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역사관
I. 삶과 역사관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수많은 논쟁을 야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기술하려는 L.Ranke의 객관적 노력에서부터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역사가이다(Everyman is his own historian.)" 는 C.Becker의 주관적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 편차가 심히 크다.
복잡한 역사 이론의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우리는 매일 접하는 신문 기사에서 다양한 주관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것을 본다. 일례로 개헌 서명의 기습적 시작(2.12), 야당 당사 봉쇄 등으로 말미암아 위기의 봄 정국(政局)으로 지칭되었던 작년의 삼일절 기념식사를 들어 보자. 한쪽에서는 “3.1 정신을 대동 단합과 국력의 총집결로 구현하여……민족적 대사(大事)……평화적 정권 교체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서로가 허물을 들추고 사소한 잘못을 탓하는 것만 앞세웠다면 3.1 운동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전해질 수 없었을 것……”(동아일보,1986.3.1)이라는 기념사를 했다. 반면, 같은 시간의 다른 곳에서 신민당은 “거룩한 3.1 정신을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민주화 투쟁과 통일 준비 과업의 기본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동아일보,1986.3.1)고 3.1 운동을 재해석했다. 그 날의 석간 사설은 “……민(民)이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민주와 민권의 추구 역시 3.1 정신이 내세운 정치적 선택이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역사학도들에게만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와 관계되는 이들에게 깊은 역사의 성찰은 요구된다”(동아일보,1986.3.1)고 주장함으로써 3.1 운동은 민주와 민권의 추구 운동이라 해석하고 또한 물리적 대립만을 첨예화시키던 정치인들에게는 민(民)을 존중하는 역사의식을 함양하라고 질타하였다.
각 정당이 상이한 관점 - 호헌과 개헌 - 에 의해 3.1운동을 각각 자신의 논리 - 호헌의 논리와 개헌의 논리 - 로 해석한 예인데, 우리는 역사 교과서에서도 상이한 관점에 의한 상이한 해석의 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종교 개혁의 예를 들면, 가톨릭 사가들은 루터의 ‘개혁’ - 그들은 ‘반란’이라는 표현은 쓴다 - 은 아비뇽 유수 등 교회의 행정상 난맥을 틈타 잠시 일어난 일화(逸話)에 불과하고 진정한 “개혁”은 트렌트(Trent) 종교 회의에서 행정상의 난맥을 일소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역사는 원시 공산 사회→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근대 자본주의→사회주의로 진행한다고 신앙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종교개혁을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의 부르조아 혁명으로 해석한다. 상술하면, 공장제 수공업(manufacture) 등 자본주의 생산력이 발전했으나 생산 과정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생산 관계]는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라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아니라 방앗간을 소유한 영주와 농민의 봉건적 생산 관계로 남아 있으므로 신생산력과 구생산 관계의 모순이 첨예화되었고 그 결과 부르조아 혁명이 종교 개혁이라는 종교의 옷을 입고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루터가 장차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이 될 부르조아 계급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로마 교황청의 경제적 수탈이 제거된 값싼 교회(cheap church)를 부르조아 계급에게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 서 있는 역사가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 루터와 칼빈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교회답게 개혁하신 것으로 해석을 한다.
종교 개혁이라는 한 사건을 둘러싼 역사가들의 상이한 해석은 단순히 참고한 사료(史料)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인 관점, 혹은 전제나 사관의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비록 ‘과학성’을 주장하지만 역사의 원동력으로서의 하나님을 부인하고 - 하나님의 존재 내지 섭리를 부정하는 것은 학문적 결단이 아닌 신앙적 결단이다 - 대신 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전제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후, 그 관점에서 종교 개혁을 해석했다. 또한 가톨릭 사가들은 교회를 교황을 정점으로 한 하나의 조직체로 이해했기에 진정한 종교 개혁은 트렌트 종교 회의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상이한 해석에 봉착했을 때 그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전제들을 분석하여 내는 일은 약간 논리적인 일이므로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상이한 전제나 해석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보다 실제적인 문제다.
3.1 운동을 개헌의 관점에서 해석한 야당은 개헌 서명을 할 것이고, 호헌의 관점에서 해석한 여당은 야당 당사를 봉쇄할 것이다. 또한 종교 개혁을 부르조아 혁명으로 해석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앞으로의 사회는 프롤레타리아의 사회가 될 것이기에 자신의 이익을 앞으로 흥기할 노동자들의 이익과 일치시키며 노동 운동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 또한 가톨릭의 해석을 받아들이면 교회의 제도적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 사관(諸史觀)에 대한 이해는 현학적 장식 때문이 아니라 오늘의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관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에 대한 비판의 척도이자 우리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적 역사관은 무엇인가?
II. 기독교적 역사관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매우 역사적인 종교이다. 역사적 배경에서 성립했다는 소극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역사를 형성한다는 적극적 의미에서 역사적 종교이다. 기독교적 전통이 널리 받아들여지기 이전의 서구(西歐)는 이데아(Idea)의 세계가 본질의 세계이고 이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는데 이 세계관에 의하면 현세적인 이 세상은 그리 큰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었고 세상사를 궁구하는 역사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사실이 널리 전파되면서 현세적인 것도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참고, 딤전 4:1-5, 딛 2:1-14), 역사관도 순환 사관에서 직선 사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대의 제 사관 - 진보 사관, 역사주의, 사적 유물론 - 도 기독교적 사관의 세속화에 의해 성립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사와 역사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기독교적 사관의 근원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대한 다양한 성호(聖號) - 엘로힘, 엘 샤다이, 엘 엘리욘 - 는 각각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교유 명사라 할 수 있는 여호와(Yaweh)는 역사성을 지닌 점에서 우리의 주의를 끈다.
히브리어의 미완료 시제는 현재 미완료와 미래 미완료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여호와”의 의미도 현재 미완료로 해석하여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니라(I am what I am)", 또한 미래 미완료로 해석하여 ”나는 내가 되리라 한 그 인격이 되리라(I will be what I will be)" 로 생각할 수 있다(출 3:14,15). 그러나 전후의 문맥이나 당시 이스라엘인의 지적 수준을 생각해 볼 때,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유목생활을 하다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의미를 자존자(自存者)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파악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전후의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시며(출 3:6,15,16),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되리라 한 그것”을 이루려는 순간에 계시하신 여호와라는 성호는 역사적인 개념으로 - 즉 “나는 내가 되리라 한 그 인격이 되리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타당할 것이다.
“내가 되리라 한 그 인격이 된 것이다”는 의미의 이름을 소유하신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어떤 언약을 하시고 역사의 진행과 함께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는 그 개입의 결과인 역사적 사실을 통해 언급되며 역사의 진행과 함께 더 명확히 드러난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출애굽 사건에서 아브라함이 전혀 예기할 수 없을 정도로(출 6:2,3) 확연히 드러났지만 그리스도에게서는 정오의 햇빛같이 더 찬란히 드러났고 장차 만들이 통일될 때에 그 충만한 의미가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 내적 개입과 섭리에 의해 기독교는 강렬한 역사적 성격을 지니고 또한 역사의 의미도 하나님께서 역사 내에서 이루어 가고 계신 일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후(창 1:26-23) 문화 명령을 내리시사(창 1:27-28)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들의 문화 활동을 통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나타내도록 하셨다. 즉, 인간이 세상을 다스린다 해서 인간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부섭정(vice-regent)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증시하는 하나님 나라를 창조시부터 의도하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인간이다”는 유혹자의 감언이설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역사의 형성자이심을 배격함으로써 죄가 역사에 개입되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역사에 종국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고 역사에 새로운 요소가 개입되었다. 한편에서 인간이 자기 독립을 선언했으나, 다른 편에서 창조주는 역사를 위해 정하신 목표가 성취될 것을 단언하시며 그 목적을 위해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 처음에는 아담, 그리고 노아와 체결하셨으나 아브라함에 이르러 한 백성을 은혜로 불러내사 한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그 약속은 절정에 달한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은 불신앙과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계 안에서 언약의 백성이라는 하나의 고도(孤島)로 존재하였다. 비록 이스라엘의 불신실과 언약 파기, 또한 그로 말미암은 징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큰 신상(神像)에 대한 환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이 메시야 왕국의 건설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종국을 향해 진행한다는 사상이 구약의 역사의 핵을 형성한다.
이러한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事役)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굳게 세워짐으로써 명확히 드러났다. 그리스도는 현세적이거나 물리적 왕국이 아닌 신령한 왕국을, 그렇다 하여 비 역사적 왕국이 아니라 역사 내에 실재하는 왕국을 세우셨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증시되었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주라 인정하는 곳이면 민족에 관계없이 어느 곳에서든지 역사 속에서 그 왕국은 설립된다.
그러나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役事)하는 사탄은 시대마다 독특한 풍조를 지어 가며 교회를 공격한다(엡 2:1-3; 4:14). 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 패배를 당했지만 주님의 재림 전까지는 그 나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이 나라가 역사의 의미임을 깨닫게 하시고 또 장성한 자들을 신령한 전쟁으로 징모(徵募) 하신다(엡 6:10-18). 따라서 그 나라의 장성한 자들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그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악한 자와 신령한 전투를 수행한다. 이는 승리의 기쁨을 공유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크신 배려다. 장차 그 나라의 왕이 오실 때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적이 무너질 것이고 그날에 거울로 보듯 희미하던 역사의 참된 의미가 밝히 드러날 것이다.
Ⅲ. 기독교적 역사관과 역사학
우리는 앞 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의 의미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수되는 역사학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지 이미 2세기가 넘었다. 남겨진 유일의 대안은 ‘하나님‘이 언급되는 교회사를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사의 의미가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주장은 단지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만 의미를 지닌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일상생활, 더 나아가 학문 활동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영향을 미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본장의 전반부에서는 역사학의 자율성 문제 및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후반부에서는 이른바"세속"역사학을 어떻게 기독교적 관점을 갖고 연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살펴보겠다.
학문의 자율성에 관한 문제는 H.Dooyeweerd 등 일군(一群)의 기독교 철학자들뿐 아니라 T.Kuhn 등 비기독교인 과학 철학자들에 의해서도 많이 논의된 문제인데,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학문이 가치 중립척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고 한다. 마치 삿대를 배 안이 아닌 배 밖의 한점, 즉 강바닥에 대고 밀어야 배가 전진하듯이 학문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pre-supposition)도 학문 내부가 아닌 학문 밖의 한 점, 즉 종교의 영역에 위치하게 된다.
역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자체가 역사에 대한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역사의 진행 속에 있으면 그 흐름에 함께 휩쓸릴 뿐 역사 전체를 조망하거나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없다. 엄밀한 과학(rigorous science)으로서의 역사학의 출발점도 역사 외부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에게는 역사 외부의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가 있으나 불신자는 역사 내부의 한 요인을 격상시켜 자신의 학문의 출발점과 궁극의 참조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의 행위가 아닌 신앙의 행위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어떤 태도 - 신앙, 혹은 불신앙 - 를 표명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학에서 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제외한 것은 외견상 학문의 행위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신앙의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이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했는데, 이 점은 기독교적 역사관을 소유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봐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이 평생 역사를 연구하여 위대한 역사학적 발견과 해석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기독교적 역사관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복음서를 철저히 연구하여 그리스도의 행적을 세세히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이 곧 역사에 대한 참된 이해로 이끌어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말씀을 사용하시사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役事)하시는 성신의 사역으로 말미암는다. 역사를 초월하시나 또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그 분이 또한 개인의 속에서 신령한 영적 변화를 일으키사 하나님 나라에 불러들이셨을 때에야 비로소 역사의 참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 개입을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비밀(divine mystery in history)"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화란 자유 대학의 중세사가 스미트(M.C.Smit)는 동일한 제하의 교수 취임 연설에서 이 비밀은 바울이 사용한 의미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엡 1:10)이 그 내용인 이 비밀은 교회에 주신 것이기에 교인에게는 ‘공개된’ 비밀이나 외인(外人)에게는 ‘가려진’ 비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개된 비밀’을 소유한 역사가는 기존의 역사학에서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알 수도 없었던 것, 즉 이 땅 위에서 이루어져 나가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진행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계시가 종결된 지금에 있어서 열왕기서나 역대기서를 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거울로 보듯 희미하지만 역사상에 하나님 나라가 어떤 빛을 비취며 전진하고 있고 어떤 도전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그 백성들은 상당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인이 그들의 학문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인 전제들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이 이른바 ‘비기독교적’ 주제들을 다룰 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첫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무에서(ex nihilo)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믿는다.
초자연 - 하나님, 영혼, 기적 등 - 을 배제하는 자연주의자(naturalist)들은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필연과 우연(necessity and chance)을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한다.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도, 수소․탄소․산소․질소 등이 우연히 결합하여 복합 아미노산을 만들고 그것이 자체의 법칙에 따라 진행하다가 우연히 어떤 조건하에서 단세포 생물이 되고, 또 그것이 자체의 법칙을 따라 진행하다가 또 우연히…다세포 생물…법칙…우연…식물…동물…등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창조와 섭리가 성삼위의 인격적 통제에 의해 일어났음을 고백하는 기독교 사학자는 사건의 우연 발생 - 비록 그 의미를 다 몰라 외견상 우연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 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인격적 하나님의 통치를 제외한 어떤 비인격적인 보편 법칙이 역사를 지배한다는 주장도 단연코 배격할 것이다. 이것은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연구에 있어서 그러하다.
상당수의 역사학자들은 궁극적인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연이란 설명 불가능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연성을 부정하는 어떤 유형․구조 등을 찾아내려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또한 자연을 지배하는 하나의 합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사실(史實)을 가감하여 그 법칙에 견강부회하는, 따라서 현실과 동떨어진 사상(事象)을 그려 놓기도 한다. 그 법칙이 프로크루테스(Procrustes)의 침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기독교 역사학자는 우연성과 필연성 대신 통일성(unity)이라는 개념을 갖고 사료더미를 정리한다. 외견상 우연한 사건들의 괴집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믿기에 설명 불가능의 우연성으로도, 폐쇄 체계(closed system)를 향한다. 사실 우연과 필연이라는 양극단을 피하고 구조적 정합성(structural coherence)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삼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인 것이다. 하나님에 관한 한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모든 논의에서 하나님을 제거해 버렸을 때 정당한 논의의 토대가 무너지고 우연이나 필연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로, 인간의 타락과 죄성을 전제한다.
혹자는 이르기를, 기독교는 매우 훌륭하기에 다 따르고 싶지만 죄에 대한 교리만은 유보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타락을 인정하는 대신 남아 있는 선(善)을 계발하기를 택한다. 자신이나 사회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함으로써 삶의 의미 찾아보려는 것이 일반적 경향인데, 역사가들 역시 자신이 전공하는 시대상을 미화(美化)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인 사학자는 인간의 타락을 사실(fact)로서 이해하기에 인간의 삶에 대한 현실적 안목을 소유하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기심, 목적 달성을 위한 무자비한 방법뿐 아니라 역사에 작용하는 경제적․정치적․성적 충동을 무시하거나 부인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즉 매우 현실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비관주의로도 흐르지 않는다. 이는 악한 자를 쓰셔서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알기 때문이며, 인간의 죄의 깊음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에 대한 구원의 은혜 외에도, 불신자에게까지 미치는 일반 은혜(common grace)로 세상의 죄를 억제하시고, 또 만인에게 좋은 것 - 지적․미적 능력 등 - 을 내려 주신다.
일반 은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비기독교인의 역사책을 대하는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비록 그가 의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또 왜곡시키는 일이 있을지라도, 비기독교인 역사가는 역사가로서 문화 명령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 과정에서 나온 좋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에게 주신 것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기에 비기독교인의 저서를 모두 사탄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빛에 비추어 취할 것을 취하여 자신의 틀에 재위치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강렬한 반(反)기독교적 경향을 지녔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의 경제적 차원의 중요성을 일깨운 점은 인정해야 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경제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역사학이라면 경제적 결정론은 비판하지만 경제적 요인을 취하여 기독교적 틀에 재위치시키고, 경제 밑에 감추어진 인간의 탐욕을 꿰뚫어 보는 사관을 소유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제한다.
이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다른 해결책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유토피아적 역사 사상을 배격하게 한다. 크로체(B.Croce)처럼 자유를 향한 역사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하고, 마르크스처럼 무분업․무계급의 유토피아로 진행한다는 사적 유물론도 거부한다.
기독교적 전제와 그 각각이 역사학에 대해 의미하는 바를 하나씩 살펴보았으나 이제 종합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의 범죄로 만물이 아주 아래 놓이게 되었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장차 만물이 구속될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해 균형 잡힌 상(像)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느 한 부분을 중시하거나 경시하는 것, 혹은 환원(reduction)시키는 것을 피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적 관계․가정․국가 등이 놓여야 할 위치에 대한 상이 분명하기에 -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는 희미한 점도 있으나 -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16세기의 종교 개혁을 해석함에 있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해 교회를 개혁하신 것을 주된 것으로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 당시의 여러 상황들, 즉 지리상의 발견․상업 혁명․중산층의 대두․인쇄술의 발달․합스부르크 왕가와 발로와 왕가의 대립 등등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적 신앙만을 중시하고 다른 것을 무시하려는 해석이나, 주객을 전도시킨 마르크스주의자의 해석, 즉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종교개혁이라는 부르조아 혁명이 일어났다는 경제적 환원주의도 거부할 것이다.
둘째, 성경적 인간관은 역사학에 방향을 제시한다. 문학이 허구(fiction)를 통해 인간이라는 문제와 씨름한다면, 역사학은 과거의 사실(non-fiction)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을 탐구한다는 이 점에 성경적 인간관은 중요한 분석을 제시한다.
“자신의 비참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알면 교만이 생긴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자신의 비참을 알면 절망이 생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거기서 하나님과 우리의 비참을 발견하기에 중간이 생긴다”(팡세, 527)는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의 고귀성과 비참성을 아는 기독교 역사학자는 인간이 부정당하게 높아졌을 때 비하시키고, 또 부정당하게 비하되었을 때 승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성사가(知性史家)들이 인간을 사상만으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자로 서술한다면 기독교 지성사가는 인간 존재의 역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철옹성 같은 영웅의 기도(企圖)일지라도 때와 상황이 바뀌면 즉시라도 그의 의도가 변질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반면 경제사가나 사회사가가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인간의 행위란 그의 물질적 토대나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기독교 역사가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를 강압하는 물질적․사회적 조건을 창출한 자가 바로 인간임을 지적해 내고 - 이 점에서는 승귀 - 동시에 자승자박으로 그 피해자가 된 현실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본장의 전반부에서는 역사가가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대해 알 수 있는가에 대해, 후반부에서는 기독교적 전제들을 갖고 어떻게 ‘세속’역사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기독교적 역사학을 두 개의 영역으로 - 즉 전자는 협의의 기독교적 역사학으로서 교회사로, 후자는 광의의 기독교적 역사학으로 - 양분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기독교적 전제를 갖고 경제사나 과학사를 했지만 불신자의 연구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 이런 의문은 더욱 강력히 제기된다.
교회사와 역사학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각각 독특한 의미가 있고 상보적 관계가 있다. 교회사는 교회의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가 어떻게 산 위의 동리로서 역사상에 빛을 비취며 전진했는가를 다루는 학문이고, 역사학은 인간의 전반적인 문화 형성 활동을 다루는 학문이다. 다루는 주제는 일견 상이하게 보이지만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의 경제 행위를 포함한 한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가 고백하는 종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교회가 역사상에서 전진해 나갈 때 각 시대의 좋은 것들을 씻어서 취하기도 하고, 그 시대의 사조와 싸우기도 하며, 그 빛을 비췰 때에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의 전 영역에 두루 비취는 점에 양자의 상보적 관계가 나타난다.
그러나 주제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성속(聖俗)으로 우열을 짓는 것은 비기독교적인 이원론이다. 사실 교회사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취급한다 해서 그것이 기독교적 학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기독교적 전제들 대신 민중 사관이나 종교 사회학의 전제와 방법론에 의해 연구를 수행한다면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통치권을 배제하는 것이기에 기독교적 역사학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교회사는 섭리의 역사이고 일반사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교회사만을 강조하면 그 이외의 역사 해석은 비기독교적 틀로 해석하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신다는 창조와 섭리의 전제는 일반사도 섭리의 관점에서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사와 일반사 사이에 다루는 주제의 상이함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원론적 사고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강조점도 ‘주제’보다는 ‘분석틀’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섭리 -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를 모두 포함하여 - 의 관점에서 역사를 파악한다 해서 무불통지(無不通知)하게 되지 않음을 재차 언급한다. 주어진 계시도 거울로 보듯 희미한 부분이 있는데 유한한 그릇으로서 영원의 손길을 담는 일에는 더더욱 그리할 것이다.
Ⅳ.결어
지금까지 주로 학문적 차원에서 기독교적 역사관을 살펴보았다. 그런 사변적 내용이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역사학이 변증적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언급함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삶과 학문의 방향을 결정 지워 주는 세계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서양의 예를 들면 유신론→이신론→자연주의→허무주의→실존주의→동양 범신론→새로운 의식(New Consciousness)등으로 변해 왔으며, 그 독특한 사조로써 교회를 공격해 오기도 한다(참고. 엡 2:2.4:14).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적 역사학의 전제를 많은 사관의 전제들 중에 하나로 끼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임을 실증으로 나타내고, 또한 그들의 허점을 지적하며, 그들의 설명의 부적절성이 그들의 전제들, 즉 세계관이 잘못된 데서 연유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처럼 학문을 통해 그 시대의 도전에 맞서는 일은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고후 10:5).
시대의 도전에 맞서는 일은 일상생활에서도 진행된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성신에 의해 공유한 자는 누구나 역사 의미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고백할 것이고, 또 하나님의 피조계에 대한 상이 분명하기에 정치․경제․문화․교육 등등을 제 위치 지울 줄 알 것이다.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높이는 사조나 인간 이하로 낮추는 사조에 대해 인간이 있어야 할 바 위치를 정확히 설정하며 주위 사람들을 대할 것이다. 이런 자연스럽고 풍성한 삶의 기반 위에서 교회도 튼튼히 서 나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증시(證示)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적 역사관은 공허한 사변이 아니라 성신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한 자들이 학문을 포함한 일상생활에서 나타내는 능력인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안락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전진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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