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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예비하신 바나바들*이재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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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좋다오

 

예비하신 바나바들
세월이 틀러갈수록, 향기로운 인생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인생도 있다. 참된 크리스천에게,
세월의 경과는, 생의 향기를 더욱 그옥하게 해주는 족진제다. 인생의 향기는 인간의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법인데, 참된 크리스천은, 진리로 자신의 속사람을 가꾸는 자기 때문이다.
오늘 만나 볼 말씀에서는, 우리의 삶이 연한(기한)을 거듭할수록, 더 그윽한 향기가 될 수 있게끔.
우리의 일상사 속에서 맺어야 할 매듭에 관해, 성경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그 첫 번째 매듭은 '바나바의 매듭’이다. 성경 사도행전 4장은 초대 교회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 성경 사도행전 4장 32절 말씀
초대 교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유무상통(有無相通)이었다. ᄌ유무상통(有無相通): 있고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함. 있는 자나 없는 자나,자신의 소유를 모두 내어놓고 필요한 대로 나누어 쓰면서, 누
구든지 자기 소유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삶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
었는가?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성경 사도
행전 4장 33절 말씀
그 해답은 교인들이 사도들로 인해 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은혜를 얻지 못했던들 상상조자 어
려운 일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목회자의 주요 역할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교인들로 하
여금 주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교인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고
교인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교인들은 은혜를 입으면 그 삶이 변하게 되어 있다.
어떻게 목회자가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는가? 사도들처럼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설교한 대로
사는 것이다. 말씀을 좆아 살 때에만 말씀이 그를 통하여 육화(incarnation: 성육신), 은혜가 임하
게 된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중이러라.-성경 사도행전 4장 34-35
절 말씀
사도들로 인해, 은혜를 얻은 교인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놀고,유무상통의 삶을 산 결고h 교
인 중 경제적으로 곤궁한 자가 없었다. 참으로 위대한 교회요, 위대한 교인들이라 할 만하다. 그
런데 이처럼, 위대한 삶을 살았던 교인들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다. 만약 요즈음 자신의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친 사람이 있다면 교회는 어떻게 할까? 주보에 이름과 금액을 명시할 뿐만
아니라, 예배 시간에 공표, 뭇 사람의 박수를 받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전 재산을 바친 초대 교회 교인들 중 이름이 밝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가 무
엇일까? 그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살도록 그들을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한 사람만은 이름이 밝혀져
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
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성경 사도행전 4장
36-37절 말씀
그 주인공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헬라식 이름이었고,그의 히브리식 이름은 요셉이었다. 왜 모
든 사람이 익명인 가운데 바나바만 기명으로 처리되었을까? 그가 회사한 금액이 교인들 중에 가
장 많았기 때문일까? 만약 그로 인함이라면 성경엔 그 금액을 분명히 적시하였겠지만,전혀 언
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 이후 바나바의 행적을 살펴보면,왜 성경에서 그의 이름만 거
명되어 있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된다. 성경 사도행전 9장에 이르면 나중에 바율로 개명한, 그 유
명한 사을의 회심이 일어난다. 초대 교회 핍박의 최선봉에 서 있던 그가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주
님의 부르심을 받은 두|,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의 경건 훈련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사도들을 만나 함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인들 중 그를 환영하는 자는 없었다. 크리스천을 핍박하던 그의 전력을 익히
알고 있는 예루살렘 교인콜은, 사울의 회심 자체를 믿어 주지 않았다. 교회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위장전술로 간주한 것이다. 그때 그의 회심의 진정성을 보증해 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 바나
바의 신원보증으로 인해 사울은 비로소 예루살렘 교회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 이후 고향 다소에 칩거해 있던 사을을 목회자로 인도해 준 사람 역시 바나바다. 안디옥 교회
담임목사였던 바나바가, 교회 목회에 관한 한 전혀 무경력자인 사울을 자신의 동역자로 삼아 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나바와 사울 일행이 주님의 뜻을 좆아 세계선교의 첫 발을 내디딜
때, 그 선교팀의 팀장이 바나바였다. 이를테면 바나바는 사을의 인생에서,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인
생의 길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는 앞서 살펴본 말씀 속에서, 유독 바나바의
이름만 밝허져 있는 까닭을 알게 된다. 사울이 주님을 알기도 전어L 알기는커녕 주님을 부정하며
대적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를 위해, 그의 인생 길목에 이미, 바나바를 예비해 두셨음을 일
깨워 주시기 위함이다. 나중에 주님의 구원을 입은 사울이 그제야 이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감격
했겠는가?
바나바란 이름의 뜻은 권위자 즉 '위로의 아들'이다. 우리말로 '위로'로 번역된 헬라어 '피라클레
시스’는 '격려’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자신이 주님을 알기도 전에, 자기 인생의 길목에 이미 바나
바를 포진시켜 두셨던 주님의 사랑율,뒤늦게 확인한 사율에게 그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는 없었
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용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경 로마서 8장 35절, 38-39절 말씀
바율(사율)이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율 위하여 살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베푸셨고,
또 베풀고 계시는 '바나바의 은종’으로 인함이었다. 주님을 대적할 때에도 바나바의 은종을 베풀
어 주신 주님이시라면, 주님을 위해 자신을 드릴 때 주님께서 더 큰 바나바의 은종으로 함께하실
것임을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롤로 바나바의 은종을 누리려 하지 않았다. 다시 알해 주님께서 베푸신 은종
의 종착역이 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그 은종의 통로가 되었다. 그 이후 바을은 그가 만나
는 모든 사랑들에게, 스스로 바나바가 되어 주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다. 루스드라의 앉
은맹이를 위해서도, 두아디라성의 루디아를 위해서도, 빌립보 감옥의 간수륨 위해서도,그는 바
나바의 역할율 중실하게 이행하였다. 그것이 주님께서 자신에게 바나바의 은종율 부어 주신 까
닭임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바나바가 있었다. 48년 전 한 살 터율의 남매가 있었다. 오빠는 다섯 살이고, 여동생은
네 살이었다. 하루는 엄마가 장에 간 사이에 여동생이 고구마를 억던 중 고구마가 목에 걸리고
알았다. 새파랑게 질식되는 아이를 보고 놀란 가정부가 어절 줄을 몰라 무작정 시장으로 뛰어갔
다. 장율 보다가 가정부로부터 청천벽력 갈은 소리를 둘은 엄마가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
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를 풍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의사로부터 들율 수 있었던 말은, 이미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졸지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부부는 예정에도 없던 아이를 한 명 더 갖기로 하였고, 이몽해 다시 딸아이가 태어났
다. 그 아이가 자라나 25살이 되던 해 나의 아내가 되었고, 1년 후 나는 아내를 통해 주님을 인격
적으로 만나 뵈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주님율 인격적으로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 나률 우ᅵ해, 내
인생의 길목에 포진시켜 두셨던 바나바였다.
48년 전 한 어린 생명율, 하나님나라의 필요에 따라 먼저 불러 가시고, 그로 인해 그 부모의 계획
에도 없던 아이를 태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때에 나와 만나, 내 아내가 되게 하심으로, 나를 죽움
의 수렁에서 건저 주셨다. 생각할수록 신묘불즉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의 부모님, 령제
둘, 내가 선데이크리스천이었던 시절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던 교우님둘 둥, 나의 인생 길목마
다 수많은 바나바들이 있었다. 그분들을 통해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바나바의 은총으로 인해, 오
늘 내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내 인생을 누군가를 위한 바나바로 내어놀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다. 본래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서을을 줄발했는데, 예기치 않았던 사증 문제로 어걸 수 없이,
하루률 더 체류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느 집사님과 예정에도 없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도중 그 집사님은 지나치는 말로 혹 도움이 필요한 선교지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고,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록인 빈민존에서 어렵게 사역하고 있는 고영수 선교사님의 연락처를 알
려 주었다.
다옴남 서울토 돌아온 나는 그 사싶을 까않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명수
선교사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일본에 있는 000 집사님이 거금율 송금했다는 내용이었다. 집
사님이 송금한 금액은 선교사님이 혹인 빈민들을 위해 건축 중이던, 훈련원 건물 잔금 금액과 일
치하는 액수였다. 그것을 계기로 집사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고 선교사님께 많은 액수의 선교헌
금율 보내었다.
나는 이런 일을 경험 할 때마다 온몸에 소롬이 돋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주님께서는 일본에서
나의 일정율 하루 어긋나게 하심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고명수 선교사님의 사역율 도우셨다.
이처렁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고 선교사님을 위한 바나바로 내가 쓰임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도
은혜려니오b 그런 일을 통해 주님께서 나의 앞길에도, 나률 위해 또 다른 바나바들을 수없이 예
배해 두셨음율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니,어찌 전율적인 감동율 느끼지 않율 수 있겠는가?
기톡된 바 하나님이 자기름 사랑하는 자둘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
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갑으니라. •성경 고린도 전서 2장 9
절 말씀
주님께서 지난 과거에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셨던 바나바콜, 헌재률 위해 예비해 두신 바나바둘.
그리고 미래를 대비하여 이미 예비해두신 바나바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 사실을 깨담는다면 이제부터 우리 역시 누군가률 위한 바나바가 되기 우I해, 우리의
삶율 내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바나바의 매듭이요,이 매듭 위에서 우리는 참 크리스천 됨의 회
열을 비로소 누릴 수 있다. 그 매든 위에 펼쳐지는 우리의 삶은 그 가치와 의미가 전혀 새로워진
다. •빌취: 이재철 목사 저서 '매듭짓기' 中에서-®.
에수가좋다^
굴물 보시고 스크쟁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앳굴로 따듯한 소감으로 감사픕 표하는 그리스도인미 Q시다. |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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