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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제자가 되게 하소서! (요 8:31-32)

by 【고동엽】 2022. 2. 8.

참다운 제자가 되게 하소서! (요 8:31-32)

 

알렉산더 대왕이 아프리카를 점령했을 때의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흑인들의 부락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갑이란 사람이 을에게서 산 땅을 개간하던 중 발견된 금 덩어리를 놓고 서로 자기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싸움이 붙었습니다.
재판을 맡은 추장은 어떻게 판결을 내려야 할지 난감해 했습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갑에게는 22살의 아들이 있고, 을에게는 19살의 딸이 있음을 알아낸 재판장은 그들을 서로 결혼시켜 그 금 덩어리를 물려주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알렉산더 대왕은 그 추장에게 '나 같으면 둘 다 죽여 버리고 그 금 덩어리를 내가 갖겠소' 그럽니다. 이 말을 들은 추장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알렉산더 대왕을 바라보면서 '당신의 마케도니아 땅에도 비가 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가 대답하기를 '물론 오고말고!' 그렇게 대답하자 그 추장은 더 의아한 듯이 또 물기를 '그렇다면 소나 양떼도 있습니까?' '물론 있지'
한참 후 추장은 무릎을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나라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비나 태양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나 양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태양 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큰 충격을 받고 말없이 군대를 철수해서 다른 곳으로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양심은 큰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할/ ◀제목 소개!▶

 

본문의 배경을 보면, 1-11절에서 예수께서 기드론 시내 건너편 예루살렘 성전 동편에 있는 감람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에 오셔서 많은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율법대로 하라'고 했다가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전하는 예수님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할 것'입니다. 또 '사랑으로 용서해 주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도전하는 경우'가 됩니다.
그들은 완악한 마음을 보신 주님은 한참 후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고, 8절에서 예수께서 땅에 글을 쓰셨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은 여기서 주님이 쓰신 말씀이 아마 '십계명'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계명대로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이 쓰신 글을 보고 그들은 자기의 죄의 모습이 다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슬그머니 돌을 버려두고 다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이제 12절 이하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시고 오늘 본문인 31-32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제자란 말이 약 259회나 언급했습니다.

 

1. 제자란 무엇입니까?

 

'배우는 자, 따르는 자'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자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정신을 따라가고 선생님을 배우고, 선생님을 본받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제자란 넓은 의미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특별히 구분하여 선택된 소수를 두고 사용된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 삶과 인격이 달라집니다. 그림을 배우면 화가나 됩니다. 음악을 배우면 음악가가 됩니다. 법률을 배우면 법률가가 됩니다. 군사학을 배우면 장교가 됩니다. 도적질을 배우면 도둑 선생이 됩니다.
도박꾼이 노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자기 아들이 보고 있으니까 나가라고 따귀를 올려 부쳤습니다. 울면서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왜 때려요? 좋은 것이면 나도 배워야 하잖아요!' 그르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배우고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제자가 됩니다.
우리들은 누구들의 제자입니까? 예수를 배우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다면 예수님께 무엇을 배웁니까? 예수님은 헬라의 철인도 아니요, 로마의 수학학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유대나라의 율법학자도 아닙니다. 그는 천문학자도 예술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분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라, 진리를 알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제자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입니다. 막2:14절에 보면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았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또 마4:19-20절에 보면 시몬과 안드레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 4:22절에 보면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레위나 베드로나 안드레 요한이나 한결같이 제자로 부름을 받을 때의 상황은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부르셨고, 제자들은 무조건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따라올 수 있겠느냐? 내 제자가 되겠느냐? 나와 함께 일하겠느냐?' 그렇게 주님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부르셨고, 제자들은 무조건 따라 나셨습니다. 따라 나서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배, 그물, 부모, 형제까지도 버렸습니다.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렸고, 이삭도 이스마엘도 하갈도 하나님이 버리라고 했을 때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버려서 망했습니까? 안 망했습니다. 그는 당시 재벌로 살았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이 복은 '샘 줄기'의 복입니다. 퍼주고 퍼주어도 고갈되지 않은 오히려 더 솟아오르는 그 복이 샘 줄기의 복입니다. /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을 하면 군대 아닌 군대생활이 시작됩니다. 분명 학생인데 군인이고, 군인인데 학생인 것이 육군사관학교의 생활입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는 남학생들 틈에 여자도 끼어서 고된 훈련을 받는 답니다. 일단 여자고 남자고 간에 입학이 되면 교칙에 따라 행동을 해야지 개인행동이나 사적인 자유는 유보됩니다.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지켜야 하고 식사시간이 따로 있고, 훈련받는 시간, 이 모든 것이 꽉 짜인 일과표에 따라 움직여야 됩니다. 강인한 장교를 만들기 위한 훈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탈락하는 학생도 많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들도 때로는 강한 훈련을 받아야 하고 나의 모든 것이 유보될 때도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나를 선생님의 제자로 써 주십시오, 나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자청해서 제자가 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요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도 주님의 선택에 의해 제자가 된 것입니다. /믿/ 일단 제자가 되면 주님만 바라보고 그의 삶을 배우고 그의 삶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빌3:12절 이하에서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할/아멘!/
분명히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는 상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신28:2절 이하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주님을 좇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눅9:57-62절에 보면 자청하여 예수를 따르겠다고 찾아온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 번 째 사람은 예수님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 것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시자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고된 훈련 없이 평안히 살고, 복을 받고 살리라는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떠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는 분명히 징계도 있고, 견책도 있습니다. 징계가 없으면 영적 사생아가 되고 맙니다. 욥5:17절 이하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아멘!/
두 번째 사람은 '예수를 따를 것이냐? 부친을 장사할 것이냐?'의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이 사람 역시 제자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떠나갔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한가했으나 세상일 때문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천국의 맨션 APT의 재료는 우리들의 이 땅에서 올려준 재료로 지어진다고 합니다. 주님은 '너희의 보물을 하늘에 많이 쌓아 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화는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 저 천국의 보화'로 바꿔진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면 두말할 것 없이 뒤처리를 잘하고 따르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핑계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세 번째 사람은 자기 가족과 작별하고 와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따르지 못했습니다. 왜 못 따랐습니까? 주님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 하니라'고 말씀하시자 떠나가 버렸습니다.
이 사람도 세상 미련을 못 버린 사람입니다. 세상도 좋고, 예수도 좋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은 한 길입니다. '원 웨이 티켓'입니다. 예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그래서 소돔 성을 뒤돌아본 롯의 부인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사람만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 본 회퍼는 '따르라'와 '좇으라'의 사이에 그 어떤 것도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멘!/

2. 예수님 당시 제자들의 성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성분을 살펴보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이 대부분이었고, 세리 마태, 가롯유다 등 그 직업이나 신분이 드러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직이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사회적 신분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즉 학벌이나 가문, 재산, 직위, 명예를 그러니까 상류사회 층을 부르지 않으시고 하위계층, 서민 계층 속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①그들은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게 지성인들이나 지식인들은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지식을 절대화하거나 자기 경험을 내세우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은 신앙도 증명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논증되고 실험해서 증명될 수 있을 때 믿겠다고 말합니다.
▶뉴욕의 한 지하철 역 벽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은 죽었다! -니체' 그런데 그 후 누군가가 그 옆에 '니체는 죽었다! -하나님'이라고 낙서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죽었다'고 기염을 토하던 독일의 무신론 철학자인 니체는 결국 정신 착란증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해부해서 아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믿는 분입니다. 믿고 의지할 때 체험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지성, 이런 것들이 신앙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쓰여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행한 지식이요, 병든 지식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의 어부를, 순진한 서민들, 그들에게는 편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순수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순수한 그들을 제자로 택했습니다.
②그들은 무조건 주님을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믿는데 조건이 없습니다. 사랑하는데도 조건이 없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단 한 사람도 '왜 따릅니까? 따르면 뭘 주시렵니까?'하고 어떤 조건, 이유, 결과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의 동기나 출발 역시 순수하고 무조건적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좋아서 주님의 십자가가 감격스러워서 무조건 믿고 따르는 사람의 신앙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리 제보고 저리 제보는 신앙은 절대 성장하지 못합니다. /믿/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은 신앙의 분량대로 믿음의 분량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대로 될 것을 믿는 사람은 그대로 되어 집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을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할/
베드로도, 요한도, 야고보도, '배도 그물도 버려두고 가족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결단했습니다. 앞뒤를 재는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뒤돌아보는 사람 전진이 없습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사람들을 넷으로 분류했습니다.
⑴지나간 과거만을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⑵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남의 도움만을 기다리는 안일 무사주의 형'이 있고, ⑶'보기 싫다고 눈감아 버리고 냄새난다고 코를 막아버리는 일종의 현실 도피, 은둔주의 형'이 있고, ⑷앞을 향하여! 새로운 변화의 창조를 향하여!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변화주의 형'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세계, 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③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다보다, 배보다, 부모보다, 그물보다' 예수를 더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④그렇다면 제자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믿음이 무엇입니까?
⑴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영접이라는 뜻은 '먼데서 오신 귀한 분을 극진히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절대자로 나의 영혼 깊은 곳에 수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전도자의 이야기입니다.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요즘은 무서운 시대라 아무나 문을 안 열어 줍니다. 내가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벨을 누르니까? '누구세요?' '네 교회에서 예수 믿으라고 왔습니다.' 했더니 '안 사요, 그런 것 필요 없어요.' 그르더랍니다. 여러분, 예수는 사고 파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축복이 옵니다. /믿/아멘!/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나의 생명의 주인으로, 내 구세주로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할/
⑵맡기는 것입니다.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맡긴다.'는 것은 '던져버린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 절망, 질병, 고통을 다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맡기고 누구에게 던지느냐?'가 중요합니다. 마귀에게 던지면 작은 문제도 크게 번집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면 큰문제도 작게 만드십니다. /아멘!/
⑶되어진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완쾌되어 운동장에 달리는 모습을 그리는 것입니다.
한 성직자는 믿음이란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보십시오, 건강을 바라보고, 사업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을 바라보고, 자식들이 잘 되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참 행복한 교회 부흥도 바라보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장래의 모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할/아멘!/

 

3.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중요한 것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눅9:23).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⑴그렇다면 왜 존재하는 자기가 없다고 부인해야 합니까? 우리 안에 두 주인을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6:24). 우리는 자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던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든 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없어지지 않으면 예수님이 나의 주인으로 온전히 드러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자신이 죽어 없어져야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져야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히 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온전한 믿음도 온전한 순종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부인'은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에 대하여 거부해야 합니다. 여기 '부인하다'라는 말은 'No'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게 되어 있습니다. 온갖 이기주의로 얼룩지고 탐욕으로 무장된 것이 우리의 육체입니다. 끊임없이 죄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럴 때마다 'No'라고 자신 있게 외치며 거부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예수를 따르는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무조건 'Yes'지만 우리 자신의 요구에는 무조건 'No'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가능합니다. 나를 이기고 정복하는 길은 오직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이외는 이런 유가 나가자 않느니라!' /할/
⑵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십자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신앙생활 때문에 고난도 오고 핍박도 있고, 어려움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본래 수치와 고난과 죽음의 표식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의 십자가, 은총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희롱을 당하시고 살점을 떼어내는 날카로운 채찍을 맞으신 후에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장소 골고다까지 힘겹게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대못에 박혀 십자가 위에서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많은 고통과 멸시와 천대를 동반하는 참으로 무거운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답게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시고 감당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의 각자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감당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심한 핍박으로 인하여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실로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즉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예수를 섬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자체가 많은 사람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날카로운 채찍과 몽둥이로 심한 매를 맞게 되고, 사나운 짐승의 사냥거리가 되기도 하고, 십자가에 처형되기도 하는 무서운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⑶십자가를 지면 어떻게 됩니까? 망하게 됩니까? 아닙니다. 그 십자가가 나를 승리하게 합니다. /아멘!/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또 롬8: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
⑷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것을 신앙의 자기 십자가입니다. 지고 감당하면 이길 힘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자체가 십자가입니다. 생로병사가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모든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자기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면, 이기고 승리하지만 십자가를 부인하고 외면하면 오히려 망하게 됩니다. /믿습니까?/
▶작가 '헤밍웨이'는 유명합니다. 이 분은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너무 공부도 잘 하고 총명하고 지혜로우니까 자신만만하게 세상 길로 갔습니다. 부모가 말려도 듣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잘 생겼든지 모든 분이 말하기를 '남자 중에 남자, 최고로 다양하게 멋이 있는 분은 헤밍웨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작품 하나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들어가도 대단한데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노인과 바다' 이런 작품을 가지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분을 호탕하고 아주 개방적이고 쾌락적이고 재치가 있고 쾌활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움직이면 세계가 따라 움직인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혼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사람에게 박수 받고 세계적인 자리에 올라갔지만, 하나님을 떠난 그의 영혼은 갈 곳이 없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는 '내 영혼이 외롭고 공허하다'고 외쳤답니다. 헤밍웨이는 결국 외로움과 우울증을 견딜 수 없어서 엽총으로 1961년 자기 머리를 쏘고 자살해 죽고 말았습니다.
제자의 삶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명예를 가지고, 영광을 얻는 것이 제자의 삶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고, 희생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빈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가서 그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 그대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빈 마음, 빈 그릇만이 주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산상보훈의 팔 복 그 첫 번째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정말 부자입니다. /아멘!/

 

4.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참 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본문에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참 내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참 제자, 진짜 제자가 되라'는 겁니다. 모조품 제자가 아닙니다. 옛날에 참기름 팔 때 진짜 참기름을 팔았습니다. 이건 그냥 참기름이 아니라 진짜배기 참기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참기름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①참 제자란 요13: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당신은 '참 예수님의 제자입니다.'라고 한다면 정말 제자라는 말입니다.
②참 제자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요15:8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어떻게 맺어집니까? 열매는 희생의 결과입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아름다운 열매는 희생이 없이는 없습니다. 요12: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희생입니다. 제자는 뭡니까? 너를 희생하여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제자의 삶인 줄 믿습니다. /아멘!/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른 곳은 64곳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곳은 두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라고 기록된 것은 260회나 됩니다. 그만큼 제자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서 합시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할/ 특별한 사람만이 제자가 아니라 여기 앉은 성도 한 분 한 분이 다 예수의 제자로서 살아가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③눅14장에 예수께서 이러이러한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⑴26-27절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뭡니까? 진짜 부모를 미워하라는 겁니까? 이것은 예수님을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또 자기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⑵33절에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의 직업도 버리고 돈도 통장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 소유물도 주님을 위해서 드리는 삶이 되지 못한다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드리면 흔들어서 차고 넘치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할/
▶눅5:11절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안드레에게 '내가 너희를 사람을 취하게 하리라'고 제자로 불렀을 때, 저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제자입니다. 바울도 빌3:8절에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그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④참 제자는 주님의 말씀 안에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고 했습니다. 말씀 안에 거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그분의 말씀이 나의 전 인격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의 통제를 받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암송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도저히 그 말씀의 억압 때문에, 말씀의 부담 때문에 내가 다른 길로 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시119:11절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할/
⑤참 제자는 다시 제자를 키워야 합니다. 제자만이 제자를 삼을 수 있습니다. 제자는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 우리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제자로 부르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기 위합니다. /믿/
그러면 왜 나를 부르셨습니까?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르셨고, 구원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전도 대상자를 정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오늘부터 기도로 공략합시다. 사랑의 기도로, 믿음의 기도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사에 그를 도와줍시다.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⑥참 제자는 예수의 본을 따르는 자입니다. 요13:14-15절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은 섬기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나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발을 씻긴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장 추한 것, 가장 더러운 요소, 가장 긍정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섬긴다는 뜻입니다. 이 정신만 있으면 부모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교회 안에서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로 그렇게 행하게 하시려고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멘!/ 고전11:1절에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할/

 

5. 참 제자가 되면 무엇을 얻게 됩니까?

 

①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②짐을 벗게 됩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는 다 각각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 짐만 벗으면 가벼워지겠지' 기대하고 살지만 더 큰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임신부는 출산의 아픈 고통을 겪으면서도 낳기만 하면 다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순산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면 그 시간부터 그 어머니는 그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오줌, 똥을 가릴 수만 있다면, 하지만 곧 유치원에 들어갑니다.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입시 갈수록 태산입니다. 대학만 나오면 하지만 취직시험, 결혼이 걱정입니다.
결혼하면 끝나는 줄 알지만 결혼하고 나면 잘 살까? 못살까 걱정입니다. 시집간 딸이 '엄마' 하고 전화만 걸어와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철없는 게 행여 무슨 잘못이라도 없을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인생의 짐은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고통, 근심, 절망, 실패, 좌절의 짐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면 짐이 가벼워집니다. 왜? 주님께 맡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할/
③새로운 세계를 살게 됩니다.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어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말씀의 뜻을 '사람을 사로잡으리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사로잡습니까? 사랑으로, 능력으로, 복음으로, 사로잡으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를 사로잡으라는 뜻입니다. /믿/
④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진리를 알리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어떤 자유를 말하는가? 자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지로부터의 자유도 있고, 공포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또 정신적으로 그 무엇인가에 속박되었던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얻어지는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영적인 자유, 영원한 자유라고 말합니다. 이 자유야말로 근본적인 자유이며,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자유란 모두가 다 상대적인 자유이며 일시적인 자유입니다.
정치적 자유는 전쟁이나 투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는 경제성장과 개인 소득의 성장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영적인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는 진리를 아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기에 반복하고 반복해도 들어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속박하시려고 십자가를 진 사건을 아는 것, 그런데 기독교를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
이 땅에 자칭 메시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석가도 공자도 마호멧도 문선명도 진리에 관하여 말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자신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 위대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며 영접한 사람들이며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곧 자유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할/
▶자유 몇 가지만 생각해 봅니다.
⑴죄에서 자유입니다. 본문의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보세요! 그 죄 때문에 그녀는 '㈀잡혔습니다. ㈁끌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세움을 입었습니다. 극도에 달한 수치입니다. ㈃고소를 당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운명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실로 죄의 결과는 무서운 것입니다. 주님은 그 죄에서 그 여인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할/
⑵사망에서의 자유입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엡2:5절에서 '사람은 그의 허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1:15절에서는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고, 겔18:4절에서는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롬5:12절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사망에서 영원한 자유입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할/
⑶마귀의 권세에서도 자유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께서 '뱀의 머리를 깨뜨렸습니다' /할/ 우리 모두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위대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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