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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김동호목사 명설교 (155편)

깨끗함으로 세상을 고치라 / 마5:20

by 【고동엽】 2013. 2. 15.

깨끗함으로 세상을 고치라 /   마5:20     

 

오늘 설교는 여러분은 강의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저는 설교하는 것보다 강의하는게 더 좋은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그저 설교시간은 1시간쯤 주고요.

여기다 칠판 하나 갖다놓고 이렇게 써가면서 그려가면서

하면 아주 좋은텐데...

이 시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딱딱한 강의처럼 될 수 있지만

집중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요.

너무 기뻤어요.

이거 제가 제일 잘 할수 있는 거든요.

어 이상한 소리 하네요,

 

제가 제일 잘하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것 중에

제가 남에게 비교해서 말고 제가 가장 잘 할수 있는 것이

이런 원고를 작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드는 설교인데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고

이 내용이 너무 중요한 내용이 될 겁니다.

 

그런데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생각을 순간만 놓쳐도

이 설교는 놓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에는 매주일 들으시지만

오늘 설교는 맥놓치 마시고 바짝 긴장하셔서

말 하나도 놓치지 마시고 또 속도도 떨어뜨리지 마시고

잘 이렇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가장 널리 알려진

정해진 교리중 하나는 '이신칭의'에 교리입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것이 율법을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다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교리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실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빠져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계명들고 좇아가서 계명지키면 살려주고

이 계명 안 지키면 안 살려줘

그런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살려주고 계명을 줄 수는 있지만

계명을 주고 살려 줄 수는 없습니다.

제 말 맞지요?

살려놓고 계명을 주는 것이지

계명을 주고서 어떻게 살려준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것이지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것은 아닙니다.

또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고

구원을 얻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없습니다.

 

구원 받는게 은혜입니까?

내 공로 입니까?

내가 지켜서 받았으니까 내 공로가 됩니다.

죄도 제가 짓고 구원도 제가 받고

그러는 법이 어디있습니까?

 

그러니까 논리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하는 '이신득의'의 교리가 옳습니다.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율법과 계명이

아무것도 아닌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으로 구원 얻은 우리들에게

율법과 계명을 주시면서

이거 잘 지키면서 살아라 하십니다.

 

물에 빠진 우리에게 계명을 주시지는 않지만

살려 놓으신 후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후에는

계명을 주십니다.

 

'네가 살았다고 산게 아니다.

이 법대로 이 말씀대로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거라' 하며

율법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율법은 구원 이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에 있는 것입니다.

구원 이전에 있는 율법은

율법주의가 되어 옳지않습니다.

 

그것은 부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다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후에

지키고 살아야 할 율법까지도 부정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일에

율법적으로 철저하였던 바리새인보다 오히려

더 나아야 한다라고 말씀해 주신것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과 계명에 있어서 2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하는 율법주의입니다 .

 

또 하나의 극단은 뭔가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극단입니다  

*율법폐기론, 또는 무율법주의

 

 

심지어는 율법과 계명을 요구하는 것은

복음에서 벗어난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일은 잘못되었다고 가르치는

극단이 우리 한국 교회에도 있는데

그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것이 아닙니다.

선택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두 개 다 연결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순서입니다.

 

율법과 복음이냐 아니면 복음과 율법이냐라고 하는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과 복음은 다 중요한데 순서에 따라 달라집니다.

복음이 율법뒤에 가면 율법이

다시 말해서 율법이 복음앞에 가면 율법과 복음이 잘못 됩니다.

 

그러나 복음 뒤에는 반드시 율법이 따라 붙어야 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율법과 복음입니까?

복음과 율법입니까?

 

오늘은 강의 시간이니까 물으면

얼른얼른 대답하고 그러셔야해요.

율법과 복음입니까?

복음과 율법입니까?

복음과 율법입니다.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은 복음뒤에 서야만 합니다.

율법이 복음앞에 서면

율법은 율법주의가 되고

복음이 죽습니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 공로 다 없어지고

내 잘난 맛에 구원을 얻게되니까

율법도 죽고 복음도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율법앞에 서게되면

복음도 살고 율법도 삽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다릅니다.

제가 값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세상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게 정당한 순서요.

코스인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구원에 대한 감사함과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율법이 되기 때문에

더 순수한 율법이 되는 것이고

복음적인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율법이 있는데

여러분 그 복음적인 율법이 사실은

성경이 우리를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이신득의" 교리는   *以信得義 :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서 세워진 교리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렇게 해서 시작되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로마서를 잘 살펴보면

로마서가 단순히 이신득의 교리만을 가르치는 성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에서 11장까지는 정확하게 이신득의에

교리를 설명하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얻는다라고 하는

잘못된 율법주의에 대하여 그게 아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얻는게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내용을

1장에서 11장까지 설명해놨습니다.

 

그런데 12장부터는 믿음으로 구원얻있으니 이제부터는

율법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행위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여 있습니다.

 

12장은 그러므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봉독해드립니다.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2:1-2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의 의미는

너희가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었으니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깨끗함을 입었으니라고 하는 뜻이고

 

'그러므로' 이후의 말씀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깨끗하게 반듯하게 말씀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행함이 있으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라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가 한쪽에 치우친 말씀이 아니라

복음과 율법을 순서적으로 잘 말씀하고 있어요.

율법을 먼저 설명하지 않았지요.

 

복음 믿음을 1-11장까지 잘 설명한 후에

'그러므로'라는 연결단어를 가지고 또

12-16장까지 행위에 대한 율법에 대한

말씀을 잘 기록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이 믿음을 앞서면 복음이 죽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복음뒤에 율법이 따라오지 않으면

복음이 또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 말씀과 우리가 잘 아는 야고보서의 말씀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러분 로마서에 있는 말씀은 율법을 부정적으로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다, 율법을 부정했어요.

 

야고보서의 말씀은 율법을 긍정했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긍정 할려면 다 긍정하시고

부정 할려면 다 부정하셔야지

왜 로마서는 부정하는 것같이 보여지고

야고보서는 긍정하는 것처럼 보여지는가?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

여러분 그것은 이것입니다.

로마서가 부정하는 율법은 복음 이전에 율법

복음을 앞설려는 율법주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가 긍정하는 말씀은

복음뒤에 따라오는 율법

그 율법은 긍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복음앞에 있는 율법은

로마서가 부정해 버렸고

복음뒤에 따라오는 율법은

야고보서가 긍정한 것입니다.

그래야 믿음이 산다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복음앞에 서도 안 되지만

뒤에 서지 않아도 안됩니다.

복음과 율법 그래야 복음도 살고 믿음도 살고

우리의 신앙도 살게 된다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인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할 당시 교회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잘못된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대표가 뭔가 면죄부 팔아먹은 것입니다.

면죄부는 행함으로 구원얻는다는 대표적인 율법주의입니다.

 

세상에 연보하면 천당간다는

이런 억지가 어디있습니까?

 

베드로 성당 다시 수축하고 건축하느라고

연보돈 모았는데 그 면죄부를 팔면서

여기 연보해서 헌금함 속에 동전이 딸랑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연옥에 있는 여러분 아버지도 천당에 갑니다.

 

이런 식으로 가르쳤던게 면죄부 아닙니까? `

얘기를 해보면 행함으로 돈내는 것으로 연보하는 것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을 얘기했으니

이게 얼마나 극단적인 율법주의이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마틴 루터는 오직 생명을 걸고

믿음으로 산다는 로마서에 말씀을 붙잡고

구원이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것이다라고 

정면으로 나서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교회를 개혁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 역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음뒤에 서야하는 율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앞에 있는 율법주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개혁한 것은 잘했으나

그러나 믿음 후에는 다시 율법이 와야된다는

사실을 놓쳤습니다.

믿음뒤에 율법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믿음뒤에 있는 율법을 긍정하고

그와 같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마틴 루터의 실수입니다.

또 하나 실수했다고 루터가 크게 잘못될 것 없어요.

근본을 잘했으니까 그러나 사람이 완전하지 못해서

하나는 잘 했지만 그다음 것을 놓쳤구나 한것을

지적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한 그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주의를 극복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에는 접근하였으나 그 구원과 믿음 후에 마땅히

따라와야할 행함에 대한 강조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게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실수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우리 한국교회는 교인들에게

값싼 복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은것만 가르쳐 줬지

그 다음에 구원 얻었으니 "그러므로"라는

그 다음 장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 입장에서 볼 때 참 좋지요.

부담없지요, 편하지요.

그냥 믿으면 구원 얻고 그냥 믿으면 복 받고

이 얘기만 듣고 교회생활하니

얼마나 마음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미숙한 교회가 한 일이요.

성숙할 교회가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전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 세상사람보다 하나 다를것이 없고

나을것이 없는 교인과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교회 탓입니다.

교회가 교인들에게 믿으면 복받고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것만 가르쳐줬지

 

이제는 구원 얻었으니

율법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믿는 사람과 믿지않는 사람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세상을 고치고  치료하고

축복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힘과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교회와 교인들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율법과 계명은 구원의 능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능력이 됩니다.

    

율법과 계명은 구원의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가 율법을 행하면 능력이 됩니다.

'구원받은 자의 능력'과 '구원의 능력'은 다릅니다.

 

여러분 한국교회는 구원은 얻었습니다.

근데 구원 얻은자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하셔서

믿음으로 구원얻은 자에게

율법을 주시고 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게하고 그것을 지킬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므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율법없이 제 멋대로 살고 하는 것

역시 믿음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것은

율법을 행하므로 얻는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하여 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시고

모든 불의와 죄악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온전케 하심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고 깨끗케 하셨으니

이제는 깨끗하게 살아야합니다.

깨끗하게 살아서 구원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어서 깨끗케 되었으니

이제는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발버둥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전에

처음부터 율법을 앞세우고 사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게되면 자기의 의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전도하기 어려운 사람

예수 안 믿는데 양심적인 사람

이게 제일 복잡한 사람이예요.

 

예수 안 믿는데도 사람이 반듯한 사람이 있어요.

예수 믿기전에 정말 안 반듯한게 참 도움이 되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세리와 창기가 너희보다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깝다

하신 말씀의 뜻이 그것이예요.

 

그렇다고 다 창기가 되라는 건 아니지만

창기는 뭘 하는가하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요 조금 율법적으로

반듯하고 양심적인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몰라요.

 

" 너나 잘해"

우리가 전도하면 너나 잘해

"아이구! 웃기고 있네"

조금 더 심각하면

"웃기고 자빠졌네"

그러고 있어요.

 

아이구! 예수 믿는것들이 내 반만이나 해라

난 예수 안 믿어도 너보다 더 정직해

여러분 정말 그래 놓으면

그렇게 말은 안 하지만

그런 마음은 가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일 골치 아픈 사람

복음 이전에 율법이 있는 사람

제일 골치 아픈 사람이예요.

 

여러분 절대 거기 빠지면 안 되요.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멀어진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일이예요.

 

예수 믿기전에 율법을 먼저 접근해 가지고

자기가 율법적으로 의로운 줄 알고 착각하니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느냐 말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에 접한 이후에는

자신있게 율법을 붙잡아야 되요.

자신있게 붙잡아야 되요.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생긴 후에 율법을 붙잡지 않으면

복음이 다시 퇴색하게 되는 것이예요.

부끄럽게 되는 것이예요.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얼마든지

율법을 붙잡아도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얻은 사람이

율법을 행한다고 율법을 자랑하겠어요. 안 합니다 

그것이 별거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되고요.

 

율법을 열심히 행한다고 할 수록

자기가 율법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매달리는 신실함

그리스도인이 되는 줄 믿습니다.

 

구원에는 3 단계가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단계는 의화의 단계입니다.(justification)

 

이 의화의 단계는 간단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즉시 의로워집니다.

믿으므로 의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순간에 끝납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달려 돌아가시므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면 그냥 끝납니다.

그게 의화입니다.

그건 순간에 이루어지는 구원의 첫단계입니다.

 

둘째의 단계는 성화의 단계입니다.

(sanctification) 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은 믿음으로 구원얻은 후에

다시 말하면 율법을 행하고 말씀대로 행하여

자기의 삶을 더욱 거룩하게 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순간의 이루어지지 않고 평생에 걸쳐서

하나님 앞에 갈때까지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성화의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영화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대 앞에 서서

구원얻고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며

영생하는 단계(glorification)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의화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

그러고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성화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추게 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화의 단계에 있으면

그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이건 밤낮 1학년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해요.

성숙해야 그 다음에 성장하고

성장해야 성숙하는 이런 단계가 있는데

의화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영적인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람은 다 죄인이야 너만 죄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야

죄 안 짓는 사람이나

 

우리가 행위가 온전하기 때문에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므로

죄사함을 얻게하셨기 때문에

구원얻는 거야"

 

그거 믿으면 구원얻어 하는건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그건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성공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예수 믿으면 복 받아

여러분 그게 거짓입니까?

그것도 복음이지요.

 

예수 믿으면 복받고 예수 믿으면 구원얻어요.

그게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예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됐어요.

이 의화의 복음때문에

한국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했어요.

 

그러면 그 다음 단계를 넘어가야지요.

그건 1학년이야

1학년을 잘 끝냈으니까?

우리 2학년으로 가십시다.

 

그 다음 단계는 뭔가 하면

우리가 죄사함 받고 깨끗함을 얻었으니

하나님이 깨끗케 하셨으니

우리는 성도예요.

 

세상 사람과 같이 살면 안 되요.

힘들어도 반듯하게 정직하게 말씀대로

율법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됩니다라고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것은 교인들에게 다시 말하면

정신적인 영적인 부담감을 주는 것이예요.

십자가 지고 가야되요.

좀 힘들어요.

이제부터는 좀 좁아져요.

그래도 우리 뚫고 가십시다.

 

그러고 교인들을 건강하게 내몰았어야 되요.

여러분 그러면 값없이 은혜받고 축복받는데

길들여진 교인들이 어 이거 뭐 점점 힘들어지네 하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힘든 일을 거쳐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그건 예수 믿은지 몇 십년 됐는데도 교회가 이제는 커져서

세계 50대 교회 절반이나 차지하게 되었는데도

밤낮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

 

그것만 가르치고 있으니

여러분 진급이 안된 교회와 같아서

점점 힘없고 무력한 교회가 되고야 말았다.

 

한국교회에 1000만의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세상 사람에게 윤리적으로 볼때 율법적으로 볼때

세상 사람만도 정직하지 못해서

 

아까 얘기한 것처럼 전도하면

"너나 잘 해라

예수 안 믿는 나만큼이나 해라"

이 소리가 들을 정도로 되었으니

한국교회가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첫 번째 단계의 구원으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예수 믿으면 죄사함받고

예수 믿으면 복받고

말씀으로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게 거짓입니까? 아니요.

사실이지요.

복음이지요.

예수 믿으면 구원얻고

예수믿으면 복받는게 사실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그 다음에 성화의 단계에 들어가야 하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국교회는 두 번째 단계의 구원으로

성장하는 교회 모델로 필요한 때가

이미 지났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이 높은 곳에 이 아름다운 곳에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세워주신

그 높은 뜻은 무엇일까?

 

두 번째 단계예요.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만 좁은 길을 가야하지만

교인들에게 때로는 질책을 해야되지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책망을 해야되지만

그렇게 교인들을 건강하게 훈련시키고 가르쳐서

또 주를 위하여 이제는 져아할

우리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고 힘들지만 우리 갑시다 하고

성화의 단계를 가르치면서 성장의 모델이 필요해서

이 곳에 높을 뜻 숭의교회를 세우신 것이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그냥 부담없이 1단계에서 끝날까요?

그럴수 는 없잖아요.

 

믿음으로 구원얻었으니

이제는 깨끗하게 반듯하게 살아

성화의 단계로 걸어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높은 뜻 숭의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우리가 거기에 헌신하고 뜻하면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를 한 학년 올려놓는

그걸 영어로 up grade 업 그레이드라 하지 않습니까?

 

학년이 grade 그레이드니까 업 그레이드예요.

한국교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1단계를 얘기하면 10000명 모인다.

2단계를 강조하면 1000명 밖에 안 모인다.

그러면 1000명 모이는 교회를 하자 그말이지요.

 

1000명의 교회를 인내하면서도 뚫고 나가면

10000명도 할 수 있고 100000명도 할 수있는

좋은 교회의 힘과 능력을 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보고 간단하게 쉽게

일하는 교회 그런 교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믿습니다.

 

저는 높은 뜻 숭의교회가 아무런 부담없이

예수를 믿는 그런 교회가 되기 원치 않습니다.

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것은

우리가 깨끗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값없이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라도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마음으로라도

깨끗하게 살아야합니다.

 

우리를 깨끗케 하실려고 보통 값을 치르셨습니까?

하나님이.생명의 값을 치르셨는데 깨끗하게 해놨더니

또 구정텅이로 들어가요.

말도 되지 않아요.

 

깨끗하게 되는 일이

값싸게 되는 일이라면 그래도 되지만

하나님이 생명을 걸고 살려놓았는데

또 거기 들어간다하는 일은

이건 양심있는 사람이 해야할 바가 아닌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행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는 율법을 행해야하는 단계에 이르게된 것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주의를 깨우치기 위하여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은

그 믿음만 붙잡고 살지 않았어요.

 

여러분 바울의 서신과 모든것을 보면

정말 바울이 붙잡고 고민하고 안타까워 살았던 것은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이었어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24-25)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었어요.

믿음은 이미 졸업해서 뿌리깊게 내려놨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하지

마음에 소원이 있었어요.

 

근데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었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거예요.

그걸 안타까워해요.

 

내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

육신은 죄의 법을 쫓아

나는 죄인중의 괴수야하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바울에게 있었어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준

바울의 삶은 오히려 여러분 그 율법

하나님의 법을 붙잡고 살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그러한 근사한 삶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한국교회가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율법을 얘기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한다라는 일을

율법적이고 윤리적인 설교와 강의로

매도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깨끗함과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끗함과 거룩함을 요구하셔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깨끗함의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함의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슨 능력이 있는가하면

죄 짓는 능력이 있고

더러워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 짓는것은 자동입니다.

 

여러분 죄 짓기 위해 금식할 필요있어요.

죄 짓기 위하여 철야할 필요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죄 짓잖아요.

 

제가 설교중에도 인용했지만

어느 주일학교 아이가 어떻게 하면

지옥가니 그랬더니

그냥 가만히 있으면 가요.

그랬다는 거 얼마나 맞아요.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의에 능력이 없어요.

거룩함의 능력이 없어요.

그거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아셔요,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데

거룩하라고 그러셔요.

우리에게 깨끗함의 능력이 없는데

깨끗하라고 그러셔요.

이게 복음이예요.

 

여러분 눈치를 채야지요.

! 주실려나 보다.

하나님의 요구를 요구로만 보면 안 되요.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네가 나한테 요구해라

밤낮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끼

무얼 마실까

그거만 기도하지 말고

 

거룩의 능력을 하나님께 달라고

구하고 애타게 두드리고 찾아봐라

그 말 아니겠어요.

 

거룩하라 하는것은 거룩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나한테 기도하라는 뜻이고

거기 하나 더 들어있어요.

기도하면

내가 네게 그 능력을 주마라고하는

약속이 있는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약속 요구 속에는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되요.

이걸 보니까 아 나도 거룩해질 수 있겠구나!

 

하나님께 정말 애타게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런 일에 신앙을 걸고 살면

 

아 나도 드디어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하는 것이

복음 아닙니까?

 

저는 깨끗함과 거룩함이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치유하고 축복하는 능력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병들고 귀신들린 이 세상을 치유하고

고치고 축복하는 제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반드시 갖추어야할 능력인데

여러분 이 거룩함과 깨끗함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예수 믿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

다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 거룩하게 해주세요.

정직하게 해주세요.

 

하고싶은데 얘기하고 싶은데 참 힘드네요.

그래도 해야지요.

욕 먹어도 해야지요.

 

 

 

여러분 이 세상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천국만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게 하늘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을 얻으려고 세상에서 건져놨는데

세상에 다시 뛰어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 보고 살아야지,

 

여러분 하늘을 얻었는데 땅에서

가난하면 어떻고 부하면 어떻습니까?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하면 부한대로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이 땅을 하나님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사는데 욕심이 좀 있어야지

           

뭐 좀 더 좋은차 타고 뭐 좀 더 좋은 음식 먹고

뭐 좀 더 넓은 아파트 평수 사는것

아직도 우리의 소원이 거기 머물러 사는것에 머물러 있다하면

 

그건 1학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의 수준인 줄로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부자예요,

안 믿는 사람이 부자예요.

사람 나름이지요.

 

예수 믿어도 부자될 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고

예수 안 믿어도 부자될 수도 있고 가난할 수 있지

누가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고 그랬어요.

 

성경 어디에 있어요.

그런거 없어요.

 

여러분 예수 잘 믿는데 가난할 수 있어요

하나님 다 아시는데

별 문제가 아니니까?

 

우리의 소망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러면 넌 가난하냐 할 말이 없지만

나를 걸고도 가난해도 좋아요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 보시기에 살려주신 것인데

부하면 살고 부자라고 잘 살고

아니예요.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이 땅에서 그래도 남은 여생 믿는사람 답게

하나님이 건져놓은 사람

성도라고 그러더니

"정말 거룩한 무리로구나!"하는 말을 듣는

삶 살다가 하나님나라 가는 것이

진정 잘 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말씀 마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고

세상으로부터 구원한 그런 존재들입니다.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고 세상에서 건져 놓으셨는데

다시 세상에서 진짜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식으로 세상 사람과 함께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역행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구원얻은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을 얻기 위하여

세상 사람과 똑같이 욕심부리고 죄 짓고

거짓말하며 정직하지 못하게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구원을 바라보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깨끗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고

반듯하게 살아

거룩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고치고 축복하고 치유하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와 같은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

다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들었지만

우리에게는 거룩의 능력이 없습니다.

깨끗함의 능력이 없슴니다.

 

세상에서 구원은 얻었지만

세상 떠나면 죽는것과 같은

불신앙이 아직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에게

부족한 저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엄청난 댓가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얻어서

세상 다 주어도 바꿀수 없는

하늘을 이미 얻은 사람이라고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세상에 대하여 정직하고 깨끗하고

반듯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거룩의 능력으로 세상을 고치고

세상을 축복하고 세상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같은 교인들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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