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곤 목사 (창세기 25장 27∼34절) 2006.06.12 조회 : 70
본문 말씀은 장자권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들려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는,선택의 신비를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아닌 동생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 상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에게 신비하고 때론 야릇하며 심지어는 걸림돌(scandle)이 되기도 합니다. 십자가! 그것은 분명히 걸림돌이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십자가는 사형기구에 불과하며 최고의 수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치의 상징인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니 구원의 능력으로 만드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니라”(고전 1:8)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신 은혜,그리하여 종에 불과한 우리에게 장자의 명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장자의 직분을 경홀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활동적이고 남성적인 기질이 넘쳤던 에서가 한낱 낙타몰이꾼으로 전락해 동생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17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해왔습니다. 소유와 물질로만 자기 생명의 보증과 확증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에서도 바로 이런 현실주의자로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은 장자권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에 죽 한 그릇에 앞날의 약속된 축복을 한순간에 팔아버리는,관능적 탐닉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원을 사모하거나 조상의 유전을 명상한다거나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음미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그런 것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팥죽 한 그릇에 목숨을 건 인생이 돼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자권은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빵과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며 돈 한푼,땅 한 평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 특권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 장자권은 하나님께서 친히 값을 치르시고 피의 대가로 주신 놀라운 선물이며 특권인 것입니다.
셋째는,장자권을 꼭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도덕성이나 인격으로 볼 때 뛰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욕심과 야망의 사람이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기꾼과 같습니다. 그러한 그가 왜 형 에서를 제치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기도하는 구원의 족장이 되었습니까? 모든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현실 이상의 것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실재하는 하나님의 축복과 하늘의 것,다시 말해 보다 높고 숭고한 것을 붙잡으려는 열의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비전은 ‘야망’이 아니라 곧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대망’이었습니다. 그의 불타는 환상,꿈,끈질긴 생명력과 모험심,무엇보다도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못 가십니다”며 하나님과 씨름하는 집념,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실로 이러한 야곱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신앙인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영리한 체하며 현실의 팥죽을 움켜쥔 자는 팥죽도,장자권도 모두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팥죽을 놓고 장자권,곧 영원하고 신령한 특권과 신앙의 약속을 붙잡는 자는 그와 그 후손이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디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지 마시고 끝까지 꽉 붙잡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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