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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행 12:20-24)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
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사도행전 12장 20절-24절)
장로교회의 <신학>과 <교리>를 잘 체계화 시킨 죤 칼빈은(John Calvin)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가진 모토가 있
었습니다.
그것은‘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기독교 강요>는 지금까지도 모든 후진들에게 귀감이 되는 좋은 책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종교개혁 45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네바에는 칼빈 교회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설교하던 단을 보니 본래는 카톨릭 성당이었던 건물이었기에 제단을 다 치우고 기둥에 나선형으로 올라
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성경책 하나 올려놓을 만한 보면대 하나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설교자들의 의상과 심지어 안경까지도 금테 안경은 착용치 말라고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하는 <말씀>보다 전하는 사람이 들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의 묘가 어느 것인지 조차 잘 모른다고 합니다.
저도 그 무덤을 보았지만 묘비도 없고, 오직 JC 라는 두 글자뿐인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아마 John Calvin의 약자가 아닌가 해서 그 무덤을 칼빈의 무덤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철저하게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라는 것으로 일관된 평생을 살고 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헤롯은 그와는 반대의 인물이었습니다.
1. 헤롯은 어떤 왕이었는가?
신약 성경에는 헤롯이 몇 사람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헤롯 1세의 손자 벌 되는 헤롯이었습니다.
이 자는 당시 로마 황제의 조카인 <가이우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차 이 <가이우스>가 로마 황제가 되
면서(37년) 팔레스타인 지방에 왕으로 임명되어 <아그립바 1세>라는 호칭으로서 왕의 자리에 오른 자입니다.
본래 아부를 잘해서 얻은 왕위였다고 봅니다.
요즘도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변에서 잘 보인 사람들을 등용하는 것이 세상의 권력자들임은 변한 것이 없
다고 봅니다.
헤롯은 왕이 된 후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덤으로 얻었고, 그 후 <가리우스>가 암살되고 <글라우디오>가 황
제가 되었을 때(41년) 그에게도 어떻게나 잘 보였던지 총독들이 다스렸던 유다 지방까지 권한을 주어 방대한
권한을 행사했던 자입니다.
이 헤롯은 고도의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당시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으려고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기독교인
들을 박해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야고보>사도를 칼로 참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로부터 잘했다고 칭찬하니, 이제는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처단하려고, 예수의 수제자격인 베
드로를 잡아 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적혀 있습니다.
베드로를 검거하여 옥에 감금하고, 보통 죄수들에게 하지 않는 이중 삼중의 경비를 강화시킨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그때가 유월 절기인지라 유월절이 지난 후에 집행하려고 베드로를 단단히 가두고 지키게 했으나 하나님은 기
적적으로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2장의 내용입니다.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 자기의 힘이 강화되고 커지면 사람들은 다 변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헤롯이 바로 그런 인물이 되었습니다.
권력자들이 교만해지면 사람들의 아부하는 칭찬에 도취되어 신격화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헤롯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2. 결국 헤롯은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칠 때 도리어 크게 권세의 자리에 오르게 한 후에 그 교만으로 무너뜨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세계를 정복한 후 로마의 황제는 신이라고 하여 황제를 신격화 시키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인들이 많은 박해와 수난을 당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헤롯도 자신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주변국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신의 세력을 더
욱 확장시키려 했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두로>와 <시돈>은 무역업을 주로 하는 작은 도시국가였습니다.
헤롯은 웬일인지 이들에게 좋은 감정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으로 곡물을 수출하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마치 북한이 남쪽을 대포동 미사일로 위협하듯이 곡물로 <두로>와 <시돈>을 압박하려고 했습니다.
식량난에 봉착한 <두로> 와 <시돈>사람들은 헤롯의 신하인 왕궁내실 담당자인 <블라스도>를 매수하여 헤롯 왕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이 헤롯에 대하여 요세푸스(Josephus)라는 유대인 역사가는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성서시대의 역사를 많이 기록해 놓았는데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은 대략 이러합니다.
“헤롯이 가이사라에서 큰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를 위한 행사였다. 헤롯은 평소 <두로>
와 <시돈> 사람들과 사이가 나빴다. <두로>와 <시돈>은 항구 도시로 무역 중심지였다. 이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헤롯은 유대지방에서 나는 양식을 먹기 때문에 양식을 가지고 저들을 길들이려 했다. 그런데 한동안 저들
에게 양식 수출을 봉쇄해 버렸다. 이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왕의 침소를 담당
한 <블라스도>에게 로비를 하여 풀어 달라고 하면서 친선을 도모하려고 했다.”
헤롯이 가이사라 에서 축제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얻고 <시돈>에서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참석시켰습니다.
헤롯이 연설할 때 박수 부대가 되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그 모습이 잘 들어나 있습니다.
<시돈> 사람들이 얼마나 아부적인 칭찬을 했는지,‘이는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만 헤롯이 이렇게 자기를 열렬하게 칭찬하는 소리에 우쭐하여 자신이 신(神)처럼 붕 뜨는 기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에‘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함으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
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교회사가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날 은실로 짜여진 화려한 왕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있는 헤롯의 모습은 태양 아래 빛나고 있었다. 그가 일어
나 백성들 앞에 연설할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그 연설을 듣고 칭찬했다. 그때 올빼미 한 마리가 무대 기둥 위에 앉았는데 헤롯이 그 올빼미를 보는 순간 복통을 일으켜 쓰려졌고, 그의 신하들이 예루살렘 왕궁으로 옮겼는데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고, 죽기 전에 그의 몸은 이미 썩어서 벌레가 일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끔 연말에 연예인들의 시상식에서 보는 일입니다.
주연 배우상, 신인 텔런트상, 작품상, 감독상 등을 발표할 때 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또 축구 선수들 중에 골을 넣고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함이 너무나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헤롯은 사람의 칭찬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그 교만이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인물이었습니다.
헤롯은 교만으로 자기의 죽음을 스스로 자초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늘에 천사장 <루시퍼>가 교만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 14:13절에“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라고 하는 말을 가증스럽게 여깁니다.
잠언 16:18절에“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칭찬에 눈이 멀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내 몸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헤롯처럼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때, 더욱 더 겸손해지지 못하고 교만해졌으니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그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행여나 나에게 그런 유혹이 올 때는 단호하게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오늘도 무릎 꿇고 기도하는 생활을 이어져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장로교 소 요리문답 제1조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라는 물음에 답이‘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 성경을 기록하던 사람들은, 성경을 필사하다가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붓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썼다고 합니다.
우리가 셋째 계명을 범하는 죄를 지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는 자들처럼 거짓된 자들이 없습니다.
얼마 전 모피 사건 때 청문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Oh My God’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용하는 용어들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이란 말을 부담 없이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준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좀더 진지해진 기도라면 그저 <아버지!> 그렇게 호칭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꼬박꼬박 붙이는 분들이 없듯이 하나님 아버지께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이렇게 기도하는 것 보다,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나님, 하나님, 하는 것 보다는 <아버지>라고 호칭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돈을 벌어서도 하나님께 영광이요,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었어도 하나님께 영광이요,
좋은 직장과 자리에 승진했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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