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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두로에 대한 심판 (1:9-10)

by 【고동엽】 2022. 4. 16.

제5강 두로에 대한 심판 (1:9-10)

 

1:9-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오늘은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면서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두로는 시돈과 더불어 베니게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창10:15 말씀을 찾아봅니다.
(창10: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가나안의 장자는 시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본시는 두로보다 시돈이 먼저 생긴 도시라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가 예언할 그 당시에는 시돈보다는 두로가 더 번창하고 더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도시였기에 아모스는 시돈보다 두로를 대표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두로에 대해서 몇 구절만 찾아봅시다. 먼저 겔27:3∼5입니다.
(겔27:3∼5)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하여 여러 섬 백성과 통상하는 자여 주 여호와의 말씀에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 네 지경이 바다 가운데 있음이여 너를 지은 자가 네 아름다움을 온전케 하였도다 스닐의 잣나무로 네 판자를 만들었음이여 너를 위하여 레바논 백향목을 가져 돛대를 만들었도다
이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두로는 배를 건조해서 바다를 통한 통상에 특별히 많이 활동했던 도시였습니다.
또 겔27:33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겔27:33) 네 물품을 바다로 실어 낼 때에 네가 여러 백성을 풍족하게 하였음이여 네 재물과 무역품이 많으므로 세상 열왕을 풍부케 하였었도다
두로는 물질적으로 상당히 풍성한 도시였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한 군데 더 찾아보십시다. 사23:8입니다.
(사23: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두로는 그 당시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온 세상에 잘 알려졌던 도시였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아모스서로 돌아옵니다.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서너 가지라고 하는 것은 수치 대구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4는 7이라고 해서 완전수로 죄가 꽉 찼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참고로 성경에 보면 이 수치 대구법(numerical parallelism)이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에 어떤 수치가 나오고 뒤에 그것보다 하나가 더 많은 수치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에 x가 나오면 뒤에는 x+1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예를 아래에 열거해보았습니다.

(1) 1과 2
(신32: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욥33:14)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욥40:5)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시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2) 2와 3
(호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3과 4
(잠30: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 다고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30:18)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30:21)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30: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4) 2와 3, 그리고 4와 5
(사17:6)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삼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오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 6과 7
(욥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잠6:16)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6) 7과 8
(미5: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런데 성경에는 5와 6의 수치 대구와 8과 9의 수치 대구가 빠져 있습니다.
그밖에도 다른 수치 대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7과 77의 대구입니다.
(창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또 70과 80이 대구되는 예도 있습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또 어떤 수가 나오고, 뒤의 수는 그보다 10배가 많은 수가 나오는 대구도 있습니다.
(신32: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삼상18:7)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시91:7)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단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런데 이러한 수치 대구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18:21∼22과 눅17:4을 비교해보십시다. 먼저 마18:21∼22을 보십시다.
(마18:21∼22)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치 대구법의 일종입니다. 마태복음의 독자는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해서 기록한 복음서가 마태복음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수치 대구법에 익숙하기 때문에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것을 수치 대구법이라는 표현 기법을 사용해서 기록했습니다.
자, 똑같은 말씀이 눅17:4에는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는지를 보십시다. 누가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방인들, 특별히 헬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눅17: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여기에는 수치 대구법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수치 대구법이라는 기법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는 똑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태와는 달리 그저 단순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다시 아모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1:9의 말씀을 봅니다.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두로의 죄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두로는 이미 형제의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언제 이스라엘과 두로가 형제의 계약을 체결했습니까? 왕상5: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상5:1)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넘어가서 12절 말씀을 봅니다.
(왕상5:12)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다윗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두로와 상당히 화친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죽고 나서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해서 함께 언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왕상9:13을 보십시다.
(왕상9:13) 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을 부르기를 "나의 형"이라고 했습니다. 서로간에 형제처럼 지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두로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형제의 언약을 맺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로가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어떻게 했습니까?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다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것처럼 가사의 경우와 똑같은 죄를 두로도 저질렀습니다.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사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사로잡은 자를 역시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욜3:4∼8을 찾아봅니다.
(욜3:4∼8)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의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취하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궁으로 가져갔으며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의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두로와 블레셋 사람들은 노예 무역으로 그 당시 악명이 높았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이 붙였다는 것이 두로의 특별한 죄목이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0)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하나님께서 역시 대적으로 하여금 두로 성을 쳐서 궁궐까지도 불사르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두로에 대한 심판을 보면 우리가 이미 앞서서 살펴본 다메섹이라든지 가사에 대한 심판과는 달리 결론적 전달자 양식이 빠져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 11절부터 나오는 에돔에 대한 심판에서도 결론적 전달자 양식이 빠져 있고, 그 다음에 2:4∼5에 나오는 유다의 심판에서도 결론적 전달자 양식이 역시 빠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로의 멸망에 대한 기사는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에 있습니다. 예컨대 렘25:22, 겔28장, 슥9:3 등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두로는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서 5년 동안, 그 뒤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13년 동안 포위를 당했습니다. 그런 뒤에 두로는 주전 332년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멸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왜 두로가 이스라엘과 맺었던 형제의 계약을 기억치 않고 이와 같이 비인도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북방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던 이세벨과 결혼했습니다.
(왕상16: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그래서 이스라엘과 베니게는 더욱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후 왕조가 일어나서 바알 왕가를 멸할 때 바알 신을 섬겼던 모든 바알 선지자들을 예후가 다 죽였습니다. 그때 이세벨도 예후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9장과 10장을 보면 예후에 의해서 아합 왕조가 숙청당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로가 이와 같이 노예를 팔아서 쌓아놓았던 부귀영화는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허무한 것을 위해서 우리의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지 말고 값있고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땅의 것, 육신의 것, 썩어질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것, 신령한 것, 영원한 것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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