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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믿음(2)
마태복음 8:5-13
2001년 10월 7일 숭의여자대학 소강당에서 99명이 참석하여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드디어 오늘 교회 밖의 손님들을 청하여 사랑하는 우리 교인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설립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하나님은 외형적으로 볼 때 거의 완벽한 준비를 하게 해 주셨습니다. 벌써 출석교인들이 천명을 넘어서서 꼭 창립 5주년이 되는 지난주에는 주일 출석이 1,300명을 넘어섰고 우리가 예배당으로 사용할 대강당도 거의 완벽한 준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대대적인 수리를 통하여 완벽한 조명과 냉난방은 물론이고 최고 수준의 음향과 영상을 준비하여 어떠한 예배와 집회도 가능한 집회 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무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붙여 주셔서 그 많은 일들과 시설들을 정말 쉽게 준비하고 장만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복 주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동안교회와 숭의학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위에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받은 복과 같은 복을 내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축복합니다. 창립 5개월만에 저희 교회만큼 모든 것을 갖추고 준비한 교회는 아마 이제껏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게 고생하며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분들을 생각하면 송구스럽고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입니다.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개척과정을 보면 이것은 정말 틀림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몰아 주시지 않으신다면 이렇게 단 시간 내에 이런 교회를 이룰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메추라기를 몰아 주시듯 만나를 내려주시듯 그냥 쏟아 부어 주시는 은혜와 복 가운데 오늘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설립감사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주신 후 우리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와 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과 같은 '이만한 믿음'이었습니다. 사실 믿음이 없다면 수 천명 수 만명의 교인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완벽한 시설과 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설립감사를 예배를 드리는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내가 다 공급해 주고 준비해 줄 터이니 너희들은 그냥 예수만 열심히 믿어 백부장과 같이 나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는 사람이 되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을 깊이 읽어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 뿐 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외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제사는 기뻐하셨지만 믿음 없는 제사는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제사를 통하여 표현되는 우리의 믿음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그 믿음 위에 복을 부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고 다윗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고 욥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복을 받았고 베드로가 믿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부어주시는 복은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주장과 가르침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오직 믿음'이라는 단호한 표현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며 네가 땅에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열쇠란 형통함의 상징으로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와 부어주시는 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믿음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다하였으며, 시편 92편에 보면 의인 즉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전에 심기운 종려나무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편 128편에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며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이만한 믿음'이라고 칭찬을 하신 백부장에게 예수님은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은대로 되는 삶과 천국의 열쇠 그리고 시냇가 심기운 나무는 다 같은 컨셉의 말씀들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저는 인생과 목회의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뛰는 심정으로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전반전도 중요하지만 후반전이 중요합니다. 저는 전반전도 비교적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생과 목회의 후반전을 더욱 열심히 뛰고 싶습니다. 인생과 목회의 후반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저는 압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력과 이력에 승부를 겁니다. '얼마나 큰 교회를 하였느냐?' '어떤 지위와 자리에 올랐느냐?'를 중히 여기고 거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큰 교회를 목회하고 높은 지위와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자신의 삶과 목회가 성공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큰 교회를 목회 할 수도 있고 훌륭하고 높은 지위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큰 교회를 목회 할 수도 있고 훌륭하고 높은 지위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공적인 삶과 목회를 하였다면 그것은 큰 교회를 목회하고 훌륭한 자리와 지위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다 큰 교회를 목회하고 훌륭하고 높은 지위와 자리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작은 교회를 목회 할 수 있고 낮은 지위와 자리에서 평생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는 그 높지 않은 자리와 지위 그리고 크지 않은 교회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드릴 아름다운 열매들을 풍성히 맺어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대로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의 성공은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낮은 지위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와 높고 훌륭한 지위와 자리가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듯이 작은 교회와 낮은 지위와 자리 그 자체가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뿐입니다.
저는 믿음에 인생과 목회의 승부를 걸겠습니다. 큰 교회를 목회하느냐 작은 교회를 목회하느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높고 훌륭한 자리에 오르느냐 오르지 못하느냐에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다.
큰 교회와 높고 훌륭한 자리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작은 교회와 낮고 천한 자리도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자랑은 오직 믿음 뿐 이었면 합니다. 한결같은 믿음으로 인생과 목회의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와 복을 주셔서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들이 목회와 인생에 열매로 맺힐 것이라고 저는 믿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더 잘 먹고 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저는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저는 더 좋은 옷 입고 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저는 더 큰 교회 목회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저는 세상적으로 더 유명해 지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높아지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인생과 목회의 전반전을 끝내고 이제 막 후반전을 시작한 저의 관심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아직도 부족한 믿음과 믿음의 생활을 연마하여 하나님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받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시설이 아닙니다. 건물과 시설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것들만으로는 교회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교인입니다. 교인들의 믿음입니다. 교인들의 좋고 큰 믿음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갈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으로 주신 높은 뜻 숭의교회를 우리와 우리의 가족 그리고 후손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와 나라를 축복하는 교회로 세워나가십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을 썩을 육신과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통하여 확장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십니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의 믿음이 진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하십시다. 믿음 없는 반석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했던 사람들의 전철을 밟지 아니하고 반석과 같은 믿음으로 아름다운 주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십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일까요? 예수님의 백부장의 어떤 면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백부장에게 예수님께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만한 믿음'은 될 수 있었을는지 몰라도 '이만한 믿음'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그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이 최소한 '그만한 믿음'은 기본적으로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시시하게 믿거나 건방지게 믿으면 그런 기본적인 믿음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만 한 믿음'은 '그만한 믿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자녀를 위하여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기도에 대하여 체험과 간증이 있는 교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면 '그만한 믿음'도 가진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만한 믿음'이 '이만한 믿음'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의 믿음은 '그만한 믿음'이 아니라 '이만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백부장의 무엇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이라고 하셨을까요?
저는 본문을 통하여 백부장의 믿음이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과 기사를 믿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의 삶과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다보면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단계를 벗어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부부가 사랑하여 함께 살면 생각도 닮고 외모도 닮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닮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생각을 닮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닮아 사는 것이 저는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이 바로 '이만한 믿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본문의 백부장에게서 그와 같은 경지의 믿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백부장에게서 그 믿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간구의 내용이 참으로 특이 하였습니다. 자기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몹시 괴로워하니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인과 종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와 같은 일은 지금까지도 몇 나라에 남아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우리 나라도 불과 몇 십 년 전 까지 있었던 전통이었습니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당시 로마 장교의 하인이었다면 전쟁 포로였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단순히 하인이 아닌 노예였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설령 그가 전쟁포로나 노예가 아니었다고 하여도 당시 하인은 앞에서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집에서 기르는 가축 이상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하인이 중풍에 걸렸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주인들을 알지도 못했을 수 있고 안다고 하여도 그것이 주인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겨져 버림 받고 폐기 당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그 가축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하인이 중풍으로 고생하고 괴로워 하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친히 예수님께 나아가 그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구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단순히 예수님과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차원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단계를 벗어나 사랑하는 단계에 이른 사람이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의 마음과 가슴을 닮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며 낮고 천한 자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백부장을 향하여 '이만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백부장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 중풍병도 나을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귀한 믿음이지만 그와 같은 믿음만으로는 '이만한 믿음'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그만한 믿음'입니다. '이만한 믿음'은 '그만한 믿음'을 지나 단순히 예수님의 기사와 능력을 믿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믿고 기도하는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닮아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단계에 이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그와 같은 믿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예수님의 기사와 능력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능력과 기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믿음이 끝이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의 단계를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만한 믿음'에서 졸업을 하고 백부장이 가졌던 '이만한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믿음이 단순한 능력과 기사가 아니라 믿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삶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이 설교를 듣고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만한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단계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발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 그리고 그 행동과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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