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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 (수1:1-11)

by 【고동엽】 2022. 9. 27.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  (수1:1-11)

독일의 초대 수상 비스마르크는 "운명을 겁내는 사람은 운명에 먹히고 운명에 부딪히는 사람은 운명이 길을 비킨다"고 했습니다. 오늘 2003년도의 마지막주일 날, 새해 2004년도를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는 성림의 성도들에게, 본문 말씀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축복의 메시지인데,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미지의 2004년도를 바라보고 가야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새해 2004년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새해인줄 믿습니다. 믿음은 운명을 바꾸고 팔자를 바꾸고 상황을 바꿉니다. 새해에도 믿음으로 약속의 땅(2004년)을 밟으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소개!▶

오늘 본문은 광야 40년을 유랑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유랑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그들을 40년 동안 이끌었던 이스라엘의 풍운아 모세가 느보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지금 요단강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시대는 마감하고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당신의 종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내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것, 약속한 그 모든 땅을 네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상반된 마음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음식도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하지요, 옷도 새로운 것을 입고 싶어하지요, 가보지 않은 새 곳을 여행하고 싶어하지요. 새로운 것에 대해 추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반대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현재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요단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2-3절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1. 우리는 먼저 여호수아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는 누구인가?
여호수아는 오직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 그 땅을 정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40일 동안 그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이스라엘 온 백성 앞에서 정탐보고대회를 갖게 됩니다. 대다수인 10명의 족장들은 매우 부정적인 보고를 드립니다. 그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나 그곳 거민들은 아낙자손들처럼 장대하고 그 성은 하늘 꼭대기에 닿아서 우리가 저들과 전쟁하게 되면 패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아내과 자녀들은 그들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은 절망하고 낙심하여 온통 소동이 일어나게 되고 드디어는 백성들은 모세와 여호수아 갈렐을 돌로 쳐 죽이려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믿음으로 가나안에 대해 보고합니다.
민14:9절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할/
그의 보고를 보면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할/
그 다음 여호수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섬기면서 80이 되도록 충성한 일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섬기며 자신을 조금도 들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저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을 때까지 있는 듯 없는 듯 오직 충성하고 헌신하는 자로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비젼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약소민족이 아닌 강하고 번성하고 축복 받는 민족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비젼이 없는 사람은 도전하지 않습니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새 역사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회사든 국가든 교회든 결국은 뒤쳐지고 결국엔 무너지게 됩니다.

2. 요단강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이스라엘의 지리를 보면 북쪽에 갈릴리 호수가 있고, 남쪽으로 사해 바다가 있습니다. 사해는 죽은 바다입니다. 이 갈릴리 호수와 사해가 연결되어지는 강, 그것이 요단강인데, 거리는 약 13Km쯤으로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보면 이 요단강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이 요단강이 나오는데, 야곱이 자기 고향에서 떠나서 하란 외삼촌 집에서 고생하다가 고향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지팡이 하나만 들고 이 강을 건 건너서 갔는데, 이제는 두 떼나 엄청난 것을 이루어서 돌아 왔나이다'. 이 강이 요단강으로 나옵니다. 야곱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중심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문둥병이 걸렸던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깨끗함을 얻어졌습니다. 세례요한이 어디에서 사역을 하셨습니까? 세례요한의 가장 큰 사역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어디에서 세례를 받았습니까? 요단강에서 받았습니다. 요단강은 그런 깊은 사건들이 있는 강입니다.
또 요단강 하면 무슨 생각이 납니까? 보통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 갈 때 건너가는 강을 요단강이라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지 않습니까?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찬291) 요단강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이 요단강이라는 것을 죽음을 의미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우리 기독교에서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말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야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듯이 요단강을 건너야 새로운 하나님의 세상에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요단을 건너라는 말씀은 지리적인 의미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는 지금의 우리들의 모든 삶을 다 정리하고 새로움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3. 약속의 땅 가나안은?
가나안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옛 이름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이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은 또한 약속의 땅입니다.
"가나안"이란 이름은 "자주 빛의 땅" 이라는 뜻입니다. 주전 2,000년경부터 팔레스타인의 바닷가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조개 중에 자주빛 물감으로 사용되는 조개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시면서 축복의 땅, 번영과 평화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이 땅을 얻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고센 땅에서의 430년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을 향하여 광야 40년 생활의 시련과 고난을 이겨왔습니다.
한편으로 "가나안",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곳, 즉 천국을 의미합니다. 이 땅은 이미 43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었지만(창15:18-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기 직전에 가나안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여호수아에게 요단을 건너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취되었습니다(왕상4:21).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맺으신 약속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그러므로 상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취되는 하나님의 때를 가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 약속에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어나는' 일입니다.
2절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여기 일어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에는 '일어나라'는 단어가 약 618차례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어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어 있고, 다리에 힘이 없으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행3장에 보면 나면서부터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그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곧 걷고 뛰고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40년 동안 걷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했던 앉은뱅이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큰 감격입니다.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신앙의 잠에서 일어나고, 병에서 일어나고, 의심에서도 일어나고, 게으름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너 혼자만 일어나지 말고 모든 백성과 함께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그곳에 들어가 살 사람은 여호수아 개인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야 할 백성이기에 일어나야 합니다.

5. 이제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합니다.
2절 하반절에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는 일련의 행동이 연속적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여기 '가라'는 말은 첫째, 목적지를 향하여 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 가나안 땅을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어디로 가느냐'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악을 향해 달려가고 절망으로 치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삶의 목적을 두고 살 때, 승리의 삶을 살수 있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미래를 향해 가라는 뜻입니다. '가라'는 것은 뒤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앞에 있는 약속의 땅, 요단 건너편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필 목사는 성공의 비결을, ①실패자처럼 생각하면 실패자가 된다. ②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③크게 믿으라. ④크게 기도하라. ⑤크게 행동하라. ⑥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6. 여호수아가 받은 약속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①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3절).
여기서 발바닥은 맨 발바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누가 맨발바닥입니까? 바로 노예들입니다. 노예들은 신을 신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철저하게 종의 모습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주인의 뜻에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가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무제한적인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무제한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한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얼마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제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자루에는 무제한적인 축복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가지고 갈 만큼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각자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가서 축복의 자루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담습니다. 얼마든지 가지고 갈 수 있지만 그릇 만큼만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큰그릇을 준비한 사람은 그릇의 크기만큼 많이 가지고 가지만 작은 그릇을 준비한 사람은 그릇의 크기만큼 조금 밖에 못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믿음의 위대한 행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발을 내디딜 때 하나님이 역사 해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용기 있는 발을 내디뎌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똑똑하고 잘 생기고 경험이 많고 자격증을 많이 가지고 있고 조건이 좋은가를 묻기 전에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큰 믿음이 있으면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많은 믿음이 있으면 많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끝까지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역사도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의 재산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가진 모든 것은 더 빛이 나게 됩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 안에서 더 견고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평생에 당할 자 없는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5절).
사실 이 복이 기가 막힌 복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당할 자 없다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목회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당할 자 없는 복을 받는다면 세계 제일이 되는 것입니다.
③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7,8절).
이 복도 기가 막힌 복입니다. 막힘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전에 비해서 크게 발전하지 않는 이유는 막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막는 것이 없다면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형통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불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는 것마다 불경기, 불황, 불통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다 형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④가는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8절).
장애물이 없으니 걸려 넘어질 일이 없고, 구덩이가 없으니 실족할 일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얼마나 신나는 인생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하는 사업은 얼마나 번창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의 영성은 얼마나 깊어지겠습니까!
우리는 이란의 지진의 대 참사로 이만 오천 명이 죽고, 오만여명이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란 사람들은 지진도 알라의 뜻이라고 받아드린다고 합니다. 이런 신은 저주의 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기 믿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믿/

7. 약속의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여호수아와 함께 가라(1-2절)
약속의 땅을 차지하려면 여호수아와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럼 여호수아는 누구입니까?
첫째,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모세가 율법이라면 여호수아는 은혜의 복음을 보여주고, 모세가 세례요한이라면 여호수아는 예수님입니다. 가나안을 누리려면 예수님과 동행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려면 예수님과 뜻이 맞아야 합니다. 암3:3에 보면 동행의 비결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그렇습니다. 뜻이 맞아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뜻이 맞으려면 내 뜻을 내려놓고 주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내 뜻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수가 고수의 뜻이 이해가 안 되도 따르면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고 버티고 자기 고집을 부리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물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시를 따른다면 얼마나 풍성하겠습니까.
둘째, 여호수아는 목회자를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영혼의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비전을 주시고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따라서 가나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히13: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②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라(5.9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면 담대해집니다. 여호수아의 대적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을 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의 지혜를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사실을 알며,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얼마나 담대하겠습니까? 겁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경건해집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유혹을 이겼던 원인은 바로 임마누엘의 믿음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지 않지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40세의 모세가 애굽 사람을 떼려 죽인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람만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전능자입니다. 지금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연약한 것을 도와주고 계시는 분입니다.
③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6,9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려면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의 상태는 몸의 상태를 결정해 주고 마음의 상태는 말의 상태를 결정해줍니다. 결국 마음은 환경까지도 결정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4장에서는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면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는 그 문제는 마음과 생각에 달려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는 것은 임마누엘의 신앙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 혼자서는 무서워서 갈 수 없는 캄캄한 길도 부모와 함께 라면 강하고 담대하게 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두려운 상대가 있어도 아빠가 함께 있으면 두렵지 않고 오히려 담대해서 상대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습니다.
④말씀대로만 하라(7-8절)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냥 지키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만 지키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점령하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하는데 '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사실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사람 중에는 다 지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지켜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공수표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이루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으로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처리하고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보내주신 다른 보혜사 곧 성령 하나님을 좇아가면 됩니다. 롬8:4을 보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 영은 바로 성령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좇아가면 율법을 범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좇아가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얻게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⑤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7절)
한마디로 탈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본래 죄라는 말의 뜻도 탈선, 혹은 빗나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을 바라보고 제 길을 걷거나 달리는 것이 정도입니다. 모든 탈선은 불행의 원인입니다. 열차가 레일에서 탈선하면 전복됩니다. 사람도 윤리, 도덕, 질서로부터 탈선하면 파멸이 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탈선하면 지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잠4:27절에 솔로몬 왕도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맙시다. 요동치지 맙시다.
히12:1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⑥믿음으로 승리를 선포하라(10,11절).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은 후에 그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삼일 안에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말하고 준비하게 하는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고 선포합니다. 그의 말은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그는 승리를 믿었고 승리를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승리했습니다.
성경에서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치료를 원하면 치료를 말하고 승리를 원하면 승리를 말하라. 축복을 원하면 축복만을 말하라". 치료를 원하지만 여전히 질병을 말한다면 그는 질병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승리를 원하지만 패배를 말하는 사람은 여전히 패배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축복을 원하지만 저주를 말하는 사람도 역시 저주 가운데 있습니다.
잠6:2절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잠18: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하는 말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믿음의 말로 디딤돌을 놓으십시오.
예수님은 이런 진리를 잘 아셨기 때문에 말에 대해서 민감하셨습니다.
막9장에 보면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하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책망했습니다.

▶오래 전 금융 연수원에서 '기업을 망하게 하는 요소 10가지'를 발표했습니다. 한 교수가 나와서 "왜 기업이 망하냐? 회사가 망하는 이유가 있다"라고 몇 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그가 지적한 10가지 중에서 특이한 것은 '전문가의 충고보다도 점쟁이 말을 더 믿으면 망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치가들이 점쟁이한테 찾아가고, 재벌가들이 점쟁이한테 갔다가 부도나고 망합니다.
년말이 되고 년초가 되면 점쟁이 찾아가고, 무당한테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연예인이나 체육가들, 사업가들, 정치가들, 점쟁이 집 문 앞에 줄 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말세에는 미신과 우상숭배, 미혹하는 영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사람을 혼란을 시킵니다.
얼마 전 신문에 "테헤란 밸리에 처녀도사 떴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강남 테헤란 밸리에 있는 오피스텔에 자리잡은 한 철학가, 처녀도사 김민정(29살)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처녀도사에게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가서 점을 칩니다.
점치는 내용을 보면 "내가 세우는 벤처기업이 흥합니까? 망합니까? 투자자금은 얼마큼 해야됩니까? 동업자와 궁합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까? 이력서를 가져와서 어느 직원을 채용해야 됩니까? 또 동업자가 와서 누굴 회사 대표로 세워야 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또 건설업 회사들, 유흥업 관계자들, 더 나가서 자녀 진학 문제 등, 하여튼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와서 '점을 쳐달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김씨가 하는 말이 '첨단 과학 기술로 무장한 벤처 기업인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찾아오더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도사 수입이 한 달에 몇천 만원입니다. 점쟁이, 무당은 알아 맞출 확률이 50% 가 있습니다.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점쟁이한테 찾아갑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불안해합니까? 불안과 두려움 속에 떨기 때문에 마지막 찾아가는 곳은 점쟁이들입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도 이 점쟁이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 사람들, 중국 사람들은 80% 이상이 다 회사 경영을 놓고 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한번 복채(卜債) 주는데 200불씩 돈을 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마귀의 점치는 영에 사로잡혀서 오늘날 미신과 불신앙에 빠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고 마귀 사탄에게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이지 결코 '점'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중학 입시를 놓고 친구들이 점치러 갔습니다. 그래서 몇 명이 함께 가서 점을 치며 "중학교는 어느 학교 갑니까?"라고 하며 친구들과 호기심에 찬 눈으로 점쟁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교회를 다니는 한 학생이 따라갔습니다. 그 학생이 점치는 차례가 되었는데, 점쟁이가 험상궂게 앉아 있어서 그만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점치면 안 되는데 친구 따라 왔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속으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이 무당이 이름을 부르더니 생년월일을 따지고 그 다음에 점을 치는데 점괘(占卦)가 안나왔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점을 치지 못하다가 학생을 똑바로 쳐다보고 "너 예수 믿지?" 학생이 "예, 나 예수 믿어요. 우리 엄마 매일 새벽기도 해요" 그랬더니 점쟁이가 소리지르면서 "누굴 망하게 하려고 찾아 왔느냐?"고 하며 "나 죽는 꼴을 봐야 되겠느냐, 당장 나가라"고 하며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이 초등학교 때 점쟁이 찾아갔다 쫓겨남 당하고 나중에 커서 이 학생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믿음 가진 사람, 정말 신앙이 좋은 사람은 점쟁이한테 가도 점괘(占卦)가 안 나옵니다. 점쟁이한테 가서 점괘가 나왔다하면 그 사람은 가짜 신앙 가진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점괘가 나오지 않습니다. 점쟁이 집에 찾아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이깁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제 2004년 새해가 문턱에 왔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그 땅은 믿음으로 가는 땅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고전4:1-2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의 '충'(忠)자는 '가운데 中, 마음 心'으로 마음을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誠)자는 '말씀 言, 이룰 成'으로 말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성'이란 마음의 중심을 다해서 말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말한 것은 실천이 있어야 되고, 실천한 것은 반드시 말 그대로 열매가 맺혀지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3년 12월 28일 대예배 설교)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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