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누구인가?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목사는 성직자? 목회는 성직? 일전에 한국의 모 방송국에서 주관한 종교인 과세에 관한 TV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때, 기독교계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출연한 한 분이 현재 일반인에게 적용하는 과세 기준을 목사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목사는 성직자요, 목회는 성직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였습니다. 이 분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들의 인식 속에 목사는 성직자, 목회는 성직이라는 등호가 성립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글 사전에도 목사는 신부, 선교사, 승려와 함께 종교적 직분을 맡은 자라는 의미로 성직자라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성직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성직자가 아닙니다. 사회 통념상 목사를 성직자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목사 스스로나 혹은 교회에서 목사를 성직자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성직자라는 말의 기원과 부패 교회 역사를 보면, 성직자라는 말의 기원은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 교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은 유일한 신정주의(神政主義) 국가로서 국가와 성전의 예배를 주관하는 제사장 제도가 있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이 제사장 그룹을 성직자라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회에서 사용되는 성직자라는 용어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산물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던 당시만해도 기독교회는 감독과 장로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3세기 이후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종교적 패권을 장악하게 된 서방 교회의 지도자들은 감독의 권한을 강화하였습니다. 이후 카톨릭 교회안에서는 로마 교회의 감독은 곧 사도들의 후계자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전통가운데 교황-주교-사제-부제라는 수직적인 성직자 계급제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평신도라고 부르는 일반인들과의 질적 차별을 위해 성직자에게 독신서약을 강조하고, 성직자 ‘종신제’(終身制)를 제도화하였습니다. 일부 개신교회(영국 성공회, 러시아 정교회, 감리교회등) 중에는 이러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개념을 그들의 교직 제도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개념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다릅니다. 사도시대 이후 구약적 제사장 직분은 물론이거니와 사도직과 선지자직 역시 중단되었습니다. 이것들은 기독 교회가 성립될 때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운데 주어졌던 특수한 직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목사를 가리켜 구약적 전통의 제사장이나 선지자 혹은 사도로 이해하거나 지칭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조차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처사입니다. 또한 교황을 사도직을 계승한 유일무이한 전 세계 교회의 감독이라고 하여, 그에게 무소불위의 종교적 권력을 위임하고, 그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사제들이 종신토록 교회와 신앙을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혐오스런 주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목사들은 여전히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론과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목사라는 직분 자체가 특별한 권력이나 권한을 담지하고 있는 것처럼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서 목사의 일(목회)만 성스럽게 구별된 일인 양 으스대곤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목사 직책을 어느 단체의 최고 책임자나 회사의 최고 경영자쯤으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비젼을 위해 성도들을 사원 다루듯, 심지어 종 다루듯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일각에서는 만인 목사론이나 목사 무용론과 같은 견해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극단을 배제하기 위한 또다른 극단에 불과한 주장입니다. 목사는 누구인가? 목사는 누구입니까?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받은 성도들의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위해 주신 직분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 장로교회 헌법에는 이러한 목사의 직분을 가리켜, 평범하고도 항존적인 직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목사는 사도나 선지자와 같이 구약 시대와 사도 시대에만 존재했던 비상적(非常的)이고 제한적인 교회의 직원들과 구별되는 의미로서,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님의 은사(gifts)를 따라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를 가리킵니다. 이는 교회안에 여러 직분간의 ‘역할 차이’는 존재하지만, 우열을 따지는 ‘역할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목사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성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호 동등성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본 정신위에서 우리는 목사라는 직분의 고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목사를 가리켜,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목사는 '그리스도의 종'이며, '성도를 위한 봉사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목사는 누리는 특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섬기는 특권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거룩한 섬김의 특권을 잘 발휘하도록 하시기 위해 목사들에게 귀한 사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본의(本意)에 따라 말씀을 선포하며, 성례와 권징을 관장하며, 교인들을 양육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는 성직자, 목회는 성직이라는 주장을 명분삼아 종교적 권세를 누리며, 물질과 명예를 얻으며, 성도의 양심을 제어하며, 헌신과 섬김만 받으려고 하다니요! 성경적인 교회 개혁을 가로막는 공공의 적(敵)된 사심(邪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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