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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의 '에베소교회'를 연관 지어 참조하라.)
▪ 에베소
에베소는 지금 터키의 에페수스(Ephesos)라 불린다. 터키 이즈미르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항구도시로 양항(良港)을 끼고 있어서 고대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했다. BC 620년경 이곳에 세워진 여신(女神) 아르테미스(아데미, 행18:24, 18:27) 우상 신전은 특별히 유명해서 소아시아~그리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많은 우상숭배자들의 순례자를 끌어 모았다. 에베소는 BC 7세기∼BC 6세기가 최고의 전성기였고 BC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페르시아전쟁으로 해방이 된 뒤에도 과거의 그 위용과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뒤 헬레니즘시대에 이르러 또 다시 경이롭게 부흥하였다.
에베소 유적지
그러다가 주후 7~8세기에 들어와 에베소는 다른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랍 이슬람인들의 침략을 감수해야 했으며 결국 1304년에 터키인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에베소는 지진으로 황폐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이 도시의 폐허에서는 수많은 고고학적인 유적과 동시에 초대 기독교 유적들도 상당히 발굴되고 있는 기독교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성지 중의 한 곳이다.
에베소 유적지 ; 박해의 문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시점을 계기로 사도들과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기 시작하던 주후 37-42년에 기독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많이 왔다. (그러나 이미 유대인들은 벌써 이곳에서 회당을 짓고, 그들의 유대교 종교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던 터였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시기 바로 직전에 모친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은(요19:26~27) 사도요한은 예루살렘에서 흩어질 때 주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 에베소로 와서 여생을 돌봐드리면서 살았다.
주후 54년경, 사도 바울은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여 예수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다(주후 54, 55∼57), 특히 바울은 로마에 있었을 때 여기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에게 믿음의 서신을 보낸바,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이다.
▪ 사도요한 기념교회
그러다가 주후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 당하자, 사도요한은 바울을 대신해서 에베소의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버가모, 서머나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고, 바로 그 밧모섬(Patmos)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다.
사도 요한이 유배된 에게해 밧모섬의 위치
밧모섬 정상에 세워져 있는 사도 요한기념 수도원
사도요한기념 수도원 입구 문 위에 새겨져 있는 사도 요한
사도요한기념 수도원 내부 모습
그런 후,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암살당하자 요한도 밧모섬 유배에서 풀려났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이곳 에베소에 묻혔으며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비잔틴 제국 시대에 와서 ‘사도요한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에베소의 사도요한기념교회 유적
주후 4세기경 기독교가 공인되고, 에베소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자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목재로 된 교회가 건립 되었다.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안 황제(527-565)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의 교회로 증축하였다. 교회의 심장부인 본당은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고 이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다. 1966년에는 가톨릭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공식 성지로 선포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어 유적지만 남아 있다.
▪ 주의 모친 마리아 기념교회 vs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
이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431년 이곳에서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가 열려 기독교 교리를 토론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수리아 안디옥교회에 있을 때부터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어머니(성모)가 아니라, 인간(육신) 예수의 어머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추앙할 뿐 마리아는 신(神)이 아니다.”라는 비성모설(非聖母設)을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약 200여 명의 가톨릭과 정교회를 장악한 종교권력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3개월간 토론한 끝에 네스토리우스의 견해를 이단(異端)으로 결정해 버렸다. 이 회의록에는 성모 마리아가 에베소에 왔으며, 그 곳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묻혔다는 문구가 남아 있다. 이후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에 이어, 마리아를 (지나치게) 성모로 숭배하며 또 다른 우상숭배 행태를 낳았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주의 모친 마리아 기념교회가 이 에베소에 세워졌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 또한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어 유적지로만 남아 있다.
주의 모친 마리아기념교회
▪ 에베소에서의 바울 사역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펼친 두드러진 사역을 정리해 본다.
(1)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하다.
사도행전 19:1~7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회개하고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세례)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제자들에게 제일먼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도전하며 질문을 한다. 이것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성령 세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최우선의 전략은 ‘능력(power)’을 받는 일이다. 성령세례를 통한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아무리 탁월한 학식과 아무리 뛰어난 화술과 인간관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다 사상누각이 된다. 아무리 직분이 높은 사람들이 세미나실에 모여서 회의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씨름을 해서 결정을 하고 선교선언문을 외쳐대고,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성령세례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금세기에 기독교가 외친 선교대회와 선교선언문이 얼마나 많은가!
▪ 자유주의 신학진영에서부터 촉발한 에큐메니컬 선교대회들 ; 에딘버러 선교대회와 선언문(1910), 국제선교협의회(IMC) 창설(1921), IMC 예루살렘대회(1928), IMC 탐바람대회(1937~8), IMC선교대회(1947), 그러다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창설하고(1948), 그러다가 IMC와 WCC가 뉴델리에서 통합(1961)해서 CWME 멕시코대회(1963)를 열고, WCC 웁살라총회(1968), 로마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5)를 열어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선교(Missio Dei)’라고 정의도 해보고, CWME 방콕대회(1973), CWME 로잔대회(1974), WCC 나이로비총회(1975), CWME 맬버른대회(1980), WCC밴쿠버총회(1983), CWME 산 안토니오대회(1989)의 CWME 살바도르대회(1996), WCC 하라레총회(1998. 8차), WCC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2006. 9차) 등.........
▪ 복음주의 진영에서 일어난 반 에큐메니컬 선교대회들 ; 미국의 휘튼 세계선교대회(1966. 선교는 전도와 개척에 최우선을 둬야한다.), 독일의 베를린 세계복음화회의(1966. 성서적 복음화를 정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선언(1970), 빌리 그래함도 참석한 스위스 로잔에서의 세계복음화대회(일명 로잔대회 1974), 윌로우 뱅크(버뮤다) 협의회(1978), 그랜드 래피즈 신학협의회(1982), 노르웨이 오슬로 신학협의회(1985),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로잔 2차 국제대회(1989) 그리고 선언문들.......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로서의 선교’, ‘성례전적 선교’, ‘교회중심적 선교’, ‘토착화 선교’, ‘복음화’, ‘해방’, ‘상황화’............ 무수한 말들이 오갔으며, 화려한 수식어와 화려한 신학적 선언문들이, 그 많은 예산을 들여 세계를 쩌렁쩌렁하게 했지만(↗).. 지금 남은 게 없다. 왜인가? (미안하지만) 성령 충만한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하고 선언문을 채택했지만, 선교가 되지 않았다. 구호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의도광장에 수백만 명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수 십 만명을 동원해서 대형군중집회를 했다고 선교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 또 선교지에 선교사를 보냈다고 선교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만 선교와 전도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1차~2차 전도여행 때에는 없었던 특징인데) 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며 강력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고대의 3대 도서관 중의 하나였던 에베소의 셀수스도서관
(2)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한 말씀사역
또 한 가지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①성령 세례와 더불어서 새로운 선교전략을 하나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②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이다.
사도행전 19:8~10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道)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講論) 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동안에 사도바울은 회당에서 가르쳤다. 복음을 전하는 전략도, 무작정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믿는 자들이 생기고, 귀신들이 나가고, 병이 고침 받고, 눌림에서 자유케 되었다. 그러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이 반대하기 시작한다. 방해한다. 모함을 한다. 돌을 들어 친다. 심지어 기절해서 죽을 뻔 했다. 정신이 차려지면 다시 들어와서 또 복음을 전한다. 또 핍박을 받는다. 그러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이게 사도바울의 1차~2차 전도여행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도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 8절도 보면, 바울은 (전통방식대로) 에베소 회당에 들어가 3개월간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그러나 (9절)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굳고 완고해서 아무리 전해도 믿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는 회중들 앞에서 ‘복음의 도'를 적극적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가만히 떠나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12명 소수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hall of Tyrannus)’이라는 한 장소를 선택해서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다. 이걸 2년 동안 했다. 말씀을 날마다 가르치면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선교전략이었다.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전략은 과거의 바울에게서 보이지 않던 아주 독특한 방법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2년간 말씀을 강론했다.
바울도 성령받은 제자 12명을 따로 세웠다.
▪ 그리고 이 두란노서원 사역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다수의 사람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웠다는 것이다(9절).
12명을 구별시켰다는 것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이었다. 집중력의 원리였던 것이다.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12명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던 거다. 집중하면 점점 좁아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걸 ‘좁은 문(Narrow gate)’이라고 한다. 예수님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라고 하셨다. 두란노서원 사역의 요점은 ‘세상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비전에 집중하는 구별된 12명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일’이었다. 소수정예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는, 2년 동안 날마다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중 대다수는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온다. 그것도 2~3시간 정도 머물러 앉았다가 헌금하고 간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생활의 대부분은 세상에서의 삶이다. 세상문화로 둘러싸인 곳에서의 삶이다. 상대적으로 영적인 삶은 역부족이다. 새벽기도~수요예배~목요큐티나눔~금요집회~토요일 준비일을 겨우 해야 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사도바울은 성령 받은 사람 12명을 따로 세우고 2년간을 집중해서 날마다 강론(講論)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생활을 바꿔야 한다. 영적인 삶을 살려면 내 스케줄을 바꿔야 한다. 너무 바쁜 것을 바꿔야 한다. 옛날처럼 똑같이 살면서 좋아질 수는 없다. 2~3년 전의 나나 지금의 내 삶의 방식을 똑같이 살려고 한다면, 앞으로 2~3년 후도 별 볼일 없다. 똑같다. 구별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 한, 2~3년 전의 갈등과 문제들은 지금은 물론 2~3년 후에도 똑같아 질 거다. 이걸 알았기에 사도바울은 12명을 따로 세우고 2년간을 집중해서 날마다 강론했다. 이랬더니 (10절)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영적 열매).
당신이 무슨 직업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지금 뭐하고 있느냐?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 당신의 목표가 뭐냐? 당신이 밥 먹고 하려고 하는 일이 뭐냐?
이렇게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사역은 ①성령사역과 ②두란도서원 사역이다.
에베소 유적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사도바울의 열정이 곳곳에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3) 에베소에서 나타난, 바울의 능력에 얽힌 에피소드 ; 성령의 능력을 장난삼아 망령되이 따라한 자들의 최후. (진짜와 가짜)
사도행전 19:11~20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장난삼아, 망령되이)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미쳤다. 온통 세상은 미쳐있다.)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cf. 말씀 중심의 교회. 말씀은 부흥과 직결된다.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자. 그 성도의 생명력은 말씀에 있다. 아래(↓)의 이 말씀들을 보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곳이다.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행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행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행10:44 베드로가 이 말(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다.)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행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행13: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십자가)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행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비시디아 안디옥)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13: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행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 하니라.
행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
행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4) 사도바울, 자기 인생의 최후에 대한 위대한 밑그림을 에베소에서 그리다.
(개역개정) 사도행전 19:21~22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와서 ①회개의 물세례만 알던 이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했고 ②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성령 받은 12명을 2년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집중적으로 말씀을 강론하는 복음사역의 새로운 전략을 시작했다. ③그 결과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는데, 행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갈 정도였다. ④그러자 (13절)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그리고 (14절)유대교 제사장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들도 해보겠다고 망령되이(장난치듯) 따라했다가 오히려 악귀에 눌려 화가 미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일도 있었다. ⑤결국 그들(점치는 (마술)책이 엉터리라는 것을 깨달은 무당(마술사)들)은 자기들의 책을 다 불살라 버렸는데(↗).. 무려 책값만 은 5만에 달했다.
(20절)이와 같이 바울은 주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치는 것을 목격하자 자기 인생의 최후에 대한 위대한 밑그림에 대한 성령의 비전! 성령의 꿈을 그렸는데(↗).. 그게 21~22절이다. 마게도냐 ~ 아가야(고린도 ) ~ 예루살렘 ~ 그리고 저 로마(당시 세계관으로는 거기가 땅 끝) 까지 기필코 가리라!.. 라는 위대한 출사표를 터뜨렸던 것이다.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은 이런 능력의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점점 불붙게 되는 것이다. 부흥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끊지 말라. 김새게 하지 말라. 비전이 선포되면 다 달라붙어 순종하고 충성하라!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고, 거기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주께 맡겨 버리고 최선을 다하라!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 염려하지 말고 덤벼들어라!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은 이런 능력의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점점 불붙게 되는 것이다. 부흥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끊지 말라. 김새게 하지 말라. 믿음은 모험이다! 신앙이란 신나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주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면 떠나고 가자! 주께서 책임져 주실 줄로 믿고 가자! 부딪히자! 할렐루야!*^^*
바울은 이런 영적인 충만함 속에서 인생 최후에 대한 비전을 세운 후에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베소)에 얼마 동안 더 거했다. (기도로 준비, 계획에 따른 제반 준비)
▪ 자, 그런데 여기 디모데는 어느 정도 알겠는데, 에라스도(Erastus)가 누군가?
지금도 고린도 유적지에 가보면, 레가이온 대로를 따라 후문으로 나와, 길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아고라(광장시장)에서 야외극장을 잇는 돌로 포장된 길이 나오고, 그 길 끝 바닥에는 라틴어로 에라스도(Erastus)가 사비를 들여 이 길을 돌로 포장했다는 글이 새겨진 돌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에라스도는 고린도 시(市)의 재무를 담당했던 고관으로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 그 후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 급 정도의 위치에서 바울을 돕는 동역자가 되는데, ➀“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딤후 4:20)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고린도에서 전도사역을 했고, ➁또 여기서처럼 바울에 의해 디모데와 함께 마게도냐로도 파송되어 TPH사역을 했다(행 19:22). 노년의 바울은 로마서신을 마무리할 때 그와 함께 로마교회에 안부 인사를 한다고 적을 정도로 각별히 신뢰했었던 동역자이다(롬 16:23).
자, 그런데 이런 영적 충만함 속에서 위대한 비전의 밑그림을 그린 바울을 기다린 것은 사탄의 훼방이었다.
(5) 은장색 더메드리오가 일으킨 소동에 연루된 사도바울
(개역개정) 사도행전 19:23~41
23. 그 때쯤 되어 이 도(道)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Demetrius)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 17:29.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27. 우리의 ①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②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③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데모같이)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에베소 시민 여러분,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당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女神)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에베소에 있는 원형경기장(연극장) ; 은장색의 소동 사건을 연상케 한다.
에베소에서 은장색 더메드리오가 일으킨 소동에 연루된 사도바울의 난처한 문제는,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알아서 정리된다.
에베소의 무화과나무
▪ 바울의 에베소 사역 정리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지만,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부각된 여정이었다. 2차 때 성령님이 잠시 절제시켰던 소아시아 전도, 특히 에베소 전도에 선교 전략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중심적 대도시의 중요성에 유의하여 그 전도를 꾀하였으나 이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다년간의 그 숙원을 이루게 된 바울은 약 3년 동안 이 에베소에 머물렀다. 바울이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문 곳은 없었다. 바울이 이 기간 동안 에베소 부근의 각 도시에까지 전도를 시도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에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골 4:13). 다른 여러 도시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를 보내 전도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성령사역과 두란노서원 사역이라는 아주 독특한 새로운 선교전략을 통해 전도와 양육에 전념했고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행 19:10).
그리고 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것을 암시한다. “(8)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9)나에게 큰 문이 활짝 열려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대적하는 자들도 많습니다(고전 11:8~9).” 복음을 전하자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만큼 에베소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대적하는 자들도 많아’ 졌다. 실로 다사다난한 3년이었다.
이렇게 에베소의 3년 사역을 끝내고 바울은 2차 전도여행지였던 마게도냐로 또 다시 건너간다.
▪ 에베소
에베소는 지금 터키의 에페수스(Ephesos)라 불린다. 터키 이즈미르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항구도시로 양항(良港)을 끼고 있어서 고대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했다. BC 620년경 이곳에 세워진 여신(女神) 아르테미스(아데미, 행18:24, 18:27) 우상 신전은 특별히 유명해서 소아시아~그리스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많은 우상숭배자들의 순례자를 끌어 모았다. 에베소는 BC 7세기∼BC 6세기가 최고의 전성기였고 BC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페르시아전쟁으로 해방이 된 뒤에도 과거의 그 위용과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뒤 헬레니즘시대에 이르러 또 다시 경이롭게 부흥하였다.
에베소 유적지
그러다가 주후 7~8세기에 들어와 에베소는 다른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아랍 이슬람인들의 침략을 감수해야 했으며 결국 1304년에 터키인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에베소는 지진으로 황폐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날 이 도시의 폐허에서는 수많은 고고학적인 유적과 동시에 초대 기독교 유적들도 상당히 발굴되고 있는 기독교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성지 중의 한 곳이다.
에베소 유적지 ; 박해의 문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시점을 계기로 사도들과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기 시작하던 주후 37-42년에 기독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많이 왔다. (그러나 이미 유대인들은 벌써 이곳에서 회당을 짓고, 그들의 유대교 종교 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던 터였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시기 바로 직전에 모친 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은(요19:26~27) 사도요한은 예루살렘에서 흩어질 때 주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 에베소로 와서 여생을 돌봐드리면서 살았다.
주후 54년경, 사도 바울은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여 예수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다(주후 54, 55∼57), 특히 바울은 로마에 있었을 때 여기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에게 믿음의 서신을 보낸바,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이다.
▪ 사도요한 기념교회
그러다가 주후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 당하자, 사도요한은 바울을 대신해서 에베소의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버가모, 서머나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 지중해 연안의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고, 바로 그 밧모섬(Patmos)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다.
사도 요한이 유배된 에게해 밧모섬의 위치
밧모섬 정상에 세워져 있는 사도 요한기념 수도원
사도요한기념 수도원 입구 문 위에 새겨져 있는 사도 요한
사도요한기념 수도원 내부 모습
그런 후,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이 암살당하자 요한도 밧모섬 유배에서 풀려났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이곳 에베소에 묻혔으며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비잔틴 제국 시대에 와서 ‘사도요한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에베소의 사도요한기념교회 유적
주후 4세기경 기독교가 공인되고, 에베소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자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목재로 된 교회가 건립 되었다. 그 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안 황제(527-565)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의 교회로 증축하였다. 교회의 심장부인 본당은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고 이곳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다. 1966년에는 가톨릭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공식 성지로 선포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어 유적지만 남아 있다.
▪ 주의 모친 마리아 기념교회 vs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
이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즉 431년 이곳에서 제3차 에베소 종교회의가 열려 기독교 교리를 토론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수리아 안디옥교회에 있을 때부터 “동정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어머니(성모)가 아니라, 인간(육신) 예수의 어머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추앙할 뿐 마리아는 신(神)이 아니다.”라는 비성모설(非聖母設)을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약 200여 명의 가톨릭과 정교회를 장악한 종교권력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3개월간 토론한 끝에 네스토리우스의 견해를 이단(異端)으로 결정해 버렸다. 이 회의록에는 성모 마리아가 에베소에 왔으며, 그 곳에서 살다가 그 곳에서 묻혔다는 문구가 남아 있다. 이후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에 이어, 마리아를 (지나치게) 성모로 숭배하며 또 다른 우상숭배 행태를 낳았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주의 모친 마리아 기념교회가 이 에베소에 세워졌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 또한 오늘날에는 폐허가 되어 유적지로만 남아 있다.
주의 모친 마리아기념교회
▪ 에베소에서의 바울 사역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펼친 두드러진 사역을 정리해 본다.
(1)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하다.
사도행전 19:1~7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회개하고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세례)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제자들에게 제일먼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도전하며 질문을 한다. 이것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성령 세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최우선의 전략은 ‘능력(power)’을 받는 일이다. 성령세례를 통한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아무리 탁월한 학식과 아무리 뛰어난 화술과 인간관계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다 사상누각이 된다. 아무리 직분이 높은 사람들이 세미나실에 모여서 회의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씨름을 해서 결정을 하고 선교선언문을 외쳐대고,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성령세례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금세기에 기독교가 외친 선교대회와 선교선언문이 얼마나 많은가!
▪ 자유주의 신학진영에서부터 촉발한 에큐메니컬 선교대회들 ; 에딘버러 선교대회와 선언문(1910), 국제선교협의회(IMC) 창설(1921), IMC 예루살렘대회(1928), IMC 탐바람대회(1937~8), IMC선교대회(1947), 그러다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창설하고(1948), 그러다가 IMC와 WCC가 뉴델리에서 통합(1961)해서 CWME 멕시코대회(1963)를 열고, WCC 웁살라총회(1968), 로마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5)를 열어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선교(Missio Dei)’라고 정의도 해보고, CWME 방콕대회(1973), CWME 로잔대회(1974), WCC 나이로비총회(1975), CWME 맬버른대회(1980), WCC밴쿠버총회(1983), CWME 산 안토니오대회(1989)의 CWME 살바도르대회(1996), WCC 하라레총회(1998. 8차), WCC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2006. 9차) 등.........
▪ 복음주의 진영에서 일어난 반 에큐메니컬 선교대회들 ; 미국의 휘튼 세계선교대회(1966. 선교는 전도와 개척에 최우선을 둬야한다.), 독일의 베를린 세계복음화회의(1966. 성서적 복음화를 정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선언(1970), 빌리 그래함도 참석한 스위스 로잔에서의 세계복음화대회(일명 로잔대회 1974), 윌로우 뱅크(버뮤다) 협의회(1978), 그랜드 래피즈 신학협의회(1982), 노르웨이 오슬로 신학협의회(1985),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로잔 2차 국제대회(1989) 그리고 선언문들.......
‘삼위일체 하나님의 코이노니아로서의 선교’, ‘성례전적 선교’, ‘교회중심적 선교’, ‘토착화 선교’, ‘복음화’, ‘해방’, ‘상황화’............ 무수한 말들이 오갔으며, 화려한 수식어와 화려한 신학적 선언문들이, 그 많은 예산을 들여 세계를 쩌렁쩌렁하게 했지만(↗).. 지금 남은 게 없다. 왜인가? (미안하지만) 성령 충만한 대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하고 선언문을 채택했지만, 선교가 되지 않았다. 구호에 불과했기 때문에.........
여의도광장에 수백만 명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수 십 만명을 동원해서 대형군중집회를 했다고 선교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 또 선교지에 선교사를 보냈다고 선교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만 선교와 전도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1차~2차 전도여행 때에는 없었던 특징인데) 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며 강력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고대의 3대 도서관 중의 하나였던 에베소의 셀수스도서관
(2)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한 말씀사역
또 한 가지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①성령 세례와 더불어서 새로운 선교전략을 하나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②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전략이다.
사도행전 19:8~10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道)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講論) 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동안에 사도바울은 회당에서 가르쳤다. 복음을 전하는 전략도, 무작정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믿는 자들이 생기고, 귀신들이 나가고, 병이 고침 받고, 눌림에서 자유케 되었다. 그러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이 반대하기 시작한다. 방해한다. 모함을 한다. 돌을 들어 친다. 심지어 기절해서 죽을 뻔 했다. 정신이 차려지면 다시 들어와서 또 복음을 전한다. 또 핍박을 받는다. 그러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이게 사도바울의 1차~2차 전도여행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도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 8절도 보면, 바울은 (전통방식대로) 에베소 회당에 들어가 3개월간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그러나 (9절)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굳고 완고해서 아무리 전해도 믿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는 회중들 앞에서 ‘복음의 도'를 적극적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가만히 떠나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12명 소수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hall of Tyrannus)’이라는 한 장소를 선택해서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다. 이걸 2년 동안 했다. 말씀을 날마다 가르치면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선교전략이었다. 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전략은 과거의 바울에게서 보이지 않던 아주 독특한 방법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의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2년간 말씀을 강론했다.
바울도 성령받은 제자 12명을 따로 세웠다.
▪ 그리고 이 두란노서원 사역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다수의 사람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웠다는 것이다(9절).
12명을 구별시켰다는 것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아무것도 안되기 때문이었다. 집중력의 원리였던 것이다.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12명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던 거다. 집중하면 점점 좁아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걸 ‘좁은 문(Narrow gate)’이라고 한다. 예수님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라고 하셨다. 두란노서원 사역의 요점은 ‘세상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비전에 집중하는 구별된 12명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일’이었다. 소수정예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는, 2년 동안 날마다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중 대다수는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온다. 그것도 2~3시간 정도 머물러 앉았다가 헌금하고 간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생활의 대부분은 세상에서의 삶이다. 세상문화로 둘러싸인 곳에서의 삶이다. 상대적으로 영적인 삶은 역부족이다. 새벽기도~수요예배~목요큐티나눔~금요집회~토요일 준비일을 겨우 해야 영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사도바울은 성령 받은 사람 12명을 따로 세우고 2년간을 집중해서 날마다 강론(講論)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생활을 바꿔야 한다. 영적인 삶을 살려면 내 스케줄을 바꿔야 한다. 너무 바쁜 것을 바꿔야 한다. 옛날처럼 똑같이 살면서 좋아질 수는 없다. 2~3년 전의 나나 지금의 내 삶의 방식을 똑같이 살려고 한다면, 앞으로 2~3년 후도 별 볼일 없다. 똑같다. 구별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 한, 2~3년 전의 갈등과 문제들은 지금은 물론 2~3년 후에도 똑같아 질 거다. 이걸 알았기에 사도바울은 12명을 따로 세우고 2년간을 집중해서 날마다 강론했다. 이랬더니 (10절)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영적 열매).
당신이 무슨 직업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지금 뭐하고 있느냐?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 당신의 목표가 뭐냐? 당신이 밥 먹고 하려고 하는 일이 뭐냐?
이렇게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사역은 ①성령사역과 ②두란도서원 사역이다.
에베소 유적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면, 사도바울의 열정이 곳곳에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3) 에베소에서 나타난, 바울의 능력에 얽힌 에피소드 ; 성령의 능력을 장난삼아 망령되이 따라한 자들의 최후. (진짜와 가짜)
사도행전 19:11~20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장난삼아, 망령되이)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미쳤다. 온통 세상은 미쳐있다.)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cf. 말씀 중심의 교회. 말씀은 부흥과 직결된다.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자. 그 성도의 생명력은 말씀에 있다. 아래(↓)의 이 말씀들을 보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곳이다.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행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행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행10:44 베드로가 이 말(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다.)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행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행13: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십자가)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행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비시디아 안디옥)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13: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행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 하니라.
행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
행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4) 사도바울, 자기 인생의 최후에 대한 위대한 밑그림을 에베소에서 그리다.
(개역개정) 사도행전 19:21~22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사도바울은 에베소에 와서 ①회개의 물세례만 알던 이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했고 ②두란노서원을 중심으로 성령 받은 12명을 2년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집중적으로 말씀을 강론하는 복음사역의 새로운 전략을 시작했다. ③그 결과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는데, 행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갈 정도였다. ④그러자 (13절)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그리고 (14절)유대교 제사장 스게와(Sceva)의 일곱 아들들도 해보겠다고 망령되이(장난치듯) 따라했다가 오히려 악귀에 눌려 화가 미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일도 있었다. ⑤결국 그들(점치는 (마술)책이 엉터리라는 것을 깨달은 무당(마술사)들)은 자기들의 책을 다 불살라 버렸는데(↗).. 무려 책값만 은 5만에 달했다.
(20절)이와 같이 바울은 주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치는 것을 목격하자 자기 인생의 최후에 대한 위대한 밑그림에 대한 성령의 비전! 성령의 꿈을 그렸는데(↗).. 그게 21~22절이다. 마게도냐 ~ 아가야(고린도 ) ~ 예루살렘 ~ 그리고 저 로마(당시 세계관으로는 거기가 땅 끝) 까지 기필코 가리라!.. 라는 위대한 출사표를 터뜨렸던 것이다.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은 이런 능력의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점점 불붙게 되는 것이다. 부흥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끊지 말라. 김새게 하지 말라. 비전이 선포되면 다 달라붙어 순종하고 충성하라!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고, 거기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주께 맡겨 버리고 최선을 다하라!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 염려하지 말고 덤벼들어라!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 더 큰 비전은 이런 능력의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면서 점점 불붙게 되는 것이다. 부흥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을 끊지 말라. 김새게 하지 말라. 믿음은 모험이다! 신앙이란 신나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주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면 떠나고 가자! 주께서 책임져 주실 줄로 믿고 가자! 부딪히자! 할렐루야!*^^*
바울은 이런 영적인 충만함 속에서 인생 최후에 대한 비전을 세운 후에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베소)에 얼마 동안 더 거했다. (기도로 준비, 계획에 따른 제반 준비)
▪ 자, 그런데 여기 디모데는 어느 정도 알겠는데, 에라스도(Erastus)가 누군가?
지금도 고린도 유적지에 가보면, 레가이온 대로를 따라 후문으로 나와, 길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아고라(광장시장)에서 야외극장을 잇는 돌로 포장된 길이 나오고, 그 길 끝 바닥에는 라틴어로 에라스도(Erastus)가 사비를 들여 이 길을 돌로 포장했다는 글이 새겨진 돌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에라스도는 고린도 시(市)의 재무를 담당했던 고관으로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 그 후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 급 정도의 위치에서 바울을 돕는 동역자가 되는데, ➀“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딤후 4:20)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고린도에서 전도사역을 했고, ➁또 여기서처럼 바울에 의해 디모데와 함께 마게도냐로도 파송되어 TPH사역을 했다(행 19:22). 노년의 바울은 로마서신을 마무리할 때 그와 함께 로마교회에 안부 인사를 한다고 적을 정도로 각별히 신뢰했었던 동역자이다(롬 16:23).
자, 그런데 이런 영적 충만함 속에서 위대한 비전의 밑그림을 그린 바울을 기다린 것은 사탄의 훼방이었다.
(5) 은장색 더메드리오가 일으킨 소동에 연루된 사도바울
(개역개정) 사도행전 19:23~41
23. 그 때쯤 되어 이 도(道)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Demetrius)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 17:29.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27. 우리의 ①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②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③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데모같이)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에베소 시민 여러분,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당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女神)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에베소에 있는 원형경기장(연극장) ; 은장색의 소동 사건을 연상케 한다.
에베소에서 은장색 더메드리오가 일으킨 소동에 연루된 사도바울의 난처한 문제는,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알아서 정리된다.
에베소의 무화과나무
▪ 바울의 에베소 사역 정리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지만,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부각된 여정이었다. 2차 때 성령님이 잠시 절제시켰던 소아시아 전도, 특히 에베소 전도에 선교 전략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중심적 대도시의 중요성에 유의하여 그 전도를 꾀하였으나 이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다년간의 그 숙원을 이루게 된 바울은 약 3년 동안 이 에베소에 머물렀다. 바울이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문 곳은 없었다. 바울이 이 기간 동안 에베소 부근의 각 도시에까지 전도를 시도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에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골 4:13). 다른 여러 도시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를 보내 전도를 했을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에베소에 머물면서, 성령사역과 두란노서원 사역이라는 아주 독특한 새로운 선교전략을 통해 전도와 양육에 전념했고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행 19:10).
그리고 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것을 암시한다. “(8)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9)나에게 큰 문이 활짝 열려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대적하는 자들도 많습니다(고전 11:8~9).” 복음을 전하자 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만큼 에베소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대적하는 자들도 많아’ 졌다. 실로 다사다난한 3년이었다.
이렇게 에베소의 3년 사역을 끝내고 바울은 2차 전도여행지였던 마게도냐로 또 다시 건너간다.
출처 : https://cafe.daum.net/ccm/6Km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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