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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사랑

사랑으로 시작하자 (요 13:1~11)

by 【고동엽】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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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시작하자   (요 13:1~11)

신실한 신앙을 가진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주일도 온전히 성수했고, 헌금생활도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를 했습니다. 교회생활도 헌신적이었고 충성했습니다. 그러던 집사님에게 신앙적 회의가 왔습니다. 내가 이렇게 믿는 것이 잘 하는 일일까? 이렇게 믿다가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일까? 한번쯤은 신앙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가 “목사님, 내일 주일은 중요한 출장이 있어 해외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더니, “집사님같이 신실한 분이 주일에 출장 간다고 하니 정말 중요한 일인가 봅니다. 잘 다녀오세요.”하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1. 신앙심의 회의

그는 휴양지의 호텔에 도착하여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웠습니다. 정말 편안했습니다. “맞아. 가끔은 이렇게 쉬는 날이 있어야지”생각하고 침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밤이 되었습니다. 휴양지에서 그냥 잠들 수 없어서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영을 하려고 내려가 제일 먼저 다이빙대에 올라갔습니다. 막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수영장 안에 갑자기 십자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십자가 그림자 안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나타나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결국 뛰어 내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걸어내려 왔습니다. 그런데 내려와서 보니 누가 수영장 물을 빼 놓았는지 수영장에는 시멘트 바닥만 드러나 있었습니다. 주님이 집사님의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신실한 신앙을 가졌을 때 뿐 아니라 주님을 떠나 있을 때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만일 여러분의 생명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내일 이 세상을 떠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된 줄 아시고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자기의 인생을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하루밖에 남지 않은 그날을 사랑으로 마무리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2. 사랑의 세 가지 요소를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첫 번째 요소는 헌신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입니다. 사랑의 요소 중 하나가 헌신입니다. 저도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성장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먹을 것이 있어도 자신이 드시지 않고 먹을 것을 아들에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의 94회 생신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좋은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니 처음에는 고기, 그 다음은 반찬, 마지막은 밥이나 냉면이 나오는 식당이었습니다. 어머니도 맛있게 잘 드셨습니다. 배가 부를 만큼 충분히 드셨기에 식사를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데, 시키거나 안 시켜도 값은 같기에 굳이 냉면을 한 그릇 더 주문하셨습니다. 제가 냉면을 먹고 나니, 어머니께서 어머니 몫의 냉면을 제게로 내밀면서 “아들! 한 그릇 더 먹어라”하고 제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사랑의 두 번째 요소는 친밀감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부드러운가?’, ‘얼마나 친근하게 대해 주는가?’, ‘얼마나 미소를 짓게 하는가?’입니다. 사랑은 거칠거나 무뚝뚝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감미로운 것이며, 사랑의 친밀감은 한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것입니다. 친밀감이 떠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세 번째 요소는 열정입니다. 열정도 뜨겁고 사랑도 뜨겁습니다. 사랑은 표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사랑은 뜨겁고, 적극적인 것입니다. 입을 맞추어도 이가 부러질 것 같이하고, 포옹도 갈비뼈가 부서질 것처럼 합니다. 사랑에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사랑의 요소 중 헌신이 강조되었는데, 지금은 친밀감과 열정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에 남은 하루 동안 제자들을 사랑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헌신과 친밀감과 열정으로 사랑하셨습니다.

3. 사랑의 표현

사랑은 표현의 옷을 입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간직할 때가 아니라 표현할 때 진정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표현의 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인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랑의 표현을 하셨습니다. 사랑의 위대함을 알지만 모두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마치려는 2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소명과 자신의 사명을 아셨습니다. 맡은 자의 자세를 보면 책임과 의무가 느껴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맡으면 책임감을 가지고 양육합니다. 선생이 학생을 맡으면 책임을 가지고 지도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만나면 사랑의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옷을 입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4. 표현의 4단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세족식을 거행하셨습니다. 4~5절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 4단계 표현이 있습니다. ① 겉옷을 벗고 ②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③ 대야에 물을 떠다가 ④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1) 겉옷 벗기 - 이것은 자신의 위치나, 신분이나,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내려놓지 않고는 제자들의 발을 씻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13절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고 하신 것처럼 선생님이지만 모든 체면과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제자들의 발을 씻길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체면과 신분과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생과 주였지만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2) 수건을 허리에 두르기 - 이것은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수건은 예수님 자신이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상대의 필요(Need)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필요(need)를 채우는 것입니다.

3) 대야에 물을 떠오기 -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제자들을 시킬 수도 있지만 친히 물을 떠 오셨습니다. 대야는 예수님의 손과 제자들의 발이 만나는 곳입니다. 이곳은 특별한 사랑의 터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좀더 아늑하고, 좀더 분위기 있고, 좀더 멋지고, 좀더 조용한 곳을 찾아서 만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식사나 차를 한잔해도 분위기(무드)를 따집니다. 주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위해서 조용한 장소를 준비해 놓고 계신데 그곳이 교회입니다.

4) 냄새나는 발을 씻기기 - 발을 씻기는 일은 당시에 종이 상전에게 행하는 일입니다. 선생님이나 랍비들을 절대로 하지 않는 일입니다. 여기서 발은 우리의 인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발의 먼지는 사람의 죄악을 상징합니다. 죄악을 씻기는 것은 주님의 보혈뿐입니다. 죄 씻음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 실천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8절)”하고 고백할 때에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느니라(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된 줄 아시고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자기의 인생을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모든 일을 사랑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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