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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강 에돔에 대한 심판 (1:11-12)

by 【고동엽】 2022. 4. 16.

제6강 에돔에 대한 심판 (1:11-12)

 

1:11-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것은 서론적 전달자 양식이라고 불리어집니다. 에돔에 관한 심판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신적인 권위가 있는 말씀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기소의 양식입니다. 지금까지 아모스는 다메섹이라든지, 가사라든지, 두로라고 하는 한 나라의 대표적인 지명을 들어서 심판의 메시지를 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지명을 들지 않고 에돔이라고 하는 국가명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에돔의 한두 도성들이 문제가 아니라 에돔 전체에 죄악이 그만큼 관영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에돔 족속은 본시 야곱의 쌍둥이 형이었던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창25:21∼26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창25:21∼26)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에돔의 뜻이 무엇입니까?
(창25: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돔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붉은"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붉은 팥죽 한 그릇이 나옵니다. 에서의 별명이 에돔입니다. 붉다는 뜻입니다. 이 에돔의 조상은 누구입니까? 에돔은 에서의 후예입니다. 에서는 누구의 형이었습니까?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별명이었습니다. 그 어머니 리브가의 복중에서부터 둘이 서로 싸웠습니다. 긴긴 역사 동안 이스라엘과 에돔은 계속해서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성경을 보면 에돔은 육적인 사람의 대표입니다. 성경에서 창세기에 에서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구절을 찾아서 읽어보십시다.
(창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하나님이 이방 족속과 결혼하지 말라고 했는데 에서가 이방 족속인 헷 족속의 두 여인을 취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부모를 근심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에서는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고 하나님의 축복을 귀중하게 여길 줄 알았습니다. 영의 사람의 대표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이 계속해서 싸운 것입니다.
에돔 족속들은 세일 산 주변에 정착하고 살았습니다. 창32:3과 36:8∼9, 신2:1∼8, 12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창32: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창36:8∼9)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하니라 세일 산에 거한 에돔 족 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신2:1∼8) 우리가 회정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행하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고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일 산에 거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진행할 때에
(신2:12)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더니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일반이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굽에서 나왔을 때에 저들이 가나안을 향해서 에돔 땅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에 있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로 통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에돔 족속들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돔은 너희들의 동족이기 때문에 저들과 다투지 말고 깊이 삼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해서 이스라엘은 에돔과 다투지 않고 빙 돌아서 간 것을 신명기를 통해서, 또 민수기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다음 구절들을 한번 찾아보십시다. 신2:4∼5, 민20:14∼21입니다.
(신2:4∼5)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민20:14∼21)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열조와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나 통과하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 하라 하였더니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리라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그는 가로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의 그 경내로 통과함을 용납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에는 상당히 적대 관계가 지속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 때에 에돔은 이스라엘에 복속되었습니다. 삼하8:11∼14, 왕상11:15∼1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하8:11∼14)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이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쳐 죽이고 돌아와서 명예를 얻으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왕상11:15∼16) 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 장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이 하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 달을 그곳에 유하였었더라
그때 다윗은 수천의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여호람 왕 때에 일시적으로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왕하8:20∼22을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왕하8:20∼22)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운 고로 여호람이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사일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 돌아갔더라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날까지 그러하였으며 그때에 립나도 배반하였더라
그러나 왕하14:7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에돔은 다시 아마샤에 의해서 복속되었습니다.
(왕하14:7) 아마샤가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을 죽이고 또 셀라를 쳐서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빼앗기고 빼앗는 적대 관계가 계속 되었습니다. 나중에 신약 시대에 와서 에돔은 이두매라고 불려졌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의 헤롯 임금이 어디 사람이었습니까? 이두매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이스라엘과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에돔 족속 이두매 사람인 헤롯을 왕으로 세워서 유대인들을 견제하려고 한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헤롯 임금을 보세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을 때 얼마나 잔인했습니까? 두 살 아래 사내아이는 다 죽였습니다. 또 다른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또 다른 헤롯은 야고보를 칼로 목베고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적대감이 잘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하고 했습니다. 에돔의 죄로 인해서 에돔 백성들을 향한 벌을 결단코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고 하는 단호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에돔 족속들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본문 11절에 보면 네 가지로 기록해주었습니다. 첫째로,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라고 했습니다. 에돔과 이스라엘의 조상은 각기 에서와 야곱으로 형제지간이었습니다. 형제가 함께 살다보면 물론 경우에 따라서 서로 다투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대화를 통해서 푼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을 텐데 에돔은 무엇을 사용했습니까? 칼로 형제를 쫓아갔습니다.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군사적인 무력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를 쫓아가며"라고 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쫓아갔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 공격을 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집요하게 공격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긍휼을 버리며"라고 했습니다. 형제 사이에 가져야 할 당연한 감정, 기본적인 감정이 무엇입니까? 긍휼입니다. 형제가 어려움에 처했으면 다연히 도와야지요. 불쌍히 여겨야지요. 그런데 에돔 족속은 형제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감정인 긍휼조차도 버렸습니다. 오바댜서 10∼14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기본적인 감정이 어떠했는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옵1:11∼14)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세번째로, "노가 항상 맹렬하며"라고 했습니다.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이 말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노가 항상"이라고 했습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적대감정, 악감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앞의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해줍니다.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이러한 태도는 형제로서 가져야 할 마땅한 태도가 아닙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을 형제가 아니라 마치 적같이, 원수같이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에돔에 내리는 형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이 말씀에 보면 에돔의 대표적인 두 성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데만, 두번째는 보스라입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데만과 보스라 가운데 어디가 에돔의 수도일 것 같습니까? 예, 보스라가 에돔의 수도입니다. 왜냐하면 데만 뒤에는 궁궐이라는 말이 없고 보스라 뒤에는 궁궐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궁궐, 대궐이 있는 곳이 곧 그 나라의 왕이 사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보스라가 에돔의 수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데만이라고 하는 지명이 자주 나타납니다. 창36:11에 보면 데만은 본시 에서의 손자 이름이었습니다.
(창36:11)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또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욥의 세 친구 가운데 한 친구인 엘리바스가 데만 사람이었습니다.
(욥2:11)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그래서 아모스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데만이라는 지명과 에돔의 수도 보스라 두 곳을 대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역시 에돔도 적들의 손에 의해서 전쟁 중에 멸망당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7장에 보면 에돔은 느부갓네살 임금에 의해서 주전 950년 경에 점령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습니다. 형제 사이에 필요한 것은 긍휼이지요. 사랑입니다. 우리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에돔처럼 형제 사이에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방하고 중상하고 모략하는 모습이 되지 말고 형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 저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했던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약2:13을 찾아봅니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누구를 대하든지 간에 항상 긍휼이 풍성한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같이 못난 사람도, 그같이 못난 사람도 구별 없이 다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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