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 20일] 믿음을 더하소서(눅 17:1~10)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z2oNzjlIl7s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7장 1절로 10절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123면에 있습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7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거룩한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아멘.
제가 선망 교회에서 목회할 때 언젠가 한번 참 난감한 일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건 어떤 젊은 부부가 부부 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어서 다투다가, 목사님 앞에 가서 하소연하고 다투다가 제 사무실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가정 상담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 부인은 "절대로 못 살겠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헤어져야 되겠다고 하는 거고요. 남편은 그대로 같이 살자고 자꾸 조르는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 지금 제가 상담을 하게 되는데, 한 30분 동안 그 부부가 서로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들었습니다. 듣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어린애도 둘이나 있고, 안돼, 말하자면 참고 참고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이 하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난 이 사람이 한 말을 믿을 수 없어요. 이 사람이 한 말을 믿을 수 없으니 따로 살겠습니다. 믿음이, 그게 근본적으로 무너졌는데 제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 그럴까? 믿음이 중요하구나. 믿음이 끝나면 끝난 거다"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믿는 믿음이 있고 믿어지는 믿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데도 자꾸만 믿어져요. 그래서 결혼한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한번 딱 금이 간 다음에는 믿어지질 않아요. 어떤 말도, 어떤 사건으로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인간 관계는 다 끝나버려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는 믿음, 믿어지는 믿음, 여기에 심히 오묘한 논리가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좀 정리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거룩한 역사를 이룰 때, 그 하나님이 계시하신 사건을 통하여 우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구원하시기 위함이 됩니다. 이 계시 사건을 둘로 나눕니다. 하나가 객관적 계시요, 또 하나는 주관적 계시입니다. 객관적 계시라 함은 역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홀로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이 객관적 계시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관적 계시가 또 다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이 귀중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여 믿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주관적 계시가 참 중요합니다. 그 객관적 계시와 주관적 계시가 합쳐서 비로소 한 심령이 구원받게 된다 하는 말입니다.
내가 믿으려고 등 이성적 비판과 의심을 다 물리치고 믿으려고 합니다. 믿으려고 결단합니다. 믿으려고 몸부림칩니다. 이건 신념입니다. 그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느새 의심의 구름이 다 걷혀지고 믿어집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으나, 그 가슴 깊은 데서부터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저절로 믿어집니다. 이것은 은사입니다. 내 의지가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 아주 제가 사랑하는 구절 하나가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한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의지나 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믿음을 주실 때 믿어지게 하는 겁니다. 그 믿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끊임없이 믿도록 역사해 주신 성령의 역사, 은사입니다. 믿음은 은사입니다. 선물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구원 사역의 일환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믿음을 주어 늦게 역사합니다. 믿도록 역사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람의 의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어지게 하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많이 보았는데, 놀라워요. 예수님의 믿음이 너무 놀라워요. 감격하고 놀라고 마침내 고백합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그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에게 있는 믿음 같은 믿음을 우리에게도 달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하는 하나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다 보고 갑니까?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시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로 들어옵니다.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니까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깨셔서 하시는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의심하느냐?" 꾸짖어 마시고 바다를 고요하게 하십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예수님의 믿음, 그 믿음에 놀랐습니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얘기가 있죠.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갔죠. 아홉 제자는 산 밑에 있었지요. 하룻밤을 지내게 되는데 아마도 아홉 제자는 산 밑에서 잤을 거예요. 잤을 거예요. 그런데 아침 일찍이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어요. "예, 귀신을 좀 내쫓아 주세요. 병을 고쳐 주세요"라는 겁니다. 제자들이 전부 나섰습니다. 나서 가지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 나가라!" 했는데 아홉 사람이 다 해도 안 나갔어요. 점점 소리 질러요. 점점 발악을 해요. 난리가 났을 때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어요. "왜들 소란이냐?" 그때 그 아이 아버지가 말합니다. "내 아들이 귀신 들렸는데 당신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는데 이걸 내쫓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이렇게 책망하시는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이 아이를 데려오라" 하시자 아버지가 하는 말이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제 아들의 귀신을 쫓아주세요." 이 말은 뭡니까? 제자들은 못 했지만 당신은 스승이니까 당신이 할 수 있음을 믿었어요. 예수님이 모름지기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하시는 말씀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귀신을 쫓아 주시니 귀신은 나갔습니다. 이 아이는 낫게 되었었습니다. 제자들은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여기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이 이렇게 세도(勢道, 기세등등함) 했던 이유는 불과 며칠 전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귀신 내쫓는 일, 병 고치는 일을 했거든요. 며칠 전에는 능력을 나타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안 된 거예요. 바로 며칠 전에는 동네마다 다니면서 귀신을 내쫓고 병 고치고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이런 기적이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오늘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왜 우리는 오늘은 안 된 겁니까?" 예수님 대답하십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너희가 지난밤 여기서 자지 않았느냐? 나태하고 게을렀다. 그런고로 능력이 없느니라." 다시 말하면 "계속 기도해야 계속 능력이 살아 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능력 있는 믿음은 기도하는 자의 것입니다. 계속 기도해야 능력이 살아 있게 된다 말씀하십니다.
그뿐입니까? 오천 명이 모였는데 "이것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이 많은 사람들 흩어져서 돌아가다가 쓰러지겠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잘 되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아니 오천 명 앞에 우리가 어떻게 먹을 것을 줍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굉장한 말씀이죠.
아마도 막달라라고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나사로가 죽었어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어요. 벌써 무덤에 들어가 썩어서 냄새가 나요. 예수님께서 무덤을 찾아가십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그리고 "돌무덤을 옮겨 놓으라." "돌을 옮겨 놓으라?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옮겨 놓아라." 옮겼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너무 놀라워요. "나사로야! 나오라!" 소리 지릅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걸어 나옵니다. 굉장한 기적이 아닙니까? 저는 좀 미안합니다만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만일 안 나오면?" "그래서 난 못하겠어요" 안 나올까 봐. 근데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냄새나는 나사로가 나왔어요. 제자들이 놀랐지요. 예루살렘이 놀랐지요. 온 유대가 놀랐죠.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이여, 부끄러워하며 말합니다. "믿음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소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주 부끄러운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말합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대답하십니다. 오늘 대답은 약간 동문서답같이 보이지만은 곰곰이 생각하면 여기 심히 오묘한 확실한 대답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가 뭐냐.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싶으냐? 용서하여라!" 믿음은 나인가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대개 보면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된 것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가지고 그 믿음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그 믿음을 계속할 수가 있어요. 그 믿음이 능력을 지닐 수가 있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지만 더 나아가서 보면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돼 가지고 그 믿음을 쏟아 버려요. 그 믿음이 변질돼요. 아주 안타까워요. 그 모처럼 얻은 믿음을 작은 인간관계, 작은 말 주고받은 다음 상처받아 가지고 자꾸만 믿음이 식어지고 말아요. 이런 상처받은 신앙인들을 많이 봅니다. 여러분, 그러면 참 믿음 어디 있습니까? 용서해야죠. 믿음의 사람이라면 다 용서해야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해야죠. 깨끗하게 용서해야 내 믿음이 살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변질되고 믿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잘못한 사람을 꾸짖어 경고하고, 그리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이거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용서해라. 깨끗하게 용서할 그때에 믿음을 지켜갈 수 있는 것이다. 왜? 나는 심판자가 아니거든요. 나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나는 누구를 심판할 권리가 없어요. 어떤 일에도 여기서 심판자적인 의식을 버려야 돼요. 오직 하나님만!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용서할까? 그걸 해 봐봤자 어리석다 해야 되느냐고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세요. 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있는데 갚지 못했다. 그래서 주권자가 그 탕감해 주었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나가다가 자기에게 빚진 사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났다. "갚아라!" 다그치세요. 그래가지고 감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듣고 그 주인이 다시 불러다 놓고, "내가 네게 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었는데 백 데나리온을 탕감할 수 없었느냐? 노를 갚으라!" 감옥에 보냈다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용서가 무엇일까요? 은혜가 무엇일까요? 은혜를 아는 자는 곧 용서하는데, 용서함으로 그 믿음이 살아 있는 거예요. 믿음의 생명력이 살아나는 거예요. 만 달란트 탕감 받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깨끗하게 용서할 때 그 믿음이 살아 역사하는 거예요. 믿음이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무슨 말입니까?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 씨 뭔지 같은 겨자씨 한 알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질을 말하는 거예요. 믿음의 양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믿음이라고 소리 지른다고 되는 거 아니에요. 난 그런 생각해 보세요. 자꾸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 소리가 클수록 거짓 같다고 생각해요. 믿어지지 않으니까 소리 지르는 거죠. 힘이 있으니까 소리 지르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가짜 믿음 아니에요? 조용하게 양적인 믿음 아닌 질적인 믿음! 겨자씨 한 알 작지만은 생명력이 있어요. 이거 나름이 있어요. 생명력 있는 믿음! 생명력 있는 그 믿음! 그러니까 믿음의 질을 물어야지, 믿음의 양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충분하다" 예수님이 대답하세요.
그다음에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종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앉아서 먹으라' 하겠느냐? 먼저 주인을 위해서 일하고 그 다음에 먹으라 하지 않겠느냐?" 과연 예수님 하신 말씀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가 할 일은 했다고 해서 칭찬받을 것도 없고 상 받을 것도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고맙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쓰였을 뿐입니다. 내가 한 일은 없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져야 그런 믿음이 점점 성장할 수 있다는 거예요. 뭘 한다고 할 때 내가 한 것처럼 내 이름을 내고 내 능력을 내고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거룩한 겸손, 그 항성이 있어야 할 때 믿음을 통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뭘 좀 알아야 하고 내가 한 것처럼 아주 내가 자기 자랑을 하려고 그래. 권위는 상실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특별한 얘기를 제가 인터넷에서 목회할 때 들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장로 교회라고 하는 아주 큰 교회가 있어요. 거기서 이렇게 꽃꽂이를 하는데, 이 꽃꽂이를 이상하게 만들었어요. 당번을 정해서 타지도 않고 권사님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서 하되, 한 주에 한 분의 권사님이 맡아서 꽃꽂이를 하기로 그렇게 제도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어떤 권사님은 가져올 일주일 전부터 정성을 다해서 꽃꽂이를 만들어요. 그렇게 자연히 비교가 되게 되어요. 돈 좀 있는 사람, 꽃꽂이 잘하는 사람은 잘 만들고, 가난한 사람, 재주가 없는 사람은 나빠지고,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교회에 돈이 많은 장로님 부인이, 권사님, 토요일 날 꽃꽂이 하러 왔나 하고 가보세요. 가 보았더니 영 별로예요. 너무 초라해요. 이 권사님이 화가 나가지고 다 치워버려. 다 치워버리고 돈을 많이 내서 꽃꽂이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꽃꽂이를 다 하고 가세요. 그날 주일날 그 꽃꽂이 전에 만들었던 권사님 무릎 꿇고 울었어요. "내가 충성을 다했는데 이럴 수 있니" 라고 무릎 꿇고 울었어요. 그 소리가 제 귀까지 들어왔어요. '돈이 있다고 그래도 됩니까? 내가 할 수 있다 그래서 되는 겁니까?' 남의 수고를 봐야지. 그 수고를 자기 명예의 자리로 이끌어 가는 건 안 될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예수님 말씀합니다. 충성도 좋고 재능도 좋고 헌신도 좋아. 그러나 "나는 무익한 종이라. 수고를 많이 하고도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도덕골 함이 없고 자기 자랑이 없는 그런 마음을, 그런 충성, 그런 겸손이 있을 때 믿음이 자라납니다. 믿음이 자라납니다. 어느 순간에 여기서 떠나게 되면 믿음이 다 사라지고 맙니다. 폭삭 사그라져 버려요. 그렇게 모처럼 피워 놓은 믿음이 쪼잔한 자존심 때문에, 자꾸만 업적, 조금만 명예, 조금만 과시하고자 하는 걸 볼 때 예수님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귀중한 믿음을 가지고 싶으냐? "그래, 용서해라. 네가 심판주는 아니라는 걸 잊지 마라. 너는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또한 어떤 믿음이냐고요? 내 의지, 내 신념이 아니고 겨자씨 한 알 은사로 주신 믿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생명력 있는 믿음, 소중히 여겨야 할 뿐 아니라, 겸손과 충성으로 "나는 항상 무익한 종입니다. 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마음으로 섬겨라! 그래야 믿음을 더하게 될 것이다. 훌륭한 믿음, 위대한 믿음, 엄청난 능력을 가진 그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이 응답하는 중요한 신앙생활의 비결을 없이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의 거룩한 표준에 비춰볼 때 우리의 믿음이 너무나 초라하고 너무나도 부족하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도 참회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우리의 믿음을 더해 주시옵소서. 겨자씨 같은 믿음도 주시고, 또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믿음도 주시고, 항상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충성된 믿음을 주시옵소서. 위대한 믿음을 주사,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중한 주의 사람들 되게 하시고, 그 믿음 안에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누가복음 17장 1-10절 말씀 및 설교 요약: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본문은 누가복음 17장 1절부터 10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라는 제자들의 간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에 대한 목회자의 구체적인 해석 및 적용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1. 성경 본문의 주요 내용 (누가복음 17:1-10)
- 실족하게 하는 일에 대한 경고 (1-2절):
- 세상에 실족하게 하는 일은 피할 수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禍)**가 있을 것입니다.
-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보다 못합니다.
- 용서에 대한 가르침 (3-4절):
- 스스로 조심하고,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해야 합니다.
-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하더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 믿음에 대한 응답 (5-6절):
- 제자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라고 간구하자, 예수님은
-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했을 것이고, 그것이 순종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무익한 종의 비유 (7-10절):
- 종이 밭일이나 양 치는 일을 하고 돌아와도 주인이 곧바로 "와 앉아 먹으라" 하지 않고, 먼저 주인의 식사를 수종들게 합니다.
- 종은 명한 대로 했다고 주인에게 감사를 받지 않습니다.
- 이와 같이,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2. 설교자의 구체적인 해석 및 교훈
1) 믿음의 본질과 중요성 (믿음이란 무엇인가)
- 믿음의 붕괴 사례: 설교자는 젊은 부부 상담 경험을 나누며, 부인이 "믿음이 무너졌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인간관계에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근본인지를 깨달았다고 강조합니다.
- 믿는 믿음 vs. 믿어지는 믿음:
- 믿으려고 노력하고 결단하는 것은 신념일 뿐,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 믿어지는 믿음은 가슴 깊은 곳에서 의심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선물)**이며 구원의 역사입니다.
- 객관적 계시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주관적 계시 (성령의 역사로 계시를 받아들여 믿게 하시는 것)가 합쳐져야 구원에 이릅니다.
- 능력 있는 믿음은 기도에서 비롯됨:
-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사건을 예로 들며,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 능력 있는 믿음은 계속 기도하는 자의 것이며, 기도해야 믿음의 능력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2) 믿음을 더하는 세 가지 비결
① 용서:
-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능력을 지니게 합니다. 인간관계의 작은 상처 때문에 믿음이 식어지고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므로 심판자적인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았으므로 남의 작은 잘못(백 데나리온)을 용서해야 믿음이 살아 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는 용서하며, 용서함으로 믿음의 생명력이 살아납니다.
② 믿음의 질(質):
-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은 믿음의 양이 아니라 질을 말합니다.
- 양적인 믿음(소리 지르는 것)이 아닌, 생명력 있는 질적인 믿음이 중요합니다.
- 아무리 작을지라도 생명력 있는 믿음이 있다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③ 겸손:
-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고백이 중요합니다.
- 내가 한 일인 것처럼 자기 이름이나 능력을 내세우고 자랑하는 것은 믿음을 약하게 만듭니다.
- 거룩한 겸손과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항존하는 마음이 있어야 믿음이 성장하고 능력을 통할 수 있습니다.
- 작은 자존심, 업적, 명예 때문에 모처럼 얻은 믿음이 무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 결론 및 기도
- 제자들의 기도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에 대한 응답의 핵심:
- 용서: 네가 심판주가 아님을 잊지 말고 용서해라.
- 은사로서의 믿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생명력 있는 믿음을 소중히 여겨라.
- 겸손과 충성: "나는 항상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마음으로 섬겨라.
- 이 비결들을 실천할 때 훌륭하고 위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며,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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