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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의 축복! (막 7:31-37)

by 【고동엽】 2022. 3. 16.

에바다의 축복! (막 7:31-37)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동쪽에 있는 데가볼리라는 지역에 가셨습니다. 데가볼리라는 곳은 열 개의 헬라 도시들이 연합체를 이루어 살고 있는 이방인들의 도시입니다. 그곳에 가셨을 때 귀먹고 말을 못하는 병자 한 사람이 와서 고쳐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양 귀와 혀에 넣고는 하늘을 향하여 탄식하시며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손에 침을 뱉어서 환부에 댄 것은 당시 헬라인이나 유대인들 사이에서 치료 행위로 사용한 민간요법에 해당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탄식하시며 기도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 귀머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시려는 아픈 마음과 고쳐 주시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고 했습니다. ‘에바다’라는 말은 ‘열려라, 풀려라’는 뜻의 아람어입니다. ‘막힌 귀야 열려라! 굳어 있는 혀야 풀려라’ 그런 뜻입니다. 그랬더니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듣게 되었고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①듣지 못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사람은 듣는 것이 먼저이고 다음에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원리는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렘5:21절에서 예레미야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라고 탄식조의 책망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으므로 듣지 못한다.’(렘6:10)고 탄식했습니다.

  사6:10절에서 이사야도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이스라엘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경 곳곳에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 또 ‘들을 귀 있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그래서 예수님이 탄식하시며 그 병자를 위해서 ‘에바다’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와 있는 귀먹은 사람의 불쌍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이 사람처럼 영의 귀가 막혀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심령의 귀가 막혀서 위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을 듣지를 못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그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를 못합니다. 기도를 해도, 묵상을 해도, 그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를 못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깊이 묻혀 있어도 그 자연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에바다’는 나를 향한 ‘에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의 닫힌 귀가 열려야 합니다. 열려서 세상의 소리도 듣고, 하늘의 소리도 듣고, 이웃의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귀가 어두워서 민중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독재자가 됩니다. 지식 있는 사람이 자아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교만해집니다. 신앙인이 귀가 어두워서 위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세속에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귀가 열려야 합니다. /아멘!/

 

  ②말을 못하는 것이 비극입니다.

  세상에서 답답한 사람은 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바다’하신 것입니다. 즉 ‘혀야! 풀어져서 할 말을 하고, 전할 말은 전하고, 꾸짖을 말은 꾸짖으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 가운데도 말을 못하는 벙어리들이 많습니다. 의와 진실을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모두 벙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암울하고 어두울 때 의인이 입을 열지 않고 있으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들은 가장 먼저 손을 쓰는 곳이 언론입니다. 언론을 탄압해서 귀와 입을 막아 놓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 의해서 출애굽을 했습니다. 시내 산까지 와서 모세는 산에 올라가 40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산 밑에 있던 사람들이 금을 거두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는 ‘이제부터 모세의 하나님은 없어졌고 이 금송아지가 우리들의 신이다’하고는 그 앞에서 춤추고 입 맞추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 같은 모습을 아론은 끝까지 보았으면서도 한 마디의 말도 못하고 침묵했습니다. 말 잘하기로 소문 난 아론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붙여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잘하기로 소문 난 아론이 하나님이 욕을 당하고, 진리가 짓밟힘을 당하고, 민족의 장래에 커다란 재앙이 쏟아질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에 아론의 사명은 ‘백성 앞에 나서서 설득력 있게 옳고 그름을 분별해 주고, 설득해서, 죄짓는 일을 못하도록 하는 일’이 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정작 말을 해야 할 때는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것은 입은 있으나 말 못하는 벙어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세요! 행4:19절 이하에 그는 오순절 이후 위협과 핍박하는 무리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분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에바다'의 은혜를 받아 입술이 열리고 우리의 말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모르고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멘!/

 

  ③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벙어리가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도 비극이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비극은 마음을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듣지를 못하고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남들이 자기를 흉보는 줄 알고 마음을 닫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님을 ‘열리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고 살면 불행해집니다. 이웃끼리 교류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도 교통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비극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를 보세요! 그 사람은 ‘생각과 마음이 닫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 루디아는 바울의 말을 듣고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생각이 열려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과 주의 종을 잘 섬겼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할/

  오늘 우리가 에바다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귀도 열리고, 입도 열리고, 마음도 생각도 활짝 열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래서 열린 귀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린 입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열린 가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에바다의 축복입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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