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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by 【고동엽】 2022. 2. 3.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옛말에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 북방 국경에 '새옹'이라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이 노인이 말을 한 마리 키웠는데, 그 말이 어찌나 잘 달리고 힘이 센지 동네 사람들에게 큰 부러움을 샀다고 합니다.
"여보게 어디서 그렇게 좋은 말을 얻었느냐? 자넨 참 복도 많네 그려" 한 마디씩 하자, 이 노인이 하는 말이 "하지만 그것이 화가 될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더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애지중지하던 말이 국경을 넘어서 오랑캐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달아나고 맙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좋은 말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아깝겠냐"고 하며 그 노인을 위로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번에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고 태연히 대꾸하더랍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망갔던 그 말이 다른 좋은 말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겼습니다. 말 한 마리만 있어도 부자란 말을 듣는 판국에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많은 말들을 소유하게 되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야, 당신 참 횡재했으니 얼마나 좋겠소" 하면서 그 노인을 크게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는지 어떻게 아나?" 하면서 담담해합니다.
얼마 뒤 노인의 외아들이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도중 낙마하면서 다리를 심하게 다쳐 평생 절고 다녀야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안됐다는 듯이 노인을 위로하며 걱정하는 말을 건네자, 이번에도 노인은 얼굴하나 바꾸지 않고 "이것이 또 복이 될는지 누가 알아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다가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동네의 건장한 청년들은 모두 동원이 되어서 전쟁터로 끌려나가게 되었는데 이 젊은이만은 다리 장애로 인하여 징집대상에서 제외가 됩니다.
전쟁통에 전사자 명단들이 속속 날아들자 집집마다 애통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이 노인의 집만은 평온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때부터 인생살이 '새웅지마'란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어느 것이 화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되었다고 자랑하고 교만할 것도 아니고, 실패하고 잃어버렸다고 낙심하고 절망할 일도 아닙니다.
행여나 여러분 중에 사면초가, 첩첩산중에 거하는 분이 계십니까? 일이 막히고 하는 일마다 손해를 보고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삶이 억만 진창인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는 길이 있고, 복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롬'16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8장은 가장 중심된 장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야곱 스펜서'는 말하기를 '성경 전체가 다 귀한 보석이지만 특히 로마서는 보석 중에 보석이요, 또 로마서 중에도 오늘 본문의 8장은 로마서의 중심 장이요, 또 오늘 본문인 28절은 중심 중에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요, 즐겨 사용하는 성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예수만 믿기만 하면 우로 가나 좌로 가나 만사가 잘 된다는 말씀이로구나!' 생각할 소지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자가 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고난, 역경, 연약함, 시험, 심지어 허물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인사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할/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됩니다. /믿/

 

1. 선을 이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선을 이룬다는 말의 의미는 `옳고 유용하게 한다`, `목적을 이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나를 잘 되게 하고, 좋아지게 하고, 나아지게 하고, 온전케 하고, 새롭게 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큽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포수가 새 사냥을 하기 위해 숲으로 갔답니다. 이때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어미 참새가 포수를 보고서 제발 내 자식만은 쏘지 말라고 부탁했답니다.
포수는 당신 자식이 어떻게 생겼는가 물었습니다. 어미 참새는 숲 속에서 가장 잘 생긴 참새가 내 자식이라고 대답했고, 포수는 당신 자식은 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답니다. 그런데 포수가 사냥을 마치고 나오자 어미 참새는 자식이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왜 내 자식을 쏘았느냐고 물었답니다. 포수는 "나는 가장 못 생긴 놈을 쏘았을 뿐이야"
부모의 눈에는 자식이 아무리 못생겨도 가장 잘생겨 보이는 법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롬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 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렘29: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고, 장래에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려는 것이 그 분이 목적이요 뜻입니다. 이 사실만 바로 알아도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민6:24-27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2.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모든 것'이란, 범사의 모든 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합력 한다'는 말은 서로 연관되어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모든 일들 속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연이며, 내가 스스로 만든 일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모든 일들 속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이란, 선한 것도 있을 수 있고, 악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것에서부터 가장 천하고 시시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말이 '모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장 선한 것에서부터 가장 악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말이 '모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것도 선하게 하시지만, 최악의 것도 최선의 것으로 만드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안겨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와 함께 하심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압니다. 그러나 좋지 않는 일을 만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고 야단치시기 위하여 주시는 어려움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준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면, 지금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결코 우리의 불행을 위해, 우리를 혼내주고, 우리를 고생케 하려고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렘애3:33절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롬8:17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빌1:29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고난의 일을 동원하시는 일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아니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의 본심은 우리를 잘못되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망하게 하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원하시는 그 고난의 일도, 힘든 일도, 아픈 일도 그 때 당시에는 힘들고 아픈 일이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그것이 우리의 복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고난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움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힘든 것도 복이라는 것입니다. 왜 복이 될까요? 오늘 본문을 보세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것만 아니라 좋지 않는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니 우리의 보기에 좋지 않는, 힘든 그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즉 좋은 일만, 잘 되는 일만, 쉬운 일만, 어려움 없이, 문제없이 만사 오케, 일사천리가 되게 한다면(물론 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볼 때에는 좋을 것 같지만,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그것이 결코 복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그렇습니다. 좋은 것을 주면 처음에는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주신 것에 대해 감사도 감격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편한 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고,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것이 좋으냐, 재미있냐, 할만하냐? 물으면 100에 한 두명 빼놓고 다 싫다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기 싫다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는 학생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실력이 없어서 어디에 쓰임을 받지 못하고 도태되고 맙니다.
세상은 경쟁사회입니다. 그러니 자녀들이 하기 힘들어해도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게 합니다. 때로는 매를 때리기도 하고 혼내주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게 하는 것, 매를 때려서라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통로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그를 미워하는 형들에게 가지 않았더라면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아 있는 애굽으로 팔려갔을까요?
아니면 그 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지 않았더라면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게 되었을까요?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왕 앞에 불러가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 즉 힘들고 어려운 문제까지도 합력 하여 선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사실을 알았던 요셉이 나중에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창50: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비단 요셉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의 이유로 잡혀 들어가지 않았다면, 사자굴 속에 집어던짐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 이유로 풀무 불 속에 집어던짐을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더욱 높여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날 벼락을 맞는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전보다 더 배나 축복을 받는 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안 되는 것 가지고도, 힘들고 거꾸로 가는 것 같아도 그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할/

■예수 믿는 한 여자가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안 믿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앙과 상관없이 좋기만 했는데, 점차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제사도 드려야 했고 술상도 차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 십 년 살다보니 이제 결혼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후회 막급입니다.
'그 때 예수 잘 믿는 그 사람과 결혼할 것을' '내가 지금의 남편을 선택한 것을 역사적 실수다', '다 내 잘못이다' 하면서 자포자기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내가 안 믿는 집에 들어온 것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이 집 식구들을 구원하고 말 것이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정명숙 전도사님이 이런 사명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부인으로 해서 그 가족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됩니다. 잠깐 실수는 했지만 그 실수까지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런 선을 행하십니까?

 

①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엇보다도 아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신앙의 기름길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이 신앙의 삼박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는 말은 지식적인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계획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다시 말하면 확신하는 신앙이요,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통찰력을 통해서 알게되는 그런 앎을 말합니다.
■이런 영적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욱 많이 힘써야 할 것이 있는데, '예수를 더 깊이 알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엡3:18-1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루터'는 십자가의 넓이는 '사랑'이고, 길이는 '인내'이고, 높이는 '소망'이고, 깊이는 '믿음이고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깊이 알려고 하면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보다 더 깊이 있게 주님을 알 수 있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책 한 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재미가 없습니다. 읽기는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읽다가 포기하고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까 자신의 남편이 바로 그 지루한 책의 저자입니다. 그래서 그 책을 꺼내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책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고 합니다. 그 책이 왜 갑자기 재미있어진 것입니까? 그것은 관심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쓴 책이라 애정을 가지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깊이 알려고 하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그분의 글과 말씀과 교훈이 들어 있는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을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되고 만나게 되고 접하게 됩니다.

 

②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이런 선을 행하십니다.
사실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요일4: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잡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잡니까? ▶⑴믿음으로 사는 잡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화니 크로스비' 라는 유명한 찬송가 작곡가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분입니다. 그는 평생에 무려 9000편의 찬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그분의 곡이 무려 22편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곡들은 대부분 매우 은혜롭고 활기차고 힘이 넘치는 가사와 곡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평소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나의 갈길 다 가도록', '나의 생명되신 주', '오 놀라운 구세주', '나의 영원하신 기업' 등 주옥같은 찬송가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녀가 장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병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실수로 그만 실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답니다.
만약 우리 같으면 그런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을까요? 얼마나 하나님과 세상을 원망하고 불평하겠습니까? 앞도 못 보는 내 인생은 이제 끝장났다고 생각하고 날마다 신세를 한탄하며 자학하는 삶을 살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불행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고난을 극복하여 주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간증을 들어보면 실로 놀라운 데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눈이 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는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괴로운 조건 때문에 나는 오히려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게 되었고, 그리고 성전의 기둥으로서 주님 앞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처럼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얼마나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까?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작가로 쓰신 것입니다.
▶⑵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키는 잡니다. 요일5: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 바꿔 쓰면 이해가 더 쉬운 것 같은데, '믿는 자'란 말 대신에 '사랑하는 자'로 바꾸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믿음을 시험 할 수 있는 시금석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할/
이 사랑만 있으면 기쁨으로 순종하고, 기쁨으로 감사하고, 기쁨으로 봉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우상이나, 다른 피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지 아니하고, ▶세상 것들도 사랑하지 하니 하고,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로 사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말로는 많이 사랑하여 왔습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찬송도 힘있게 불렀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도 했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가 말뿐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수고가 뒤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땀을 흘려야 합니다.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손해를 감수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시간도 손해를 보고, 물질도 손해를 보고, 개인적인 행복도 좀 손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때문에 결혼도, 개인적인 행복도 포기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서 공주의 아들이라는 자리도 내놓았습니다.
나 때문이라면 술도, 취미도, 오락도 버릴 수가 없지만 주님 때문이라면 그 이상의 것도 과감하게 버릴 수가 있다는 이 손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40:3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님을 사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까지 버린 순교자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주기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경상도 사람입니다. 그는 경상도 사나이답게 우직하리 만큼 주님을 사랑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는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한다고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고문은 온몸을 묶은 다음에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가 갑자기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리는 고문입니다. 그러면 온몸이 부서지고 깨지고 피투성이가 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주기철입니다. 이름의 뜻 그대로 주님을 위해서 철저하게 붉은 피를 흘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니까 2차 고문을 합니다. 2차 고문은 입만 남겨 놓고 온 몸의 구멍을 반창고로 막은 다음에 물 속에 집어넣는 고문입니다. 그러면 물을 실컷 마셔서 배가 불러옵니다. 그러면 눈이 튀어 나올까봐 반창고를 눈에다 이중 삼중 붙여 놓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순교자에게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죽음의 시간이 자꾸만 지연되어 갑니다. 그래서 "주님 이러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순교를 못할까 그것이 걱정됩니다."하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사모가 면회를 옵니다. 와서 남편의 모습을 보는 부인의 심정은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자마자 남편에게 하는 첫 마디는 "여보, 당신은 꼭 순교를 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해질 까봐 다그친 말입니다. 그도 여자인데 왜 위로의 말 한마디를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퉁명스럽게 한마디하고 돌아가는 아내를 보고, 주기철 목사가 마지막 한마디 한 말이 있습니다. "여보 나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마시고 죽고 싶소." 그리고 이틀 후에 죽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하고는 장엄하게 순교하였다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서 '그 뜻대로'란 '미리 작정된 목적을 따라'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된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사건도 아닙니다. 그것은 벌써 창세 전에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롬8:30절 "미리 정하신 자들은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엡1:4-5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제 막 살아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엡5:17-20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살라고 하십니다.
또 주님은 마6:33절에서 우리의 삶의 우선 순위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신앙 생활은 봉헌하는 생활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시간을 드리고 땀을 드리고 나의 정신과 마음과 뜻과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는 헌신의 생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보시고 합력하여 선을 행하십니다. /믿/

 

④합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선을 행하십니다.
즉 성도는 서로 합력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유능하고 다재 다능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더 하나되어 서로 함께 더불어서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고 작은 일 하나라고 서로 합력 할 때, 그 일이 선한 일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벧전4: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라"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결론은 다시 본문을 한번 읽고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2003년 7월 27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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