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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 (요 13:34-35)

by 【고동엽】 2021. 12. 8.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

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제자인 줄을 알리

라.

 

이 세상에서 사랑 만한 가치 있는 정신이 없습니다. 좋은 정신으로는 봉사, 헌신, 자선, 도덕, 윤리, 희생, 봉헌, 섬김 등의 정신도 있지만 이것들은 사랑의 정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정신은 하나님이 주신 정신이고 하나님이 직접 시범을 보이신 정신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이나 정신을 사로잡는 정신가운데 이 사랑 만한 정신을 발견한 것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제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여기서 말씀하는 사랑은 남녀의 육신적이고 좁은 사랑이 아니고 큰 의미의 신앙적인 사랑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실 때 이 사랑의 정신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지으실 때 이 사랑의 요소를 부여하고 자질을 부여하고 이 사랑의 자본을 부여해서 창조하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그 사랑의 요소와 자본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함께 더불어 살라” 는 뜻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이 사랑하라는 의미는 서로 함께 더불어 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삶에는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 살수 없고 근본적으로 함께 살고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유년기에는 부모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성장하면 이웃과, 친구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생전체를 살아갈 때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관계의 삶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가장 기쁨이 주어지고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이 관계의 삶이 가장 정상적일 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근본적으로 세 가지 부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는 자연과의 좋은 관계입니다. 여러분, 자연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오늘 사람들이 비로소 자연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와서야 자연보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마구 파헤쳐 놓고 오염시키고 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삭막해졌습니다. 불행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서로 나누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이웃과 형제와 자녀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은 이렇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하면 이 관계들이 좋을 때입니다. 그때 만족이 오고 기쁨이 주어지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늘과 자연과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이루는 삶, 이것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렇게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아갈 때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불행도, 고독함도, 갈등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흩어졌습니다.

 

이것이 불행의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 모든 좋은 관계를 모두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불행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물도, 공기도, 산도, 땅도,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은 인간과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홍수가 나고, 산이 무너져 사태를 일으키고, 물이 오염되고, 공기가 탁해지고, 그 결과 온갖 질병을 일으켰습니다. 모두 자연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어난 증상들입니다.

또 이웃과 함께 살라고 했는데 이 관계도 파괴시켰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악화되고 부조화가 일어나고 서로 원수가 되고 다툼이 일어나서 결국 증오하고 미워하다가 살인이 일어나고 그럽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파괴와 불화와 갈등과 다툼과 전쟁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웃이 헤어지고, 동료가 헤어지고, 형제가 흩어지고 부모가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불화의 시작은 이렇게 흩어짐으로 일어났습니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찾아오는 것이 모두 불행만 찾아오고 고독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세상을 지으실 때는 이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고 더불어 살고 서로 사랑하며 살고 함께 모여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흩어지는 세상입니다. 형제가 흩어지고, 부모로부터 흩어지고, 이웃으로부터 나누이고, 동서가 나누이고, 민족이 서로 나누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세상입니다. 왜 이렇게 나누이고 흩어지는가 하면 정신과 생각과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병균의 주범이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정신이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함께 살고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돕고 나누고 협동하며 모여 살며 이웃과 공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각자 흩어지고 갈라져버렸습니다.

오늘 세상이 얼마나 이기주의적입니까. 아이가 아픕니다. 아이가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불치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아예 죽으면 괜찮겠는데 돈도 없는데 입원비는 엄청나고 능력은 없고 아이는 낫을 기미는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들이 아이를 버립니다. 어떤 부모들은 건강한 아이도 부부가 이혼하고 귀찮다고 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얼마나 정신이 병들었으면 아이를 돈이 없다고 귀찮다고 버리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세상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아이를 버리고 부모를 버립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집 전세를 빼고 길거리에 나와 앉을지라도 피를 빼서라도 아이를 고칠지라도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원래 하나님이 주신 함께 살고 더불어 살고 사랑하는 정상적인 인간의 마음상태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이기주의가 많아서 마구 버립니다. 정신이 약한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이웃도 버리고, 형제도 버리고, 하나님도 버리고 살아갑니다. 여러분 같으면 돈 없다고 아이가 죽어 가는데 그냥 버리고 생활이 어렵다고 부모를 버리겠습니까. 오늘 이 시대의 갈등, 불화, 불행은 모두 이 이기주의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를 회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일리라”. 지독한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이 사랑의 정신을 되찾는 길밖에 없습니다. 모든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는 삶은 서로 함께 살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보다도 평화를 이루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려면 몇 가지 우선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나 자신의 이기주의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이 정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에게 상당한 인내의 삶이 요구됩니다. 그 런 용기가 없으면 이런 정신은 발휘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발휘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고 힘쓰는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이런 정신을 발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야 나도 건강하고 세상도 건강해지고 그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또 우리 신앙인들은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 노력하고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힘쓰고 도덕규범을 지키려 애쓰고 국가의 의무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얼마나 건강한 삶입니까. 남들이 다 무슨 말을 할지라도 나 자신은 이웃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며 살아가는 삶, 이 삶이 오늘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삶입니다. 그 삶이 얼마나 건강하고 건전하며 성숙한 삶입니까. 그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화합을 위해서 노력하고 하나되게 하려고 애쓰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본문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너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유년기에는 놀이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청년기에는 이성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더 들면 야망과 야심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중년 때가 되면 모두 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대부분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고 누구를 위해서 희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고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서 중년쯤 되면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사람이 언제 후회를 하느냐 하면 할 일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할 때 후회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사명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삶을 살지 못하면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왜 못하느냐 하면 건강과 시간과 여유가 많고 자신감이 넘쳐서 못합니다. 그래서 그때는 하나님이 필요 없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하나님을 알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정 헌신의 삶을 살고 공헌하는 삶을 살고 무엇인가 이바지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중년 이후에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때 일을 했다 하면 굵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중년 이후에 각종 실존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각종 병에 시달리게 되고 각종질환이 괴롭히고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큰 병을 체험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동안 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원형이나 형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은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아의 눈을 뜨게 됩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던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뜬눈으로 너를 보게 되고 의미를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은 죽음을 느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사람이 물질에 집착할 때는 개인의 의식수준에 갇혀서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권세에 집착할 때는 야망의 독에 갇혀서 인간에게 주어진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죽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사람은 비로소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인식할 때부터 삶의 의미를 알게 되어 결단하게 되고 질 높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중에 가장 깊이 있는 믿음은 종말의 믿음입니다. 사람이 종말을 생각하면 순간 엄숙해집니다. 사람이 죽음을 모르면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죽음 없는 세상은 불행한 세상입니다. 죽음이 없는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고 누가 자기를 관리하고 돌보고 아끼며 살아가겠습니까. 죽음이 없으면 누가 자기 몸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아끼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자꾸만 죽음을 생각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원래 인간 됨을 알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인생에 눈을 뜨게되면 비로소 너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너로 인해 나를 평가하게 되고 너로 기쁨을 얻고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진정 더 눈을 크게 뜨면 너 때문에 사는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사람은 가진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내 놓을 수 있는 용기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늙었는데도 그런 눈을 뜨지 못해서 여전히 아이처럼 집착하고 욕심과 탐욕에 매달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정신적으로는 유아차원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사랑하라는 뜻과 의미는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정신을 이 땅에서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이런 수고 없이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내 생각이나 내 중심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도우실 때만 가능한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께 기도하며 그 뜻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을 건강한 세상으로 회복시키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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