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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복음화를 이룬 고넬료! (행 10:1-8)

by 【고동엽】 2022. 2. 3.

가족 복음화를 이룬 고넬료! (행 10:1-8)

 

수술할 때 마취제가 없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까요?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마취약은 지금부터 약 150년 전에 '제임스 심프슨'이 발견했습니다. '심프손'은 영국 스코트란드에서 빵 굽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에 에딘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가 산부인과 의사 과정을 밟아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며 치료하여 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답니다.
창2:21절 이하를 읽을 때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기를 읽는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셨다면 엄청난 수술이다. 대 수술이다. 그런데 아담이 아파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프지 않게 갈비뼈를 빼내실 수 있었을까?" 심프손은 감탄했습니다. 그때부터 심프손은 하나님께 그 비결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면서 마취제 개발 연구에 몰입을 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1847년 11월 사람을 마취시켰다가 깨어나게 하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약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이 약은 1853년 '빅토리아' 왕후가 분만할 때 사용하여 온 세계가 떠들석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국 의사로서는 최고의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심프손에게 기자들이 묻기를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이 발견하신 발견 중에 가장 큰 발견은 무엇입니까?" 이 때 심프손은 "나의 가장 큰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를 구해 주신 큰 구세주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각 장마다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인물이 나타납니다. 7장에는 전체가 스데반 이야기입니다. 8장에는 빌립 집사의 전도하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9장에는 사울이 회심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0장에는 전체가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너무 길어서 8절까지만 읽었지만 전체가 고넬료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대 오순절이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에 임한 오순절입니다(2:1-4). 바람과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 주님의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둘째, 사마리아 오순절입니다(8:14-17). 스데반의 순교로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일으킨 성령운동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지원 사격을 하여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셋째, 오늘 본문의 가이사랴 오순절입니다(행10:44-48).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부흥회입니다.
넷째, 에베소 오순절입니다(19:1-7). 너희가 믿을 떼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시면서 바울에게 안수를 받았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초대교회 성령의 불이 임했던 그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소개▶

 

오래 전에 미국에 '깁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어느 경제인 모임에서 사람들이 깁슨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빈손으로 거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청중은 과연 대부호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깁슨은 장내를 한번 살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세 가지 생활신조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둘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셋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지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물이 모아진 것입니다"
청중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거야 우리도 모두 아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깁슨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왜 남들이 모두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실천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무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님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고 그대로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넬료는 군인입니다. 군인 가운데서도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백부장입니다.
▶신약성경에 백부장의 직위를 가진 사람이 여러 명 나오는데 모두 다 믿음이 신실하고 공명정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믿음이 좋아 그의 종이 중풍병에 걸린 것을 예수님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던 백부장은 한마디로 '예수님은 의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사도를 로마로 호송하던 백부장은 바울을 죽음에서 구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들의 행위와 백부장이라는 직업만 기록되어 있을 뿐 이름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백부장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그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당시 가이사랴는 두 곳에 있었는데, 하나는 본문에 나오는 가이사랴로써 욥바 항구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지형이고, 또 하나는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입니다. 이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팔레스틴 총독의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가이사랴란 "가이사의 고을"이란 뜻입니다.
이 도시는 대헤롯이 화려하게 만들어서 로마 황제 아구스투스에게 받친 도시입니다. 후일에 이 도시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이방인과 유대인간에 오래 동안 투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대 1개 보병사단은 6천명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1개 사단에는 600명이나 되는 10개 대대가 있습니다. 1개 대대에는 100명의 군대를 거느린 6명의 백부장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 지역에는 5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중 4개 군대는 식민지 병사로 구성되어 있고, 고낼료의 부대는 지배국가인 로마의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로마정규사관학교를 나온 고급 군인입니다. 그러므로 지배국가의 백부장은 누리는 특권이 대단했습니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굉장한 세도가였습니다. 특히 로마는 점령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예루살렘에는 로마총독을 두었고 가이사랴에는 군인들을 주둔시켜 정치를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넬료의 위치는 상당히 높은 지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귀하고 귀한 것은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고넬료에게 말하기를 "네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얼마나 축하할 일입니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우등상을 수여합니다. 일정기간 결석 없이 다닐 때는 개근상을 수여합니다. 국가에 무엇인가 공헌했을 때는 훈장을 수여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기억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고넬료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의 생애에도 하나님의 큰 상급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고넬료에게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2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①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의 경건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 '경건'의 헬라어 원문에 뜻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하다는 말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배드릴 때의 마음가짐, 예배드릴
때의 태도, 예배드릴 때의 행동을 말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경건하다는 말은 평소에도 예배 드릴 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이란 확신에 가득 찬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생활이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경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표시로 그의 가정은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경외'란 하나님께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생활모습입니다.
또 '경외'는 하나님을 두려워 여기는 인간의 마음가짐입니다. ▶인간들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절대자이지만 인간은 상대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자이지만 인간은 유한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지만 인간은 무능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지만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십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이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고 있었을 때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육과 번성의 은총이 넘쳤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유대인들의 산모가 아기를 낳았을 때 사내아이이면 모두 죽이라는 엄청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산파들은 그 아기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또 '경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편입니다. 경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산 위에서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명령했을 때 그대로 순종하고 떠났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번제의 제물로 요구했을 때도 불평 없이 드렸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딤전4:8절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이 경건이야 말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딤전4:7절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사33:6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보배"라고 했습니다. 보석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시111: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전12: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은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시19:9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정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깨끗하게 보시고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사6장에 보니 이사야가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니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방으로 햇빛이 비취면 보이지 않은 먼지들까지 보이듯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이사야에게 비춰지니 그 동안 괜찮은 선지자로 살았던 모습의 먼지들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이 드러나니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깨닫고 나 같은 죄인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 놀라와 감사하는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출3장에서 불붙는 가시떨기 나무아래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리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 신을 벗어라"고 했습니다.
신발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의 신분이 왕이든, 종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벗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고넬료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종이 오니 그 발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섰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과 식민지의 백성, 그것도 어부 출신이 베드로에게 절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세상 적으로 보면 마땅히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엎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고넬료 백부장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 때문에 그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삼상13:8절에 사울 임금은 제사를 드리기 원하지만 사무엘이 오지 않자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와서 어떻게 이런 일을 했느냐 물었습니다. 사울은 대답했습니다. "내가 왕이므로 그간 봐왔던 것으로도 충분히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드리지 않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 중심에 얼마만큼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두려움이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모르십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을 떠났고 하나님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가 임금이라고 해도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악신이 지배했습니다. 결국 그는 살았으나 죽은목숨이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고 가문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신5:29절 "나를 경외함이여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우리 모두 고넬료의 경건을 배워야 합니다. 경건은 나 자신과의 경건, 이웃과의 경건, 하나님과의 경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②고넬료의 가정은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은 가정이었습니다.

가족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가족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 가운데 가장 귀한 은총은 가정이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귀한 가정과 가족이 다 같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단번에 온 가족이 예수를 믿는 경우는 드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를 믿어 그 가족들을 구원시키는 일이 허다합니다. 고넬료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고넬료가 되어야 합니다.
"온 집안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온 집"이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말합니다. 자녀는 물론이고 그의 부하나 노예들까지 모두를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초청을 받고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가족들은 물론이고 노예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고 심지어는 이웃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고넬료라는 사람은 참 인간적입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그 집에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속적으로부터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예배하도록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가장 큰 의무는 예배하는 일입니다. 성도의 첫 번째 할 일이 예배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이미 가족과 부하들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까지 모여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도착하면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고넬료의 집이 그렇게 경건했고 예배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천사가 방문했던 것입니다.
로마는 황제를 신봉합니다. 황제가 바로 신입니다. 백부장인 고넬료는 마땅히 그의 황제를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자신뿐만 아니라 온 집안식구들을 구원시켰고, 예배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36년 동안 일본의 의해 무단통치를 당했습니다. 일제는 군인들(헌병)을 내세워 조그마한 시골마을까지 지배했습니다. 우리말, 우리 글도 쓰지 못하게 했고 우리 민족의 신앙생활까지도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타종교를 믿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들의 신을 믿도록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그 때문에 문을 닫았고 주의 종 목사들과 전도사들이 많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일본 사람들이, 일본 헌병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참 좋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악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참 종교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정 복음화! 하나님께서 제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입니다. 그러나 믿으면 천국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을 누가 구원해 줄 것입니까? 먼저 구원받은 내가 그들에게 복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예수 냄새가 나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가정복음화는 생활전도입니다. 직장복음화도 생활전도입니다. 자기는 열심히 믿는다면서 자기가족에 대하여 생각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하늘나라를 간다면 내 가족들도 하늘나라에 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가족구원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고 노력하고 봉사하고 헌신하여 믿지 않는 가족들이 구원 얻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도 고넬료의 가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가족구원! 급합니다. 이웃구원! 급합니다. 그리고 예배 중심적인 삶이 복을 받습니다.

 

③고넬료의 경건은 무엇입니까? 구제입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여기 구제는 '착한 행실'을 의미하는데 '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궁핍한 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왔다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귀족입니다. 지체 높은 권세자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나라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 유대나라, 피식민지 백성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많이 구제했다는 것은 어떤 특정 개인을 구제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틴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생활을 합니다. 그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규정으로나 로마의 자존심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의 귀족성은 절대로 타협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고 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면서 이것 먹고 힘내라는 차원의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의 권세와 부를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영적인 사역입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구제를 조금하고 자기 이름을 과시하기 위한 오늘의 현대인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구제(4,31절)였는데 그가 베푼 구제는 눈가림이나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구제를 했습니다. 이것은 곧 그의 신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생기는 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초월하는 힘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상대방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내 것을 나누게 됩니다. 누굴 위해서 희생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한 모습입니다.
고넬료는 노예들까지 배려했습니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까지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둔군 장교임에도 군림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까지 관심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유대인들로부터도 환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에게까지 상달되고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사가 그 가정에 좋은 소식을 들고 방문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갑부 '록펠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석유를 독점하면서 세계 최대의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의 교회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있는 데로, 많은 돈을 버십시오! 그리고 할 수 있는 데로 많이 나누어주십시오!'
그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정말 열심히 '나누는 삶, 구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철학은 나누기 위해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철학은 그로 하여금 돈더미 위에 올라앉게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다시 이런 말씀해 주었습니다.
'당신에게 돈이 마치 눈사태가 난 것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눈사태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은 그 눈사태에 깔려 죽고 말 것입니다'
그는 목사님의 이 말씀을 명심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 쏟아져 내리는 축복은 그로 하여금 '더 큰 나눔의 사람'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그로 인해서 미국 전역에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자선단체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나눔의 삶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그는 회장직함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현역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회사가 잘못되어서 직원들이 감옥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대신 가기 위해서 회장직을 유지한다'고 했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였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록펠러의 가슴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눅12:48절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확실히 베푸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습니다. 이웃에게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베풀어주면 그 관심과 배려가 곧바로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 모두 고넬료처럼 구제하고 주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④고넬료의 경건은 '항상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항상이란 말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3시, 6시, 9시) 우리 시각으로는 오전 9시와 12시,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또 항상이란 말은 '계속해서'라는 말입니다. 다르게는 '모든 경우에'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일을 시작할 때에 기도하고 일을 끝낼 때에 기도하고,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기도하고, 시간 맞춰 기도하니 항상 기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모든 경우에 기도하고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고 규례를 따라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군인이면서 그랬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9시에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후 3시라는 말입니다. 오후 3시에 고넬료도 기도했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도 기도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하나님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말씀하시기를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해다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고 욥바의 베드로에게는 고넬료의 집에 가라고 계시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안내자의 인도를 받아서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온 식구가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배를 드릴 때 그 집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던 것입니다. 이미 준비된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준비된 곳에 임합니다.
우리도 고넬료처럼 기도해서 응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에 보면, 그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기억이 되었습니다. 여기 '상달했다'는 것은 '하나님 보좌에 올라갔다'는 의미요, '기억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말입니다.
기도뿐입니까? 그의 구제도 상달이 되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할/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인간은 수지맞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억되고, 봉사가, 구제가, 헌신이 기억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⑤고넬료의 경건은 순종생활입니다.

7-8절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의 거리는 약 50Km 정도였는데 고넬료는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환상을 통해 받은 영감의 작동이 강하고 컸기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를 초청한 이유는 33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여기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고넬료는 베드로를 초청하고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24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했습니다.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고넬료는 주의 종을 하나님의 종으로, 그의 입으로 나오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경건입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이 겸손입니다.

⑥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를 모시고 집회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24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주의 종을 초청해놓고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서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일가와 친구들까지 불러모았던 고넬료의 열정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기다리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기다리는 과정 없이 바로 된다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기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고넬료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준비하며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고넬료가 엎드려 절했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백부장인 고넬료는 식민지 국가의 고관으로 로마의 군인입니다. 그런데 피식민지 국민 앞에 절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사회적인 지위가 없는 갈릴리 어부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영적인 면에서이지만 이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하는 고넬료의 모습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33절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 말에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영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어부로 보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국가의 국민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알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기서 고넬료가 얼마나 영성이 충만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주께서 당신께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합니다"라는 말이 제일 핵심 되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당신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은 내가 무엇이든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 행동이 가능한 일입니다.

 

⑦그날 고넬료의 가정에 일어난 사건은?(44-48)

▶성령이 임했습니다. ▶방언이 터졌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결론: 로마는 주후 313년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교황청은 로마에 있습니다. 로마 사람 가운데 최초로 예수 믿고 세례 받은 사람은 고넬료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세계 선교의 문이 비로소 고넬료의 집을 통해서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2004년 7월 18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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