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새로운 방식' 이라 불리는 피니의 주장은 두 가지 개념, 즉 외적인 행동과 진정한 거듭남을
혼동했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손을 높이 들거나 앞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런 행동들이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거나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주의 사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새로운 어떤 방식을 말하거나, 심지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회심에 이를 수 있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혼동했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힌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고, 손을 높이 들거나 앞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런 행동들이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거나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주의 사역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새로운 어떤 방식을 말하거나, 심지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회심에 이를 수 있는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주제별 명설교편● > 비판 명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십자가 신학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고찰 - 이승구 (0) | 2021.11.06 |
---|---|
탈 자유주의 신학과 탈 보수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0) | 2021.11.05 |
칼 바르트와 관계신학: 삼위일체, 예정 그리고 종말론: 북미에서 바르트 논쟁에 대한 비판적 보충(정승훈 박사) (0) | 2021.10.25 |
칼 바르트 기독론 및 예정론 비판 (0) | 2021.10.14 |
비판하지 말자 / 마 7:1~6 (0) | 2021.10.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