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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개신교의 안수 예식과 안수증

by 【고동엽】 2009. 4. 20.
 

                                         -   개신교의 안수 예식과 안수증  -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또한 실제로 기독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안수 예식은 비성경적인 것으로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사례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 초기 교회시대에 사도들의 선교 활동을 통해 여러 지역에 새로운 교회들이 생겨나면서, 교회안에는 질서를 위해 자격을 갖춘 장로들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요 그분의 특별한 대리자였던 사도 바울은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세울 것인지에 대한 실제적인 본보기를 제시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신약성경 ‘디도서’에서 디도에게 각 교회에 자격있는 장로들을 세우라고 이렇게 명했다. 즉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 1:5)” 여기서 ‘세우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티스테미’인데 이 동사는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다 또는 확인하다는 뜻으로서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목사안수식이나 장로장립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선교여행 초기에 안디옥 교회도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를 하였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3)” 여기에 나오는 ‘안수’도 공중 앞에서 단순히 손을 얹어 인정한다는 의미이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안수 예식과는 전혀 다르다.

 

    1세기 초기교회 시대에는 지역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울 때 장로자격에 관한 지침이 문서화되지 않아, 공중들이 보는 앞에서 공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사도들이나 그 대리자들에 의해 손을 얹어 인정했다. 2세기 이후에는 장로자격에 관한 지침이 문서화된 성경으로 완성되어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나오는 장로로서의 필요조건을 갖추면 성도들의 인정을 받아 장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2세기에는 사라진 사도들이나 그 대리자들이나 안수와도 관계없이 성경나타난 대로 장로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장로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신약성경에 장로와 관련하여 몇 번 나오는 ‘안수’라는 단어는 단지 역할을 ‘인정하거나 확인한다’는 의미였다. 흔히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높은 직책에 앉히거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였다. 따라서 어떤 높은 공직에 앉히기 위한 의미로서의 안수를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는 신약성경에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학자들은 말하기를 “오늘날에는 안수가 ‘성직’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안수’의 개념이 변질되었지만 신약성경에는 그러한 개념의 안수는 찾아볼 수 없으며 주후 2세기의 교회 기록들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3세기에 이르러서는 ‘안수’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변하면서 공식적인 기독교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4세기에는 ‘안수’가 만인제사장주의를 파괴하는 교회의 계급적인 성격을 띠면서 구별된 복장과 엄숙한 의식으로 행해졌다. 이와 같은 ‘안수 예식’은 교회가 로마의 행정관리들을 임명하는 관습을 본따 만들어졌으며, 나중에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서는 안수가 더욱 신성시 되었다. 이렇게 안수의 개념이 변질되면서 기독교의 안수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시키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의 성직자제도의 모순을 발견하면서, 개신교에서는 감독의 직책을 폐지하고 사제의 권한을 축소시켜 장로로 되돌려 놓았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단일감독체제를 부활시켜 일인목사체제로 명칭을 바꾸어 놓았다. 더욱이 개혁자들은 성직자와 평신도를 갈라놓은 의식인 ‘가톨릭의 안수개념’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들은 가톨릭의 교황제도는 반대했지만 교회내에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사람은, 안수받은 목사에게만 제한시켜 놓았다. 그리하여 개혁자들에 의해 이렇게 행해진 제도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던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파에서는 안수받은 목사만이 설교하고, 예배를 주관하며, 성례를 집행하는 등 교회내에서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목사가 우두머리가 되어 전권을 행사하는 교회는, 인간이 고안해 낸 사이비교회이지 성경에 나타나 있는 교회와는 전혀 다르며, 또한 고정월급을 받는 직업적인 목사는 성경에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상술한 바와 같이 목사가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나, 일반 신자가 장로나 집사 등이 되기 위해 갖는 의식인 ‘안수 예식’ 같은 것도 성경에 없다. 예수님이 정하신 교회예식은 오직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침례예식이요, 또 하나는 만찬예식이다. 나머지는 인간들이 고안해 낸 가짜 예식이요, 의식인 것이다.

 

    비성경적인 제도의 실행은 늘 부패한 모습을 드러내 왔다. 일반적으로 기독교계에서 ‘목사’를 증명하는 ‘목사안수증’을 받으려면 최종적으로 안수위원들을 통하여 목사안수예식을 거쳐야 한다. 이때 대부분의 경우 목사후보생들은 미리 준비한 회비를 수거하여 안수위원들에게 금일봉을 건네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목사에게 있어 목사안수증은 가장 소중한 증명서이긴 하지만, 관례로서 돈봉투가 오가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다. 이와 같은 짓은 세속적인 행위로 요즘은 공직사회도 이런 부패한 관행이 사라진 추세인데도, 거룩하고 깨끗해야 할 교회가, 그것도 교회의 인도자가 될 사람들이 추악한 선배들의 전통과 관행을 따르고 있느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자들이, 소위 하나님의 소명을 느끼고 깨달아 목회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면서, 목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2007년 9월에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안수증’을 수십명에게 돈을 받고 판 사실이 적발되어 MBC뉴스 시간에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무인가 신학교에서 ‘목사안수증’을 남발하여 돈으로 거래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런 목사안수증과 관련하여 장로, 집사, 권사 등의 안수식에도 금품이 오가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교회의 전통과 관행이 되었다. 이제는 돈 안들이고 직분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취급받아, 염치없는 사람이거나 담임목사의 권위를 우습게 아는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래서 교회 직분자로 피택받은 사람들 가운데 이때를 대비해 미리 적금을 든 사람도 있고, 미처 준비 안된 사람들 중에는 담임목사의 특별배려에 의해 통장계좌로 분납시켜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습에 회의를 느끼는 신자들은 자포자기 하거나, 교회를 떠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한다.     

 

    10세기 이후 중세시대에는 가톨릭의 주교, 수도원장, 사제 등의 성직을 봉건 군주가 돈을 받고 파는 성직매매 행위가 성행했었다. 이렇게 해서 성직자가 된 사람들은 종교적인 지위과 함께 세속적인 부와 권세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이러한 부패 행위가 수백년에 걸쳐 만연되어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 성직매매의 부패행위는 마침내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성직매매주의는 포괄적으로 교회의 직분을 돈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오늘날 개신교파 내에서 교회직분과 관련된 장립식이나 안수식 등에서 자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중세시대의 성직매매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개신교 목사들이 교단의 총회장이나 노회장 선거시에 수천내지 수억의 돈을 쓰며, 또한 목사안수예식에도 금전이 오가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교회 지도층에 있는 자들이 그러한 직위를 얻기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갔는데, 일반 교인들이 돈 안들이고 공짜로 직분을 가진다는 것은 삯꾼목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형평성의 원리에 어긋날지도 모를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일반 교인들도 웬만큼은 그러한 삯꾼목사들의 심사를 충분히 헤아리기 때문에 교회직분 피택시에는, 교회의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장로는 일이천만원, 안수집사는 오백에서 천만원, 권사는 삼백에서 오백만원 등 이런식으로 나름대로 값을 매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서 경제사정이 어려운 신자들은 이러한 삯꾼목사들로 인하여 물질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어 왔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장사꾼들의 소굴이 된 것을 보시고 격분하여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뒤엎으셨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장사꾼들의 그러한 행위를 강도짓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교회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직매매와 같은 행위는 이천년전 성전에서 돈거래를 하는 장사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오늘날에는 삯꾼목사들이 교인들을 대상으로 성직매매와 같은 강도짓을 벌이면서 교회를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안수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로 인해 성직매매와 안수증 남발 등 온갖 부패한 모습이 드러났다. 또한 안수는 교회내에서 특권층과 일반신자를 구별 짓는 계급적인 개념을 형성시켰다. 초기 교회시대의 장로들은 사도들과 같은 일꾼들에 의해 단지 공중앞에서 인정되었을 뿐이다. 손을 얹는 의식인 안수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은혜나 은사를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의식은 다만 그러한 사람들을 사도들이 인정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뿐이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성경적인 복수장로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교회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필요조건을 갖춘 장로들을 교회의 인도자로 세우고 있다. 이런 교회에서는 일반 기독교계에서 행하는 비성경적인 안수예식과 같은 형식을 갖춘 위임절차를 행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로가 신자들에게 인정받아 장로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교회의 인도자로 신뢰하지만, 장로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출교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면 이런 장로들은 신자들에게 즉시 장로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지 않는 목사 안수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일반 기독교계에서는, 거짓목자와 삯꾼목사들이 온갖 부정과 부패와 비리가 확연히 드러나는 출교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는데도 불구하고, 쫓겨나기는 커녕 버젓이 일인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런 거짓목자들은 교회를 자기 재산으로 여기기 때문에 불만을 가진 신자들을 내쫓기 위해 자기편의 거짓신자들을 내세워 두패로 나누어 싸우게 만든다. 이런 결과가 바로 힘없는 평신도와 권력있는 목사로 갈라 놓은 성직자 안수제도와도 무관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안수제도는 기독교내에 특별한 계층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교회직책은 대부분 안수예식을 통해 주어지고 있다. 장로교 헌법에도 “교회는 선거를 통해 권사, 집사, 장로, 목사로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안수라는 특별한 의식을 가져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세워야 한다.”고 씌여 있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내용의 특별한 안수 예식이 기독교를 부패시키고 타락케 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제 개신교인들은 누구든지 성경적인 안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 같이 돈을 밝히는 거짓목자나 삯꾼목사들이 직분을 맡길 때 성직매매와 같은 돈거래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강도짓 같은 비성경적인 안수예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그런 자들을 바로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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