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요한일서 4:7-12
성경 전체의 말씀 속에서 가장 간결하면서도 가장 위대한 말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은혜롭고 가장 큰 위로와 기쁨과 소망이 되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씀일 뿐 아니라 사실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제일 하고싶어 하시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만일 성경에서 제일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은 지혜이시라" 한다면 우리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그 지혜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가 낱낱이 다 드러나겠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경에서 제일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은 전능이시라" 한다면 우리는 겁에 질려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못하실 것이 하나도 없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가장 열심히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것에 앞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사랑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바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부드러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확증하셨습니다. 본문 9-10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도 바울은 롬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안심하며 소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경말씀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요3:16의 말씀인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 이 하나님의 사랑은 많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입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을 지으시고 친히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것도 사랑 때문이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자유로운 의지를 주신 것도 사랑 때문이며, 그 자유로써 하나님께 순종 대신 불순종의 길을 택한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는 것도 사랑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시면서까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영원히 복된 삶을 주시려는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을 힘입어 사랑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된 우리이기에, 이제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오늘 본문은 힘주어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 11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본문보다 앞서는 요일3:16에서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cf.요15:12). 사도 요한도 그것을 증거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23),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1).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방금 전에 인용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바로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본문 7-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증거입니다. 본문 12절에서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하며, 16절에서도 "...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합니다. 요일3:24에서도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본문 뒤에 오는 20절에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명과 진리 가운데 있다는 증거입니다. 요일3:14에서는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했으며, 요일3:18-19에서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요15:13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3:17-18에서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3:4-7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내가 아닌,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진리 위에 기초한 이해와 용서와 인내와 섬김과 희생적 헌신의 실천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쪽에서의 양보와 희생을 필요로 할 때가 있지만, 사실은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큰 유익을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얻는 유익이 무엇이겠습니까? 요일4:17-18에서는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했고, 요일3:22-23에서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자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건강입니까? 재산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식입니까? 아니면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 같은 것입니까? 그것들은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고전13:8에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는 또 언제나 남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며, 그 중에서도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보다 앞서 그는 고전13:1-3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는 프랑스어로 된 "사랑이 없으면"이란 글 한 토막을 소개 하겠습니다: 사랑이 없는 의무감은 무뚝뚝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책임감은 냉엄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무자비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교육은 반항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지성은 교활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친절은 위선적이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명령은 비열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군림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힘은 난폭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명예는 오만하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부는 탐욕스럽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광신적이게 만듭니다. 사랑이 없는 삶은 미련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 우리의 재산이요 자랑이 되게 합시다. 자랑하지 않으며 열심히 행하는 사랑이 우리의 진정한 자랑이 되게 합시다. 저는 얼마 전 "새문안적인"이란 단어가 사전에 오르는 일이 있게 되기를 꿈꾼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문안적"이라는 말이 갖게 되기를 바라는 여러 뜻들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이란 뜻이 포함되기를 꿈꾼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이 것은 진정 제가 소망하며 기도하는 제목이며 제 목회의 비젼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 가지셨던 목적이며 하나님나라의 본질 그 자체였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건넨 최초의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였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이 말을 저는 "당신은 내가 강할 때에나 내가 약할 때에나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할 나의 생명이요 나 자신입니다"라는 고백과 서약으로 이해합니다. 달리 말하면 그 말은 "건강하든지 연약하든지 언제 어디서도 나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다짐과 선언인 것입니다. 인간의 함께 사는 삶은 이렇게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서로를 자기 자신과 같이 소중히 여기고 서로에 대하여 사랑과 성실과 헌신을 다짐하는 말과 함께 시작된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부부사이에서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사람 사는 도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복하고자 하셨던 일도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일으키신 오순절 초대교회도 그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먼저 우리들 안에서 사랑이 충만하고, 그 사랑이 넘쳐흘러서 이 사회와 온 세상을 채우는 그런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첫 머리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말하는 사도 요한의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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