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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16장16-18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by 【고동엽】 2023. 1. 18.

누가복음 16장)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묵상/눅 16:16-18)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오늘날 구약을 분류하라면,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나눈다. 이 중에서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율법서로, 예언서를 선지자로 말했다. 이 둘은 구약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을 마지막으로 구약은 끝나고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선언하심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아주 명쾌하게 잘 해석해서 말해주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즉 율법은 그 기한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다. 약속하신 자손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이제 성도는 율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의롭게 되고(롬 3:21),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롬 7:6).

 

사도바울은 우리와 율법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 3:23-25).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그러나'(17) 라고 하심으로써 율법이 여전히 유효하듯이 말씀하신다. 이것은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하심인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 뒤에 나오는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18)라는 말씀은 율법을 문자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아내가 음식을 맛없게 만드는 정도만으로도 정당한 이혼 사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것이 율법에 아무런 위배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마 5:31).

 

그런 풍습이 설사 율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율법은 그림자의 옷을 벗고, 실체로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갑자기 이혼 문제를 언급하심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제대로 해석해야 함을 한 예로써 말씀하심이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서 임하는 삶의 방식이다. 율법의 완성은 율법을 더 문자적으로 집착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됨을 시사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

 

 

◆ 천국은 침입하는 자의 몫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셨다. 그것도 조금 여신 것이 아니라 활짝 여셨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하나님 나라로 침입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침입'이란 단어에 주목하자.

 

'침입'에 해당하는 헬라어 '비아조'는 강제로 모여 들어가다라는 뜻이다. 침입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들어올 때 사용하는 단어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들어오는 것이 침입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자기가 아무리 잘 믿어도 예정되어있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천국은 침입하는 자가 얻는 곳이다.' 사람들은 쓸데없이 많이 알아서 고민이 많다.

 

하나님 나라의 문은 꽁꽁 닫혀서 정말로 들어가기 어려운 성이었는데, 이제는 문이 활짝 열려서 누구나 원하면 들어올 수 있는 놀라운 시대가 열렸다.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부터 길거리 노숙자까지 가리지 않고 누구나 원하면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은 구원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시다.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2-13)

 

그런데도 인간들은 자기들이 꼴 보기 싫은 자들이 많다 보니 구원을 점점 어려운 것으로 몰아갔다. 이것저것 조건을 붙이고, 시키지도 않은 문지기 노릇을 하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고 있다. 윤리·도덕을 조건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고, 십일조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나라 시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오라고 되돌려보내는 자도 있다. 주인은 길거리에서 아무나 다 데리고 오라고 했건만, 종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우리도 탕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하고 아무나 오라고, 초대해야 한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초대하지 말자. 교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탕자의 형 노릇 하지 말아야 한다.

 

구원이 쉬우면 성도들이 함부로 살 것이라고?

그럴 리가!

정말 그가 구원을 믿는다면 그는 천국의 상을 위해서 살게 될 것이다. 삭개오를 보라! 그가 기쁨에 겨워서 자기 재산을 모두 헌납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사람들이 구원을 안 믿으니 지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탐욕을 부리는 것이다.

 

구원을 어렵게 만들면 성도들의 삶이 더 훌륭해질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것은 공산주의가 세상에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보다 더 미덥지 않은 생각이다. 구약성경은 이미 인간의 자기 의가 사회를 좋게 만들지도, 스스로를 의롭게 할 수도 없음을 증명했다.

 

이제 고집을 버리고 항복하고, 겸손하게 주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에게 감사하자.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사랑 영원하다.

주님, 주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구원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시 106:1, 4, 표준새번역)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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