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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행 18:5-11)

by 【고동엽】 2025. 12. 20.

 

“두려움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행 18:5-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18장에 기록된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사역 장면은 겉으로 보기에는 담담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인간의 심령이 얼마나 깊은 흔들림과 싸움을 겪고 있었는지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와 바울과 합류하였을 때, 바울은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힘있게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환영과 박수가 아니라 대적과 모욕이었습니다. 바울은 옷을 털며 말합니다.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장면에는 사도의 단호함과 함께, 설명되지 않은 깊은 피로와 상처가 배어 있습니다. 말씀을 전했으나 거절당했고, 진리를 붙들었으나 마음을 닫은 얼굴들을 마주해야 했던 한 종의 고독이 그 침묵 속에 숨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라는 도시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곳은 부유하고 개방적이었으나 동시에 음란과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말씀이 필요한 곳이었지만, 말씀이 가장 쉽게 왜곡되고 조롱받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미 빌립보에서 매를 맞았고,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쫓겨났으며, 아덴에서는 조롱 속에서 홀로 남겨진 경험을 했습니다. 고린도에 이르러서도 그는 생계를 위해 천막을 만들며 낮은 자리에 자신을 두어야 했습니다. 사도라는 이름과는 달리, 현실의 그는 외롭고 가난하며 지쳐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도착하여 전해 준 마게도냐 교회들의 소식은 분명 큰 위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소식은 다시금 그를 말씀의 전면으로 불러냈고, 그 결과는 또 다른 반대와 모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믿음의 사람을 두려움이 없는 존재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 또한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음을 숨김없이 증언합니다. 바울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한 문장은 바울의 상태를 정확히 드러냅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고, 말하기를 멈추고 싶었으며, 어쩌면 고린도를 떠날 마음까지 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그런 바울의 마음을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책망이 아니라, 금지와 명령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은 바울이 이미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 말씀이며, “침묵하지 말라”는 것은 그가 침묵의 유혹 앞에 서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명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라.” 이 말씀은 사명의 근거가 사람의 용기나 인내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이 계속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고린도의 현실은 음란과 폭력, 거절과 조롱이었지만, 주님의 시선은 이미 그 도시 안에 준비된 영혼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바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주님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사명의 방향을 다시 세워 주는 선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영적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반응으로 낙심하고, 현재의 분위기로 사역의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열매를 보고 계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주님의 말씀 속에서는 이미 “내 백성”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이며, 사명을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보호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더 이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 없이 그의 생명이 사명 중에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바울은 이후에도 수많은 고난을 겪게 되지만, 고린도에서는 주님의 약속대로 비교적 긴 시간,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며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체류 기간이 아니라, 바울의 영혼이 다시 숨을 고르고, 복음의 씨앗이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며 한 가지 생생한 예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노년의 목회자가 젊은 시절, 한 시골 교회로 부임한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작았고, 성도들은 몇 명 되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설교를 하면 졸거나 비웃는 이들이 있었고, 전도를 나가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겨울 밤, 그는 난로 하나에 의지해 사택에 앉아 사직서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성경에서 우연히 읽게 된 말씀이 바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는 그 말씀 앞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내 눈에는 사람이 없지만, 주님의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백성이 있겠구나.” 그는 사직서를 찢고 남았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그 교회는 지역을 섬기는 공동체로 자라났고, 당시 아이였던 몇 명은 훗날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목회자는 말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밤에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침묵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예화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본문의 정신을 우리 삶에 옮겨 놓은 하나의 그림입니다. 우리도 각자의 고린도에 서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에서, 혹은 마음속 깊은 자리에서 우리는 말하고 싶지 않은 유혹을 받습니다. 이미 충분히 말했고, 충분히 상처받았으며,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말씀은 더 크게 외치라는 요구가 아니라, 함께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라는 초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말씀을 가르쳤다는 기록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급하게 떠나지 않았고,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루하루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과 삶을 나누었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시간 속에서, 인내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라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즉각적인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의 말씀이 이미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역사하고 있음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이 본문은 결국 한 가지로 우리를 이끕니다. 두려움이 사라져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침묵의 유혹이 사라져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말씀을 따라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이 오늘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조용히 울려 퍼지기를,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말할 용기와 다시 머물 용기를 얻게 되기를 정중히 축원드립니다.

 

1. 요약

사도행전 18:5–11은 고린도에서 사역하던 바울이 대적과 모욕으로 인해 두려움과 침묵의 유혹을 겪는 가운데, 주님의 밤중 환상을 통해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는 위로와 사명의 재확인을 받는 장면이다. 사역의 지속 근거는 바울의 강함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와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시선이다.

2. 묵상 포인트

  •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서 침묵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가
  • 주님이 보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백성”을 신뢰하고 있는가
  • 나의 사역과 신앙의 근거는 결과인가, 임재의 약속인가

3. 강해

본 단락은 바울의 내적 상태(두려움), 하나님의 계시(밤중 환상), 사명의 재확인(말하라), 보호의 약속(해롭게 할 자 없음), 그리고 사역의 지속(1년 6개월 체류)이라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이는 사역자의 영적 리듬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본문이다.

4. 주석

  • “두려워하지 말라”: 헬라어 현재 명령으로, 계속되는 두려움을 멈추라는 의미
  • “침묵하지 말고”: 복음 선포 중단의 유혹을 암시
  • “내 백성”: 아직 회심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예정과 부르심 안에 있는 자들

5. 원어 주석

  • φοβοῦ (phobou): 지속적 공포 상태
  • σιώπησον (siōpēson): 말하지 않다, 침묵하다
  • λαός (laos): 언약 공동체적 의미의 ‘백성’

6. 금언

“하나님의 임재는 두려움을 제거하지 않아도, 침묵을 깨뜨릴 수 있다.”

7. 신학적 정리

  • 하나님의 주권: 구원의 대상은 인간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에 의해 규정됨
  • 계시 신학: 위기의 순간에 주어지는 특별한 위로의 말씀

8. 주제별 정리

  • 두려움과 사명
  • 침묵과 선포
  • 임재와 인내

9. 목회적 정리

이 본문은 지친 사역자와 성도에게 “떠나라”가 아닌 “머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준다. 사명의 지속은 열매가 아니라 약속에 근거한다.

10. 성도들의 결단 및 적용

  •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말씀의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 두려움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사랑으로 말하겠습니다
  •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오늘 다시 신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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