복을 주리라'는 주의 말씀을 꼭 붙잡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