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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29장1-25 / 욥의 깊은 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것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18(목)■
 
(욥기 29장)
 
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4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7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8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12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14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16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19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20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21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22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23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24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25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묵상/욥 29:1-25)


◆ 욥의 간절한 바램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욥은 현재 가족을 잃고 온몸이 종기로 뒤덮였으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중이다.


그러나 욥의 과거가 어떠했던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나날들. 하나님의 빛이 그에게 비치고, 그를 인정해주시고, 모든 것에 복을 내려주셨다. 


젊은이들이 자신을 보고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 경의를 표하고, 유지들도 욥 앞에서는 말을 삼가고, 지도자들도 말소리를 낮추었다. 사람들은 욥이 나타나면 가장 귀한 자로 대접했다. (8-10)


욥이 이렇게 말함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멸시받으며, 친구들에게 하찮은 조언이나 들어야 할 존재가 아님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 욥의 자아도취


(14)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욥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한다.


의를 옷으로 삼아 입고,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이 쓴 사람이다. 
어려운 자들을 돕고, 불의한 것을 참지 않고 바로 잡았던 사람이다.


사람들은 비를 기다리듯이 욥을 기다렸으며 기대감에 가득 차서 욥의 말을 들었고, 
욥이 말을 마치면 어떤 토도 달지 않았다. 욥의 말은 그들에게 이슬처럼 젖어 들었다(21-23).


사람들이 낙심하고 있을 때 욥이 미소를 지으면 용기를 얻었다(24).
욥은 왕처럼 취급 받았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위로자로 인정되었다(25).


그런데 여기까지가 모두 욥의 말이다.
아마도 상당 부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욥의 말속에서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던 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주님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지만(마 6:3). 욥은 자신의 구제에 한껏 자부심을 가졌다. 


욥은 평생에 남에게 무시당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늘 VIP로 대접했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혔다(25). 욥은 그런 대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욥이 교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욥을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 1:8)라고 평하셨을 리가 없다.


다만 욥은 자신을 높이지 않고 겸손해도 사람들이 알아서 잘 높여주었으나 자랑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겸손마저 사람들의 칭송 대상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자랑하지 않는 욥.
욥은 정말로 자신은 겸손한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공격을 받자 그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었던 자만심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욥도 몰랐고, 주변 사람들도 몰랐다. 욥의 깊은 무의식 속에 숨어있었던 자기 의에 대한 자만심이 이토록 크고 강력함을 누가 알았겠는가?


욥은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청년과 같다.
계명을 잘 준수하며 살았던,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던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막 10:21)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마 19:21)


욥은 부자 청년처럼 정말로 온전하고자 했다. 그리고 온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욥의 말을 통해서 욥이 얼마나 자아도취에 빠져있는지를 드러내신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꽤 겸손한 줄 안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그게 겸손이다.


인간은 애초에 비천한 자이며 죄인에 불과한 존재인데, 겸손한들 뭘 더 어떻게 낮출 수 있겠는가?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에게 진정한 겸손은 불가능하다. 인간세상에서의 겸손이란 그저 '주제 파악' 정도다. 


사람은 무시당해봐야 그의 겸손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토록 겸손해 보였던 자도 무시당하면 바로 반발하며 자신이 어떤 자임을 과시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사 53:7).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의 겸손이 흘러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는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겸손은 모두 거짓됩니다. 제가 주님의 겸손을 배우길 원합니다.
가지가 나무의 진액을 빨아들이듯 그렇게 주님의 품성이 제게 들어오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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