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위에 지은 집 (마7:24-27)
임 영 수 목사
신학자 윌리엄 버클레이는“건축 재료는 인생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성된 인생을 제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재료를 제공해 주시는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의 인생을 지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버클레이는“하나님은 인생의 재료로서 우리에게 재능과 능력을 가진 우리자신을 제공해 주시고, 아름답고 풍성한 세계를 다시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살아갈 동료를 제공해 주시며, 그리고 ‘이러한 재료들을 다루어 가치 있는 인생을 지어 내어라’고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재료를 제공해 주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제공해 주시며, 우리가 무엇이든지 혼자서 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힘이 되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침이다.”고 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삶 속에서 폭풍과 홍수가 반복하여 우리를 덮친다.”고 했습니다. 안셀름 그륀 은“이것이 우리 인간 실존의 일부분이다.”고 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신 인생의 재료들을 가지고 삶 속에서 반복하여 일어나는 폭풍과 홍수 가운데서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폭풍과 홍수가 덮칠 때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는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전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후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집은 꿈속에서 항상 우리의 의식 상태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집이 무너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폭풍과 홍수가 덮칠 때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삶이란“자기 본질에 맞지 않게, 거슬려 사는 사람의 삶”을 뜻 합니다. 이렇게 자기 본질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은 의식 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무딘, 우둔한, 바보 같은 사람을 뜻합니다.
자기 본질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 지나치게 타인 지향적 입니다.
* 지나치게 외형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 허구적인 이념이나, 사상에 쉽게 사로잡힙니다.
* 허영심, 허세가 많습니다.
* 거짓, 불의로 재산과 명예, 권력의 기반을 쌓아 갑니다.
* 생의 궁극적 가치보다는 인기, 대중적인 칭찬에 자신의 생의 기반을 쌓아 갑니다.
* 폐쇄적이고 자기 개선이 없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삶을 사는 사람은 쉽게 상처를 받고, 좌절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매우 작은 시련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주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생의 기초가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생의 기반을 모래 위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한편 자기 본질에 맞게 사는 사람은 삶 속에서 폭풍과 홍수가 반복하여 덮칠 때 넉넉히 지탱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집을 지을 때 그 기초를 반석위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 그는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적 상태와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 그는 언제나 궁극적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 그는 허세적인 자랑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 그는 본질을 소중히 여깁니다.
* 그는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 드립니다.
* 그가 지향해 가는 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자기 본질에 맞게 살아간, 즉 그의 집을 반석위에 지은 모범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꿈에 귀를 기우리며 살았습니다.
심리학에서 꿈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말씀하시는 내면의 소리와 일치합니다. 요셉은 자기가 다른 형제들보다 사랑을 더 받는다는 이유로 막내인 자기를 비방하고, 증오하고, 거부한 형들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루우벤의 권유로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 속으로 던져 넣기만 하고 결국에는 지나가는 상인에게 요셉을 팝니다. 상인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려가 바로의 경호 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아넘깁니다. 그 곳에서 요셉은 모든 일에 성공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형들의 질투가 요셉에게 해를 끼칠 수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팔아버렸어도 형들은 요셉에게 실재로 상처를 입힐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악의에 찬 형들의 힘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했으나 실제로는 그것이 요셉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길이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관리인으로 임명되었을 때에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유혹하며 요셉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자신과 일치된 상태에서 보디발의 부인이 결정하도록 하지 않고 자기 양심에 따라 결정 하였습니다. 부인은 요셉을 모함하여 감옥에 넣었습니다. 다시금 운명이 요셉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 계속 자기의 본질인 양심을 성실히 따랐습니다.
그는 죄수 생활을 하면서도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함께 갇혀 있는 사람들의 꿈을 풀이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집트의 모든 마술사와 현자들이 풀 수 없었던 바로의 꿈을 해몽하기 위하여 그를 데리러 왔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했을 때 바로는 요셉에게 이집트 전체를 다스릴 권한을 주었습니다. 다시금 하나님께서 요셉을 질투하는 부당한 인간의 손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요셉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할수록 그것은 요셉에게 더 큰 명예가 되었다고 크리소스토모는 말했습니다.
안셀름 그륀은 말하기를 “요셉에게 견디기 어려운 많은 시련과 시험이 있었지만 그의 운명은 감옥에서 끝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불가침의 존엄성을 요셉자신에게 선사 하셨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드디어 그를 미워하고 괴롭혔던 형들까지도 용서하는 위대한 사람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매우 값진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미완성된 생을 허구와 거짓으로 지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 그의 인자하심, 선하심을 굳게 믿고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의 기반위에 세워 가는 삶은 그 어떤 폭풍과 홍수에 의해서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그러한 시련들에 의해 상처 받고 좌절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의 시련가운데서 우리가 받은 깊은 마음의 상처까지도 값진 진주로 바꾸어 놓습니다. 값진 진주는 조개 속에서 많은 상처를 겪으면서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값진 진주로 바꾸어 놓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저의 생애에서 깊이 체험적으로 깨달아 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상처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 가느냐? 가 중요합니다. 밖에서 입히는 상처를 자해로 받아 드릴 때에는 악순환만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객관화 시켜보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어 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진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인생의 재료들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폭풍과 홍수에서도 무너져 내리지 않고, 지탱해 갈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또는 이미 잘못 지어져서 지탱해갈 수 없게 되었다면 어떻게 다시 지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의 물음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나의 말을 듣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근거를 발견하게 되고 올바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물에 대하여 올바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실재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사람, 사물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는 사람은 더 이상 스스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 상처를 낼 수가 없습니다.
요셉의 경우 형들과의 적대관계도, 보디발의 부인이 한 모략도, 감옥도, 추방도 요셉에게는 상처를 낼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일을 그만두고, 반석위에 자신의 집을 지어가게 됩니다. 즉, 반복해서 상처를 입는 삶에서 벗어나 건강한 나 자신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폭우나 홍수도 바위위에 지은 집을 망가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자기 내면의 집을 세운 사람은 어떠한 상처로도 흔들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지와 경솔함과 부패로 모래위에 자기 집을 세운 사람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집이 붕괴되는 것은 폭우 탓이 아니고 자신의 태만 탓입니다. 그는 태만으로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고 상처를 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그릇된 삶의 표상들을 깨트려 버리고 올바른 표상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그릇된 표상들을 많이 가지고 삽니다. 우리는 돈이나, 재물을 잃어버렸을 때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표상, 즉 그러한 것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상들은 우리의 우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물에 대해서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도 그릇된 표상을 많이 갖고 살아갑니다. 제가 고등학교 학생 시절에 저의 반에 다른 학생보다 키가 월등하게 큰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등교해보니 키 큰 학생과 작은 학생이 심하게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침 조회를 하기위해 들어오셨는데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참다못해 두 학생을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싸우는 사연을 물었습니다.
키 큰 학생이 ‘이 친구가 등교 시간에 다른 친구와 둘이 자기를 따라오면서 자기를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키 작은 학생에게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이 ‘자기는 이 친구를 비웃은 것이 아니고 친구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면서 웃었다’고 했습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선생님은 키 큰 학생에게 “네가 네 자신을 경멸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너를 경멸 할 수 없다‘는 훈계를 하신 후 두 학생을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키 큰 학생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돈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모를 갖춘 사람은 자기의 미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기를 좋아 한다 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허구적인 표상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러한 허구의 기반위에 생의 집을 지어가지 않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 특별히 산상수훈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해가면 우리는 허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반석위에 우리 집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참된 인간으로 형성시켜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이라는 선물은 완제품이 아니고 미완성품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완성품으로 만들어갈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명심하여야 할 것은 우리는 우리의 생을 반석위에 지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모래위에 지어갈 때 폭풍과 홍수가 몰아쳐올 때 무너짐이 심하게 됩니다. 결국은 우리의 영혼까지도 파멸하게 됩니다.
끝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드립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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