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확신
창 11:1-9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지면에 흩어
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
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 오셨더라.
본문말씀은 그 유명한 바벨 탑 이야기입니다. 노아 홍수 후 인간은 각처에 퍼져 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번성하였습니다. 노아 홍수는 세상이 악해져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인데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니까 또 다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의 타락은 인간주의의 표출이었습니다. 그 인간주의의 표출이 바벨탑을 쌓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바벨탑은 인간의 교만함과 하나님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노아 홍수 후 인간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가를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차츰 삶에 안정을 되찾게 되자 우리는 더 이상 미약한 존재가 아니고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힘을 합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쌓아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4절을 보면 “하늘 꼭대기까지 쌓아 올라가자”,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세상에 남기자”하고 말합니다. 유대철학자 필로(Philo)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벽돌로 바벨탑을 쌓으면서 벽돌마다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남기려 하는 강한 욕구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이 바벨탑 사건은 인간주의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하나님을 향한 도전으로 간주되고 인간주의의 선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아 올라가는데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그 일에 너무 단결되고 하나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주 일사분란하게 그 큰 바벨탑을 쌓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늘까지 쌓아 올라가자는 목적에 모두가 뜻을 같이하여 자신만만하게 일에 착수했습니다. “하늘까지 쌓아 올라가자,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남기자.” 이 무모한 일에 모두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인간주의를 이루는데 모두가 확신 있게 임하였고 감히 도전에 나섰고 투자도 했고 수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무모하고 인간적인 일에는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너무나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탑을 쌓아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모두 자신감을 잃고 살아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또 정반대로 이 불확실한 일에 사람들이 너무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인간적인 일에는 너무나 확신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분명하다 못해 아주 사명 적이고 너무 철두철미합니다. 오늘 사람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시대를 내다보는 일에는 모두가 불확실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주저하지만 인간주의, 수단, 불법을 자행하는 자기의 바벨탑을 쌓는 일에는 너무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이익에의 확신
노사가 싸우는 모습을 보십시오. 보면 사생결단하고 싸웁니다. 거기에는 조금도 양보가 없습니다. 회사가 망해도 내 것 챙기는 데는 조금도 양보가 없습니다. 너무나 확신 있게 싸웁니다. 그래서 결사반대입니다. 그렇게 싸우는데 몇 년 앞도 내다보지 않습니다. 이 회사가 몇 년 안에 흔들릴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이 너무나 불필요한 확신과 이기주의가 내일을 내다보는 일에 눈을 멀게 합니다.
“괴짜시대“라는 책을 쓴 라이언 매튜스(Ryan Mathews)라는 사람은 지금까지는 레드오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레드오션이라는 말은 내가 이기고 앞서가기 위해서는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형태로 살아가느라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레드오션 시대를 살아서는 안 되고 블루오션 시대를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블루오션은 경쟁 없이 이기고 앞서가는 전략을 구사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제는 싸워서 이겨야 하는 시대가 아니고 싸우지 않고 함께 하고 더불어 협동하면서 세상을 앞서가는 삶을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자기이익만을 고집해서는 세상에서 더 이상 승리하고 앞서가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뱃스톤(David Batstone)이라는 사람이 “영혼이 있는 기업“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분이 그 책속에서 최근 기업들이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이 8천억 원을 내 놓고 현대가 1조원을 내 놓았습니다. 그 문제를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돈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고 돈만 내 놓으면 다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려다 보면 기업 윤리의 부재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업이 기술혁신 만으로는 안 되고 사원이나 소비자 그리고 모두에게 윤리경영을 이루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을 벌어 많이 내 놓는 것 보다 더 크게 세상에 공감을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윤리 경영이 기업의 영혼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모두가 피터지게 싸우지 않고 정도를 걸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일에의 확신
오늘은 지극히 이기주의시대 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목숨을 겁니다. 오늘 사업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리고 사업에 투자하는 일이 얼마나 불확실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사업하는데 남의 돈을 꿔다가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때 사업을 시작하는 분은 자신이 혹시 실패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래서 마구 남의 돈을 꾸어다 투자를 합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실패하게 되면 나 한사람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그런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감행합니다.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확신이 넘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또 돈을 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너무나 믿음이 큽니다. 그래서 계속 복권을 사들이고 도전합니다. 도전하면서 꿈도 야무지게 꿉니다. 이번에 “당첨만 되면“ 하고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고 그래서 줄기차게 사 들입니다. 아주 믿음이 좋습니다. 그 일에 공을 들입니다. 그래서 추첨하는 날짜를 고대하며 기다립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한창 말이 많던 바다이야기라는 곳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돈을 꿔가지고 바다 이야기 집에 갑니다. 갈 때는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 한탕 터지면 횡재해서 빚도 갚고 사업자금도 건질 것이라는 큰 기대를 가지고 갑니다. 모두 그 마음으로 바다로, 경마장으로, 정선에 있는 도박장으로 갑니다. 가서 사람들이 한결같이 밤을 새웁니다. 돈이 모자라면 집을 팔아 가지고 갑니다. 이런 확신이나 열심이나 집념이 건전한 일에 쏟아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정열을 믿음의 삶에 쏟는다면, 그 열정으로 샘을 판다면 얼마나 좋은 샘을 파겠습니까. 오늘은 불확실한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부정에의 확신
은행직원들이 수백억 원의 돈을 빼서 도망을 갑니다. 도망갈 때는 붙잡히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갑니다. 얼마 전에 그래서 잡혔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오늘도 또 유사한 사건이 다른 은행에서 발생합니다. 모두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잡히지 않는다는 그릇된 확신에서 똑같은 사건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청와대를 사칭해서 사기를 치면 모두가 손쉽게 속습니다. 사람들을 속일 때 얼마나 진짜같이 상대에게 확신을 주고 믿음을 주었으면 돈을 싸 들고 찾아오겠습니까. 아마 그 모습은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짓말 할 때 진짜같이 더 심각해집니다.
한 의사가 퇴근을 했습니다. 집에서 아내와 쉬고 있는데 동료의사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동료의사가 “이봐 빨리와, 우리끼리 먼저 고스톱 시작했어, 빨리 와” 그러자 이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알았어, 금방갈께”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내가 옆에 있다가 남편의 얼굴, 말투를 보니까 큰 일이 난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중환자가 발생했나 보조”하고 말하자 이 의사 남편은 “응 그런가 봐, 의사 셋이 매달려 있다니까” 그러고 집을 나갑니다. 사람들은 거짓말 할 때는 모두 전도사들 보다 더 진짜같이 부정의 전도사 역할을 합니다.
오늘은 모두 속임수 세상입니다. 심지어는 육교에서 전철 안에서 구걸하는 걸인들도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전철 안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자주 마주치는데 그때 마다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장난치며 놀던 사람들이 전철이 오자마자 시각장애인 행세를 하더니 구걸하고 다니더라고 합니다. 정말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바벨탑을 쌓는 일에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합니다. 북한을 보십시오. 모든 나라들이 반대하는데도 핵 개발을 발하는데 목숨을 걸고 합니다. 저것도 바벨탑을 쌓는 일입니다. 그 일에 목숨을 걸고 나라의 운명을 걸고 하지 않습니까. 그 일이 목숨 걸고 할 일입니까. 이 시대는 의를 이루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데는 목숨을 거는 나라도, 사람도, 인물도 없습니다. 그런데 악을 심고 테러를 하고 무기를 만들고 속이는 일에는 모두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걸고 운명을 걸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하는 일에 너무나 확신이 있습니다.
허탄한 것에 목적을
오늘 사람들은 명품이라는 것에 또 목숨을 겁니다. 명품이라면 돈을 물 쓰듯 합니다. 그러니까 가짜 시계파동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겨우 10만 원짜리 가짜 시계를 가지고 억대로 속여 팔아먹었습니다. 얼마나 상대방에게 확신을 주었으면 10만 원짜리 가짜 시계를 억대를 주고 사겠습니까. 또 명품이라면 얼마나 좋아했기에 10만 원짜리 가짜 시계를 가지고 속이려고 접근을 했겠습니까. 왜 이런 현상이 자꾸만 일어나는가 하면 사람들이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꾸만 가짜 짝퉁이 나옵니다. 돈은 있고 그 돈을 사용할 줄은 모르고 그러니까 그렇게 허탄한 곳에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지난해에 짝퉁을 수입하다 적발된 것이 937건이었고 보이지 않는 것 까지 계산하면 7,272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허탄한 일에 마음을 쏟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명품을 들면 으스대고 떳떳해 하고 짝퉁을 든 사람에게는 무시하고 비웃습니다. 그리고 짝퉁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의기소침하고 누가 알까 전전긍긍합니다. 그것도 요령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짝퉁 핸드백을 들 때는 고급 옷을 입어야 합니다. 싼 옷을 입으면 금방 탄로 납니다. 그리고 핸드백을 들고 다닐 때는 손목에 스카프를 매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알겠습니까. 오늘은 너무 사람들이 허탄한 것에 마음을 쏟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게 보이고 그래서 때로 불안하기도 하고 자신감을 잃기도 하고 걱정도 하는데 그런데 오늘은 불필요한 일이나 바벨탑을 쌓는 일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확신에 차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질없이 바벨탑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 오셨더라”고 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고 저렇게 모여있는가” 보시려고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내려와 보실 때 저들이 선한 일을 위해서 모두가 땀을 흘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마나 복을 주셨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말씀하는데 기적이 일어나나 곳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복을 받을 만한 생각과 행동과 삶이 주어져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 내려가 보자” 그래서 하나님이 내려와 보시니 바벨탑을 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의 의도와 뜻과 행동과 악한 생각을 다 아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때의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6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도다.” 그 말은 “이 사람들의 생각, 마음, 뜻이 좋지 못하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도가 전혀 선하지 못하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오셨을 때 그들의 삶, 모습, 행동이, 생각, 뜻이 선했더라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얼마나 많이 주셨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내려와서 보시니 그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분노하였던 것입니다. 그 분노의 결과가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서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곧 도시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래서 바벨이라는 말은 “혼돈”, “흩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꼭 필요한 일에는 뜻이 맞지 않습니다. 마음도 하나가 안 되고 뜻이 하나가 안 되고 분열하고 나누이고 갈등합니다. 그런데 불필요한 일에는 더 나아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에는 모두가 마음이 일치됩니다. 뜻이 잘 맞습니다. 생각이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아낌없이 투자도 하고 수고도 하고 단결이 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여전히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에 목숨을 갈고 필요 이상의 확신을 가지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아닌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지 않아서 바벨탑이 무너지듯 골똘하게 하던 일이 무너져 버렸을 때 비로소 눈이 뜨여 탄식하게 됩니다.
우리는 내 바벨탑을 쌓지 말고 하나님을 위한 바벨탑을 쌓아야 합니다. 내 바벨탑은 절대로 쌓아지지 않습니다. 무모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울도 자기 바벨탑을 쌓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비참하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가룟 유다도 그랬습니다. 히틀러도 그랬습니다. 나폴레옹도 그랬습니다. 일본의 천황도 그랬습니다. 바벨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도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무너트리는 시간을 재고 계실 것입니다. 그 무실론의 정권이 무너질 때 이 세상에 주어지는 메시지가 가장 극대화 되는 시간에 무너트리실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그런 권세가 무너질 때는 모두 그랬습니다.
우리는 나의 바벨탑을 쌓지 말고 하나님의 탑을 쌓아야 합니다. 나의 탑은 모두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탑을 쌓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탑을 쌓으려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남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남기려 해야 합니다. 그때 그 탑이 더 높이, 더 견고하게, 더 영광스럽게 쌓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영광 속에서 나도 덩달아 영광을 받는 것이고 그 영광의 그늘에서 내가, 우리가, 우리민족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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