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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전도여행 [제 3-5순례] 다시 들른 마게도냐 지역과 고린도 지역

by 【고동엽】 202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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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3,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다시 들르다.
1. (에베소에서의)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그리스)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에베소에서의 소동이 그치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오게 해서 그들을 잘 격려한 뒤에 작별 인사를 하고 마게도냐로 떠나왔다(행 20:1~2). 바울은 마게도냐의 여러 지방, 즉 2차 전도여행지였던 네압볼리~빌립보(루디아)~암비볼리~아볼로니아~데살로니가~베뢰아(경건한 귀부인)를 다시 차례로 거쳐 가면서, 여러 가지 말로 제자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한 후에 헬라(그리스 아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스 깔람바까 도시에 있는 수도원 지역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도시 중의 하나였던 빌립보 유적지에서 발견한, 바울의 흔적. '파울로'라는 헬라어가 선명하게 보인다.




마게도냐의 또 다른 중심도시, 데살로니가에 있는 디미트리우스 정교회 예배당. 설교강단 앞에서의 김신곤목사




물론 갈 때에 역시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를 쭉 따라 걸어갔을 것이다. 이 과정을 사도행전 20:1~2에서는 불과 두 구절로 기록, 간단히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가 짐작컨대 이것 역시 엄청난 시간과 기간과 노력과 박해와 굽히지 않는 복음의 열정을 쏟아 부어야만 했을 여정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그리스 마게도냐 지역의 베뢰아 시(市) 야경





특별히 바울이 지금 마게도냐가 가야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전승과 성서학에 의하면, 성경을 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1차 전도여행에 복귀하는 여정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갈라디아서>를,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 1년 6개월간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서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한다.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2년을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서 <고린도전서>를 쓰고, 마게도냐로 가서 <고린도후서>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3개월을 머물게 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다.





사도바울과 고린도교회






▪ 사도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갈등
자, 마게도냐에서 내려온 바울은 헬라(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한다.. 여기 ‘헬라’라고 함도 아크로폴리스~아레오바고~고린도~겐그레아 등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말이다. 바울은 3개월간 체류하며 이 지역의 제자들을 두루 만나며 권면한다. 그런데 특별히 이 기간에는 고린도교회와 회복해야 할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제자 디도 유스도(Titus Justus)를 통해, 고린도교회의 유대인 크리스천 몇 명이 ‘바울은 참 사도가 아니며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자다.’라고 비방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배신감이다. 참으로 속상하는 일이다.



* cf. 디도 유스도에 대해서 : 행18:5~7 (5)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Titus Justus)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 디도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의 훼방을 받을 때, 회당 옆에 있는 자기 집에 머물게 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제자가 되었다.

 



바울이 이 고린도를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이에 바울은 자기 복음의 진실성과 자신의 사도됨에 대한 신뢰를 다시 확고히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편지를 써서 보내 달래는 것이었는바, 이 서신이 바로 저 유명한 ‘눈물의 편지’ <고린도후서>다. 그리고 헬라(그리스 아테네)까지 왔으니 고린도를 직접 방문해서 고린도교회를 다시 안정시키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냐에서 기록했다. 그런데 마게도냐가 워낙 넓은 지역이 아닌가! 구체적으로 마게도냐 어디서 기록했는지 정확한 장소 언급이 없다. 어림짐작으로 고린도로 막 내려가려고 했다가 반대자(대적자)들 때문에 빨리 못 내려간 서신의 분위기로 보아, 아마도 헬라(그리스 아덴)에서 3개월 머물 때 기록하지 않았을 까 짐작해 본다. 사도바울은 이 고린도교회 때문에 심적 부담이 컸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이 구절에 바울의 마음이 다 담겨져 있다.








지금의 고린도에는 사도바울을 기념하는 그리스 정교회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사도바울기념교회 내부의 성화







글씨를 몰랐던 고린도인들에게는 이런 성화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렸다고 한다. 일종의 시청각 교육을 한 셈이다.
 





고린도 사도바울기념교회 안에서의 김신곤 목사



이 <고린도후서>에 따르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바울과 그 일행을 ‘yes했다가 no하는 변덕쟁이들(고후 1:17~18)’, ‘성도들의 믿음을 쥐락펴락하려는 자(고후 1:24)’,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고후 10:2~4)’, ‘자기들 잘난 척하며 돌아다니는 자(고후 4:2~5, 고후 5:12)’, ‘미친 자(고후 5:13)’, ‘어리석은 자(고후 11:1)’, ‘말을 잘 못하는 자(고후 11:6)’ 등 일방적으로 폄하하며 비난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는 자다(고후 11:2).”,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다(고후 11:10).”, “뱀이 그 간계로 이와(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고 하면서 안타까워했고, “(나의 이런 노력에) 보답하는 맘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open wide your hearts 고후 6:11~13).”고 그들의 잘못된 행위들을 설득, 훈계하였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vs 바울 사이를 이간질 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하와 사이를 이간질 했던 뱀(고후 11:3)’,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고후 11:4)’, ‘거짓사도요 속이는 일꾼(고후 11:12)’,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고후 11:14)’, ‘사탄의 일꾼들(고후 11:15)’,라고 규탄하며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5)”고 저주했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험악하게 되자 바울도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후 7:5).”고 아픈 심정을 토로했다.



▪ 안팎에 반대자(대적자)들
사도바울의 일생을 보면서 오늘날의 목회자(사역자)들이 배워야할 영적 비밀이 하나 있다. 꿈과 능력이 있었던 반면에 끊임없는 안팎에 반대자(대적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목회자에게도 그렇다. 심신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는 골칫덩어리들이 교회 안에 있다. 그리고 교회 밖으로도 풀어야할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안팎으로 있는 반대자(대적자)들은 목회자로 하여금 더욱 성숙하게 하고 더 하나님을 붙들고 사역을 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롬 8:28)’이시니까 말이다.




▪ 사도바울과 고린도교회의 화해
고린도후서가 도착했고 하나님의 개입으로 고린도교회는 회개를 하고 바울에게 아엠쏘리를 한다. 고린도에 보냈던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회가 회개를 했다는 기쁜 보고가 들어 온 것이다. 바울은 비로소 환희와 만족과 기쁨이 넘치게 되고 다시 고린도교회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고후7:5~16). 아래의 말씀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개역개정) 고린도후서 7:2~3, 9, 13~16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표준새번역) 고린도후서 7:2~3, 9, 13~16
2. 여러분은 마음을 넓혀서,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한 일이 없고, 아무도 망친 일이 없고, 아무에게서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습니다.
3. 이것은 내가 여러분을 책망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전에도 말한 대로, 여러분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입니다.
4. 나는 여러분에게 큰 확신을 두고 있으며, 여러분에게 큰 자랑을 느낍니다. 나는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9. 지금은 오히려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슬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슬픔을 당함으로써 회개를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슬퍼했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 때문에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13. 그래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이 겹쳐서, 우리는 더욱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분 모두로부터 환대를 받아서, 마음에 안정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14. 내가 여러분을 두고 디도에게 자랑한 일이 있지만, 여러분은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진실하게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디도에게 여러분을 두고 말한 자랑도 진실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15. 디도는, 여러분 모두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영접하고 자기에게 순종한 것을 회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더 여러분에게 기울이고 있습니다.
16. 나는 여러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자 고린도교회와 화해도 이뤄졌다. 이렇게 그는 완전히 화해한 고린도교회를 다시 방문하여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 화해(和解)란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특효약이며 새로운 비전을 꿈꾸게 하는 씨앗이 된다. 바울은 이제 2차 전도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지역 겐그레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영적 고향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려고 한다. 여행하는 사람만이 안다. 여행이란 것이 얼마나 지치고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집이 얼마나 그립다는 것을...




인천중앙지방 젊은 목사님들과 함께


고린도 사도바울기념교회 천정


설교자 강단도 둘러보고
 



그런데 하나 해결하면 또 하나가. 한 산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린다. 이번엔 밖으로부터의 공격이다. 유대인 대적자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겐그레아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항상 있어왔던 대적자들이다.



사도행전 20:3~6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 마게도냐 거꾸로 루트
아마 이 반대자(대적자)들은 ‘바울이 겐그레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려고 한다’라는 정보를 캐치하고는 겐그레아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마게도냐 윗길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아주 먼 길을 택해야만 했다. 이름 하여 ‘마게도냐 거꾸로 루트’다. 나는 이 ‘마게도냐 거꾸로 루트’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마게도냐를 참 사랑하시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사도바울을 또 보내셨으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게도냐 인들은 축복받은 족속이다.



사도행전 16:6~10에도 보면, 바울이 동진(東進)하며 소아시아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예수의 영(the Spirit of Jesus)이 아시아 전도를 막고,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는 환상을 보게 하셔서 마게도냐로 건너가도록 유도하셨다. 하나님이 마게도냐를 참 사랑하신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 하나님은 우리도 사랑하신다. 하여튼 바울은 다른 사람들은 뱃길로 드로아로 다 보내놓고 할 수 없이 ‘마게도냐 거꾸로 루트(베뢰아~데살로니가~아볼로니아~암비볼리~빌립보~네압볼리)’를 택해야만 했다(3절). 바울은 그렇게 드로아로 건너가려는 것이다(5절).



▪ 아시아까지 함께 따라 가기로 동참한 7명(4절)
그런데 여기 바울과 함께 아시아까지 함께 가기로 한 7명이 있었다(4절). 그리고 바울은 힘겹게 되돌아가야만 하는 마게도냐 루트를 이 7명에게는 짐 지우지 않고, 곧바로 (아마 고린도지역의 겐그레아 항에서) 배타고 먼저 드로아로 건너가서 바울 일행(바나바와 누가)를 기다리라고 했던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전도와 목회라는 고독한 여정 길에 바울 곁에 함께 있었던 이 사람들. 바울도 이들이 너무 고마워서 일까? 사도행전 20:4절에 그 이름들을 나열해서 기억하고 있다.



①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Sopater)
로마서 16:21에 나오는 소시바더(Sosipater)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바울의 친척으로 로마 교회에 바울과 함께 인사한 사람이다. 성경에는 이렇게 두 군데에서만 그 이름이 언급된다.



②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Aristarchus)
마게도냐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통해 크리스천이 된 사람이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 뿐 아니라,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이달리야~로마에 가기로 작정될 때에도 그 배에 함께 탔던 사람이다(행 27:2). 에베소에서 아리스다고는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요에 휘말려 바울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아무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행 19:29~41). 바울은 그를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골 4:10)’라 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바울과 함께 갇혔거나 바울과 교대로 감옥에 갇혀 준 사람으로 본다. 이랬던 그를 바울은 ‘동역자’라고 불렀다(몬 1:24).



③ 데살로니가 사람 세군도(Secundus)
성경에는 여기 외에 특별한 언급이 없다. 아리스다고와 동향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통해 아리스다고와 함께 크리스천이 된 사람이다.



④ 더베 사람 가이오(Gaius)
성경에 보면 가이오가 세 사람 있다. 지금 여기 바울과 함께 제3차 전도여행을 했던 더베 출신 가이오(행 20:4)를 비롯해서, 바울과 함께 에베소 폭도들에 의해 연극장에 잡혀 들어갔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행 19:26~29), 고린도 교회의 교인으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고린도의 가이오(고전 1:14)가 있다. 사도요한은 (이 셋 중에 누구인지 분명히는 모르지만) 가이오에게 요한삼서를 보내며 그에게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라는 표현을 네 번씩이나 하였다(요삼 1:1~2, 5, 11). 이 사람 가이오는 진리를 증거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였기에 요한에게 큰 기쁨이었고(요삼 1:3-4), 나그네 된 형제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요삼 1:5-6), 진리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이었다(요삼 1:8).



⑤ 디모데(Timothy) ※ 앞의 2차 전도여행 루스드라의 디모데를 참조하라.


⑥ 아시아 사람 두기고(Tychicus)
아시아 출신의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의 3차 여행에 동행했던 사람이다(행 20:4). 바울의 제1차 로마 투옥 생활 때 에베소서, 골로새서를 가지고 오네시모를 동반하여 소아시아를 방문했다(엡 6:21; 골 4:7, 9). 그리고 그는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로 보내는 구제금을 가지고 갔던 7명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고전 16:3). 또한 두기고는 아데마와 함께 그레데(키프로스)에 있는 디도에게로 급히 가라는 바울의 명령을 받았다(딛 3:12). 그리고 그는 바울이 제2차 투옥 중에도 바울과 함께 있었으며 그 후 바울의 지시로 에베소에 갔다(딤후 4:12).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직접 전달했던 두기고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었다(골 4:7).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순교했다고 한다.



⑦ 드로비모(Trophimus)
바울의 3차 여행 때 드로아에서부터 밀레도, 수리아, 예루살렘에까지 바울과 함께 했던 신자이다(행 20:4). 에베소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아리스다고와 함께 에베소교회의 구제금을 가지고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동행했던 사람이기도 하다(고후 8:18~19). 예루살렘 성에서 드로비모와 함께 성내에 있었던 바울은 유대인의 뜰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와 성전을 더럽힌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고(행 21:29), 그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행 21:30).



드로비모가 밀레도에 남겨진 이유 : 드로비모가 병들었을 때 바울은 그를 밀레도에 남겨두었다(딤후 4:20). 밀레도는 그의 고향인 에베소의 외항으로 약 45km의 거리에 있었고, 이 해안 도시는 에베소보다 그의 병 치료에 더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그의 병은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병이었을 것이다.




바울 자신은 누가와 바나바만 데리고 도보로 빌립보로 가기로 작정하고 이들 7명에게는 고린도 겐그레아에서 먼저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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