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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옥한음 목사 설교66편

죄를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막2:17

by 【고동엽】 2022. 12. 2.

죄를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전도 설교)           막2:17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2:17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초청을 받으려면

먼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배하러 나오면서 죄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죽도록 주님을 사랑했던 사도 바울도 자기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는데

우리야 오죽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스스로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드문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자기를 '죄인'이라고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사람에게 죄가 그토록 심각하게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다음 4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인간의 죄는 신학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학적(성경적)으로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죄로 규정합니다.

현대인들은 이것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정하신 절대적인 가치표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절대적인 가치표준을 정한 자를 동시에 부정하는 것입니다.

 

절대가치 기준을 어기든지 미치지 못하면, 절대자를 부정하든지, 반항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또한 성경적 기준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상황적으로, 상대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상황윤리, 상대주의)

그러나 죄의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다룰 수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게 왜 죄입니까? 여러분! 이 시간 죄를 말하고 있지만

여러분 개개인이 얼마나 ‘나는 정말 죄인이구나’ 느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느끼지 못하고, 지은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첫째는 양심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주셨는데 배우지 않으니 모릅니다.

자기의 무지가, 자기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르니까 죄인이 아니라고 고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 그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불신앙의  죄가 하나님께는 가장 큰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기준은 - 나 자신의 양심이나, 나 자신의 가치관이 아닙니다.

절대 기준을 정하시는 분은 절대자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자기는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요, 크나큰 착각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모두가 죄인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죄까지도 보십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9-10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고 폐부를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행동 이전에, 하나님은 내 마음을 문제 삼으십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도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아셨습니다. 창6:5

 

노아 홍수 이후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창8:21

 

자연인은 마음의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의 죄까지를 심판하신다고 했을 때,

죄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를 오래 믿었다 할지라도,

자기는 겉으로 아무 흠결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더라도

그 마음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죄인들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죄 짓는 마음을 심어주고,

막상 죄를 지으면, 죄인을 자기 수하에 두고 마음대로 부리고 유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죄까지도, 항상 말씀에 비추어 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에는 가장 간단히 설명하면 지정의 측면이 있습니다.

지 - 자기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정 - 자기 죄를 아파해야 합니다. 애통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의 - 자기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3. 양심으로만 죄를 깨닫게 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성경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 죄, 숨겨진 죄, 마음의 죄를 철저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유익'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율법 때문에 ‘죄를 아는 지식’이 부여되었습니다.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 마음과 행위의 죄를 낱낱이 깨닫게 됩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세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11:20-24

 

고라신과 벳세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하고도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므로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로 보면, 고대 사람들보다 현대 사람들은 더 악합니다.

고대는 복음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자주 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얼마든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습니다.

성경을 알면서도 죄인임을 깨닫고도 돌이키지 않을 때

그 책임은 더욱 막중한 것입니다.

 

헬라인보다 유대인들은 죄가 더 컸습니다.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지식이 더 풍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았을 때, 유대인(고라신과 벳세다)의 더 형벌은 컸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은 더 큰 죄인으로 지옥에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적었지만

한국 사람들은 더 자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세계에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교회와 더 많은 설교자가 있습니다.

죄와 심판에 대한 지식이 있는 만큼, 우리는 죄를 단순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들을 기회가 있는 만큼, 우리는 신앙을 가볍게 간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4. 죄는 막대한 심리적, 외적 피해를 죄는 가져줍니다.

 

죄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 국가를 파괴합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심리적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죄 때문에 옵니다.

불안, 불면, 무력증, 우울증, 열등감, 고독, 증오, 복수심에는

어떤 형태로든 죄가 배후에 개입되어 있습니다.

 

모글러라는 현대 심리학자는, '인간이 고백하지 않고 속죄받지 않은 죄로 인하여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병들어 있는 존재가 현대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가정불화의 원인도 대부분 죄 때문입니다.

서구 선진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신과 의사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바로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잠이 안 오고 불안합니다.

죄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 국가를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적당히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정신적 말고도,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망하면, 차라리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라도 얻지만,

이 세상에서 안 망하면,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도 못 얻습니다. 

죄는 나를 망하게 하므로... 죄는 반드시 대가(삯)가 있으므로...

나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용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땅에서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얻어야 합니다.

“나 자유 얻었네!”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5. ‘최후의 심판’ 때문에 죄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18세기에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주일에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잡힌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촛불 옆에서 원고지를 들고 읽기만 했는데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저마다 통회했다고 했습니다.

 

18세기 사람들이 오늘날보다 더 죄를 많이 지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그 죄를 그 밤에 해결하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현대인들은 죄에 대한 그런 갈등, 그런 고통이 없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도 죄사함을 받았으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함을 받았다 하면서도, 마음대로 죄를 밥 먹듯 짓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보아도 모순입니다. 진짜 죄사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최후의 심판,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엔 모든 사람에겐 심판이 있습니다. 히9:27

그 심판대에서, 우리는 반드시 무죄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죄 값을 대신 치름)으로, 우리는 무죄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결책은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입니다.

 

죽어 지옥 갈 사람의 죄 문제나

구원받은 성도의 죄 문제를 다같이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모두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 지고 가시는 어린양이 되심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아무 죄없이 나의 죄를 지고 피를 뚝뚝 흘리며 그는 돌아가셨습니다.

짐승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여러 다양한 구원의 방법이 있을텐 데

왜 하나님은 예수님이 피를 흘리는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걸까요.

 

성경은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죄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레위기 17:11에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죄를 사하는 데는 반드시 피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생명을 앗아가고 사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영원한 사망이 왕노릇 했습니다.

사망을 쫓고 생명이 오기 위해서는 생명과 같은 대가인 피가

그것도 죄가 없는 피가 희생되어야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귀한 희생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마귀가 죄의 항목을 하나님 앞에 열거하며 낭독해도

“내가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했다”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나의 모든 죄를 씻고도 남음이 있는 보혈의 피입니다.

어떤 죄도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죄도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도, 경건의 진통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더 큰 은혜와 감격 속에 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래야 십자가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날마다 새롭게 체험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자책을 느낄 때마다

‘너 십자가를 다시 쳐다 보아라!’ 말씀하십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날마다 체험하는 감격이 있을 때

주님을 위하여 우리는 일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대통령이 특사로 풀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용서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깊은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불안, 초조, 불평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지금도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회개를 해도, 마음에 거리끼는 게 있으면 계속 더 회개하십시오.

자기 마음 동기를 살피며 더 회개하십시오.

성령이 임하는 날, 당신은 자유함을 얻을 것입니다. <인터넷 설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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