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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수요.금요)설교〓/새벽 설교

슬기로운 처녀들

by 【고동엽】 2022. 10. 21.

마25:1-13


예수 님의 열 처녀 비유 중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와 대조되는 여인들을 지칭하여 슬기로운 처녀들이라고 합니다. 슬기롭다는 말은 '지각 있는' '현명한'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슬기롭다는 말은 '참된 지혜를 가졌다' '미래에 대한 성실한 준비 자이다' '깨어 있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슬기로운 처녀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슬기롭다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⑴,참된 지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롭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마7:24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는 것을 가리켜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했고, 호14: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는 것을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또 약3:17절에서는 영적인 열매가 가득할 때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그리고 살전5:8절에서는 근신함을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본바 와 같이 지혜롭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스러운 사람들은 말씀을 배운 대로 잘 실천하고 봉사하게 됩니다. 봉사하는 삶이 있어야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봉사할 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없어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고 하면, 선한 청지기에서 그 원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청지기라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봉사하는 사람은 자기 것으로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한다고 생각해야 이 봉사가 온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강 주셔서,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하나님이 물질 주셔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봉사한다는 생각을 할 때 건전하게 봉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봉사에는 말로 봉사는 것도 있고 물질로 봉사하는 것도 있습니다. 벧전4:11절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라고 했습니다. 복음 전도, 설교, 교육, 내 재능으로, 내 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복음을 주셨기에 그것을 나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봉사할 때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 물질, 내 것 가지고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로 영광이 돌아가지 않고 받는 사람도 치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가지고 나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봉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봉사를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어느 크리스천 사업가가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버릴 수 없는 자라면 그 사람은 소유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어떤 자리이든, 어떤 소유이든, 내가 그것을 더 이상 버리고 싶지 않다는 유혹이 드는 순간, 그 때가 바로 그 자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고 한 말입니다. 참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봉사하는 사람은 이런 청지기 정신에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 속에서 봉사하시는 분들! 이 사명에 잘 충실하여 하는 것이 마지막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나만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봉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는 그 자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평상시에 배운 대로 열심히 봉사를 잘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다섯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사람들이기 대문에 지혜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대학교에 입학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단 1점 차이로 불합격 처리가 되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꼭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적당하게 교회를 들락날락하여 기독교인 행세를 한다면, 물론 본인들은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마지막 날에 낙제 후보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교회 문턱을 밟고 드나들면서 기독교인의 참된 삶을 못 산다면 아마 마지막 날에 미련한 다섯 처녀들과 같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7:21절에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으니 등만 준비한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초청 받았다고 자만하지 말고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직분을 맡았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주님이 오실 때 맞이할 수 있는 충분한 기름이 준비되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등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지금 어느 정도의 기름이 있습니까? 만일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지금 곧 기름을 보충해야 합니다.

⑵,미래에 대해 성실히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성경 히9:27절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지만 천년 만년을 살수 없습니다. 반드시 죽게 되어 있고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심판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작업입니다. 영벌을 받든지 아니면 영생에 참여하든지 들 중에 하나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이 장래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장래를 잘 준비하려면 눅12:35절에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면서 영적 각성을 축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 는지 밤중엘 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13:3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19:7절에서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장래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성령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심판 때에는 이마에 인 맞은 사람만 구원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구나 예수를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님은 지식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경험으로도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믿는 마음을 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불이 꺼져 간다고 했는데 왜 그랬습니까? 등에 기름이 충분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들은 기름이 충분치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도 기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름이 충분하지 못해서 따 떨어져 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기름이 충분하지 않은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면 정말 부끄러운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 봉사를 해도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한다면 피차간에 은혜스럽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나, 그러치 못한다면 그런 사람이 끼인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소리만 높을 뿐이지 결과는 좋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장래를 위해서 준비할 사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서로 열심으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말세 성도의 가장 우선 순위! 교회의 삶에 있어서도 가장 우선 순위가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강조되면서 가장 안되는 것이 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되, 열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열심이라는 말은 운동선수가 마지막 테이프 끓을 때, 몸을 앞으로 쭉 내미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하되 최선을 다하는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막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 대하여 추상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랬습니다. 사랑은 용서요! 덮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는 먼저 덮은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미워하는 이유를 사랑하는 이유보다 더 쉽게 찾습니다. 허물을 더 쉽게 생각해 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리는 나의 죄를 덮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 생각에서 덮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입으로 덮어야 합니다. 말하고 다녀서는 안됩니다. 창9장의 진리는 항상 동일합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덮지 못하고 떠들어댔습니다. 똑똑하니까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보십시오. 셈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허물과 잘못을 덮어 주면서 사랑할 때, 상대는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잘못할 때 깊이 용서하면서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잘못할 때, 실패할 때, 사람들은 서로에 대하여 깊이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 대접하면서 사는 삶을 말합니다. 대접도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대체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집을 보면 열린 집입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의 집은 열려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길손을 대접하고, 설교자를 대접하고, 과부들을, 고아들을 대접하는 삶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심판 "너희들은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나를 대접했느냐?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나를 돌아보았느냐? 내가 목마를 때에 내게 물 한잔 준 적이 있느냐?"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 집이 열려 있을 때, 구체적인 선교의 센터가 되고, 사랑의 실천 자리가 되고, 교제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고, 우리 집이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사랑과 하나님 역사를 경험하는 출발점이 되니까요! 이런 삶이 바로 장래를 위해서 성실히 준비하는 삶인 것입니다.

⑶,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으려면 자신의 믿음을 늘 확인해야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3: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13:11절에서는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엡5:14절에서는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지 아니하면 미련한 처녀들처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4: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생활은 곧 기도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 성도들은 기도 생활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정말 항상 기도하며 시간을 정해 놓고 집중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는데 어떻게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고 했습니다. 정신을 안 차리고 졸면서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혹은 무작정 소리를 지르면서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 할 때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우리 삶이 바빠지고 하면 우리는 무엇이 우선 순위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먼저 기도에 대하여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기도를 놓치면 패배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를 먼저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실마리기 때문입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일들을 닥칠 때 해결하는 지혜가 기도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가? 나는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모든 해답이 기도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나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나는 너무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기도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너무 바빠서요? 그렇다면 더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깨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출저/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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