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블레셋에 대한 심판 (1:6-8)
1:6-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다메섹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모두 다섯 가지의 일정한 틀로 되어 있습니다. 서론적 전달자 양식에서 시작하여 기소의 양식, 그 다음에 죄목, 하나님의 벌,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적 전달자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맨 먼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 말씀은 내 생각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너희에게 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받으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에 기소 양식을 보십시다.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가사라고 하는 곳은 블레셋의 다섯 방백 가운데 한 곳입니다. 옛날 블레셋은 다섯 개의 큰 도시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사입니다. 수13:3 말씀을 읽어봅니다.
(수13: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여기에 보니까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이 나옵니다. 이 다섯이 블레셋의 다섯 방백, 다시 말해서 블레셋의 가장 크면서도 중심되는 도시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사가 제일 먼저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당시 가사가 블레셋의 다섯 도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큰 도시였기 때문에 그 이름이 대표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서너 가지라고 하는 것은 3+4는 7로, 다시 말해서 죄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꽉 찼다고 하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제가 우스개 소리를 하겠습니다. 3+4는 7이라고 해서 완전수라고 했는데, 그러면 1+1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얼마입니까? 우스개 소리라고 했습니다. 1+1은 중노동,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또 물어볼게요. 2+2는 무엇이겠습니까? 2+2는 덧니입니다. 웃으시는 분은 이해하시는 분이고 웃지 않으시는 분은 아직도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인 줄 압니다. 이에 이가 덧붙어 있으니까 덧니지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4+4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나라 졸부들도 많이 합니다. 해외 관광을 하면서 싹쓸이 쇼핑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무조건 사재는 것입니다. 그것이 4+4입니다.
하여튼 가사의 서너 가지 죄, 곧 관영한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서너 가지의 많은 죄 가운데서 특별한 죄목이 등장합니다. 자! 왜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까? 특별한 죄목이 무엇입니까? 6절 하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1:6)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저희가"라고 하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이겠지요? 그들은 사로잡은 포로들을 끌고 에돔에 가서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보니까 "모든 사로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모든"이란 말이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포로로 붙잡은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선량한 사람까지 다 사로잡아서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에돔은 세일 산을 중심으로 해서 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광산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에돔은 구리 광산으로 유명합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을 통과할 때 길이 험해서 원망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울면서 무릎을 꿇고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세야, 너는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라. 누구든지 그것을 보는 사람은 나음을 입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놋뱀이라고 했습니다. 놋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리가 들어가는 금속이 놋 아닙니까?
옛날부터 에돔에는 구리 광산이 유명했습니다. 따라서 구리 광산에서 구리를 캐기 위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곳에서 팔려온 노예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포로로 잡아서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사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어떻게 벌하시는지 보십시다.
(1:7)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불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이라고 하는 것은 전화(戰火), 곧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블레셋이 전쟁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궁궐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안전한 곳까지도 이제는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을 치시고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8)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여기에 거민은 왕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보좌에 앉은 자입니다. 일반 평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스돗에서 그 왕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으시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돌이켜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 물어봅니다. 아까 블레셋에는 다섯 방백이 있었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네 군데의 도시명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군데가 빠져 있습니다. 그 빠진 곳이 어디입니까? 예, 가드가 빠져 있습니다. 왜 가드가 빠져 있을까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하26:6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대하26:6)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아모스가 예언할 때 가드는 이미 웃시야 왕에 의해서 유다 왕국에 복속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드는 더 이상 블레셋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블레셋의 오 방백 가운데서 제외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8절 끝 부분을 보니까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가드를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로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더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암6:2을 찾아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가드가 블레셋 사람의 도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암6:2)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제가 한번 물어봅니다. 옛날 아스돗에 보면 유명한 신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슨 신전이었지요? 사무엘 당시에 이스라엘은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법궤를 아스돗에 있는 이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전에 있던 신이 법궤 앞에 엎드러져서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신이었습니까? 삼상5:1 이하를 읽어보세요.
(삼상5:1∼4)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그렇습니다. 옛날 아스돗에는 다곤 신전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에그론이 나오는데 에그론의 신은 무엇입니까? 왕하1:1 이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왕하1:1∼3)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에그론의 신은 바알세붑이었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자신의 메시지를 마감하면서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모스는 지금까지 자기가 블레셋에 대해서 예언한 심판이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결론적 전달자 양식에 의해서 다시 한번 강조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겠습니까? 여러분!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으로는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비유를 들어주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선한 이웃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디에서 누구를 대하든지 간에 내가 착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왜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까? 저들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노예로 팔아먹는 비인간적이고도 비인도적인 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것인 줄 압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십시다. 그리해서 우리의 주변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도 다메섹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모두 다섯 가지의 일정한 틀로 되어 있습니다. 서론적 전달자 양식에서 시작하여 기소의 양식, 그 다음에 죄목, 하나님의 벌,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적 전달자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맨 먼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 말씀은 내 생각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너희에게 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받으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에 기소 양식을 보십시다.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가사라고 하는 곳은 블레셋의 다섯 방백 가운데 한 곳입니다. 옛날 블레셋은 다섯 개의 큰 도시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사입니다. 수13:3 말씀을 읽어봅니다.
(수13: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방 에그론 지경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 곧 가사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아스글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여기에 보니까 블레셋 사람의 다섯 방백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이 나옵니다. 이 다섯이 블레셋의 다섯 방백, 다시 말해서 블레셋의 가장 크면서도 중심되는 도시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사가 제일 먼저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당시 가사가 블레셋의 다섯 도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큰 도시였기 때문에 그 이름이 대표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서너 가지라고 하는 것은 3+4는 7로, 다시 말해서 죄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꽉 찼다고 하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제가 우스개 소리를 하겠습니다. 3+4는 7이라고 해서 완전수라고 했는데, 그러면 1+1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얼마입니까? 우스개 소리라고 했습니다. 1+1은 중노동,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또 물어볼게요. 2+2는 무엇이겠습니까? 2+2는 덧니입니다. 웃으시는 분은 이해하시는 분이고 웃지 않으시는 분은 아직도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인 줄 압니다. 이에 이가 덧붙어 있으니까 덧니지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4+4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나라 졸부들도 많이 합니다. 해외 관광을 하면서 싹쓸이 쇼핑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무조건 사재는 것입니다. 그것이 4+4입니다.
하여튼 가사의 서너 가지 죄, 곧 관영한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서너 가지의 많은 죄 가운데서 특별한 죄목이 등장합니다. 자! 왜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까? 특별한 죄목이 무엇입니까? 6절 하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1:6)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저희가"라고 하는 것은 블레셋 사람들이겠지요? 그들은 사로잡은 포로들을 끌고 에돔에 가서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보니까 "모든 사로잡은 자"라고 했습니다. "모든"이란 말이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포로로 붙잡은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선량한 사람까지 다 사로잡아서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에돔은 세일 산을 중심으로 해서 산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광산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에돔은 구리 광산으로 유명합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을 통과할 때 길이 험해서 원망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울면서 무릎을 꿇고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모세야, 너는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라. 누구든지 그것을 보는 사람은 나음을 입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놋뱀이라고 했습니다. 놋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리가 들어가는 금속이 놋 아닙니까?
옛날부터 에돔에는 구리 광산이 유명했습니다. 따라서 구리 광산에서 구리를 캐기 위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여러 곳에서 팔려온 노예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포로로 잡아서 에돔에 노예로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사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절을 보면 하나님의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어떻게 벌하시는지 보십시다.
(1:7)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불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이라고 하는 것은 전화(戰火), 곧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블레셋이 전쟁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궁궐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안전한 곳까지도 이제는 더 이상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곳을 치시고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8)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여기에 거민은 왕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보좌에 앉은 자입니다. 일반 평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스돗에서 그 왕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으시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돌이켜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 물어봅니다. 아까 블레셋에는 다섯 방백이 있었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네 군데의 도시명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군데가 빠져 있습니다. 그 빠진 곳이 어디입니까? 예, 가드가 빠져 있습니다. 왜 가드가 빠져 있을까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하26:6의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대하26:6)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 성과 야브네 성과 아스돗 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아모스가 예언할 때 가드는 이미 웃시야 왕에 의해서 유다 왕국에 복속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드는 더 이상 블레셋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블레셋의 오 방백 가운데서 제외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8절 끝 부분을 보니까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가드를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로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더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암6:2을 찾아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가드가 블레셋 사람의 도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암6:2)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제가 한번 물어봅니다. 옛날 아스돗에 보면 유명한 신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슨 신전이었지요? 사무엘 당시에 이스라엘은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그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법궤를 아스돗에 있는 이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전에 있던 신이 법궤 앞에 엎드러져서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신이었습니까? 삼상5:1 이하를 읽어보세요.
(삼상5:1∼4)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그렇습니다. 옛날 아스돗에는 다곤 신전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에그론이 나오는데 에그론의 신은 무엇입니까? 왕하1:1 이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왕하1:1∼3)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에그론의 신은 바알세붑이었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자신의 메시지를 마감하면서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모스는 지금까지 자기가 블레셋에 대해서 예언한 심판이 자기의 생각이나 자기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결론적 전달자 양식에 의해서 다시 한번 강조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겠습니까? 여러분!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으로는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의 비유를 들어주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선한 이웃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어디에서 누구를 대하든지 간에 내가 착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왜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까? 저들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노예로 팔아먹는 비인간적이고도 비인도적인 처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것인 줄 압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 주십시다. 그리해서 우리의 주변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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