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혜로 사는 사람들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는 마른 땅을 적시는 여름날의 소낙비와 같다"고 했습니다. 만일 여름철 소낙비가 없다면 대지도, 초목도, 사람도 메말라 시들고 말 것입니다. 어떤 날 페르시아의 고레스(Kyros)황제가 친구 중 한 사람에게는 금메달을 걸어주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금메달을 받은 사 람은 키스를 받은 사가을 몹씨 부러워했습니다. 이유는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에게 키스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명예를 얻는 것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총애를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총애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 하나만으로도 일평생 감격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4:32-37은 은혜받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소개해 줍니다. 그 모습 은 이상적 교회상이며 이상적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 내용을 구 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은 1. 한 마음 한 뜻이 됩니다. 4:32를 보면 "무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라며 살고 있 는 부부도 한 마음 한 뜻이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년 사이 이혼율이 5배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1970년도 말에 3만쌍이었던 것이 1993년에는 8만쌍으로 증가했습니다. 이혼의 사유는 부정행위, 학대, 직계존배속 학대, 악의에 찬 유기 등이 대부분입니다. 그 리고 이혼율은 매년 가속되고, 증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도 한 마음, 한 뜻이 되기가 어렵다는 실증인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의 함께 은혜받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은 감정, 의지, 사상, 생각이 집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부부가 하나되고 교회 공동체가 하나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은혜 를 받아야 합니다. 오순절사건 이전의 그들은 저마다 각각 놀던 사람들이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난 이후부터 마음과 뜻이 하나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세가지 안목이 열립니다. 첫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인이었던 나, 허물많은 나, 쓸모없는 나, 연약한 나를 제대로 보게 됩니 다. 그리고 주의 은혜로 거듭난 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웃을 보게 됩니다. 이웃을 보면서 사랑을 나누고 통찰력있는 교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셋째,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못받으면 선악 과가 보이고 벌거벗은 수치가 보이게 됩니다. 일본인들은 [가다오까(KATAOKA)]를 중의원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네 차례나 일본 중의원 의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불신자였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있던 어느날 안 개낀 철길을 건너다 기차에 치어 공중으로 튕겨 올랐습니다. 수십미터를 날 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얼마후 정신을 차려보니 모래밭이었습니다. 그날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누가 나를 모래밭에 떨어져 살게 했을까 를 생각하다가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친데도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 모래밭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발로 교회를 찾아가 예술르 믿기 시작했고, 유학 후 일본으로 돌아와 정치에 투신 중의원 의장을 네번씩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고 문간에 서서 들어오는 교 인들의 신발(게다)을 정리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리고 매 월말이면 자신이 직접 [아오끼] 목사님께 드리는 생활비를 봉투에 담고 리본을 매어 찾아와 무릎꿇고 드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은혜받은 산증거인 것입니다. 산산조각난 부부가 하나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회사가 잘 되려면 사장도, 사원도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교회가 잘 되려면 목사도, 교인도 함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은 은혜받고, 예수의 마음으로 변화될 때 가능해집니다. 2.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 32절을 보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서로 통용했다는 것과 제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나누는 삶이 가능합니다. 그리 고 헛된 욕심이 사라집니다. 소유는 전투적 과정과 절차를 거쳐서 이루어집 니다. 그러나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 습니다(약1:15). 사람은 나이가 들면 하루에 뇌세포가 10만개씩 소멸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의력도 기억력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월남전 당시 미군 포로들은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 다. 그때 그들은 둘러 앉아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담뱃재로 만든 잉크로 성 경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포로들은 모두가 기억력과 건 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인 물을 썩는 것처럼, 돈벌어서 나만 쓰고 나만 먹었던 부자는 한결같이 당대로 망했습니다. 그러나 나누며 산 부자들은 대를 이어 나갔습니다. 초대교회의 경우는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참 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저희 교회는 세례문답할 때 십일조 여부를 반드시 묻습니다. 부부가 함께 세례를 받는 경우에도 부부에게 따로 질문을 합니다. "십일조를 하는가,언 제부터 할 것인가"라고 십일조의 경우도 부부가 함께 은혜를 받아야 가능하 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하자는데 남편이 반대를 한다든지 부인은 교회가자는데, 남편은 놀 라가자면 신앙생활이 고달퍼집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나누는 삶을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고, 구경꾼도 없었고 빠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9:8을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 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 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의 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은 넘치도록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만큼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눌 때 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강하게 됩니다. 딤후 2:1을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은혜를 받은 사람과 나누는 사람과 은혜안에 사는 사람 은 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강하고,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부 자입니다. 둘째, 성장합니다. 베드로후서 3:18을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믿음과 지식이 자라갑니다. 은헤를 받아야 교회도 성장하고 회사도 기업도 직장도 자랍니다. 셋째, 더욱 풍성해 집니다. 나누면 작아지고 줄어든다고 믿는 것은 세상 경제원리입니다.그러나 나눌 수록 커지고 많아진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경제원리입니다. 경기침체와 불황으로 전 세계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미국경제 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를 위해 이유야 어떻든 나누 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바로 그 나누는 정신과 신앙 때문에 미국이 복을 받 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대로인 것 입니다. 사도행전 5장으로 건너가면 나누기를 주저하고 욕심에 눈이 어두웠던 아나 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적 최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부부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베드로를 속이고 성령을 속여려 하다가 한날 함께 죽었습니 다. 칼빈은 아나니아의 죄를 여섯가지로 지적했습니다. (1)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 (2) 성물을 거짓으로 바친 죄,(3) 허영심으로 바친 죄,(4) 거룩한 교회에 오점을 남긴 죄,(5) 불신앙의 죄,(6)외식의 죄 등입니다. 아무리 내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물질 도, 시간도 재능도 함께 드리기로 한 것은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를 부활을 증거합니다. 33절을 보면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여기서 부활을 증거한 사건과 큰 은혜가 동시적이었다는 점을 주목해 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증거되는 곳에는 큰 은혜가 넘친다는 뜻도 되고 큰 은혜가 넘치는 곳에는 반드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왜 받아야 합니까?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초대교회 사도들은 큰 은혜를 받고난 후에 큰 소리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받고 예수의 부활을 전파했습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은 식도락입니다. 그러나 힘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고 일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은혜를 음미하기 위해 은혜를 받는 것은 영적 사치입니다. 은헤는 예수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연쇄 적으로 일어난 사건들, 지존파 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도시가스 폭발사 건, 세금 포탈사건 등은 한강의 기적과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독일의 경우 는 라인강의 기적은 있었지만 우리나라 같은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사건은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급걱한 사회변동에 대처할 올바 른 가최관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종교분포를 보면 기독교 25%,불교25%(물론 생전절에 한번도 안 가는 사람을 포함해), 유교, 무종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매년 무당조 합에 연회비를 내는 무당만도 5만여명이 됩니다. 그리고 소위 유형문화재라 고 해서 나라돈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들 가운데 80%가 불교사찰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방향도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패륜도, 사치도,무법 도, 사고도 세계 제일이라고 합니다. 서울대학의 윤이흠 교수는 절대가치를 이 민족과 사회 앞에 제시할 사회적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정치권도 아니다. 대학도 아니다.무당도 아니 다. 종교 아니다. 바로 개신교다"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기독교만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신앙이나 잡신앙 을 가진 종교는 유일한 가치나 진리를 제시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생명을 믿습니다. 부활이 뭡니까? 다시 산다. 죽어도 다시 산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 다. 희망의 종교라야 희망을 줄 수 있고 생명의 종교라야 생명을 줄 수 있고, 부활의 종교라야 부활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 길 막고 이 민족이 사는 길은 없습니다. 비내리는 땅은 푸른 초원, 녹음방초로 우거지고 비내리지 않는 땅은 사막 과 황토로 뒤덮여 있는 것처럼 은혜받은 나라, 교회, 가정이라야 푸르르고 기름지고 잘 살게 됩니다. 은혜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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