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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제 4권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50편

by 【고동엽】 202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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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권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50편
 

1.언어의 한계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인 소진과 장유 같은 사람이 말 잘 한다고 소문났습니다. 서양에서는 데모스테네스 같은 사람이 말 잘 한다고 소문났습니다. 우리 교회사를 보면 크리소스톰 같은 이는 아주 말 잘 하는 사람으로 금과 같은 입을 가졌다고 '골든 마우스'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말을 잘 한다고 하지만 말로써 우리의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 중국의 어떤 사람이 금강산을 항상 보고 싶어하다가 정작 금강산에 한번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그 굉장한 만 이천 봉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아, 아, 아" 하고 아 소리만 세 번  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화려하고 너무 웅장하고 너무 아름다워 말을 못했던 것입니다.

 

 
 




2그랜드 캐년과 오로라


제 경험으로는 자연의 경치를 보고 감탄한 적이 특별히 한 번 있습니다. 그것은 알프스 산을 보고 그런 것도 아니고 금강산을 보고 그런 느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 그랜드 캐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흘러가면서 대협곡이 생겼습니다. 논란 것은 차 타고 가서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나가 보니까 좌우의 절벽과 모든 것이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 "아" 소리밖에 다른 말 할 것이 정말 없었습니다.
이번에 베를린에 다녀오면서 전에 얻지 못한 한가지를 얻었습니다. 전에는 유럽에 갈 때 인도와 베이루트를 거쳐서 갔지요. 지금은 제트기가 있어서 동경에서 직접 북극으로 넘어갑니다. 북극을 지나서 갔습니다. 책에서는 전에 보지 못하던 북극을 가까이 하게 될 때에 북극에만 볼 수 있는 오로라라고 하는 극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비행기 위에서 정말 "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거지의 강냉이 다섯 알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하는가? 물론 드리는 액수는 생활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마는 적든지 많든지 우리의 참 정성의 표현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알지요.
전에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어요.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자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가 뭐 있겠습니까?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하며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척 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얘! 금 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대신 너에게 주니 받아라." 물론 거지가 감사히 받았지요. 그러나 속으로 탄식하면서 갔다고 합니다. 왜?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 주머니 째로 내가 다 받았을 텐데"하는 탄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 보세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감사의 예물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에서

 

 
 




4. 현대인의 회색 그림자


작년에 작고한 미국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폴 틸리히 박사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회색 그림자 셋이 있는데 하나는 공허감, 텅 빈 느낌 둘째는 죄악감 죄의식, 셋째는 사망의 공포심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주의만 따라가다가 스스로 자기의 영적 방면의 생활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심령에는 이 세 가지 회색 그림자가 밤이나 낮이나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있습니다.

 

 
 




5.현대인의 공허감


이번 세계 복음화 대회에 와서 연설한 인도의 압둘 학 박사는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 첨가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현대인의 심령에는 공허감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 융 박사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심리의 병은 공허감이다. 만사가 무의미하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느낌은 현대 미술, 음악, 철학 등 모든 방면에 반영이 됩니다. 아무리 물질 생활이 풍부하여질지라도 생에 대한 허무감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떤 집에 다섯 살 난 계집아이가 그냥 울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우는지를 모릅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고 그냥 웁니다. 겨우 달래어 아버지가 "너 왜 우느냐?"고 물으니까, 이 아이가 대답하는 말이 "아빠, 내가 뭘 원하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울었던 거야." 이것이 현대인의 심령에 있는 공허감입니다.
현대인들이 물질 세계만 추구하는 가운데 자기의 심령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잃고 보니 그 심령 속에는 물질로는 메울 수 없는 어떤 텅 빈 데가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을 때에 우리는 자연히 구약 전도서 첫 장을 기억하게 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 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할꼬." 사실 인간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헛됩니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심령이 고독하여집니다. 인간은 대우주의 한 고아가 되고 맙니다. 

 

 
 




6.에티오피아 황제 셀라시에 Ⅰ세


이번 복음화대회 때에 특별히 초청한 손님은 에티오피아 황제 셀라시에 1세가 멀리서 친히 오셔서 제일 처음에 우리에게 연설을 해주셨습니다. 그 황제를 청한 데는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에티오피아는 구스 내시가 제일 먼저 전도를 받아서 믿게 되었습니다. 황제도 제일 먼저 그 얘기부터 했습니다. 황제는 구스 내시에게 전도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 국가가 된 나라가 에티오피아입니다. 또 지금까지 열심히 예수를 잘 믿는 황제가 이 셀라시에 황제라고 합니다.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결론으로 말하면 "아무리 현대문화가 고도로 발달해서 달나라에 가기까지 노력하고 있지마는 결국은 현대문화가 하나님을 저버리면 바벨탑과 같이 무너질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키가 없는 배와 같다. 닻이 없는 배는 언제 풍랑에 밀려서 파선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문화를 구원하실 이는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전 인류의 선한 목자요, 전 현대인에게 생명을 주실 분이요, 또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현대인과 그리스도>에서

 

 
 




7.반역자 주리안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황제 콘스탄틴 황제가 죽은 후에 주리안이라는 사람이 잠시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를 믿는 체하다가 황제가 된 다음에는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흔히 반역자 주리안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파사에 가서 파사 사람과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군을 해 갈 때에 믿지 않는 군인들이 어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을 향해서 비웃는 태도로써, "네가 믿는 그 목수 노릇을 하던 주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잇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 대답하는 말이 "그 분이야 목수니까 목수 일을 하겠지요, 아마 당신 왕의 관을 짜고 계실거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이 왕이 전장에 나가 싸우다가 부상을 당했고 얼마 후에는 죽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죽을 때에 "오! 갈릴리 사랑이여, 당신이 결국은 승리했습니다."라는 탄식을 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 님은 주리안 황제의 관만 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독재자들의 관도 짜십니다.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 유의 주'요, '만 왕의 왕'이십니다.

 

 
 




8.리빙스턴의 마지막 기도


일생토록 아프리카에 가서 몸을 바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난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세상 떠나기 며칠 전에 자기 일기책에 이런 기도를 적어 놓았습니다. "나의 예수, 나의 왕, 나의 생명, 나의 전부시여, 나는 다시 내 몸 전체를 당신께 그리나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접한, 주로 영접한, 왕으로 영접한 종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를 주로 영접합니까? 과연 예수를 왕으로 영접합니까? 그것은 주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내 몸으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충성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오늘 예수 님을 내 주로, 내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다음 주일에 학습과 세례 받을 여러분은 온전히 예수 님을 내 주로, 내 왕으로 모시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 유의 주, 만 왕의 왕>에서

 

 
 




9.동 백림의 전쟁 기념탑


제가 얼마 전 독일 백림에 갔을 때 동 백림에 건너가 모니 2차 대전 당시 전쟁이 가장 격렬하여서 독일 청년, 소련 청년 수만 명이 쓰러졌다고 하는 그 자리에 소련 사람들이 넓게 터를 닦고 큰 전쟁기념탑을 세운 것을 모았습니다. 그 구내에 들어가면 높은 애 위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우는 어머니의 상이었습니다. 그 상을 바라보며 거기서 쓰러진 아들을 위해서 흘린 모든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할 때에 실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공산당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전쟁이 지금도 월남에는 계속되어서 어머니들의 눈물이 이 땅을 계속해서 적시는 것은 실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10. 가시 면류관에 대한 이야기


이와 같은 옛날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세 시대에 어떤 수도사가 성지 순례를 갔습니다. 갈보리 산 근처에 돌아다니던 중에 뜻밖에 이 수도사는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쓰셨던 가시 면류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가시 면류관은 보기에도 험상스러운 가시로 되었고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볼품은 없지마는 주님께서 쓰셨던 가시면류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지극한 보배로 여겨서 그 면류관을 고이 자기 나라까지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있는 수도원 예배당의 강대 상위에다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부활절 아침을 맞아 수도사들이 일찍 예배 보기 위해서 그 예배당 문을 열었더니 온 예배당이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차 있더랍니다. 이게 웬 일이냐고 사방을 둘러  보니 그 험상스러운 면류관의 가시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많이 피었더랍니다. 물론 얘기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뜻이 있습니다.
부활주일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승리를 의미합니다. 향기를 의미합니다. 기쁨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를 영접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생깁니다. 새로운 능력이 생깁니다. 향기가 나는 생활로 변합니다. 기쁨이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이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심으로 참된 생명과 승리의 향기와 기쁨을 얻었습니까?
바라건대 이 기쁜 주님의 날에 충심으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영접해서,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생활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승리의 생활, 향기를 뿜는 생활, 기쁨이 충만한 생활로 변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부활의 기쁨>에서

 

 
 




11.회개와 부흥


어떤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도무지 부흥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후에 알아보니까 그 교회에 장로 두 분이 있는데 5년 동안을 한 교회에 다니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 가운데 장로 한 분이 그것이 큰 죄인 것을 깨달아서 다른 장로에게 가서 자기 죄를 자복(自服) 하고 화해를 청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야 그 이도 자기의 죄를 자복 하면서 피차에 화해하니 그 다음부터 교회가 일취월장해서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12.돈주머니의 침례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침례 받으려 왔는데 보니까 호주머니에서 어떤 것을 끄집어내어 놓기에 목사가 물으니 돈주머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목사가 "그 돈주머니를 넣고 침례를 받으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돈주머니도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회개하면서도 돈주머니는 회개를 못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욕의 문제를 해결 못합니다. 고양이 쓰다듬듯 싹싹 쓸어 줍니다. 회개는 온전히 백 퍼센트 해야 됩니다.
그러면 회개는 언제 할 것입니까? 내일? 모래? 악마는 그렇게 미룹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일이 꼭 있을는지 확실히 압니까? 회개는 지금 하셔야 합니다. 지금이 회개할 때요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예수님 말씀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된다고 했습니다.

 

 
 




13 영원토록 빛나는 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 : 3)
칸트의 유명한 말과 같이 하늘에는 별이 있고 인간의 가슴속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별은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 별이 사용되어 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렇듯 군대에는 장성(將星)이란 말이 있습니다. 삼성(三星)장군 혹은 사성(四星)장군, 이런 말들을 씁니다. 장군들에게는 별을 달아 줍니다. 그뿐 아닙니다. 문단이나 시단이나 스포츠 방면 또는 연예 방면에 이르기까지 그 방면에 우수한 이들을 명성, 즉 밝은 별 혹은 혜성이라고 하는 말들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사용치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성경에 보면 주님을 새벽 별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계시록 22장 16절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뜻은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하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니엘 12장 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가장 빛나는 별들은 영계(靈界)에 있습니다. 아니 영원토록 비치는 별들은 오직 영계에만 있습니다. 본문에 있는 지혜 있는 자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혜가 있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연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올시다.

 

 
 




14 사람을 낚는 어부


유명한 암브로우스 라는 목사는 문필의 재주는 좀 있지마는 품행이 매우 불량한 청년을 만나서 잘 인도하여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가 성 어거스틴이 되어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고 유럽의 1천년 역사의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인물로서 금생(今生)과 내생의 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전에 어떤 유명한 교인이 시카고에서 한 양화점 직공에게 관심을 가지고 드나들면서 교회로 잘 인도했더니 그 소년이 점점 커서 많은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유명한 전도자 무디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잠언 11장 30절에는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 있는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의 열매는 의올시다. 사람의 열매는 사람이올시다. 우리가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사람을 얻습니다. 사람을 죄 가운데서 돌이켜서 의 가운데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런 이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교회의 별들>에서

 

 
 




45.기회의 신(神)


서양의 철학자들은 옛날부터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교훈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강조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기회라고 하는 것을 의인화해서 그림을 그릴 때 그 앞이마에는 털이 많이 났지마는 뒤에는 대머리가 되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은 기회라고 하는 것은 쉽게 잡을 수가 있지마는 한 번 지나간 후에는 다시 잡을 수가 없다고 하는 뜻입니다. 파사의 오마라고 하는 유명한 분은 돌아오지 않는 것에 넷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배 얕은 말, 쏜 살, 지나간 생활, 잃은 기회"라고 했습니다. 옛날 영국 색슨의 어떤 왕이 자기에게 반역하는 성을 점령하고 그날 밤에 큰 촛불을 성문 위에다 켜 놓고 성 사람들에게 고하기를 "누구든지 이 촛불이 꺼지기 전에 내게 와서 항복을 하면 다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촛불이 꺼진 후에는 절대 용서해 주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 말 그대로 실행했다고 합니다.

 

 
 




16 천하 만사의 때


학문을 연구하는 데나 사업을 성취하는 데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나 할 것 없이 천하 만사에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천시(天時)가 있습니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가장 귀한 영혼의 구원, 영생을 얻는 것도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천시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언제나 계십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까이 계실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17.맑은 양심의 청년 시기


그러나 청년 시기에는 대체로 그 마음 밭이 옥토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양심이 맑습니다. 이상이 높습니다. 인생의 깊은 뜻을 탐구하고 영혼을 사모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이 청년시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지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이 다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 디모데, 바울, 디도, 이들은 모두 다 30대의 청년으로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 청년들, 청년 시기는 과연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입니다. 이 때에 참된 신앙을 얻으셔서 일생의 방향을 바로 잡으시고 일생을 통해서 많은 봉사를 하시기를 특별히 부탁합니다.

 

 
 




18.생의 위기와 영혼 구원


우리 인간의 일생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때때로 우리는 누거나 생의 위기를 당합니다. 가령 누구나 질병을 앓습니다. 또 흔히 병석에 눕게 됩니다. 그래서 병은 눈썹에서 떨어진다고 하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그만 병석에 눕게 되면 인간의 허약성, 제한성, 무능을 깊이 느낍니다. 자연히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특별히 병이 위독해서 사망에 직면하게 될 때에는 문자 그대로 인생의 깊은 뜻을 더듬게 됩니다. 그래서 병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聖) 프랜시스가 그랬습니다. 로욜라가 그랬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파스칼이 그랬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말하길,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때에 우리 육신에 병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병상은 영혼이 구원을 얻을 만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리요 마는 우리의 몸이 연약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서 신앙을 가지고서 일생의 삶을 위해 옳은 길을 가고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병도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든지 몇 변은 슬픈 일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납니다. 어떤 때에는 처자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슬픈 일은 흔히 예고 없이 오는 것입니다. 큰 슬픔이 마음에 깃 들게 되면 아무리 강퍅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온유하고 겸손해집니다.

 

 
 




19.눈물의 렌즈


시기나 교만이나 미움이나 질투의 마음도 큰 슬픔 아래에서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슬픔의 밀물이 들어올 때에 믿음의 배를 띄워 영생의 포구를 향하여 돛을 다는 이가 많습니다. 눈물의 렌즈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보고  내세의 실재를 깨닫고 참된 신앙에 들어오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슬플 때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가면 발텐시안이라는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창립한 피터 월드라고 하는 사람은 원내 중세 시대에 살던 사람인데 본래는 방탕한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저녁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댄스를 하며 질탕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까운 친구 하나가 쓰러졌습니다. 죽었습니다. 호화로운 연락의 장소는 갑자기 울음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피터 월드라고 하는 이 청년은 인생의 허무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인생의 깊은 뜻을 찾게 되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고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위대한 인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차차 믿으시오' 작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사탄이 자기 부하를 모아 놓고는 어떻게 하여야 땅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하고 그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어떤 귀신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제가 땅에 내려가서 무엇보다도 성경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선전을 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다른 귀신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저는 땅에 내려가서 하나님이 없다고 선전하겠습니다. 즉 무신론을 선전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귀신이 일어서더니, "저는 천당과 지옥이 없다고 선전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늙은 귀신이 척 일어나더니 "그것도 다 좋지마는 저는 땅에 내려가서 믿는 것도 괜찮지마는 차차 믿으라고 선전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사탄은 한 달 기한을 두고 다 땅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귀신들은 열심히 일한 후 올라와서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합니다. 누구는 몇 백 명을, 누구는 얼마를 데리고 왔습니다 하는데 그 중 넷째 귀신이 제일 많이 지옥으로 데려왔단 말입니다. 차츰 믿어도 된다고 하는 귀신 말입니다. 여러분,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실 때에 작정하고, 과거의 생활을 끊어버리고, 회개하고, 주님을 내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에서

 

 
 




21.화해의 역사


성경은 말씀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속히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화해에 꼭 필요한 조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최고의 대가를 지불하시면서 인간에게 화해를 청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는 아무개와 화해할 마음이 있기는 하지마는 저가 먼저 말하지 않는데 왜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도 꼭 같은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다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22.제가 잘못했습니다.


전에 어떤 부부가 여러 해를 단란하게 살다가 성질이 거칠어져 심하게 싸운 후에 서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녕 이혼을 하고 보니 후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공연히 했군, 혼자 살자니 이거 안 되겠군." 그러나 자기가 한 이혼이라 다시 살자고 할 수는 없었지만 상대편에서 살자고 청해 오면 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추석이 되었습니다. 마침 자라다가 죽은 아이의 무덤 생각이 났습니다. 이 아버지가 그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섰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혼한 여자도 죽은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역시 그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멀리서 무덤 앞에 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니 전날의 자기 남편이었습니다. 돌아갈까 하다가 기왕에 왔는데 그냥 갈 수야 있나 하고 멀리 서있었다고 합니다. 이 남자가 한참 울고 가려고 돌아서서 내려다보니 자기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그때 남자가 하는 말이 "내가 그저 잘못했습니다. 내가 성질이 못 되어서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라고 하자 여자도 "아니올시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아이의 무덤에서 다시 화해했습니다. 이 때부터 다시 살았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말을 못해서 우리가 화해를 못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무조건 내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23.미워하는 마음


저는 오래 전에 전도사로서 교회 일을 시작할 때 어떤 원로 목사님이 제게 와서 그 분의 경험 이야기를 해주던 것을 지금도 잊지 않은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자기가 신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노회에서 목사 되기 위해서 시취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노회 장소 한가운데 세워놓고 이 사람 저 사람 묻는 방식을 써서 동의 재청해서 가결하던 때라고 합니다. 어떤 분하고 시취를 같이 받는데 대답은 그쯤 했으면 되려니 했는데 마지막에 어떤 선교사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여러 형제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마는 제가 보기에는 이 분들이 대답은 무난하지마는 아무도 목사가 될 준비는 안 된 줄 아오"하고는 앉더랍니다. 그만 선교사의 말인지라 회중 공기가 싹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한 분이 "연기하도록 동의합니다"하고, 동의에  재청해서 가결을 짓고 나니 영락없이 낙제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바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기도가 잘 안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기를 "그 선교사와 나 사이에 사감(私感)은 하나도 없는데 왜 그 분이 내게 대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렇다면 필경 내게 유익하게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이튿날아침 거리에서 함께 낙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만나는 첫 마디가 "아, 선교사 그 놈"하고 아직 분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더랍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도 노를 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반년 후에는 두 사람 다 목사가 되기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된 다음에도 그 친구는 선교사 미워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랍니다. 그리더니 결국 그이는 목사 일을 가만 두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내 마음에 은혜가 떠납니다. 은혜가 떠나면 목사의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은혜가 떠나면 장로의 일도 볼 수가 없습니다. 집사의 일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평신도보다 못하여 내가 내 영혼도 구원 못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품으면 아니 됩니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문필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분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용서는 자기를 짓밟는 발꿈치를 향수로 발라주는 앉은뱅이 꽃의 향기와 같다." 용서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가장 고귀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야만 충심으로 남의 죄를 용서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화해하십시다.

 

 
 




24.루터의 마지막 생애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사업 때문에 언제나 분주했지만 자기 고향에 있는 멘스필드라고 하는 친구 백작의 가정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가서 권면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루터의 나이 예순 세 살이었습니다. 노구를 무릅쓰고 고향까지 가서 밤새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말을 듣고 형제간에 화해를 했습니다. 하루 저녁 더 자고 이튿날 떠날 계획으로 잠들었다가 그날 저녁 병들어 그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각하면 섭섭합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시키려고 많은 애를 썼을 뿐더러 거기에서 자기의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을 보세요. 불화, 불목, 분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러한 사회에서 살 때에 어디 가든지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형제간에도 직장에서도 관청에서도 정계에서도 어떤 곳에서든지 이 화해자가 필요합니다. 세계 정세를 보세요, 사실 이 같은 화해자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세계 인구가 이 땅에 남아 있을는지 의문되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화해의 복음>에서

 

 
 




25.밝은 면을 보는 습관


여러분, 자기의 믿음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고자 합니까? 내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올시다. 이 은혜를 우리가 다 받았는데 이 은혜를 잘 지키는 것이 또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 두 가지로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는 항상 광명 면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에게는 항상 광명 면과 암흑면이 있습니다. 햇빛을 먼저 보되 그늘을 먼저 보지는 마십시오, 비가 내립니다. 한 사람은 말하기를 "아, 오늘 먼지가 없으니 좋구나."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오늘은 길이 질겠다." 같은 포도를 먹으면서도 한 사람은 "그 포도 맛이 좋다."고 하나 한 사람은 "그 씨앗이 귀찮다"고 불평입니다. 같은 장미를 바라봅니다. 한 사람은 "참 장미가 아름답다"고 격찬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장미는 가시가 많군." 합니다. 같은 국화를 바라봅니다. 한 사람은 "그 국화 참 예쁘다"고 말하나 다른 한 사람은 "쑥 냄새는 좋지 않다"고 불평입니다. 암흑면을 바라보지 말고 밝은 면을 보는 습관을 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26.감사의 할아버지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으셨지요. 어떤 잘 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다니니 감사의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 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서 놓쳐 버렸습니다. 때마침 한 마리 개가 곁을 지나가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납니다.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엇이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별로 감사한 일이 못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캄캄한 밤에도 별을 보고 감사합니다. 검은 구름 위의 무지개를 보고 감사합니다. 슬픈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보고 감사합니다.

 

 
 




27.로빈슨 크루소의 감사


여러분,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다 알고 계시지요. 이 분이 파선을 만나서 무인고도에서 혼자 산 이야기 말입니다. 혼자 고독한 섬에서 자기의 신세를 돌아봅니다. 파선을 당한 면에서 보면 불행한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면을 볼 때는 감사할 일입니다. 비록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마는 그래도 굶지 않고 먹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옷 입은 것이 한 벌밖에 없으나 불행한 일이나 그런 대로 섬의 일기가 더워 옷이 별로 필요 없으니 역시 감사할 일입니다. 방비할 무기가 없으니 이는 불행한 일이나 자기를 해칠 맹수가 없으니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마주앉아 이야기할 말동무가 없으니 불행하나 차츰 파선된 배가 그 섬에 닿아 배속의 여러 가지를 보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불행하기는 하지만 감사한 면이 더 많다고 하여 감사의 결론을 맺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항상 보존하는 중요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채워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성경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특별히 귀한 성귀(聖句)를 골라 외우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을 다 외우십니까? 한 번 손들어 표해 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빌립보 4장 4절 이하를 외우십니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면 감사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감사한 마음>에서

 

 
 




28.인디언과 흑인


미국 같은 나라는 물론 백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거기 가면 유력한 두 종족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 종족은 본래 미 대륙의 본토인입니다. 인디언이라고 하는 종족입니다. 또 한 종족은 아프리카에서 본래 노예로 잡아온 종족인데 약 백 년 전 남북 전쟁 이후에 해방 얻은 흑인종입니다. 그런데 이 두 종족을 비교해 보면 똑같은 미 대륙에서 똑같은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흑인들은 그래도 장성하고 발전하는 중에 있어서 그 가운데 인물도 나고 각 방면에 위대한 사람이 종종 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토인에게서는 장성과 발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본국 그 본토인은 점점 자멸하는 운명에 있는 것을 목도할 수가 있습니다. 자유인은 장성과 발전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솔직히 우리 민족 자체를 반성해 소세요.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 지 20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얼마나 모든 방면에 있어서 장성하고 발전하였는가? 정계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경제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문화는 얼마나 진보되었는가? 사회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우리 남한에 있어서는 온전한 신교 자유가 있는데 이런 정세 아래서 남한의 교회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물론 이 모든 방면에 다소간 발전과 장성이 있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은 왜 좀더 장성하고 좀더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 가운데 자유를 바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고, 자유는 장성과 발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한 이가 적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라고 우리는 솔직히 반성할 수밖에 없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 한국 민족 안에 있는 내재적 능력을 발휘하고 장성하고,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29.자유와 문화발전

춘추전국시대를 여러분은 기억하시는지요? 주나라 말기에 제국의 정부가 약해지니까 여러 지역의 성 전부가 독립을 했습니다. 여섯 나라, 일곱 나라, 여덟 나라, 열 아홉 나라로 독립해서 다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독립국이 되어서는 각각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고 어떤 정치가든 여기서 등용되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있고 여기서 말못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말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독립국이 있게 되니 오히려 중원에 자유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문화가 발전되었습니다. 철인이 일어나고 문인이 일어나고 성인들도 일어났습니다. 노자 같은 이, 공자 같은 이도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일어난 성현입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 압니까? 이 국가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진나라에게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독재 정권이 들어올 때에 문화는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자유가 있는 곳에 성장과 발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이기적 목적으로 쓰려는 정신이 들어올 때에 결국 잘못하면 망합니다. 자유인은 봉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유를 가지고 피차에 봉사해서 종노릇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그 책임>에서

 

 
 




30.시간 관념
 
몇 해 전에 어떤 교회에서 어느 목사가 배척을 받아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배척받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목사는 어느 집에 심방을 가든지 일어설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시간 관념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 권찰 가운데 이런 권찰은 꼭 없어야 하겠습니다. 심방은 마을도리가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을도리 할 시간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능률 있게 하도록 머리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31.코리언 타임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면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을 엄수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내 시간을 허비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을 안 지키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결혼식 때 신부 한 사람 늦어짐으로 인해서 손님 수백 명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흔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시간을 허비합니다. 가을이라 결혼식이 점점 많아지겠는데 결혼할 양반들 분명히 들어 두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꼭 지켜야 합니다. 무슨 집회나 그렇습니다. 시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해방 이후에 여러 가지 새 말이 생겼는데 아주 제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말은 '코리언 타임'이라는 말입니다.
32.문명인의 척도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목사들과 앉아서 이런 얘기를 하니까 그곳의 어떤 목사 한 분이 "여보 그거 우리 나라보다 좀 낫수다.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한 시간 후에야 모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아르헨티나도 후진국임에 틀림없습니다. 후진국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문명한 사람의 표입니다. 교양의 척도입니다. 근면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선한 시간의 청지기가 되려고 할 것이면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신앙생활과 시간>에서

 

 
 



33.김용기 장로의 막사이사이상
 
여러분, 신문지상에서 다 보신 줄 압니다. 우리 한국에서 대학 졸업한 일도 없는 단순히 예수 잘 믿는 장로 한 분이 이번에 필리핀에 가서 1966년도 막사이사이상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누구인지 다 아십니다. 가나안 농작 주인 김 용기 장로올시다. 그 장로님이 며칠 전에 우리 교회에 들려서, 갔다 온 얘기를 제가 자세히 들었습니다. 아주 국빈의 대우를 받고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그 상을 받고 영광스럽게 돌아왔습니다. 이 장로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저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34.김용기 장로의 달란트 사용


이 장로님은 받은 달란트를 잘 사용했습니다. 방금 말한 것 같이 교육 방면으로는 달란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머리를 받았습니다. 좋은 건강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이 장로님은 꼭 농촌을 위해서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불모의 땅을 사서 가족들이 들어 붙어서 개간을 했습니다. 거기다 고구마를 심고 포도를 심고 양을 치고 염소를 기르고 버섯을 기르고 친히 농사하며 삽니다. 유능하게 삽니다. 이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후원이 전혀 없이 순전히 자기 혼자서 아들을 데리고 농군학교를 세웠습니다. 여러 농촌의 청년들을 두 주간 혹 세 주간 동안 에려다 함께 먹고 자면서 농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예수 믿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 자기 아들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족 전도도 하였습니다. 아들 가운데는 나팔 부는 아들도 있고 음악 하는 아들이 있어 동네를 순회하면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우리 한국 농민의 살길은 여기 있다"고 외쳤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전도하는 말은 간단히 세 말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무엇보다 부지런히 일합시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성경에 보니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피차에 봉사를 하자고 말합니다.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어 준 분은 예수 님밖에 없으니 우리가 예수 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자고 합니다. 만민의 죄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분은 예수 님밖에 없다고 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바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예수를 믿는 장로들과 집사들과 모든 교인들이 이와 같이 받은 바 달란트를 온전히 주를 위해서 사용하면 우리 삼천만이 복음 화되는 문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또한 우리 나라가 빨리 건설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받은 달란트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35.하나님의 꽃과 악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우리 하나 하나는 거기 속한 한 소유입니다. 소유 하나 하나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소유 하나가 그 책임을 못하면 그만큼 몸에 병이 듭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내 책임을 하는가 그렇지 못한가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교회는 백화가 만발한 봄 동산과 마찬가지인데 여러분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꽃입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아름다움과 향기를 뿜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 전체가 주님께서 와서 계실 만한 아름다운 꽃동산이 됩니다.
교회는 여러 악기로 조직된 악대와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악기입니다. 여러분이 소리를 내야 위대한 음악을 창작해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는 작은 촛불입니다. 이 촛불을 다 켜면 온 삼천리 강산을 비출 수 있습니다.
  누구나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서 아무래도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나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누구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세요. 기도가 구름과 같이 하늘로 많이 올라가면 소나기와 같이 은혜의 비가 온 교회와 우리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받은 은사를 묻어 두지 맙시다. 묻어 두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누구나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과 받은 달란트>에서

 

 
 




36.이비커스의 까마귀 떼
 
옛날 헬라 때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이비커스의 까마귀 때' 라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아덴에 이비커스라 하는 저명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또 재산도 상당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는 길에 고린도에 아주 가까운 산악 지대를 지나가는 험한 길에 들어섰습니다. 거기서 강도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재산을 다 빼앗기고 칼에 맞아서 거의 숨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사정입니다. 그 때 마침 까마귀 떼가 자기 위를 돌고 있습니다. 이 때 죽어 가는 이비커스는 죽을힘을 다해서 까마귀에게 호소를 하였다고 합니다. "너 까마귀들아 ! 내 사정을 너희들은 보지 않느냐? 너희들이라고 원수를 갚아다오." 그리고는 숨졌습니다.
그 후에 오랫동안 고린도 당국은 도둑놈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에 고린도 노천 극장에 큰 연극단이 와서 연극을 합니다. 그 연극을 구경하려고 사람이 수만 명 모였습니다. 바깥에서 연극을 합니다.
한창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 까마귀 떼가 와서 그 위를 빙빙 돌았다고 합니다. 아, 그러니까 어떤 술 취한 사람이 큰소리로 부르짖는 말이, "여기 이비커스의 까마귀가 왔구나" 했습니다. 그 사람을 잡아 조사해 보니 도둑놈 가운데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도둑을 다 일망타진하였다는 것입니다.

 

 
 




37.화류병과 과거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낮에 하는 말은 새가 듣고 밤에 하는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죄가 죄 지은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대해서는 제가 일찍이 약 40년 전에 학생 시대에 당한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배워 내 일생에 늘 경계가 되는 사실담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한국에 있는 어떤 친구를 미국에 데려오기 위해서 어떤 대학과 교섭하여 뜻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 가기가 비교적 쉽지만 그 때는 아주 어려운 때입니다. 여러 가지로 애를 써서 배를 타고 상항(桑港)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쁜 소식이 있기를 프린스턴에서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린 지 한 달이 되도록 편지가 없습니다. 얼마 후에 마음이 초조한 가운데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상항에서 그 친구가 부친 편지인데 뜯어보니 그 곳까지는 배로 잘 왔다고 합니다.
배에서 부두에 내리는 높은 사다리가 있는데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민 당국의 말이 당신 발이 상했으니 여기서 며칠 치료하다 가라고 해서 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일주일이 되어도 치료가 안됩니다. 열흘이 되니 더 붓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그곳 의사가 당신의 병은 단순한 병이 아니니 혈액을 검사해야겠고. 그래서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혈액 검사를 하니 아, 이게 웬 일입니까. 그 혈액 속에서 화류병균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민 당국은 도로 내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이 친구가 자기 사정을 나에게 솔직히 고백해 보냈습니다. "내가 이런 형편에 지금까지 형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이제는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형도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몇 해 전에 북경에 가서 일년 있다가 왔지요. 내가 그 때에 악한 동무의 유혹을 받아서 안 갈 데를 갔던 일이 꼭 한 번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 죄의 값을 이 때 받게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이것을 가리려고 합니다. 안 지은 듯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죄는 죄인을 찾아냅니다. 형벌을 받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죄 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죄는 이렇게 현실 외부에서 찾아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속에서도 또한 찾아냈습니다.

 

 
 




38 예수 님과 가룟 유다의 모델


유명한 레오나드 다빈치의 성만찬의 성화가 있는 가정이 많은 줄 압니다. 이 레오나드 다빈치가 이 성화를 그릴 때에 일생의 정력을 들여 여러 해에 걸쳐서 그렸다고 합니다. 우선 구상을 한 다음에 예수 님의 얼굴을 그려야겠는데 예수 님의 사진이 없으니 상상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 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까 해서 예수 님의 모델을 찾기 위하여 갖은 애를 썼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밀란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면서 성가대의 노래를 듣는데 성가대원 중에 얼굴이 잘 생기고 인자하고 긍휼(矜恤)이 풍부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수 님 얼굴은 저 분 얼굴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데려다 모델을 삼아 예수 님의 얼굴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12제자도 다 돌아다니면서 모델을 구해서 그렸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하는 동안에 여러 해가 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가룟 유다의 얼굴 하나가 남았다고 합니다. 유다의 얼굴을 어디서 찾을까 하고는 서울로 말하면 종로 뒷거리의 사창가 같은 나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다니고 또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같은 곳도 찾아다니면서 애쓰다가 마침내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의 얼굴은 저 나쁜 사람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가서 간청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 보니 몇 해 전에 예수 님의 얼굴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었답니다. 알아보니 몇 해 전에 성전에서 거룩한 노래를 무르던 그 사람이 후에 시험에 빠지고 죄를 지어서 그 얼굴까지 변했습니다. 죄는 얼굴에서도 죄 값을 찾아냅니다.

 

 
 




39.해적 두목의 머리


옛날 로마 시대 어거스트 대제 때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 때에 아주 포악한 해적의 두목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악한 일을 많이 한 나쁜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이 놈을 잡을래 야 잡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는 현상을 걸었습니다. 누구든 그의 머리를 잘라 오는 사람은 많은 상을 주고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잡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어거스트 대제가 촌으로 순시를 하는데 어떤 건장한 사람이 왕 앞에 나와서 절을 하면서 하는 말이 "제가 해적 두목의 머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제게 어떤 상을 주시겠습니까?" 이 황제가 깜짝 놀라면서, "네가 과연 그의 머리를 가져왔느냐?"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무리를 가리키며 "이 놈이올시다"라고 하면서 왕 앞에 꿇어 엎드려서 "이 몸이 많은 죄를 지었는데, 이 죄를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이제 대왕의 충성된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니까 어거스트 대제는 그 죄를 용서해 주고 해군 장교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어떻게 충성을 다하는지 그 다음에 로마 제국의 해군 사령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올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입니다. 이 은사를 받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온전히 내 생활을 바꾸는 것입니다.<죄의 수사력>에서

 

 
 


 
40.칼빈과 윌리암 화렐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존 칼빈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런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이가 청년 신학자로서 그이가 청년 신학자로서 스물 일곱 살에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한 후에 그 이름이 온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이탈리아에 잠깐 갔었습니다. 갔다가 곧 돌아오려 했는데 그곳에 전쟁이 일어나서 돌아올 수가 없어서 부득이 지금 스위스 지방으로 돌아 자기 고향으로 오려고 제네바에 들려서 하룻밤 자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월리암 화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종교개혁 지도자가 젊은 청년 칼빈을 여관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지방도 종교개혁을 시작했는데 일군이 없으니 당신 같은 젊은이가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정(孤貞)한 사람이었습니다. 계획적이며 조직적 인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은 모든 일에 계획을 다 세우고 사는 사람이므로 다른 할 일이 있는데도 여기에 있으라고 하니 허락할 이치가 만무하였습니다.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야만 합니다. " 그랬으나 고 월리암 화렐은 계속 귄면합니다. 칼빈은 또 거절합니다. 마지막에는 이 화렐이 성이 났습니다. "나 보기에는 당신이 여기에 잠깐 들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장차 이것은 당신이 여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데 당신이 만약 그냥 간다고 하면 하나님 이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칼빈은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그 다음에는 거절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시면 제가 여기 좀 머무르면서 선생님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되어 그가 제네바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로 말미암아 그가 일생토록 제네바에 머물러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을는지 미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 뜻에 맞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도 공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습니다.<열매 맺는 생활의 비결>에서

 

 
 




41. 미련한 자
 
지혜라고 하는 말, 혹 지식이라고 하는 말은 성경 가운데 어떤 때는 같은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두 가지 말은 뜻이 좀 다릅니다. 지식이라고 하는 말은 아는 것의 총칭을 가리킨 말이고, 지혜라고 하는 말은 아는 지식을 바로 쓸 수 있는 지력(智力)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 많아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는 말을 듣는 이들 가운데도 미련한 사람들을 우리가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의사는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 후에 그는 아편 맞기를 시작하여 아편쟁이가 되었습니다. 지식은 많지마는 미련한 박사올시다. 보통 사람이 늙으면 경험이 쌓여서 지혜가 늘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서양 속담 가운데 "미련한 자 가운데도 가장 절망적인 미련쟁이는 늙은 미련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42.지식 팽창의 시대


옛날부터 지, 덕, 체의 세 가지 방면을 골고루 주는 것이 원만한 교육으로 생각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특별히 지육(智育)에 중점을 두어서 과학 교육에 치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지식이 아주 발전된 시대요, 또한 지식의 팽창 시대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우주에 대한 지식이 아주 크게 발전되었습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줄 알게 되었고, 우주 공간을 향해서 우주선을 발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는 달의 표면이 어떠한지 사진을 찍어다가 직접 볼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흔히 달 위에 계수나무가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토끼가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는 바와 같이 달 위에는 나무란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물도 없고, 공기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사람이 공간을 걸어다니는 체험도 얻어 봅니다. 아마 오래지 않아서 달나라에 가서 금과 은을 캐다가 부자가 될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자체에 대한 지식도 굉장히 팽창해져 갑니다. 오랫동안 깊은 바다 속은 인간에게 있어서 알 수 없는 신비의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바다 속에 깊이 들어가서 집을 짓고 여러 달 있으면서 바다 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은 지층을 연구하고 화석을 연구해서 인간이 세상에 나기 전에 지구의 역사가 어떠했다는 것을 찾아내는 지질학이란 과학도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
또 인간의 기록에 빠진 인간의 역사를 고고학이란 학문을 통하여 더욱 탐구하게 되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이 지구 자체에 대한 지식이 발전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 지구 위에 있는 여러 가지 생물에 대한 지식도 그러합니다. 현미경이 발명됨으로 인하여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던 새로운 미균(黴菌)의 세계가 사람의 눈에 분명히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인간은 인간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를 거듭합니다. 생리학으로 인간을 연구합니다. 인간의 육체를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 방면만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심리의 깊은 곳을 더듬어 내는 심리학도 점점 발전 중에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물질 자체를 분석해서 그 속을 연구해 보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들어보지도 못한 원자 과학이 발전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어느 면에서 그것이 사실인 줄 압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이와 같이 많이 획득한 지식을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20세기는 분명히 지식의 세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3.내가 문안에 있는 지 문 밖에 있는지?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가운데 화라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어렸을 때의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에 신문 배달을 하였습니다. 어떤 부잣집에 신물을 돌리러 갔는데 큰 철망 문이 있어서 신물을 멀리 던져 넣느라고 그 살창 문으로 머리를 쑥 내밀었습니다. 그 때 언뜻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머리는 문안에 있고 몸은 문 밖에 있으니 내가 문안에 있는 것인가, 문 밖에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그 생각으로 한참 있다가 다른 것은 잊어버렸던 모양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대문을 왈칵 열었습니다. 목이 대문에 걸려 하마터면 부러질 뻔하였습니다.
  그가 후에 하는 말이 "내가 문안에 있는지 문 밖에 있는지 몰랐지만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란 안에 다 들어가 있든지 밖에 온전히 나와 있든지 해야지 절반은 들어가고, 절반은 안 들어가는 것은 가장 미련한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미안한 말이지만 여러분 가운데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마는 머리는 교회에 있고 몸은 다른 곳에 있는 분은 없습니까? 그런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그 분은 매우 불행한 사람이올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시려면 온전히 영접하세요. 하늘 문이 열렸을 때에 온전히 들어가세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이 다 이 지혜를 배워서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이 교육주일에 참 지혜를 아울러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와 지식>에서

 

 
 




44.자연계를 통한 위로
 
여러분, 고요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자연계 가운데도 우리 심령을 가진 인간이 위로를 받게 하시려고 많은 준비를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아침해와 저녁 노을, 문자 그대로 천지(天地)만홍(萬紅)의 가을의 단풍, 봄 동산의 뭇 새들의 노래 소리, 가을 저녁에 요란히 들리는 뭇 벌레들의 자연의 음악, 온 땅을 은세계로 화하는 겨울 흰 눈, 높이 솟은 산악과 기암(奇巖)괴봉(怪峰)들, 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들, 이 모든 것은 우리 인간의 심령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이 거칠은 도시 생활에서 집만 보고 상점만 보고 살게 되니 마음이 거칠어지고 마음이 물질만 생각하게 되고 그 이상의 것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도회에 살수록 이따금 하늘을 보아야 하고, 달빛을 우러러보아야 하고, 캄캄한 밤의 별빛을 좀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대자연과 접촉을 해야 우리의 심령이 원만히 장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대자연의 품에 안길 때에 알지 못하는 중에 회복되는 것입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준비하여 주신 하나님의 위로를 잊지 마십시다.

 

 
 




45.힘을 주시는 위로


하나님의 위로는 말만의 위로가 아닙니다. 힘을 주십니다.
영어에 위로라는 말을 컴포트(comfort)라 쓰는데, 이 말은 힘이 같이 한다는 뜻입니다. 실상 이것이 하나님의 위로올시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데 우리가 어찌하여 항상 근심과 걱정에 싸여서 살며 어찌해서 낙망하며 어찌해서 자포자기하는 것입니까? 이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근심, 어떤 염려, 어떤 무거운 짐이 있든지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그 심령에 새로움을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그 심령이 안정과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내 백성을 위로하라>에서

 

 
 




46.폴링 목사의 기상 고백
 
작년엔 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나셨지마는 오랫동안 세계 면려회연합회 회장으로 계시던 프랜 폴링 박사는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 말씀을 세 번 외웠다고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내가 믿나이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여러분도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세요. 믿음으로 이 죄 많고 험악한 세상을 걸어갑시다. 하인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내가 믿나이다"하는 신앙의 고백을 우리도 다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다 그렇게 하십니까?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 방금 믿나이다 하고서는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른 보면 모순되는 것 같지마는 사람은 이런 때가 많은 줄 압니다. 우리도 다 믿나이다 하고 신앙을 고백하기는 하나 실상 생각하면 믿음 없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줄 압니다.

 

 
 




47.교회 안의 무신론자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도 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그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실상은 돈을 믿고 실상은 지식을 믿고 실상은 자기 재주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야말로 실제적으로 무신론자들이라는 비난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그대로 믿습니까? 그대로 믿으면 아무래도 행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라고 하셨습니까? 죽은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믿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48.소매치기 당한 믿음?


전에 어떤 시골 학생이 어렵게 서울에 와서 대학 시험을 치고, 자기 집에 내려가서 쌀과 곡식을 다 팔아서 등록금을 겨우 마련하여 학교로 갔습니다. 등록금을 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분명히 돈을 가지고 왔는데 없어졌습니다. 아마 버스 안이나 전차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모양입니다. 여러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믿음을 소매치기 당한 사람은 없습니까?

 

 
 




49.믿음 표


이런 얘기가 있어요. 어떤 교우가 한번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새 예루살렘성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높은 시온산 꼭대기는 새 예루살렘 성을 잘 지었는데 금강석과 홍보석과 녹보석과 가지각색 보석으로 장식한 성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왔구나." 한 걸음 두 걸은 점점 올라가 보니 큰문이 있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 하나로 된 문이었습니다. "야, 내가 새 예루살렘성에 왔구나"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두드리자마자 문이 공 열리더니 베드로가 척 내다봅니다. "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올시다." 그러니 베드로가 묻습니다. "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 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 표 가지고 왔느냐?" 이 분이 "네, 가져왔습니다"하며 안주머니를 만져 보니 믿음 표가 없어졌단 말입니다. 옆 주머니를 보니 거기도 없단 말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믿음 표는 없었습니다."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장사꾼이었던 이 분은 사정을 해보았습니다. "나에게는 믿음 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 년 이상을 다니고 했는데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것은 안 되네.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 표가 있어야지." "그런 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봤습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베드로 사도가 하는 말이 "아니, 장로 심여 년이나 믿음 없이 했으면 말썽 꾸러기였겠구먼, 그게 무슨 쓸데가 있어"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분입니다. 문을 꽝 닫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더랍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꿈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내가 믿나이다>에서

 

 
 




50.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쉬운 줄 압니다. 우리는 지금 남한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법적으로 말하면 남북한 전 한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올시다. 그러므로 남북한 전역에 대한 정치권이 우리 정부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유엔에서 그렇게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 정부의 통치권이 남한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왜? 삼팔선이 있으니까요. 이북은 우리 남한 정부의 원수 세력이 강제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우리 한국 정부의 통치권이 북한에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통일의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십니다. 우리 믿는 마음속에 계십니다. 누구나 믿음이 있는 이는 그 마음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다스리는 권세가 우리 생활 전역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왜? 우리 마음속에도 삼팔선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원수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볼 것이면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는 뜻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계시는 성경은 우리 생활의 전역을 주장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일부분만 주관하고 전역을 주관할 수가 없습니다,. 내 속에 있는 욕심, 정욕, 허영심, 고집, 향락 등이 성령의 지도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서

 

 
 




51.건설하는 한국
 
우리 한국에서도 역시 싸움은 계속됩니다. 삼팔선에서도 계속됩니다. 또 해안선에서도 계속됩니다. 멀리 월남에 가서 싸우는 우리 장병들이 있지마는 전선은 같은 전선입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내적인 건설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개발과 건설에 바쁜 모습은 우리 한국에 와야 볼 줄로 생각을 합니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사람들이 흔히 한국에 와서 보고 일하는 서울 사람들이라고, 건설하는 한국이라고, 이런 인상을 가지고 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방비, 한편에는 건설하는 중에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비롯해서 각 곳 공장도 건설할 수밖에 없고 고속도로도 만들 수밖에 없고 건물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비와 건설을 우리는 국가적으로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깊이 생각하면 세상 나라뿐이 아닙니다. 크게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도 이 두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한편에 방비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편에 건설이 있어야 합니다. 작게는 내 개인의 건설 혹은 내 가정의 기독교 건설도 역시 이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 편에 방비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건설의 면이 반드시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면을 항상 힘쓰기 위한 권면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52.평화 봉사단의 글


전에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서 한국에 나와 일하는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평화봉사단 피스코가 있는데, 그 봉사단원 한 사람이 경마장에 가서 경마 하는 것을 구경하고서 글을 써서 신문에 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국은 경마장의 경기를 즐기는 부유층 계급이 상당히 많지만 이 부유층 계급들이 아직도 빈곤 가운데 허덕이는 대중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려는 생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국도 경제가 점점 발전됨에 따라 외국과 같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물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컨대 이만큼 특별한 부유층에 있는 이들이 굶주리고 헐벗고 심지어 집단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이런 동포들에 대해서 얼마나 같이 살고자 하는 동포애를 발휘합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53.최대의 행복은 일


서양 속담에 "생이라고 하는 것은 만드는 가운에 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최대의 행복은 일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일할 것이 많은 나라에 났으니까. 황폐한 강산이 다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서 윤중제(輪中堤)를 백일만에 준공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스레 생각했습니다. 여의도 개발뿐이 아닙니다. 한강 개발뿐이 아닙니다. 또한 낙동강 개발뿐이 아닙니다. 전 삼천리 강산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군을 부릅니다. 일하는 이에게 최대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일하는 이에게 성공이 있습니다. 일하는 이에게는 이 다음이 남는 것이 있습니다.

 

 
 




54.카이로의 금자탑


제가 오래 전에 애굽 카이로에 들려서 금자탑 앞에 앉아서 한두 시간 묵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 5백 년 전에 금자탑이 이루어졌습니다. 4천 5백 년 전을 말하면 그 때는 세계 대부분 인류들이 아직도 굴속에 살던 땐데, 그런데 이들이 벌써 그렇게 웅장한 꿈을 꾸었고 꿈만 꾼 것이 아니고 일했습니다. 그래서 만고 불후의 금자탑을 지금까지 남겨 놓은 것입니다.
일해야 남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한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뿐인데 일하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이들입니다. 내 인격의 성, 내 기독교 가정의 성, 하나님 나라 성, 대한민국의 성 말입니다.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참 사랑이 필요합니다.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 믿음이 필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방비와 건설을 겸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방비와 건설>에서

 

 
 




55.그리스도의 열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 가 보면 어떤 사람은 성을 내고 큰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하고 회의를 소란케 합니다.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열매가 그 성격에 맺히지 못했습니다. 성격화되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옛날 신의주 제2교회에서 처음으로 교회 일을 볼 때에 어떤 분이 나에게 여러 제직 들을 소개하면서, 은근히 나이 많은 어느 집사 님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합디다. "그 집사 님은 열심 도 많고 대단히 좋은 분인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이따금 메어 때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그런 성질을 아직 버리지 못한 분이 없습니까? 성격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둘째는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특색은 성결, 정직, 근면, 공평, 화목, 책임감, 이런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빛이  되고 그래야 소금이 됩니다.<피택자와 그 책임>에서

 

 
 




56.팔레이의 시계 이야기
 
영국의 팔레이라는 사람의 유명한 시계에 대한 얘기를 아시지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분이 들에 산보를 나가다가 발에 부딪히는 것이 있어서 주워 보니 회중시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보고  하는 말이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시계와 같이 질서와 고안이 있는 물건을 보고는 이것은 누가 만들었나 하고 만든 이가 있음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대우주는 하나님의 큰 시계입니다. 다 돌아갑니다. 유성이 항성을 따라 돌아갑니다. 이 큰 시계를 만든 이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큰 시계를 만든 이는 필연 전능하신 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57.인간 속의 종교적 본능


미국에 가 있을 때에 서커스 구경을 가끔 갔었는데 가보면, 짐승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짐승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당 지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습니까? 아마 못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란 아무리 야만인이라고 해도 아무리 미개한 아프리카의 어디나, 남양군도의 어디라고 해도 자기 있을 집만 짓지 않고 신전을 반드시 지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인간이란 그 속에 영혼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전에 안 믿는 이와 만나서 한 번 얘기할 때 그가 하는 말,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밤에 몰래 삼팔선을 넘어 올 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속에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종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58.인간 최고의 본능


우리 인간에게는 종교적 본능 외에도 여러 가지 본능이 있지요. 본능이 있으면 그 본능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베고프면 먹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어린애가 젖을 빨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젖꼭지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다 사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혼자 살기를 싫어해요. 그래서 여러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점점 자라서 17. 8세가 되면 없던 본능이 나타납니다. 성적 본능이 나타납니다. 그 성적 본능도 만족시킬 만한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본능이 있으면 그 본능을 만족시킬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이 종교적 본능이 있는데 이 본능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은 없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계시니까 우리 인간에게 이런 본능이 생긴 것입니다. 햇빛이 위에 있으니 풀과 나무가  위를 향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이런 본능이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 속에 영적 기갈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신 까닭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서

 

 
 




59.불 신앙의 시대
 
감리교를 처음에 창립한 요한 웨슬레가 젊어서 아메리카에 전도를 갔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별로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서양에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같이 탄 모라비아 선교사들을 가만히 보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같은 풍랑을 만났지만 모라비아 선교사들의 믿음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이 사회가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이 시대를 과한 시대라고 합니다. 원자시대라고도 합니다. 우주 시대라고도 합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이 시대는 신앙의 시대는 아닙니다. 불 신앙의 시대입니다. 동시에 아낙 자손 같은 의의 원수들이 많습니다. 큰 원수가 많습니다. 무신론이 팽창한 시대입니다. 유물론이 팽창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론(死神論)이 대두하는 시대입니다. 세속주의, 허무주의의 시대요 성의 혁명 시대요, 상황윤리를 말하면서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을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때에 큰 방패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악마의 모든 화근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방패가 커야 모든 시험을 이기고 이런 시대에서 승리 적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큰 축복도 받고 또 주님을 위하여 큰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60.큰 믿음


믿음의 그릇이 커야 생명수를 듬뿍 마십니다. 축복을 풍성히 받습니다. 히브리 11장을 읽어보면 아벨과 에녹을 비롯하여 신앙의 용사들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한 신앙의 영웅들의 생활과 그 위대한 업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의 생활과 업적을 기록해 내려가다가 33-34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의 진을 쳐서 물리치기도 하며."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큰 일을 하였습니까? 그들의 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7장 5절에는 제자들이 예수 님께 나와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간절히 부탁한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기도가 필요할 줄 압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십니다. 그 지혜도 그 능력도 크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7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때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첫 신조 그대로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러분, 어떠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무엇이나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소망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 예수 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능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탐관오리도 하나님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세리와 같은 죄인들도 하나님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이로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약하고, 아무리 내가 죄가 많고, 아무리 전에 실수가 많았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온전히 회개하고 내 몸을 바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시고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61.헬렌 켈러의 등불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믿음이 적은 자라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자로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예수 님의 말씀을 계속 들었습니다.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그는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 후에 문자 그대로 반석 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3천 명을 회개시켰습니다. 큰 신앙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믿음이 적어서 염려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것 없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늘 기억하세요. 성경을 읽으세요. 기도를 힘쓰세요. 그러면 적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헬렌 켈러는 소경이요 귀머거리요 벙어리입니다. 그러나 아주 유명한 여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분이 일찍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에게는 나의 가는 길이 어두운 것 같으나 나는 내 마음속에 신비한 빛을 가지고 갑니다. 믿음이라는 강한 영적 탐색 등이 내 길을 비추어 줍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믿음이란 강한 등불이 있어서 그의 길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믿음은 등불이올시다. 믿음의 등불이 있어야 세상을 바로 살 수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에서

 

 
 




62.청지기 역할


청지기는 모든 일에 주인의 뜻을 살펴서 그 뜻에 순복(順服)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올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면 무엇이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맡긴 것을 바로 살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주도 기술도 지식도 지위도 재물도 모든 것을 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63.불견정성(不見精誠)


가령 여기에 장사하는 두 분이 있다고 합시다. 추석 대목에 장사를 잘해서 두 분이 10만 원씩 남겼다고 합시다. 한 분은 돈 10만원을 앞에 놓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석을 기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10만원을 새로 맡기셨고 성경에 보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했는데 내가 이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는데 내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잘 생각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쓸 것을 작정하고 씁니다.
다른 한 분은 10만원을 놓고서 생각하기를 "운이 좋아서 10만원이 생겼구나. 내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남은 텔레비전이 있는데 우리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텔레비전을 사야 되지 않겠나? 새로운 천이 많이 나오는데 새로운 양복을 해 입어야 되지 않겠냐? 집사람이 옷을 해달라는데 새 옷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딸은 매일 미니 스커트 해달라고 그것도 한 벌 해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다 쓰고 나니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마침 그 다음에 주일날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봅니다. 헌금시간에 되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 찾아보니 어디서 구겨지고 찢어진 10원 짜리 하나가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옳다 됐다. 이것을 쥐고 있다가 얼른 집어넣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겠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가지 좋은 것은 헌금 주머니가 깊숙해서 얼른 넣으면 어느 누구도 못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못 보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어떤 때는 내 귀에도 "아무개 할머니는 부자 집 할머니인데 가만히 보니까 십원짜리만 넣어요." 이런 이야기가 들립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보, 남은 얼마를 헌금하든지 당신이나 하나님 앞에 헌금을 바로 하세요." 속담에 불견정식(不見淨食)이란 말이 있지요. 음식이란 보지 않으면 정한 음식이란 말입니다. 불견정성(不見精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지 않으면 다 정성으로 넣는 줄 알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 남의 것을 보려고 합니까? 꼭 같이 10만원을 남겼습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선한 청지기며 누가 악한 청지기입니까?
재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재주도 그렇습니다.

 

 
 




64.내가 받은 재주


꼭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주를 가지고 거룩한 그림을 그립니다. 한 번 보아서 사람의 심령을 높은 자리로 끌어올릴 만한 품위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꼭 같은 재주를 가지고도 천한 그림을 그립니다. 꼭 같이 좋은 성대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좋은 음성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은 그 음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한 번 들으면 듣는 사람의 심령을 높은 자리로 승화시키는 귀한 노래를 부릅니다. 꼭 같은 음성을 받았지만 어떤 사람은 천한 유행가밖에 부를 줄 모릅니다.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가 되려고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내가 받은 선물을 쓸 줄 알아야 됩니다.<선한 청지기>에서

 

 
 




65.천문학을 다 배운 학생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하나가 부모와 함께 어떤 집의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마침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유명한 천문학자였습니다. 학생은 그가 누군 지를 모르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은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천문학을 공부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이 "나는 작년에 벌써 천문학을 다 배웠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과 어른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면 다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66.공자의 배움 강조


우리 동양의 제일 큰 스승은 누구나 공자라고 할 것입니다. 이 공자의 생활과 교훈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배우기를 힘썼고 또 배우라고 강조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논어(論語) 첫 장 첫 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라는 뜻입니다. 공자 님에게 있어서 제일 기쁜 일은 배우고 익히는 일이었습니다. "박학이 독지하고 절문이 근사하면 인재기중이라(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했습니다. 넓게 배우고 독실히 뜻을 가지고 간절히 묻고 생각을 가까이 하는 그 가운데 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혹 이런 말도 있습니다. "민이호학 하문불치(敏而好學 下問不恥)", 민첩히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래 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말하는 뜻입니다.
공자는 70생을 다 산 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15살 때에 학에 뜻을 두고 30살에 학에 섰다고 할 수 있고 40살에 이르러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50살에는 천명을 알게 됐고 60살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서 무슨 알이든지 바로 들을 줄 알게 되었고 70살에 나서야 마음에 원하는 대로 구도에 어그러지지 않더라." 이것을 보면 공자는 일생 동안 계속해서 공부하고 수양한 분입니다. 공자 같은 이도 그렇다면 우리 범인은 얼마나 더 공부하여야 하겠습니까?

 

 
 




67.4년제 계약서


특별히 오늘날 20세기에 사는 한국 사람의 견지에서 볼 것이면 우리는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발전하고 변천하는 과학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을 날마다 계속해서 배우지 아니하면 시대에 떨어집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미국의 대학에서는 교수를 채용하는 데 4년 제 계약서를 쓴다고 합니다. 4년 동안 교수를 시켜 보고 그가 계속해서 장성하는 사람이면 4년간 계약을 더 연장하고 그렇지 못하고 교수의 지적인 향상발전이 없으면 계약을 정지시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수가 자리를 지키려고 하면 계속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68.평생 교육


아브라함 링컨은 학교에는 몇 달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자습으로 공부하여 마지막에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뜻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국의 윌리엄 케리 같은 사람은 양화 직공으로 있었지만 라틴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신학을 배워서 결국 유명한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실업가가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지 아니하면 현대 실업계에서 낙후합니다.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지런한 것입니다. 더 힘써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천하에 힘쓰지 않고 되는 일은 없습니다. 힘쓰고 부지런만 하면 연령 같은 것은 별로 큰 상관이 없는 줄 압니다. 나이 많아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노령에 악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유명한 정치가 케토 같은 사람은 86살에 헬라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문예부흥 시대의 푸주타 같은 사람은 70살에 라틴어를 처음 배웠다고 합니다. 우리 영락성서 학원에 가보니까 60세 이상의 학생이 더러 있었습니다. 대단히 좋게 보았습니다. 나이 많다는 것으로 구애될 것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무식한 교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꼭 공부하세요.

 

 
 




69.배움의 목적


배우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 자신이 배워서 수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것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누구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만 되면 안 됩니다. 교사도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 미국의 한 청년에게 그의 삼촌이 죽으면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면서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저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매년 수천 불씩 학비를 대주어라." 그러니까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매년 수천 불씩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청년은 그 후부터 대학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한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대학에 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70살까지 계속했습니다. 학사 학위를 열 개도 더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박사 학위를 열 개나 받으면 무엇을 합니까?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르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70.암글 교인과 숫글 교인


이스라엘에는 갈릴리 바다와 사해 두 종류의 바다 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가면 물고기가 많이 있고 사해에는 고기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갈릴리 바다는 요단강 물을 한편으로 받고 다른 한편으로 흘려보냅니다. 사해는 요단강 물을 받기만 하고 주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인 물이 썩어서 죽은 바다 가 된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공부만 하고 쓰지를 않으면 썩어지고 맙니다.
옛날 분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아무개는 공부를 많이 해서 암글이 되었다." 암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숫글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도 암글 교인이 되지 맙시다. 숫글 교인이 됩시다. 배우기도 하고 가르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71.마포삼열 목사의 교육열


제가 숭실대학에 다닐 때에 한국의 초대 선교사 중 한 분인 마포삼열 목사의 회갑연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어도 한가지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그 마 목사님이 평양을 중심으로 전도를 하면서 무려 250개의 학교를 세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세우고는 이어서 학교를 세웠습니다. 아소 큰 도시에는 중학교를 세웠습니다. 평양에는 대학교도 세우고 신학교도 세웠습니다. 이리하여 기독교로 하여금 한국 문화에 큰 공헌을 끼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 좀더 시간과 재산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직접 간접으로 우리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교육에 좀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국 교회가 우리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 마땅히 공헌할 것을 공헌할 수 있을 줄 압니다.
교육,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국가나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 최대의 봉사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72.예수를 먼저 배우라


중용에 "물유본말하고 사유시종이라"(物有本末 事有始終)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마지막이 있다는 말입니다. 요새 우리 한국에서 우위성이라는 말이 더러 씁니다. 영어로 소위 프라이오리티(Priority)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먼저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할 것이 많지만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배울 것이 많은데 무엇을 먼저 배울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먼저 배우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먼저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배우고 가르치라>에서

 

 
 




73.세계적 언어 '할렐루야'
 
여러분, 마음으로 모두 할렐루야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또 항상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할렐루야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브라질에서 있은 목사 수양회에 갔을 때에 어떤 브라질의 목사를 만나서 한 가지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저는 브라질 말을 잘 모르니 영어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이가 듣더니 영어를 잘 모르는지 갑자기 손을 들면서 할렐루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손을 들고 할렐루야라고 대답했지요. 할렐루야는 세계적 단어올시다. 할렐루야를 부르면 누구나 알아듣습니다. 또 천국의 방언이기도 합니다. 아마 천국에 가서도 이 할렐루야는 그냥 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꼭 배우시기 바랍니다.
제가 전에 들으니 어떤 분이 말할 때에, 평양에는 부벽루가 있고 남원에는 광한루가 있는 것처럼 하늘에는 할렐루야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다락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한 뜻을 다 배우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라고 하는 뜻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는 뜻입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찬양하라 하는 뜻입니다. '야'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받는 깊은 인상은, 성경은 찬송으로 충만 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시편은 전부 찬송의 책이올시다.

 

 
 




74.찬송의 힘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라." 왜? 찬송을 통하여 내가 더욱 은혜를 받습니다. 찬송을 하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불평과 불만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시험과 유혹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악한 마귀가 놀라서 도망을 갑니다. 찬송을 하면서 일하게 되면 일이 더 잘 됩니다. 찬송을 하면서 밥을 지으면 밥도 더 맛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촌에서 크리스마스 저녁예배에 참석했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순안 북편에 작은 교회가 다섯이 있는데 그 교회들을 목사 한 사람이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날은 그 가운데에 있는 성태 교회에 다섯 교회가 다 모여서 축하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어린 아이 때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여러분이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자모산성에서 믿는 한 분이 내려와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이 말이, 자기 동네에서 믿는 이가 자기 혼자밖에 없어서 예배를 보기 위해서는 언제나 혼자 다니는데 그 교회까지 거리가 한 30리 길이 된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캄캄하고 추워서 어떤 날은 무서운 생각이 나곤 하였답니다. 그때마다 찬송을 부르면서 올라가면 무서운 생각이 다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행로가 대체로 밤길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며 인생행로를 걸으면 두려운 마음이 없어집니다. 찬송을 하면서 길을 가면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찬송은 길가는 나그네에게 날개를 달아줍니다. 독수리처럼 날아서 인생행로를 갈 수 있습니다.

 

 
 




75.찬송의 구원역사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왜? 찬송은 나를 도와줄뿐더러 다른 사람도 도와줍니다. 찬송을 듣고 구원을 얻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전에 미국에 유명한 무디 부흥사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다니면서 항상 노래를 불렀던 쌩키라고 하는 음악가의 찬송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의 빌리 그래함 같은 이의 설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와 항상 같이 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비빌리쉐의의 독창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은 줄 압니다. 우리 교회에도 교인들이 들어와서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고, 특별히 성가대의 찬송을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저에게 아서 그런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찬송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다른 사람의 심령을 구원합니다.

 

 
 




76.차임벨과 천막 찬송


우리 교회에서 들리는 차임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 옆의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에 우리 교회에서 나는 차임 소리를 듣고, "내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라고 저에게 편지한 사람도 있습니다. 찬송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제가 늘 잊을 수 없는 것은, 6·25 사변 시에 우리가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에 제가 이른 아침에 어느 집에 심방 갈 일이 있어서 부소산 기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산기슭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추운 겨울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그 길을 지나가는데 그 천막들 속에서 찬송 소리가 들립니다. 이 천막에서도 들리고 저 천막 속에서도 찬송 소리를 들을 때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그 찬송 소리를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많이 있었을 줄로 압니다.
  감사와 기쁨과 찬송의 생활을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 전도가 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해야 합니다.

 

 
 




77.찬송 부르는 교수


사실인지 모르나 제가 옛날에 프린스턴 신학교에 갔을 때에 거기에 이런 얘기가 돌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떤 교수가 전에는 찬송을 열심히 부르지 않더니 요즈음은 아주 열심히 부른다고 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되어서 찬송을 열심히 부르시게 되었습니까? 하고 누가 가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제가 몇 해 전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높은 산 위에 있는 천성을 가보았지요, 거기에 큰문이 있어서 그 문을 두드리니 문이 열리면서 베드로가 척 내다보며 하는 말이, "아무개 박사 왔나? 당신은 신학은 잘 알고 잘 가르치는데 그 신학은 우리 천당에서는 별로 쓸 떼가 없네. 천당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찬송을 부르는 것인데 당신은 아직 찬송을 잘 못 부른다고 하니 가서 찬송을 좀더 배워 가지고 오게" 하면서 문을 꽝 하고 닫고 말아서 깨보니 꿈이었더랍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지식 같은 것은 다 쓸데가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은 찬송을 잘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찬송을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78.영적 제사로서의 찬송


전에 감리교를 처음으로 세운 요한 웨슬레 목사가 찬송을 항상 강조하면서, 찬송 부르는 것에 대하여 몇 가지 주의 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첫째는 곡조대로 부르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르기는 하나 곡조대로 안 부릅니다. 그러니 맞지를 않습니다. 둘째는 가사 대로 부르라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 대로 부르라는 말입니다. 내가 들으니 어떤 할머니는 "웬 말인가 내 형제여"라는 찬송을 "웬 말인가 내 신세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또 셋째는 누구나 다같이 부르라. 교회에서 찬송 부를 때에는 누구나 다 불러야 합니다. 넷째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부르라. 어떤 사람은 부르기는 하나 모기 소리만 하게 부릅니다. 다섯째는 예모 있게 부르라. 되는대로 부르지 말고 또 손바닥 치고 떠들며 부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섯째는 같이 시작하고 같이 그치라. 이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남들 다 시작했는데 나중에 시작해서 다 끝났는데 찬송합시다 하고 부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일곱째는 영적으로 하나님께 부르라. 찬송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는 것이므로 영적인 제사로서 불러야 합니다.

 

 
 



79.무언의 감동인 열매
 
제가 일전에 다른 교역자에게 들으니 어떤 가구 상을 하는 분이 새로이 교회에 나오는데,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알아보니 가구 상을 하면서 우리 교회 어떤 젊은 집사와 접촉을 하다가 그 젊은 집사의 모습, 행동, 말 같은 것에 무언의 감동을 받아서 나도 저이처럼 예수를 믿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자연히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한 복음 12장 24절에 이와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에 열매 맺지 않는 이유를 먼저 설명하고 열매 많이 맺을 수 있는 비결을 계속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까닭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자아 중심주의의 이기적 생활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많은 열매는 맺으려면 나는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살아 계셔야 하고, 범사에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우리가 깊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80.복음의 밭과 일군


한국 사회는 온갖 부정과 부패와 싸우면서 방종이 없는 자유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온갖 힘을 쓰고 있습니다. 도덕적 혁신의 원동력이 될 만한 참 종교를 대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한국의 밭은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음의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 금요일 오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구내에 기독학생회관의 봉헌식이 있었습니다. 이 기독학생회관은 우리 교회 최창근 장로님을 건축위원장으로 하고 그 밖에 김덕영 권사 님과 실업가들 여러분들이 정성을 모두 어서 아름다운 집을 공과대학 구내에 짓고 봉헌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저도 잠깐 참여했는데 그 때 서울대학교 총장과 공과대학 학장이 다 나오고 여러 교수들이 다 나와서 식을 거행하는데 총장과 학장은 특별히 이와 같은 기독학생회관을 지어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국립대학이 기독교를 환영합니다. 학원의 넓은 밭에 곡식이 무르익을 것입니다.

 

 
 



81.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느낌


제가 약 열흘 전에 광주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광주 제일교회의 창립 기념식과 새 예배당의 봉헌식이 있었는데 참예(參詣)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잠깐 다녀온 것입니다. 광주에는 우리 공군 제1전투비행단이 있었습니다. 그 비행단의 단장과 부단장과 군목이 저에게 찾아와서 바쁜 중이지만 광주에 이왕에 내려왔으니 꼭 그들 비행장에 들려서 여러 비행사들에게 좋은 말을 한 시간만 해주고 가라는 간절한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시간에는 여러 비행사들이 연습하는 것도 다 중지하고 비행사 전체가 다 모였다고 합니다. 또 그이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듣는지, 그들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라고 할 수 있는데 독수리에게 먹이를 먹이는 감이었습니다.
한국 군대의 넓은 밭에 곡식이 무르익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한국 농촌의 밭, 한국 실업계의 밭 할 것 없이 한국의 밭은 문자 그대로 곡식이 무르익었습니다. 일군을 부릅니다. 여러분은 그 음성을 듣습니까?

 

 
 




82.기도하며 일하는 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전에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에 그와 가까운 친구 수도사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서 나서게 될 때에 그 수도사는 루터와 서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형님은 나가서 실제로 일하세요. 나는 수도원에 남아서 형님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기도할 터이니 어서 나가서 열심히 일하세요." 그래서 루터는 나서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의 친구는 수도원에 앉아서 항상 기도합니다.
그런데, 몇 해 후에 기도하던 수도사가 꿈을 한번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 보니 넓은 들에 곡식이 무르익었는데 그 가운데 추수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이 낫을 가지고 그 넓은 들에서 추수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저 한 사람이 누군가? 가까이 가서 보았습니다. 보니 다른 이가 아니고 자기 친구인 루터였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많은 추수를 어떻게 형님 혼자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얘기를 하다가 깼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루터의 친구가, 내가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나도 나가서 같이 일해야겠다 하고는 같이 일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선교사업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여러분 자신도 같이 일해야 합니다. 기도만 하고 일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에서

 

 
 




83.손양원 목사님의 감사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나서 손양원 목사님의 아들 형제가 공산당원에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의 장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목사님을 위로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 때 손 목사님은 장례식에 나와서 여덟 가지로 감사를 했습니다. 한 집안에 순교가 하나만 나도 감사한 일인데 우리 집안에 둘이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구약에 보면 맏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나는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라고 했는데 이 어린것들의 피가 앞으로 교회의 종자가 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등등 그는 여덟 가지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올시다.

 

 
 




84.가벼운 감사 바구니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도 들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한번은 어떤 교회에 천사 둘을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천사 둘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주어 내려보내면서 한 천사는 그 교회에서 무엇을 구하는지 그 구하는 것을 다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고 다른 한 천사는 그 교회에서 감사를 얼마나 하는지 그 감사하는 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 두 천사가 교회에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 한 천사는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무거워 겨우 올라오는데 한 천사는 가쁜 한 것을 가지고 올라옵니다. 간구(懇求)하는 바구니는 가득한데 감사하는 바구니는 거의 비었단 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감사의 바구니가 가득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85.감사하는 하늘의 꽃


전에 어떤 성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하늘에 올라가면 천사가 그 감사를 받을 때 다 아름다운 장미꽃으로 변한다. 그래서 땅에서 드리는 성도의 감사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나라를 아름답게 꽃을 장식한다." 오늘 우리 교회가 하늘나라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아시아 복음대회에 가니까 회교 나라에서 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파키스탄도 회회교 나라, 아프가니스탄도 회회교 나라, 말레이시아 자체도 회회교 나라입니다. 회회교를 설립한 마호메트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한번 꿈에 천사를 보았는데 머리가 7만이요 매 머리에 얼굴이 7만이요 또 매 얼굴에 입이 7만이요 매 입에 혀가 7만이요 매 혀가 7만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더라." 이렇게 하늘은 찬송과 감사가 충만한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은 감사와 찬송으로 충만하면 이 교회에 하늘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합시다.<신앙생활과 감사>에서

 

 
 




86.닫힌 문이 열리도록
 
사도 바울이 첫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 돌아와서 보고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전도와 일과 봉사의 열린 문이 있으며 이에 반해서 닫힌 문이 있습니다.
지난번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아시아 남태평양지구 복음화 대회에서 특별히 이 사실을 실감하였습니다. 전도와 봉사의 문이 열린 나라가 있고 닫힌 나라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나라 한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홍콩, 싱가포르, 오스트렐리아, 뉴질랜드 등은 전도와 봉사의 문이 크게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문이 닫힌 지역의 수도 상당히 많은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 중국본토, 버어마 등에는 공산주의에 의해 전도와 봉사의 문이 닫혔습니다. 네팔은 불교의 나라로, 아프가니스탄은 회회교 국으로 전도의 문이 닫혔습니다. 네팔에서는 예수 믿고 세례 받으면 2, 3년 징역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개종하면 사형 감이라고 합니다. 말레이시아는 40퍼센트가 중국계요 60퍼센트가 말레이인인데 중국인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으되 말레이인은 회회교 외에 딴 종교를 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나라의 교회는 다 중국인들의 교회입니다. 전도의 문이 닫혔습니다. 인도나 실론 등에는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나 아직도 사회적으로 인도는 국교라 할 수 있는 힌두교가 절대 다수이고  실론은 불교가 절대다수이며 파키스탄은 회회교가 절대다수이므로 전도의 제약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번 대회에서는 특별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항상 이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어제 신의주학생의거 사건을 기념하는 반공 탑을 자유센터에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북에 이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87.북한의 세포조직 예배


최근에 북한 연구 단체에서 나온 《북한 총감》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에 관해 자세히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종교적 상황을 찾아보았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이북에는 6·25동란 이후 공개적으로 예배하는 곳이란 한 곳도 없는 모양입니다. 이북에 기독교동맹이라는 것이 있으나 사실은 공산주의의 이용기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북에는 기독교 활동이 전혀 업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1957년 북한에서 인민의회 대의원을 선거할 때 용천에서 일어난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누구나 다 투표 장소에 나가야 하는데 약 2천 명이 투표에 불참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를 캐 보았습니다. 또 주일에는 협동종장 역시 결석자가 많은 것을 알아내고 비밀경찰 3백 명을 동원하여 결석자의 집을 뒤져보았으나 한 사람도 집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뒤를 밟아 찾아가 보니 걸음이 잦지 않는 외딴 집에 3명 혹은 5명씩 모여 예배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한 사건은 이만화 목사라는 분이 다른 곳에서 용천에 이사해 와서 농사 지으면서 그곳 협동 농장에서 노역을 하고 있었는데 그분의 지도 아래 셋 혹은 다섯 명씩을 단위로 세포조직을 하여 횡적으로만 관계를 맺게 하고는 주일이면 몰래 모여서 예배하는 조(組)가 5백 조 이상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비밀경찰이 이 사실을 알아내어 간부들을 전부 처형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북에서는 그런 실정에서 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남한에서는 어떻습니까? 자유로이 찬송을 부를 수 있고 마음놓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배 참석을 게을리 함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88.박천의 찬송가 사건



한편 박천에서는 소위 찬송가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인민학교 여 교원 한 분이 주일이면 자기 집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산수, 국어, 노래 등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에게 찬송도 지도했다는 것입니다. 찬송 곡도 김일성 노래에 맞게 편곡을 해서 가르쳤는데 그 소식이 공산주의 간부들의 귀에 전해지자 그 여 교사를 비롯해서 그곳에서 비밀리에 예배드리던 많은 수가 숙청을 당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그런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도 아동들을 신앙으로 지도하려고 하는데 우리 남한에서는 주일학교 교사들이 얼마나 열의와 성의를 가지고 아동들을 지도하고 있습니까?

 

 
 




89.선천의 김 신부 사건


 선천에서는 김 신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곳에 돌아다니는 웬 노인 한 분이 만나는 사람마다 향해서 미친 말만 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고는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남쪽으로 손짓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떤 일로 인해서 비밀경찰이 수상히 여기고 조사를 해보니 그 노인은 일찍이 모 지방에서 신부의 신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탄로 났습니다. 그이를 비롯하여 그이와 가까운 친분이 있는 여러분이 총살형을 받게 되었는데 사형 직전 이 노인은 똑똑한 음성으로 "주여, 이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이렇게 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하는 기도를 남기고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면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90.원산의 십자가 사건


원산에서는 소위 십자가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 농장에서 일을 마친 후 공동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옷을 벗다가 어떤 이의 몸에서 십자가가 떨어졌습니다. 이분 역시 천주교인임이 드러났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하여 원산과 함경남도 일대에 많은 천주교인이 있는 것을 알아내어 핍박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이처럼 문이 닫혔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그들이 숨어서 예배드리며 전도와 일과 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로 후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격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91.성화 '세상의 빛'


계시록 3장 20절의 '문'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 말씀을 기초로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 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편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한편 손으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밖에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올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으로 표현되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를 기억하시겠지요. 목자가 양을 찾습니다. 여인이 잃은 돈을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하여서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 기쁨 등, 때로는 친구의 권면(勸勉)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의 바깥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열어야 하며 다른 이가 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음 문의 주인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주님의 문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어서 주님께서 마음속에 들어오시어 자신과 같이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나 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멸망의 책임도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열린 문과 닫힌 문>에서

 

 
 




92.무명 용사들의 공헌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약 15분간 남쪽으로 걸어가면 거기 조그마하게 두드러진 곳이 있습니다. 사방에 소나무를 뺑 돌아 심어서 그 속에 들어가면 조용하고 누가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시간이 있으면 그 곳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조그마한 산은 다른 게 아니고 무명 용사의 무덤이올시다. 미국 독립전쟁 때에 큰 전쟁이 그 프린스턴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미국의 독립군과(그 때는 영국과 싸울 때입니다) 영국군인들이 한꺼번에 죽어서 적군이나 아군의 시체를 모아 보니 조그마한 산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나무를 잘 심어 놓고 그 안에다 돌로 무명 용사의 무덤이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저는 그 곳에 가서 조용히 머리를 숙일 때마다 제 마음 가운데 큰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미국의 번영과 축복과 이 나라가 이렇게 자라게 된 것은 배후에 이런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도 많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이 무명의 용사들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나라나 교회나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나 우리 교회도 과연 축복 받는 나라와 교회가 되려고 할 것이면 이런 무명의 용사가 많아야 합니다.
강원도 일부에 공비가 침투해서 소탕 작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신물을 펼 때마다 자세히 읽어봅니다. 감격한 것은 우리 군경과 예비군들이 용감히 나라를 위해서 싸울뿐더러 국민들도 그저 공비가 척 발견만 되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곧 신고를 해줍니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 하나 하나가 무명의 반공의 용사라고 하는 것을 제가 알게 될 때에 마음은 아주 감격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됩니다. 그러면 교회도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북 통일도 분명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3.스파르타의 성벽


전에 헬라에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있었는데 그 때에 스파르타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성을 쌓고 사는데 이 스파르타 나라에 가니까 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나라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성이 있는데 당신 나라는 왜 성을 쌓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 나라 사람이 "우리 스파르타 나라는 우리 국민 하나 하나가 나라를 지키는 한 벽돌이올시다, 성이올시다."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잘 됩니다. 교회도 그와 같은 사람으로 구성이 되면 부흥됩니다.  <천국과 무명용사>에서

 

 
 




94.구원 역사의 책


성경은 참 이상한 책이올시다.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할지라도 한 10여 년 지나게 되면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벌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근 이천 년 전에 쓰인 책인데 지금까지도 제일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올시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제일 많은 비난을 받고 공격과 박해를 받아오는 책입니다. 옛날 셀서스라고 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18세기의 볼테어 같은 사람 그리고 20세기에 와서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항상 공격과 박해의 대상이 된 책입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 교회를 핍박할 때에는 믿는 사람만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도 찾는 대로 거두어서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95.세 가지 지혜를 주는 책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16세기에 윌리엄 틴테일이라는 사람은 처음으로 성경을 영국 말로 번역한 죄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누구든지 이 새 번역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한 달 이상의 금고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오늘날 문명이 더 발전되었다고 하는 20세기에 와서도 잘 아시는 북한 같은 데서는 이 성경을 자유로이 내놓고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위 공산 국가에서는 아직도 성경을 자유로이 출판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많은 박해를 받는 책이지마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경은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올시다.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1천 2백여 다른 방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는 책입니다. 또 각계 각층의 사람이 읽습니다. 학생도 읽고 군인도 읽고 철학자도 읽고 정치가도 읽고 실업가도 읽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각계 각층이 모두 성경을 읽습니다.
왜? 그 대답이 우리가 읽은 이 구절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간단히 말하면 세 가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부터 생각합시다.
첫째로 이 성경은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이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96.강도를 변화시키는 성경

이탈리아에 시실리라고 하는 큰 섬이 있습니다. 어떤 권서가 밤길에 산골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돈을 다 뺏기고, 등에 지고 가던 성경책까지 뺏어서 모닥불 속에다 넣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권총을 대고 넣으라고 하니, 집어넣으려다 권서가 얼른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책을 불 속에 넣겠는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 말이 있는지 모를 것이 아니요? 그러니 내가 여기서 한두 마디만 읽고 불에 넣겠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권서가 성경을 척 펼쳤더니, 시편 23편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읽었습니다.
  강도가 다 듣더니 "아하! 그것 이상한 말이 다 있구먼. 그 책은 여기 놓으시오." 합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들면서 "여기서도 한 마디 읽고 넣읍시다"하고 성경을 펼치니 산상보훈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는 사람이 복 받는다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강도는 "아하! 그것도 이상하니 그것도 넣지 마시오." 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책을 다 넣지 말라고 하더니 자기가 다 싸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그 권서는 돈도 잃고 책도 다 잃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여러 해 후에 어떤 점잖은 사람 한 분이 그 권서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손님이 "당신은 언젠가 산에서 강도를 만났던 일을 기억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니까 "그 강도를 기억합니까? 제가 바로 그 강도올시다. 제가 당신의 성경책을 뺏어 가지고 가서 좀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성경책을 읽는 가운데 저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뿐 아니고 저는 멀리 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도가 변해서 목사가 되게 하는 책이 성경책이올시다.

 

 
 




97.감옥 속에서 신약 백 독


위대한 애국자요 교육자인 남강 이 승훈 선생을 기억합니다. 105인 사건 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으면서 신약 백 독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책은 안 읽고 신약 백 독을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었음이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될 때에 우리 양심은 바른 양심이 됩니다. 바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에 어떤 책을 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사다 두기는 하지만 읽지를 않아서 성경 위에 먼지가 많이 쌓여있다 더라" 하는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어떤 글귀가 있는고 하니 "만일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 성경책 위에 있는 먼지를 일시에 떤다고 하면 먼지가 너무 많아서 한 3, 4일 동안 해가 가리워 질 것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더랍니다. 여러분의 성경은 어떻습니까?<구원에 이르는 지혜>에서

 

 
 




98.새긴다는 뜻
 
우리 한국에는 이런 풍속이 그렇게 많지 않지마는 외국에는 아직도 상당히 있는데 특별히 해병들이나 어부들 가운데 자청(刺靑)이라고 먹으로 살을 떠서 팔이든지 손잔 등에 그림도 그려놓고 글자도 새기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여기 새긴다는 말도 그 뜻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너 곧 시온을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쓴 것이 아니라 새겨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워지지 아니합니다. 그냥 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뜻입니까? 몇 가지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손바닥에 새겼으니 언제나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하여 우리가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기념비는 보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잊지 않고 어떤 사람을 기억하기 위하여 동판에다 그 사람 이름을 새겨 넣는 풍속도 혹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항상 보는 것은 아닙니다.

 

 
 




99. '풔겟 미 낫'


미국 사람들은 조그만 어느 꽃을 '풔겟 미 낫(forget Me Not)'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를 잊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자기 애인에게 편지할 때에 혹 그 꽃을 따서 같이 보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꽃도 금방 시들고 마는 것입니다. 반면에 손바닥에 새긴 것은 언제나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잊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이렇게 잊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십니다. 사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지었으므로 징계의 채찍이 그들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고 멀리 가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다, 잊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그런 사랑의 채찍을 맞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아니한 증거입니다.<시온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에서

 

 
 




100.푸에블로호 승무원의 증언
 
바로 며칠 전에 푸에블로호의 승무원 82명이 북괴에 납치되어 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석방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북괴에 잡혀가서 당한 경험을 들으면 신문에 보도되는 대로 갖은 폭행을 다 당했습니다. 주먹으로 맞기도 하고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 곤봉으로 맞기도 하였습니다. 부커 함장이 기자 회견에서 대답할 때에 여러 말을 하다가 마지막쯤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들과는 다르리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겪은 북괴 인들은 내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산당들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는 멀어졌으나 짐승과는 가깝다고 하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동해안에 침투한 공비의 만행을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아이 입을 찢어서 죽이고 네 살 난 아이를 때려죽이는 만행까지 감행했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우리는 떨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인간의 행동과는 너무나 먼 행동입니다. 20세기에 인간의 덕성은 너무나 타락했습니다.

 

 
 




101.차라리 동물원을?


신문을 보니 얼마 전에 일본의 동경대학이 좌익학생들의 선동과 데모와 폭동으로 수라장이 되고 심지어 교수를 감금해서 70시간이나 괴롭히는 광경을 본 일본의 한 저명한 문사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동경대학은 차라리 동물원을 만들어 버리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아니요, 이미 짐승이 다 되었으니 차라리 동물원을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까?
어떤 나라의 한 대학생은 실감 있는 자유의 체험을 얻기 위해서 벌거벗고 연설을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쯤 되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20세기 인간의 도덕성은 너무나 타락하였습니다. 성도덕의 타락과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범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가 됩니다. 이 타락한 인간을,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할 이가 누구입니까?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이러한 인간들을 죄악에서 구속하게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보내신 날입니다. 오직 크리스마스가 있으므로 20세기에는 소망의 별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시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우주시대>에서

 

 
 




102.사신의 역할


제가 약 2개월 전에 남장로교회의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갈 때에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특별히 깨닫게 한 것은 "너는 지금 미국에 가는데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가는 것을 기억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교회를 다섯 주간에 방문하는데 아마 한 40교회를 방문한 것 같아요. 저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 참된 은혜를 베푸는 그 사명을 마음 가운데 항상 기억하고 여러 교회를 순회했습니다.
또 제가 그곳에서 한국 학생들과 교포들을 만나서 같이 예배를 드릴 때에도 이 말씀을 같이 생각했습니다. "당신 네 들이 외국에 와서 공부를 하거나 혹은 공부를 다 마치고 일자리를 구해서 있거나 당신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면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이 나라에 와서 이 직장에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하며 그 직장에서 한국의 크리스천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 하나는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사신이리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03.사신이 된 식모 이야기


제가 들으니 어떤 식모가 믿지 아니하는 집에 일을 하려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식모는 참 신앙이 있는 분이올시다. 물론 가난하고 공부도 별로 못하였기에 다른 집의 식모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안 믿는 집에 있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이 집에 와서 식모노릇을 한다"하는 생각을 가졌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정성껏 하고 언제나 마음으로는 이 집이 아직 예수를 모르고 죄악 가운데서 사니 이들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나오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에 나가지 않겠느냐고 하고 또 어린이들이 병중에 있을 대에는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느냐 하며 자기 친구를 데려다가 기도하게 하고 목사도 청 해다 기도하고 해서 마지막에는 잘 믿는 식모 하나로 인해서 온 가정이 잘 믿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04. '여호수아 중대'


제가 전에도 말씀했지마는 약 2년 전에 월남에 갔을 때에 여호수아 중대라는 부대를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이 중대는 모두 예수 믿는 군인들로 조직된 부대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수 믿는 군인만 뽑아서 중대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처음 조직할 때는 예수를 믿는 군인이 10명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들이라는 마음으로 사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온 중대가 감화되어 예수를 믿게 되고 여호수아 중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믿는 청년들이 군데에 많이 나가는데 이 청년들 하나 하나가 이런 그리스도의 사명감을 가지고 군대에 나가서 군인 노릇을 한다고 할 것이면 우리 한국의 전 군대가 오래지 않아서 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관청에 있는 이들, 회사에 있는 이들, 상점에 있는 이들,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 사명을 바로 지킬 것입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믿지 아니하는 집에 출가를 했다고 하면 그 가정에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이 가정에 보낸 그리스도의 사신이라"하는 것을 깨닫고 그 곳에서 사명을 다하면 온 가정이 감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 하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곳에서 사신 노릇을 하여야 합니다.

 

 
 




105.숨은 속 사람
 
참으로 행복 되고 하나님께 영광 되는 가정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 인간입니다. 고로 개성이 다릅니다. 성품도 다릅니다. 또 다른 환경에서 장성합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애정의 도취로 말미암아 그저 꿈같은 사랑으로 지나갑니다. 얼마가 지났습니다. 몇 달이 지나게 되면 남자나 여자나 그 속에 있던 숨은 사람이 점점 나타나게 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지요. 그 하이드라는 말은 숨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숨었던 괴팍한 성품도 나타나고 고집도 나타나고 좋지 못한 습관도 나타나고 신경질도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천사인줄 알고 결혼했으나 몇 달 지나면 천사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남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본래 결혼한 여자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자 가운데도 그런 말을 합니다. "내가 본래 알고 결혼한 그 남자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결혼생활의 위기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생활이 계속 행복하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으로 끝까지 지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하는 참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06.알버트 비벨 목사의 보고


또 만일 우리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라고 하면 반드시 가정 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일년이 가도록 집안에서 찬송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기도도 한번 같이 안 하다가 대 심방 때에나 억지로 같이 예배 보는 가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의 속담 가운데 같이 기도하는 부부는 같이 머물고 갈라지지 않는다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같이 예배보고 같이 기도하는 부부의 가정이 안전합니다. 화평합니다. 또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자연히 어려서부터 종교 교육을 바로 받습니다.
알버트 비벨이라는 유명한 목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많은 결혼식을 주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년에 자기가 주례를 해준 750쌍의 부부에게 편지를 다 내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가정 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서 가정을 행복 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대답하기를, "가정에서 매일 매일 종교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 생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찬송을 부르고 또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피차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는 대답을 보내온 것입니다.

 

 
 




107.사랑은 오래 참는 것


여기에 특별히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전에 나이 75세난 어떤 노인이 종합 진단을 받으려고 어느 종합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병이 하나도 없이 아주 건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놀라며, "노인은 어떻게 그렇게 건강이 좋습니까? 어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50년 전에 내 아내와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할 때에 우리는 이런 약속을 하였습니다. '가령 우리가 같이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당신이 성나면 당신은 대답하지 말고 참고 얼른 주방으로 나가시오. 또 혹 당신이 실수해서 내가 성나면 나는 말하지 않고 꾹 참고 얼른 밖으로 산보를 나가겠소'하는 약속을 하였는데 지금 한 50년쯤 지내고 보니 산보를 참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건강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세요.

 

 
 




108.눈으로 먹는 약


옛날 신의주에서부터 저를 잘 아는 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주례한 가정을 제가 많이 보았는데, 목사님 권면(勸勉)대로 잘 믿고 잘 사는 가정들은 다 큰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안 나오고 성경대로 안 하는 가정은 이상하게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거 이상할 것 없어요. 으레 그럴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관찰과 경험에 의한 말입니다. 제게 주례를 받은 이들이 여기에 있으시면 특별히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처음 전도할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목사고 또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든지 약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서 약을 나누어주어 육신의 병을 고치고 그 다음에 전도를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흑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목사님, 나의 마음속에는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더러운 마음이 가득한데 이 마음을 고치는 약을 좀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리빙스턴은 자기 옆에 있던 성경책을 처 들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흑인이 눈이 둥그래지면서 "그것을 어떻게 먹습니까"하고 묻습니다. 리빙스턴은 "이것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먹는 것이니 이것을 갔다가 잘 읽고 이대로 하십시오" 하고 권했다고 합니다.<가정의 정신적 기초>에서

 

 
 




109.마틴 루터의 아내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고 크게 봉사하는 데는 아내의 공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와 그 어진 아내에 대한 얘기를 여러분은 다 기억할 것입니다. 루터 같은 이도 종교개혁 운동을 해 나갈 때에 한 번은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해 낙심이 되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그냥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의 부인이 검은 상복을 입고 그의 침실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미틴 루터가 깜짝 놀라면서 누가 죽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 여인은 하나님이 죽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루터가 성이 나서 하는 말이 그런 외람 된 말이 어디 있느냐고 노했습니다. 그 때에 그 부인이 온순하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은 왜 낙심합니까?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이렇게 현숙한 아내는 그 남편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110.강하고 담대 하라
 
아프리카 밀림 지대를 지나가던 어떤 두 청년이 갑자기 발 뿌리에서 개구리 소리가 났는데 사자 소리인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왜? 겁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사람들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마틴 루터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할 것이면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웜스 국회에 출석하라고 하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가려고 준비할 때에 가까운 친구들은 그렇게 위험한 곳을 어떻게 가려느냐 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대답은, 비록 마귀가 웜스 국회 의사당의 기와 장 같이 많을 지라도 나는 가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순신 같은 장군이 이런 마음이 없었다고 할 것이면 적은 수를 가지고 많은 왜적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사람이 이루어 놓은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 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님께서도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고, 주님께서 같이 하시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111.낙심하지 말라


참된 신앙은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참된 신앙은 모든 공포심을 제거해 줍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를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욥이 그 많은 환난 가운데서 낙심하였다면 최후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낙심한 사람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광산을 찾아보는 과학자들이 어떤 산에 가보니 거기서 꼭 금이 날 것이 분명히 보입니다. 그래서 이 산을 파면 반드시 금이 나겠으니 파보자고 해서 산을 팠습니다. 그런데 조금 파다가 보니 어떤 사람이 파보았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매우 많이 팠으니 계속해서 좀더 파자고 하면서 옛 광산 하던 자리를 계속 팠습니다. 한참 파다보니 큰 곡괭이가 박혀있는데 그 자루가 썩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오래 전에 광부들이 그 곳을 파보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광부들을 동원하여 팠습니다. 그런데 그 곡괭이가 묘하게도 금만 있는 노다지 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깊이 곡괭이가 박힌 먼젓번 사람이 뽑아 내지를 못하고 낙심하여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 곳을 계속해서 파니 많은 금이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사람이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교훈 하여 주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피곤해도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했습니다.<모험적 신앙>에서

 

 
 




112.부모의 마음과 아기
 
저는 경험은 없으나 제가 들으니 얘기 젖먹이는 재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또 얘기 없고 다니는 재미도 대단하답니다.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에 어떤 교회 목사님이 광고하기를, 분주하니 예배당 올 때에 얘기를 업고 오지 말라는 광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 광고를 듣고 얘기 어머니들이 불평이 대단했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얘기 업고 예배당 오지 말라는 광고는 하지 않고 얘기 없고 오는 이들은 다 딴 방으로 가라고 광고를 합니다.
제가 이따금 예배를 볼 때 한 가지 좋은 것은 그 방이 아주 명랑합니다. 가만 보면 어머니들이 강대 상은 별로 안 보고 얘기 얼굴만 보려고 합니다. 얘기 얼리는 어머니, 싸 가지고 온 과자를 먹이는 할머니, 아이들이 문턱에 올라가면 끌어내리는 어머니, 하여간 좀 분주하기는 하지만 그 방에 얼굴을 찡그리고 앉은 어머니는 없습니다. 아주 명랑합니다. 어린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얘기가 점점 커서 유치원에 가게 되면 그 보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혹 유치원에 가서 무슨 그림을 그려 가지고 오면 그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자기 아들 그림 잘 그린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혹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게 되면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러다 혹 상장이라도 타 가지고 오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쁩니까?

 

 
 




113.어린이는 가정의 화평


사실 부모들이 아이들 위해서 수고한다고 하지만 무료 봉사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사실은 값 받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들이 가정의 화평도 가져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부부간에 싸움을 하고 있다가도 유치원에 갔다오는 아이가 엄마 아빠하고 들어오게 되면 성났던 것도 봄 동산의 눈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어린아이를 가운데 놓고 싱글벙글 웃습니다.
내가 들으니까 어떤 가정에서 부부간에 싸움을 크게 하고는, 나는 이런 집에서 못 살겠오 하며 보따리를 싸 가지고 그 부인이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나가려고 하는데 댓 살 난 어린애가 놀다가 뛰어 들어옵니다. 들어오다 보니 어머니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갑니다. 이 얘가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엄마 못 가, 나하고 같이 살자 하며 매달리니 그만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린애들이 이혼 방지하는 데는 가정법원 판사보다 나은 줄 압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혼 많이 하는 나라의 통계를 보면 얘가 없는 가정의 이혼율이 얘기 있는 가정의 이혼율보다 퍽 높습니다. 그게 무엇을 증명합니까? 어린이들이 단연 이혼도 방지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취직을 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많은 기쁨을 가져오는데 그 가운데 제일 큰 기쁨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 이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여러 가지 다른 말을 듣는 것도 기쁨을 가져오지마는 자기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들을 때에 제일 기쁘다고 했습니다.

 

 
 


 
114.첫 달 봉급



몇 주일 전에 어떤 자매 님이 제게 봉투 하나를 줍니다. 그래서 이게 무엇입니까 물으니까? 웃으면서 "우리 아이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이번 첫 달 봉급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교회에 바치겠다고 합니다." 하면서 그 봉투를 저에게 줍니다.
제가 그 봉투를 받으면서 그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어떻게 기뻐하는지, 참 기쁨을 어머니가 체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몇 해 전에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뜯어보니 그 속에 돈이 좀 있어요. 누구에게 왔는고 하니 전주 예수 병원에 있는 간호사에게서 왔는데, 그 간호원은 본래 우리 보건원에서 자라난 분입니다.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곳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원이 되어 자기가 받은 첫 달 봉급을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 사연은,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첫 달 봉급을 본 교회에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목사님께 보내니 이것을 교회에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받을 때에 믿음의 부모로서 얼마나 기쁜지 이런 아이 하나만 기른 것도 보건원 세운 보람이 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애가 이렇게 믿음이 좋더니 후에 목사 부인이 됐습니다. 둘 다 미국에 가 있는데 자기 남편은 미국 교회에서 일을 보고 자기는 병원에서 간호원 일을 본다고 합니다.
  "내가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사도 요한 은 말했습니다.<부모의 가장 큰 기쁨>에서

 

 
 




115.마음의 두 가지 성품
 
스티븐슨의 유명한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운데는 두 가지 성품이 있는데 하나는 지킬 박사요. 하나는 하이드라고 합니다. 지킬 박사는 아주 덕망이 높은 좋은 과학자요 하이드는 아주 악한데, 이 두 성품이 인간의 마음속에 같이 있다고 합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킬 박사로 변해 가느냐 또는 하이드와 같은 악한 사람으로 변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문하에서 배웠지마는 하나는 하루에 삼천 명씩 회개시켜 새 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사도 베드로가 되었고 하나는 결국 예수를 팔아  먹고 자살로 최후를 마치는 유다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가 무엇으로 변해 가느냐, 우리가 베드로로 변해 가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이란 항상 고정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항상 도중에 있습니다.
요컨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변합니까? 베드로의 방향으로 변합니까? 혹 유다의 방향으로 변합니까? 천당의 후보자로 변합니까? 혹은 지옥의 후보자로 변합니까?
특별히 청년 시대에 옳게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생을 옳게 살며 옳은 생활, 옳은 일을 하며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116. '노인유욕'과 '보고덕부'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은 사명이 있습니다. 사회적 사명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디 가나 모든 방면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서 이 사회를 밝게 하여야 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사회를 명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 40세쯤 지나면 누구나 그 육신이 원치 아니하는 방면으로 변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얼굴에는 점점 주름이 생기고, 머리에는 서릿발이 내리기 시작하고, 등이 점점 굽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면 변하기 쉽습니다. 암만 보아도 북망산 후보생에 알맞게 변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읽으셨습니까? "겉 사람은 후패(朽敗)하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비록 이렇게 변하지마는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롭게 변화돼야 합니다. 인생의 황혼에 속 사람이 옳게 변해야 됩니다. 잘못하면 늙어가면서 속 사람까지 잘못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유욕(老人有慾)이라고, 늙으면 욕심이 많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옛 글에도 계기재득(戒己在得)이라고, 늙어서는 얻는 데에 경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전노 되기 쉬워요. 젊었을 때는 좋은 일에 돈 쓰기 쉬워도 늙어가면서 인색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늙어가면서 완고(頑固)만 해지고 고집쟁이만 되기 쉽습니다. 늙어갈수록 옳게 변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동양에 내러 오는 말 가운데 보고덕부(報高德富)라고, 보가 높아지면 덕이 부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117.달고 쓴 기억들


먼저 기억에 대한 유산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이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달고도 또 가장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여러분,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기억은 매우 기쁩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매우 슬픕니다. 여러분, 어렸을 적에 가정에서 자라던 기억 중 어떤 기억이 내 머리에 남아 있나 지금 각각 생각해 보세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단 기억이 많은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쓴 기억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기쁜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118.어릴 때의 기억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개인의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났으니까 농촌에서 자라나던 여러 가지 경험이 제 머리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봄철에는 뒷동산에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고 옆에 있는 송림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뻐꾹 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쟁쟁하게 들리고 들에 나가면 보리밭에서 나와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아름답게 노래하던 종달새의 소리가 지금도 쟁쟁히 들립니다. 그래서 삼팔선만 열리면 내 고향에 가서 종달새 소리를 한번 더 듣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아주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목화밭에 가서 목화를 따던 기억이 늘 납니다. 아마 여기 젊은 사람들은 목화가 무엇인지 잘 모를 분도 있을 것입니다. 솜 만드는 나무를 목화라고 합니다. 그것을 따는 재미는 보통이 아닙니다.
또 시골에 있으니까 닷새에 한번씩 장이 섭니다. 아버지가 늘 장보러 가곤 하는데 한번은 장에 따라가서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왔던 것이 어떻게 기뻤던지 지금도 기억납니다. 못 따라 가게 되면 점심을 먹고 아버지 오시는 길목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그 목적은 아버지가 오실 때에 엿을 하나씩 사다 주시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나기 전에 조그만 예배당이 촌에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기 가서 찬미 배우던 생각, 처음으로 키 큰 방 목사라고 하는 서양 사람을 보던 생각이 지금도 늘 납니다.
그이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는 찬미를 저에게 배워줬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어떻게 기쁜 기억이 많은지 모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 더듬어 보아도 제 기억 가운데 우리 부모님들이 싸우는 것을 본 기억이 안 납니다. 저는 그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또 매맞아 본 기억도 없습니다. 한번 책망 받은 기억이 생각나는데 그것은 언젠 고 하니 우리 어머님이 병중에 계실 때에 약을 달여서 잘 짜 놓았는데 뛰어다니다가 그만 그것을 엎질렀어요. 단단히 책망을 받은 것 지금도 기억납니다. 물론 저에게 슬픈 기억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열 살날 때, 정월 열 나흗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일입니다. 그 기억이 늘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어렸을 적의 기억을 가만히 회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참 감사했습니다.

 

 
 




119.어느 소매치기의 수기


저는 부모님께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하고 부모님이  나를 극진히 귀여워하고 사랑했다 하는 생각밖에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소매치기 하다가 자수한 사람이 쓴 수기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진주의 어떤 부자 집 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기 기억에 세 살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놓고서 싸우는고 하니 자기를 놓고 이게 내 아들이냐 아니냐 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여 결국은 어머니에게 업혀 둘은 내쫓겼습니다. 그것을 보니 그의 어머니가 행실이 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 화병으로 자기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 아니라고 내쫓았고 어머니는 화 김에 세상을 떠난 다섯 살 난 고아가, 이런 기억밖에 없는 고아가 어떻게 옳은 길 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특히 귀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가를 이 시간에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0.성스러운 기억은 최대의 교육


유명한 문호 도스토에프스키가 어떤 저서 가운데 이런 글을 썼습니다. "좋은 기억, 특별히 어렸을 때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 귀한 기억처럼 장래에 깊은 감화를 주는 것은 없다. 귀한 성스러운 기억은 최대의 교육이 된다. 그런 기억이 많은 사람은 최후까지 인생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런 기억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는 그의 영혼을 기억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 기억이 그를 많은 죄악 가운데서 건질 수 잇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부모 되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기쁜 가정의 기억이 남도록 좋은 기쁨의 유산을 남겨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가정이 단란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21우리 엄마는 얌체야


제가 전에 평양에 있을 때 보니 어떤 젊은 부부가 모란봉에 산보 가기 위해 아이들을 다 재워놓고 문은 밖으로 잠그고 갔습니다. 한참 있다가 아이들이 깨서는 아무도 업자 계속 웁니다. 종일 울어서 기진맥진해진 다음에야 부모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이 다음에 무슨 기억이 남겠습니까?
제가 들으니 어떤 애가 자기 동무에게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 합니다. "우리 엄마는 얌체야. 얼른 갔다가 온다고 하더니 종일 안 와." 그런 어머니가 여기에는 없습니까? 그 아이의 기억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어머니는 나를 속인다. 그 영향이 이 어린이의 앞날에 어떻게 미치겠습니까?
여러분 어떻든지 아이들과 놀러 도 같이 가고 예배당 올 때도 같이 다니세요. 그 아이들 생각에나, 후에 남는 기억에 "참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귀여워했지. 참 나를 사랑했지, 내 유년시절의 생활은 참 행복했지."하는 기억이 남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유산을 남겨 주면 이 유산이 자녀들과 일생을 같이 해서 자녀들이 축복 받습니다.

 

 
 




122.좋은 습관의 유산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 주라고 했습니다.
품성과 인격조성에 있어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심리학자의 말을 빌릴 것 없이 우리가 다 상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은 심어서 행동을 거두고 행동은 심어서 습관을 거두고 습관은 심어서 품격을 거두고 품격은 심어서 일생의 운명을 거둔다. 꼭 그렇습니다.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쌓여서 품격이 됩니다. 결국 품격이 그 사람 일생의 운명을 주장합니다. 그만큼 습관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습관은 어렸을 적부터 한 가지 두 가지 하는 행동이 모여서 습관이 되고 나중에 품격이 됩니다. 그러니 부모 된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어린이아들에게 좋은 습관을 양성해 줄 수 있도록 각별히 힘을 써야 합니다.

 

 
 




123.부쉬넬의 《기독교 교양론》


미국에 부쉬넬이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가 있는데 그 분이 《기독교 교양론》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품격 조성에 있어서 아이들이 세 살이 나면 벌써 부모는 할 수 있는 일의 절반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옛날부터 동양에서 내려오는 말 가운데 삼세기습이 지우팔실(三歲起習持又八十)이라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벌써 세 살 나기 전부터 좋은 습관이 양성되도록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말로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친히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모가 남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고, 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아는 예의가 있고, 친절하고, 봉사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부모가 실제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의 유산을 남기고 있는가?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 주도록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자녀에게 줄 유산>에서

 

 
 




124.소망의 닻
 
소망의 상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닻입니다.
아무리 바다의 풍랑이 높다고 할지라도 닻이 튼튼히 바다 속 깊이 박혀 있으면 그 배는 풍파에 밀려가지 아니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해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때때로 풍파를 만납니다. 때때로 환난도 만납니다. 아무리 풍파가 높다고 하지마는 튼튼한 소망이 있으면 그 풍파에 우리의 작은 배가 밀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125.소망의 별


소망의 다른 한 가지 상징은 별입니다. 옛날 나침반이 없을 때에 바다를 향해하는 사람들은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한 것입니다. 혹은 밤에 사하라 사막 같은 사막 길을 가는 사람도 본래 사막에는 길이 없는 고로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바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 행로를 걸어갈 때 어떤 때에는 밤을 당하게도 됩니다. 환난의 밤, 질병의 밤, 혹은 슬픔의 밤, 고독의 밤을 지나갈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인생의 갈 길을 바로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126.소망의 날개

또 한 가지 소망의 상징은 날개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뭇가지가 혹 썩어서 꺾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새는 어떻게 합니까? 날개를 펴서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더 튼튼한 나무 위에 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인간의 생활 가운데도 내가 의지하고 믿었던 그 나뭇가지가 꺾어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건강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돈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사업의 실패로 돈이 없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소망이 있으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떨어져 나가지 아니하고 소망의 날개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 나갈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소망은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 소망을 생각할 때에 한 가지 더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127.프레드릭 왓츠의 소망


영국 런던에 있는 케이 미술관에 가보면 프레드릭 왓츠라는 분이 그린 '소망'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 복사 본을 보신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그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어떤 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에 수건을 싸매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 여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비파가 하나 있습니다. 그 비파의 줄은 본래 일곱 줄이었으나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캄캄해서 앞은 보지 못하고 여섯 줄은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믿던 모든 줄이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아니하면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끝까지 끊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의 줄이 어떤 줄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께 둔 소망의 줄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의 줄을 다 붙잡았습니까? 이 소망의 줄을 붙잡은 이에게는 어떤 환경이 쳐하든지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병이 중해도 낙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벽 별이올시다. 소망의 별이올시다. 언제나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도 영원한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줄을 든든히 붙잡았습니까? 이 소망은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 인간의 생명은 죽음이 최후가 아니고 영원히 살아 있는 영생이라는 것을 믿는 그 믿음에서 이 불멸의 소망은 오는 것입니다. <소망의 능력>에서

 

 
 




128.서인도 제도 발베이도스 섬
 
몇 해 전에 서인도 제도의 한 작은 섬 발베이도스 라고 하는 곳에 집회가 있어 갔더니 인구 약 25만에 불과한 작은 섬인데 놀란 것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 섬에 사는 대부분의 인구가 다 흑인종들이었습니다. 둘째는 그들이 다 영어를 잘 합니다. 오랫동안 영국의 통치 아래 있었던 까닭입니다. 셋째는 그들 대부분이 다 좋은 그리스천입니다. 제가 그 때에 여관에 유하면서 지정한 택시로 예배당에 늘 왔다갔다하는데 그 택시 운전사도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예배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택시에서 내려 여관으로 들어오려는데 그 운전사가 "목사님!"하고 저를 부르기에 돌아다보니 "목사님 여기에 검을 놓고 가셨습니다. 이 검은 잊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무엇을 잊고 내렸습니까? 검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에베소 6장 17절을 기억하십니까?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검이올시다.

 

 
 




129.이순신의 유물


온양 온천에 가 보신 이는 그 곳 가까이 에 있는 현충사에 들려 보았을 것입니다. 이 충무공을 높이는 그 곳에는 이순신 장군이 쓰던 여러 가지 유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유물은 이 장군이 쓰던 큰 검 두 개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그런 검을 가졌기에 왜적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검은 군인이 자기 몸을 보호하는데 필요할뿐더러 적을 공격하는데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 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에 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십자가 군병들에게는 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기 본문을 상고하면 세 가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전에 불란서의 문학가 볼체어라고 하는 이는 성경은 죽은 책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백 년만 지나가면 볼 사람이 없어서 박물관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앉아서 그 말을 한 그 집이 바로 성서공회가 되어 성경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왜? 이 성경은 산  책입니다. 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30.'바운티'호의 성경 한 권


여러분, 피카이란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을 줄 압니다. 1970년에 영국 정부에서 카이키라고 하는 남태평양의 조그마한 군도에 고무나무를 재배하기 위해서 종자를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바운티' 호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거기서 고무나무를 심는 동안에 그 곳 여자들과 친해서 영국에 돌아올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선장은 돌아가자 거니 그들은 돌아가지 않겠다 거니 하다가 마지막에는 선원들이 선장을 꽁꽁 묶고 조그마한 배에 태워서 태평양 넓은 바다에 띄웠습니다. 그리고 자기네는 그 섬에 그대로 있기가 무서우니까 사람이 없는 가까운 섬으로 도망했습니다. 이 섬이 그후 피카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자기네들끼리 살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을 많이 데리고 가서는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마음대로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어떤 풀  뿌리를 물에 오래 담가 두니 술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리하여 술 빚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술 먹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자기네들끼리 싸움하기 시작하여 서로 죽였습니다. 2, 3년 후에는 다들 서로 죽이고 마지막에는 백인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장이 마침 죽지 않고 어떤 배의 구조를 받아 영국에 돌아와 보고를 하자 영국 정부에서 해군을 보내어 전원 체포 해다 가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때마침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서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여러 해 후 미국의 배가 그 곳을 지나가다 보니 사람이 없던 섬에서 인기척이 나므로 몇 사람이 내렸습니다. 백인도 토인도 아닌 반종 들만이 모여서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봅니다. 그래서 사실을 알아보니 혼자 남은 백인이 '바운티' 호의 짐짝을 내리다가 우연히 성경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어보니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고 자라나는 반종들을 사람되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부터 찬송, 성경, 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여러 해가 지나 그 사람은 백발의 노인이 되어 그 섬의 대통령이요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그 섬은 재판소도 형무소도 경찰서도 없는 평화로운 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검>에서

 

 
 




131.천당의 교제


영국에 웨인즈 게일이라고 하는 조그만 고을이 있는데 그 곳에 일찍이 존 호셋이라는 좋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곳은 작은 곳이라 교회도 자연히 작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큰 교회에서 이 목사를 초빙하려는 교섭이 왔습니다. 이 때 목사는 초빙을 받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교인들이 목사를 찾아와서 도저히 떠날 수 없다고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일할 기회와 여러 가지를 보아서는 큰 교회로 가야겠는데 교인들이 안타깝게 진정한 사랑으로 떠나지 말라고 만류함에 호셋 목사는 떠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목사는 일생토록 그 교회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가지 않기로 작정하면서 노래를 하나 지었습니다. 그 노래가 우리 찬송가 463장입니다. "주 믿는 형제들 연락한 사랑이 천당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교제일세." 성도의 교제는 천당의 교제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하고 피차에 남을 생각해 주는 천당의 교제입니다.<성도의 교제>에서

 

 
 




132. 35만을 위한 영국의 기도
 
제2차 대전 때에 불란서가 두 주일만에 망하고 영국의 35만이라고 하는 군대가 던컵이라는 반도에 몰려서 그 운명이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風前燈火)였습니다. 그 때 영국에서는 온 나라가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기후와 여러 가지 방면으로 도와주셔서 35만의 대군이 도고해협을 무사히 도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도의 손이 많이 올라가야 전쟁에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133.성도들의 기도


전에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당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의 기도를 무서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악마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후원이 있어야 이 나라도 바로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쉬지 않는 기도가 없이는 내 신앙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아니하고 졸다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진 이야기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계속하는 성도는 어떤 유혹이나 환난이나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거룩해지고 깨끗해집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여집니다. 사랑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신앙생활 할 수는 없습니다.

 

 
 




134.최고의 도움의 길
 
기도는 남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 교역자들을 사랑하고 도와드릴 마음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장로님들과 집사 님들을 사랑하고 도와드릴 마음이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통령이나 국무위원들이나 국군 장병을 사랑하고 도와줄 마음이 있으면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영국에 유명한 휘트필드(Whitefield)라고 하는 부흥 목사가 있었는데 그 분을 따라 다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그 목사를 위하여 언제나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다리를 절룩이고 키가 작은 보잘것없는 분이었지마는 언제나 따라다니면서 휘트필드 목사를 위해 기도해 주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큰 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오래 전에 의주 동조에 가서 사경회를 인도한 일이 있는데 그 때 저를 위해 특별히 기도에 열심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김덕창 장로님이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동안에 김 장로님은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피차에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가 교인을 위해서, 교인이 목사를 위해서 기도하며,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서 국민이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와 국가는 부흥이 되고 크게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135.부채질하는 벌


제가 어떤 책을 보니 양봉하는 이는 잘 아시겠지마는 꿀벌 가운데는 일하는 동봉이 있고 부채질하는 벌이 있는데 그 벌은 벌통 속의 나쁜 공기를 환기시키는 일을 전담한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교회도 그러한 줄 압니다. 일할 수 있는 분은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즉 나이 너무 많거나 병석에 있는 분은 부채질하는 벌들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 이 세계는 옛날 요나 의 배와 방불합니다. 큰 풍랑 가운데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요나 처럼 잠잘 수 있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초 비상시를 당해서 기도에 힘을 써야 될 줄 압니다. 개인적 기도, 가정 기도, 교회 적으로 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새벽 기도회, 삼일 기도회를 빠짐 없이 해야겠습니다.<쉬지 말고 기도하라>에서

 

 
 




136.이 동전 한 닢을
 
제가 직접 못 보았지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전에 유명한 부흥 목사인 김익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부흥 목사님이 어느 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다가 그 연보 주머니를 다 거두어 온 다음에 한 번 보시니 그 당시 동전을 많이 사용하던 때인데 동전만 가득했답니다.
그 때 김익두 목사님이 헌금 주머니를 들고 하시는 말씀이(그 땐 동전 한 닢을 거지에게 주던 때입니다) "여러분, 거지에게 줄 수 있는 이 동전 한 닢을 하나님께 드립니까? 그러면서 그 동전을 한 줌 쥐어 뿌려버렸습니다. 이것은 거지들에게나 주라고 하였답니다. 직접 못 보았고 또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우리가 여기서 꼭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제일 낮은 돈의 단위인 십 원 짜리 가 옛날 동전 하나만 할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거지를 만나 돈을 주려면 아마 십 원 짜리를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조금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가운데 아주 가난하여 돈 십 원도 아주 큰돈이 되는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이 그 십 원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큰돈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셔요. 내가 들으니 영락교회 교인들이 그런 생활은 아니겠는데 대부분 십 원 짜리 가 많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에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고 할 것 같으면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존귀(尊貴)히 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다고 할 것이면 왕의 명령을 절대로 순종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일년에 한 번씩 지키는 전도 주일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에 우리가 얼마나 순종했습니까? 종 된 우리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왕 되시는 주님께 충성을 다하려고 생명을 바친 순교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 주님께 대하여 충성을 다합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37.나폴레옹의 고백


나폴레옹이 전쟁에 실패하고 세인트헬레나 라는 섬으로 외롭게 정배(定配)를 갔습니다. 그는 죽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칼로써 세계를 정복하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써 천하만민을 정복하셨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만 왕의 왕이요 만 유의 주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에서

 

 
 




138.죄 의식의 고민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라고 하는 분이 “현대 사람에게는 지식이 많고 현대 사람은 고도의 문화 생활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사람의 심령상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 가지 회색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닌다. 첫째는 공허감, 텅 빈 느낌. 둘째는 죄감, 죄로 말미암아 오는 양심의 불안, 셋째는 공포감, 두려운 마음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뒤에는 따라 다니는 회색 그림자가 없습니까? 사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참으로 만나기 전에는 이들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결국 인생은 허무합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언제나 죄 의식에 빠져 고민 할 수박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없으면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빌립보의 간수가 새벽에 사도 바울을 붙잡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부르짖은 말씀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은 옛날 비립보 간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구주를 만나지 못한 사람의 깊은 심령 속에는 누구나 이런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예수  믿는 길만이 나와 내 집의 구원 얻는 길입니다.

 

 
 




139.에티오피아 어떤 주교의 동상


제가 한 서너 주일 전에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한 3, 4일 지날 때에 한 번은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거리에 로터리가 하나 있고 그 로터리 가운데 큰 동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니까 성직 복을 입은 신부나 감독의 동상입니다. 그래서 같이 가던 매클리어 박사에게 이것은 무슨 동상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이가 하는 말이 그 동상은 에티오피아의 유명한 어떤 주교의 동상이라고 일러주면서 동상 바로 아래는 기관총이 하나 놓여 있다고 하며 설명을 하는데,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세게 2차 대전 바로 전에 이탈리아의 뭇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해서 에티오피아가 잠깐 동안 이탈리아의 점령 하에 있을 때에, 이탈리아 군대가 그 도시의 중요한 곳은 거이 다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산악지대에는 수도원이 많은데 그 수도원을 근거로 해서 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애국 청년들이 모여 계속해서 게릴라전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암만 해야 이것을 해결할 길이 없으니까, 이탈리아 사령관이 그 때의 대주교를 청해서 당신이 성직자들을 다 모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 모이면 할 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대주교가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애국청년들을 아무 날 아디스아바바에 다 모이라고 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합니다. 수만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다 모인 다음에 이탈리아 사령관이 이 주교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이탈리아와 협력하라고 강요를 했답니다. 그 때에 주교가 단 위에 올라서서 이탈리아 사령관이 한 말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끝까지 자유를 위해서 싸우자고 외쳤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령관이 준비했던 기관총으로 주교를 쏴 죽였다고 합니다. 또한 주교 이하 거기 모였던 수 천명이 일시에 학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몇 해 후에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에티오피아 국민은 이렇게 용감한 국민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끝까지 수호하려는 이 정신이야말로 귀중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 중에서 몇 천년을 독립국가로 내려오는 나라는 이 에티오피아 한 나라밖에 없는 줄 압니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신앙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특별히 자유를 수호할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의 신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에서

 

 
 




140.정복하는 신앙


한간에“요사이 관청에 있으면 신앙생활 못해”하는 말이 들립니다. 혹“요새 장사꾼으로서는 신앙생활이 힘들어”하는 말들이 들립니다. 여러분 가이사 집의 성도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런 거슬리는 환경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고 장래에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 한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141.예수 믿는 북한 청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다녀온 어떤 분의 말 가운데, 그 곳에서 북한에서 유학 온 천년 몇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자기를 조용히 보자고 하더니 자기 포켓에서 조그마한 책을 하나 꺼내 보이면서 “이것이 무슨 책인지 아세요? 이것은 우리 한국말로 된 신학성서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청년입니다.”라고 하드랍니다.
북한에 그리스도를 믿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에도 그리스도를 잘 믿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가이사 집에 성도들입니다. 예수께서 신앙생활이 쉬운 것이라 말씀하신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142.제온기와 같은 신자
 
참된 신앙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보통 집에 들어가 보면 한난계(寒暖計)라는 것이 있지요. 그것 무엇하는 것입니까? 한난계는 방안의 온도가 더운지 찬지를 얼른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현대식으로 지은 집에 가보면 한난계가 하나 더 있지요. 제온기라는 것 말입니다. 이 제온기라는 것은 온도를 내가 원하는 대로 놓으면 방안의 온도가 변해서 그 제온기의 온도만큼 됩니다. 냉난방이 자동적으로 제온기를 따라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압니까? 믿는 사람 가운데 두 가지 종류의 믿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한난계 비슷합니다. 자기 주위 환경의 온도에 따라서 같이 변하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제온기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어디 가던지 자기가 표준 한 그 표준대로 다른 사람을 따라오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신자입니까? 제온기와 같은 신자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여러 남녀들이 새로 학습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마는 여기 특별히 여자들 가운데 이 다음에 출가할 때에 혹 믿지 아니하는 가정으로 출가하는 여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믿지 아니하는 가정에 출가를 했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교회도 나오고 또 교회 봉사도 하느라고 애쓰다가 몇 해 지나면 점점 믿음이 식어져서 믿지 아니하는 가정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믿지 않고 맙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꼭 같이 믿지 아니하는 가정에 출가를 하였는데 그 가정에 출가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킬뿐더러 남편도 회개  시키고 시어머니도 회개시키고 또 시아버지까지 교회로 인도하고 온 가족을 다 복음화 시키는 그런 여자들도 있음을 많이 보았습니다. 참 신앙은 환경을 극복합니다.    <가이사집의 성도들>에서

 

 
 




143.우울한 생활을 한 죄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이 잇는 광경이 나타납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짓고 왔느냐고 물으니까 다른 죄가 아니라 믿기 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명랑한 생활을 못하고 늘 우울한 생활을 한 죄를 지은 까닭으로 여기에 왔다고 합니다.
  명랑한 생활을 못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합니다. 옳게 살 뿐더러 명랑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였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良藥)이라고 하였습니다. 명랑한 마음은 좋은 약입니다. 몸에 유익합니다. 명랑한 마음을 가지면 소화도 잘 되고 혈액 순환도 잘 된다고 합니다. 병이 저절로 났는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계의 말을 들어보면 병 가운데 6할 내지 7할의 원인은 심리적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명랑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육체 가운데 많은 병이 생깁니다.
근심과 걱정, 공포심, 의심, 증오심, 분노, 그리고 시기와 질투로 인해 명랑한 마음 가운데육체의 병이 생깁니다. 명랑한 마음을 가져야 힘을 얻어서 일을 잘 합니다. “주의 즐거움이 너희에게 능력이 되느니라”

 

 
 




144.로마 제국 영적 정복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 사회는 그 헬라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권세와 영광에도 불구하고 매우 침울하였습니다. 대다수의 민족은 허탈감, 좌절감, 절망감에 휩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역경과 핍박 중에서도 기쁨과 소망이 충만한 명랑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역경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정세와 한국사회의 정세도 이와 비슷합니다. 과학은 발전되었다고 하지마는 인간은 침울한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안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145.깊은 데서 나는 냉수


인도에 가서 설교하던 어떤 선교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도에는 건조기가 있는데 어느 해 건조기에는 어떤 촌락에 있는 교인 하나가 와서, “큰일 났습니다. 우리 동래 우물의 물이 말랐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려면 아직도 서너 달이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선교사가 가서 보니 우물이 정말 말랐습니다. 선교사는 우물을 좀더 깊이 파봅니다. 온 동래가 힘을 모아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을 파도 물이 안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반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반석을 깨뜨리고 계속해서 파게 했더니 이레 되는 날에 반석의 아래에서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세상의 환경, 물질 혹은 사람에게서 오는 기쁨은 다 건조기와 같습니다. 마를 때가 있습니다. 주안에서 오는 기쁨은 깊은 데서 나는 생수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속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약속하신 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충만히 마셔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명랑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명랑한 생활의 비결>에서

 

 
 




146.'정중지와’


여러분 다 등산해 보신 분은 아시지만 우리가 높이 올라갈수록 우리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낮은 곳에 있을수록 시야가 좁아집니다.
 정중지와(井中之蛙)란 말이 있지요. 우물 속의 개구리란 말입니다. 우물 속의 개구리는 그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하늘이 동전 닢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며 사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기껏 보아야 자기 자신만 봅니다. 가족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겨우 본대야 자기 가족이나 봅니다. 아주 낮은 곳에서 사는 까닭입니다.
공산당들은 자기 계급만 봅니다. 그래서 계급 투쟁을 하라고 고조(鼓 )합니다. 전에 히틀러는 자기 만족만 보았습니다.

 

 
 




147.넓은 시야


높이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집니다. 더욱 높이 올라가면 이 세계를 한 눈에 볼 수도 잇습니다. 여러분, 우주인들이 달에 가서 찍은 지구 사진을 다 보셨지요? 그 우주인들은 지구를 한꺼번에 보았습니다. 한꺼번에 보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얼마나 커 보이겠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한 작은 공입니다. 그 위에 35억이 넘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공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계급이니 민족이니 국경이니 백인이니 하면서 싸우며 삽니다. 사실 우주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면 그렇게 살 세계가 아닙니다. 우주인들이 달에 남기고 오기 위해서 가지고 간 기념 판에 새긴 말이 생각납니다.“우리는 전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유성 지구에서 여기 왔노라”시야가 좁아서 싸움을 합니다.
시야가 넓은 그리스도인은 싸우면 아니 됩니다. 어디를 가나 평화의 생활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3장 28절에“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다 하나인데 무슨 싸움이 있겠습니까?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주는 정신으로, 얻는 것보다는 봉사하려는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높은 십자가 차원까지 우리의 심령을 끌어올려야겠습니다. <향상하는 생활>에서

 

 
 




148.강해지는 신앙


우리는 성 프랜시스를 다 기억합니다. 그가 어떤 분인지 압니까?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본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족한 것을 모르고 자라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그 당시의 부잣집 아들처럼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큰 병에 걸렸습니다. 이 중병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을 찾게되었습니다.
약한 가운데서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서 방탕 자였던 청년이 변하여 성자가 된 것입니다.
병 가운데서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 큰 일을 한 사람은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많이 있습니다.
주의 능력이 약한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는 까닭입니다.
밀턴은 유명한 문학가이지만 특별히 그가 실명된 후에 더욱 위대한 작품,《실락원》(失樂園)을 썼다고 하는 것은 유명한 얘기입니다.
베토벤 같은 이도 본래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귀가 멀고 듣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전보다 더 위대한 작곡을 했다는 것 또한 너무도 유명한 얘기입니다.
몇 해전에 세상을 떠난 헬렌 켈러 여사는 어렸을 적부터 소경이요 벙어리요 귀머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하나로 살았다고 하는 유명한 얘기도 우리는 잘 압니다.

 

 
 




149.고독한 중의 주의 능력


중세 시대 유명한 이태리의 문호 단테는 요한 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는 플로렌스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고, 처음에는 정치적 지도자로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만 정당이 서로 충돌하는 중에 패배를 해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향에 유리하며 고독한 망명생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때에 그는 하늘과 천당과 지옥의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오늘날도 많이 애독하고 있는《신곡》이라는 것입니다. 고독한 가운데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생활을 여러분이 잘 압니다. 호화로운 애굽 궁전에서 살던 청년입니다. 그러나 부득이 정치적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가서 고독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독한 양치는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부름을 받아서 마침내 뛰어난 지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압니다. 고독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난 것을 늘 잊지 말고 기억합니다.

 

 
 




150.‘엉클 톰스 캐빈’


예전에 미국은 흑백 인종문제로 남북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흑노(黑奴)를 해방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흑노 해방 운동을 일으킨 배후에는 유명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이름은 영어로‘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 이라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톰 아저씨의 오막살이》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 소설은 스토우라는 부인이 썼는데 이 부인은 자기 아버지도 라이먼 리쳐라고 유명한 목사요, 자기 오빠는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헨리 워드 리쳐 목사입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말씀드리지요.
이 부인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귀한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이 부인은 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얼마 자라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이 부인은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언제나 딸 생각에 살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이 그렇게 아픈 것을 생각하다가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이 슬픔을 당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노예들의 형편을 보았습니다. 흑인의 어머니는 딸이 죽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 감으로써 가족끼리 사방으로 흩어져 생이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에 스토우 부인은 나는 내 딸이 죽어서 이렇게 슬픈데 살아서 자식들과 이별해야하는 흑인 어머니들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겠는가? 하는 것을 소설에 그대로 묘사했습니다.
그 책이 출간되어 많은 사람이 읽게 될 때에 그야말로 미국사람의 양심을 찔렀습니다.
흑노는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약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이루어져 인류 해방과 자유의 큰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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