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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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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행11:19~26 09.03.15.설교녹취

*원제목 : 주의 손이

 

◑<워낭소리>가 주는 교훈 한 가지 -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최영준, 이삼순 씨 부부의 숭고한 인생

이들은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들이며, 실제 인물들이다.

관객 10만 명 동원하면 대성공을 이룬다는 독립영화계에서

영화 <워낭소리>는 관객 3백만 명에 육박하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 다리가 불편한 몸으로,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던 최영준 씨는

19살 때 당시 16살의 이삼순 씨와 만나서 결혼을 한다.

그 이후에 63년 동안, 두 사람은 손바닥만한 논과 밭을 갈면서

무려 9자녀를 잘 키웠다.

 

30년이나 함께 일해 왔던, ‘아들보다 귀하다’는 소가 죽었을 때,

할아버지는 소를 위해 장례식을 치러주고, 소의 무덤까지 만들어주었다.

이 이후에 새로 구입한 젊은 소를 부리면서, 할아버지는 오늘도 매일 쉬지 않고

날마다 일을 나가고 계시다.

 

장성한 자녀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부모님을 봉양할 터이니,

더 이상 일을 하시지 말라고 만류해도,

올해(2009) 82세의 최영균 할아버지는, 당신의 몸이 움직이는 한

일하기를 쉬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고,

79세의 이삼순 할머니 역시, 그런 남편의 뜻을 존중해서 따르고 있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점 하나

그 두 분은 배운 것이 없는 분들이다. 가난하다.

일평생 사회적으로 변변한 직책 한 번 가진 적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 두 분은 일평생, 자기 욕망을 쫓아 살지 않았다.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자기 야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일을 하지도 않았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불의와 야합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일 벗인 소를 사랑하면서

매일매일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삶에 충실한 숭고한 삶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그 두 사람의 숭고한 삶 앞에서

오늘도 허망한 욕망을 쫓고 있는 현대의 관객들이

스스로 수치/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세상의 박수갈채를 인생의 목적으로 살았던들

그 두 사람의 삶이, 그토록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숭고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배운 것도 없고, 지닌 것도 없고, 변변히 내세울 것도 없는 그 두 분의 삶이

숫한 사람들에게 숭고한 감동을 주는 것은

주어진 자기 삶의 길에서, 일평생토록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한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평생 충실하게 사는 것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숭고한 감동을 전해 준다면

하물며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을 다하고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가려가는(부인하는)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감동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는가?

 

 

◑묵묵한 안디옥 성도들에게.. <주의 손>이 함께 하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교회 역사상 그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사도행전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했기 때문에, 주의 손이 함께 하신 것이라고 본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무명의 성도들

예루살렘 북쪽 480Km지점에 위치한 안디옥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이방세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였다.

그 교회는, 그 유명한 사도바울을 배출하면서,

최초로 이방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한 교회였다.

 

거기서 성도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명실상부 기독교의 중심축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옮겨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교회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놀라운 교회가

유명한 사도들에 의해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11:20

성경에 나타난 바, 안디옥 교회를 세운 사람들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다.

이름이 전혀 드러나지 아니한,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직업조차도 알 길이 없다.

잘 아시는 것처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의사 누가였다.

‘의사’라고 할 때, 누가는 분석적이고, 기록하는 능력이 뛰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누가는 사도행전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몇 십 년 지나서, 누구의 구전을 듣고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누가는 사도바울의 수행원으로서, 바울 가까이에서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이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아주 생생하게 알았거나

사도바울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가는,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 이외의 어떤 사실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 당사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워진 안디옥 교회가, 그 이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보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11:21

 

▲자기를 부인한 묵묵한 그 몇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셨다.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유대인 몇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로 인해서

안디옥에 살던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다.

 

당시 그리스-로마사회에서 유대인은, 결코 사회적으로 지배계층이 아니었다.

유대인은, 겨우 로마제국의 동쪽 자락 끝, 변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변방인에 불과한 유대인,

그것도 경력이라고는 고작 가난한 목수 생활이 전부인

유대인 청년 예수가 온 인류의 구원자시다>는 그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즉 헬라인들은, 누구보다도 자기 민족의 찬란한 문명과 역사에 대해

긍지를 지니고 있었던.. 일류 민족이었다.

그런 헬라(그리스) 사람들이, ‘변방인인 유대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유대인의 설교를 듣고, 그 유대인을 자신들의 구주로 영접하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이변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성경은 그 해답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11:21

 

안디옥에서 이방인 헬라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서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스스로 자기 자신들을 가렸던

그 몇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방치해 두시지 않고

당신의 손,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손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그 손으로 인해, 안디옥에서 찬란한 문화인의 후예 헬라인들이

‘변방 유대인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무식한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대단히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명의 몇 사람들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만 추구하면,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시면

그의 삶을 통해 ‘역사가 바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 더 읽으실 분 ..............................................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모세

 

▲마른 막대기가 →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다

80세가 되기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노인 양치기로 살던 모세에게

그의 유일한 개인 재산이 있다면, 바로 손에 쥐어져 있던 지팡이 하나였다.

80세가 되기까지 모세는, 장인 집에 얹혀살았기 때문에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은, 실은 장인의 재산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늙고 초라한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라고 명령하셨다.

 

80세의 모세가 비록 미디안 광야에서 초라한 양치기이긴 하지만

그러나 나이 40세까지는, 그는 엄연한 이집트 제국의 왕자였다.

그래서 당시 세계 최강국 이집트의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하고 가공스러운지

모세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군인 한 명, 무기 하나 주시지 않으시고,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던 백성을 해방시키라고 하셨다.

상식적으로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세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자기 가족을 데라고,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마른 막대기를 손에 들고

이집트를 향해 출발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성경은, 모세가 쥐고 있는 모세의 지팡에 대해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4:20

 

그 직전까지 그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였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집트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의 지팡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의 손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 지팡이는 평소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가 양을 칠 때 사용하던

마른 막대기 그대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린 이후부터,

그 지팡이는 더 이상 마른 막대기가 아니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을 때, 폭 32킬로미터의 홍해가 갈라졌다.

모세가 그 지팡이로 광야의 반석을 내리쳤을 때

최소한도 2백만 명 이상이 마시고도 남는 생수가 광야에서 강물처럼 흘러나왔다.

하나님의 손이, 마른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 마른 지팡이는, 실은 모세 자신이었다.

80세가 되기까지 장인 집에 얹혀서, 늙은 양치기로 살아가던 모세는 ‘마른막대기’였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 이상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른막대기 같던 모세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혔을 때

그는 위대한 출애굽의 대지도자가 되었다.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비록 80노인이라도, 그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았던 다윗

 

베들레헴 동네 양치기 다윗 청년이, 이스라엘 왕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 역시

다윗 개인의 능력으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다윗의 일평생을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7~10

 

아무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붙들어주고 계신다 할지라도

그 당사자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의식하면서

그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31:15

 

다윗은, 많은 사람들의 거짓 모함과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

사울 왕은, 다윗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무려 3천명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거짓 모함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그들과 똑같은 악한 방법으로 결코 대응하지 않았다.

 

자신의 앞날이,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시간이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있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손으로

자신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일생을, 하나님의 손에 의지해서 사셨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23:46

 

 

▲마치는 말

본문 속 안디옥의 이름도 드러나지 아니한

무명의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안디옥의 헬라 문화권 속에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고

모세, 다윗, 예수님이 마찬가지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

 

내 삶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면 된다.

그것이 절벽 아래로 걸음을 내디디는 것과 같은 스릴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손이 붙잡아 주심을 믿고, 발을 내디디는 것이다...

안디옥 교인 몇 사람, 모세, 다윗, 예수님이 그랬던 것이다. <설교 녹취 ▣ 그리스도의 임재 동행

 

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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