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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아라.
여호수아 1장 9절 / 이재철 목사"
용기를 내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성경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
어떤 분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학창 시절에 어느 청년 집회에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집회의 강사가 청년들의 감정을 한껏 고조시키면서, 주님을 진정으로 믿는 청년이라면
마땅히 선교사로 자원해야 한다는 결론을 맺은 뒤, 이제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한 사람은 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회의 분위기상, 만약 일어나지 않으면 믿음 없는 사람이
될 처지였습니다. 어절 수 없이 청년들 거의 모두가 다 일어났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끝까지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데는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고 알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분위기나 시대 조류에 휩
쓸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휩쓸려도 깨어 있어야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
므로 믿음은 용기 없이는 불가능합니 다.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
습니다. •그 날 집회에서 일어섰던 수많은 젊은이들,그리고 그 강사가 가는 곳마다 일어서지 않
을 수 없었을 술한 젊은이들 가운데, 막상 선교사가 된 사람은 도대체 몇 사람이나 될까? 선교사
들이 되지 못한 나머지 청년들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양심의 갈등을 겪고 있을까?'
믿음이란 곧 용기입니다. 용기가 있을 때만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고, 양심의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줄애굽 한 뒤에,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의 관문인 가
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일입니다. 모세가 열두 사람의 정탐꾼으로 하여금 40일 동안 가나
안 땅을 탐지케 했습니다. 정탐을 마친 열두 사람이 돌아와 정탐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먼저 열 사람의 정탐꾼들은 그 곳에 들어가서는 안 될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습니다. 그 곳에 사
는 사람들은 모두 거인이며, 그들에 비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메뚜기에 불과하기에 절대로 들
어갈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열두 명 중에서 무려 열 명이 말입니다. 그 절대다수의 보
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대성통곡하였습니다. 분위기는 이미 가나안을 포기하는 쪽으
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마지막 보고자로 나선 여호수아와 갈랩은 그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았습
니다. 그 두 사람은,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고, 또 들어가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얼 백성들은, 그 두 사람을 돌로 쳐죽이
려 했지만, 그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양심의 고통을 느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저럼 참믿음이란 용기입니다. 용기 없는 신앙이란 속빈 강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이 용기를
의미한다면, 이 때의 용기란 대체 무엇에 대한 용기를 의미하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하란에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의 나이 이미 75세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주인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통신과 교통 그리고 정보가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것은 그 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성경 히브리서 11장 8절 말씀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는 길조차,제대로 알지 못한 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도대체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는 용기있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조카
롯은 달랐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
다. 그는 그저 눈에 보이는 사람을 믿을 뿐이 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사람만을 좆다가 결
국은 소동과 고모라에서 패가망신하고 말았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지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가서 당신 백
성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 때 모세는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팔십 노인이었
습니다. 그뿐 아니라 40세가 되기까지 이집트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자랐던 모세는,이 세상
누구보다도 이집트의 군대가 얼마나 막강한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집트의 군대는 명
실공히 세계 죄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칼 한 자루, 창 한 자루 쥐어 주
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모세의 손에 들려 있는 마른 막대기만을 들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
방시키라고 하셨으니, 이 얼마나 무모한 말씀입니까? 그렇건만 모세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에 비해 아론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 역시 사람만 믿고 사랑을 좆아갔습니
다. 그러다가 모세가 보이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나사a에 한 남자와 약론한 마리아란 처녀가 있었습니다.
결혼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네가 성령으로 예수
를 잉태할 것이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당시에는 약혼한 처녀가 남의 아이를
가지면 파혼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을법에 따라 돌로 맞아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마리아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했습니다. 그녀 역시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용기 있는 그녀 속에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신 것은 결코 우연
이 아닙니다.
둘째,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는 용기입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만 주어진 상황을 믿음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용기 없는 사람은 자기의 계산
과 어긋난 상황이 주어지면 회피하고 도피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상황의 의미와 가
치를 놓쳐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라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그 결고卜 그 상황 속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종을 발견할 뿐
아니라, 모든 상황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습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 부잣집 아들 요셉이 어느 날 종으로 팔려가, 이집트에서 종살이에 옥살이까
지 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한 번도 그 상황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
다. 그 모든 상황을 온전히 믿음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는 정알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훈련을 거친 요셉은 이집트의 국무종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돌에 맞고 갖은 위협과 핍박을 받았지만, 그는 자기 앞에
전개되는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에게는 지병이 있었습니다. 치유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지만 고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까지도 그는 믿응으로 기
꺼이 받아들였습니 다. 바울의 모습을 한번 그려 보죠. 남루한 옷을 입고 쇠사슬에 묶여, 그나마
지병으로 약해진 몰골을..... 얼마나 초라합니까? 그러나 그는 진정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었습니
다. 주어진 상황을 회파하지 않았던 바율 한 사람의 용기가, 로마의 역사를 새롭게 했씀니다.
영국의 시인이며 사상가였던 존 밀턴은 장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는
용기를 지녔기에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실락원'을 쏠 수 있었습니다. 존 번연은 모함을 받아 10년
동안 옥살이를 했지만, 바로 그 기간 동안 불후의 명작인 '전로역정’을 남겼습니다. 그 역시 상황
을 두려워 않는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용기 없이는 절대로 주어진 상황을 수용할 수 없습니
다. 상황을 수용하는 용기 없이는,하나님께서 주신 상황의 절대적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합니다.
넷찌L 순종해야 될 사람에게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용기 없이 순종해야 될 사람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블가능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생각을 해
보십시다. 100세에 아브라함은 아들을 낮고,이름을 이삭이라 했습니다. 이삭이 혼자 나못짐올
지고 산을 걸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이를데면 1S세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서 115세 된 아브라함에게, 그 귀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도
대체 아듈을 제물로 바지라는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 히브리서 11장은 이
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
각한지라.-성경 히브리서 11장 내절 상반절 말씀
아브라함은 분명한 믿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내 자식 이삭에게 주신다
약속하셨으므로, 이삭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이삭이 죽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되
기 때문이다. 혹 죽는 경우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살려 주실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아님니다. 그 아이는 1S-30세 정도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함께 번제를 드리러 가자며,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
니다. 산 아래에서부터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이삭이 나웃단을 지고 산을 올랐습니다. 산 정
상에 당도하자 아버지는 이삭을 마치 제물처럼 잡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칼을 들어 내리지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삭은 단 한 번도 저항하지 않았습니
다. 만약 장년이 이삭이 도망가려고만 했다면 1내세 된 늙은 아버지를 따돌리지 못했겠습니까?
이삭이 자신을 잡으려는 아버지에게 항거하지 않고 순종한 것은 그가 진정한 용기를 지니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이삭 역시 믿옴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옴은 순종해야 할 사람에게
순종하는 용기로 나타났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스승에게 순종하는 것도, 부부 간에 순종하는 것드, 형제가 서로 순종하
는 것도 용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참된 믿융은 참된 용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용
기이고, 주어진 상황을 수용하는 용기이며, 사람에게 순종하는 용기입니다. 우리가 이 험악한 세
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용기 없이는 블가능한 일입니다.
용기 없이 거짓이 만연한 이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같 수 있겠습니까? 용기 없이 언제나 진실하
게 바른 삶을 일구어갈 수 있겠습니까? 용기 없이 사림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용기 없이 십자
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제 개인적인 경험상 용기 없이는 모두 다 블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모함을 받고서 모함하지 않는 것도 용기 없이는 불가
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님이 정말 용기를 다하는 참된 크리스전이 될 때, 좋은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묻 때,외국인둘이 제게 제일 먼저 시켰던 일은 퓰세
와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율 주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인을 위해 봉법율 저지른다는 것이 그 당
시 저로서는 참으로 용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때 제 나름대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
다. 이 다융에 제가 직접 사업을 하게 된다면 결코 달세하지 않으리란 결심이었습니다.
그 후 1974년 통성사률 설립하고 결심한 대로 탈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거래저들 대부분이 세무 자료를 누락시켜 주기를 원했습니다. 제
가 용하지 않자 불매 운동도 벌였습니다. 세무서에서는 제가 자료콜 100퍼센트 신고해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해당 세무서는 통성사가 고의로 달세하지 않는 기업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S
성사와 거래하는 모든 업제들은 세무 자료를 100퍼센트 받행하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탈세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그 의지
콜 실천할 수 있는 품토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줄판계와 서점
계 사랑들이 인정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쉬운 일이라면 용기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새 역사는 용기 있는 자들율 동
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용기의 출처는 어디이겠습니까? 그 출처가 자기 자신이겠습
니까? 만약 용기의 줄저가 자기 자신이라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일 뿐입니다. 만용으로는
남에게 질 수도, 남옳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질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으며, 짓밟힐
수도 있는, 크리스천의 참된 용기의 출처는 과연 어디일까요?
성경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호수아 1장을 통하여 하나
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마옴움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반복
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은 무엇율 의미할까요? 갑자기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여호
수아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옴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용기콜 가지
라고 격려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이란 용기임뮬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제 무엇을 근거로 용기플 가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 여至수아 1장
5절에서 6절움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평생에 너플 능히 대적할 자가 없
으리니,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콜 떠나지 아니하
며 버리지 아니하리니,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둘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묻에게 주리라.
한 땅움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성경 여호수아 1장 5내절 말씀
또 9절을 동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
러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성경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
용기의 근원, 용기의 줄처는 오직 엘로림 하나님이심을 하나님께서 친히 밝적 주고 계십니다. 여
호수아에게처럼, 하나님께서 좋은님과 함께하실 것인즉 용기콜 가지라십니다. 어떻게 좋은님이
남을 용서할 용기룹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증은님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떻
게 환란 속에서 인내할 용기콜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좋은님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십자가콜 지는 용기콜 품옳 수가 있겠습니까? 전지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좋
은님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높은 곳은 티옛 고원 해발
的00미터 지점에 있는 꼴라란둥입니다. KBS 취재팀이 그 곳에 사라는 까르마 씨의 텐트로 취재
자 찾아간 날의 기온은 영하 20도의 강추위였습니다. 얼마나 주웠던지 카메라의 작동이 멈줄 정
도였습니다.
그런데 장잘 시간이 되자 까르마 씨는 모포 한 장을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의
아하게 생각한 기자가 까르마 씨에게 어디콜 가느냐고 용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밖에 있는 제 양때콜 이리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매일 밖에서 잡니다." 그리고 그는 모포 한
장으로 용을 감싸더니, 양들 옆에서 장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영하 20도의 그 강추위 속에서 말
입니다. 델레비전으로 그 화면을 보면서,저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의 좋욘님둘!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그 고지의 목자도, 자기 양
메콜 지키기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콜 아랑곳하지 않고,그 결에서 함께 잠을 자는데, 좋은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까르마씨보다 못하시겠습니까? 그분께서 좋은님 결에 계심을 믿
는다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좋은님과 함께하십니다. 그분이 좋은님과
함께하시기에 증은님은 참으로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오솔길을 걸어가다가 불현듯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용기가
뭐에요?" 아버지가 도로 물었습니다. "너는 용기몰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아이가 대답을 했
습니다. "나보다 덩치가 더 큰 아이가 다콘 친구를 괴롭힘 때, 내가 나서서 그 덩치 큰 아이를 혼
내 주는 거에요." "그래, 그것도 용기일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참된 용기가 아니야." 그러면서 아
버지는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계속 산길을 걸어갔습니다.
산모롱이를 돌아설 때 마침 그 곳에 제비꽂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꽂을 가리키면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용기란 바로 저런 거야." 아무도 보지 않는 산 속에서,
그 누구의 갈재도 없지만, 생명의 몫을 다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투사콜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진실한 신자콜 요구합니다. 진실한 신자만이 누가 보
든 보지 않든, 용기 있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용기의 사랑을
동하여 이 땅의 역사를 바꾸어 가십니다.
- 발취: 이재철 목사의 저서 _청년아 울더라도 뿌러야 한다•中에서-®.
예수가종a오
굴을 보시고 스크a 하시기 전에 그남 가지 마시고 y굴로 따妄한 소감으로 감사품 표하는 그리스도인미 s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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