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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범위 (고전10:13)
여러분, 파도 없는 바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도 파도가 없는 바다는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도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바다라면 으레 크고 작은 파도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크고 작은 파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파도가 밀어닥쳐도 어떤 사람은 그 파도를 헤치고 힘차게 항해하고, 어떤 사람은 그 파도에 밀려 난파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미 파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파도를 헤쳐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파도를 없애려고 아무리 궁리를 하고 애를 써봐야 헛일입니다. 오히려 파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늘 파도처럼 크고 작은 시험이 닥쳐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우리에게 닥쳐왔던 시험을 어떻게 잘 헤쳐 나왔느냐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합니까? 그렇다면 과거의 시험을 잘 극복한 결과일 겁니다. 혹시 오늘 나 자신의 모습에 불만족합니까? 그렇다면 과거의 시험을 잘 극복하지 못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내일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닥쳐온 시험을 어떻게 헤쳐 나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오늘의 시험을 잘 극복하면 우리는 복된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오늘의 시험을 극복하지 못하면 더 큰 일에 휘말리며 어두운 내일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인생의 온갖 시험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그겁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시험을 이기는 법을 터득하심으로 승리하는 인생, 복된 미래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인생의 각종 시험 :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
성경에서 ‘시험’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ος)인데, 문맥에 따라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① 유혹(temptation) : 이것은 마귀(Satan)가 인간을 넘어뜨리고자 유혹하는 시험입니다. 약1:13~14 보면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유혹으로서의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험은 마귀가 하는 것이고, 인간이 자기 욕심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② 테스트(test) :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을 테스트 하는 시험은 하십니다. 이때 테스트를 거치면서 우리의 신앙이 강화됩니다. 창22:1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여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테스트를 통해 하나님께 인정되고 그 신앙이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③ 시련(trial) : 이것은 유혹으로서의 시험과 테스트로서의 시험이 혼재되어 닥쳐오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우리 삶 가운데 닥치는 시험을 보면 마귀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험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통제 하에 이뤄집니다. 욥기 1장을 보면 마귀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유혹의 시험을 하시지 않지만 마귀의 시험을 통제하고 간섭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님이 시험하실 때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고 죄성을 갖고 있으므로 마귀가 틈을 타며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혼재된 시험을 가리켜 일반적 의미로 ‘시련’이라 지칭하는 것입니다.
[2] 시험의 범위 : 누구나 당하는 시험,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시험
본문을 다시 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 ” 여기서 우리는 시험에 범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에게 여러 무수한 시험들이 닥쳐옵니다. 인간 관계 문제, 물질 문제, 건강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 ...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두 가지 시험으로 그 범위를 제한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① 누구나 당하는 시험 : 인간에게 보편적인 시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이 감당할 시험’만 허용하십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시험이란 뜻입니다. 영어성경(NIV)을 보면 ‘common to man’(인간에게 공통적인)이라고 번역합니다. 즉 누구나 다 당하는 시험만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히 시험을 당할 때 낙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만 혼자 당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누구나 다 당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누구나 다 시험이 있고,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조금은 위로 받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이야기를 살펴보죠. 열왕기上 19장을 보면 엘리야의 낙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앞에 18장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와 싸워 통쾌하게 승리합니다. 그런데 그후 이세벨 왕비가 분개하면서 엘리야 체포령을 내립니다. 그렇게 용기가 넘치던 엘리야가 어찌된 영문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피신합니다. 하루 종일 달려가다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낙심한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는 낙심한 나머지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투정을 부립니다. 그때 엘리야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왕상19:14 “ ...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는 자기 혼자 시험을 당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왕상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무슨 뜻입니까? 엘리야가 혼자 시험을 당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칠천 명의 선지자가 남아 큰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험은 다른 사람에게도 닥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 당하는 것처럼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엄살을 부리지 말라는 겁니다.
②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시험 : 우리의 능력 수준에 맞는 시험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나 당하는 보편적인 시험을 주실 뿐 아니라, 그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만큼만 허락하십니다. “ ...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 허락지 아니 하시고 ... ” 즉 우리의 능력을 초과하는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에게는 가감승제(加減乘除) 정도의 문제만 줍니다. 만일 초등학생에게 미분, 적분 문제를 준다면 그 선생님이 이상한 것이죠. 혹시 인간 선생님은 출제 미스를 범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어 달 전에 공인중개사 시험 때문에 소동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응시생들 이야기로 민법 문제가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웠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래서 합격률이 0.7%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합격자들이 정부 청사로 몰려가 데모를 했고 결국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출제 미스를 한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출제 미스를 범하지 않습니다.
[3] 시험의 목적과 유익 : 연단의 도구, 섭리의 도구
마귀는 우리를 시험해서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유익을 주려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하면 분명히 하나님의 목적대로 많은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연단의 도구 :
우리는 시험을 거치면서 신앙이 부쩍 자랍니다. 마치 운동선수가 여러 번 경기를 치르며 캐리어를 쌓으면 실력이 향상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 그 즉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습 그대로, 마냥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머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성숙해져서 성화된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연단된 신앙의 그릇에 축복과 상을 부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욥은 극한 시련 가운데 그런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야고보 선생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1:2~4,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제지 공장을 견학한 분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폐휴지가 수집되어 제지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구겨지고 찢겨지고 더러워진 폐휴지들이 잘게 썰어지고, 모든 때가 빠질 때까지 표백제로 씻고 또 씻고 ... 이런 공정을 다 거친 후에 고품질의 햐얀 종이가 나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이와 같이 죄와 허물로 추해진 우리 모습이 시험을 통해 연단됨으로 정결케 되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② 섭리의 도구 :
일반인들도 흔히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죠. 잘 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잘못되는 게 있고, 잘못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잘되는 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올 때 당장 끝장이 난 것처럼 실망하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울의 예를 들어 봅니다. 그는 이스라엘왕의 초대 왕이 됐습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왕이 배출되었으니 얼마나 출세한 겁니까? 문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불신앙으로 잘못 살다가 끝내는 비참하게 멸망 당하고 맙니다. 그 마지막 모습을 보면 차라리 왕이 안 됐으면 평범하게 그럭저럭 잘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잘되는 것 같았는데 잘못된 케이스입니다.
반면에 요셉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버지 심부름 갔다가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살이 열심히 하니까 주인이 인정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 마님이 유혹을 하죠. 하나님의 사람이 유혹에 넘어갈 수 없죠. 물리쳤습니다. 잘 한 것이죠. 그런데 그 여자가 앙심을 품고 거짓으로 모함해서 감옥에 갑니다. 상 받을 일인데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그 순간 도대체 어디 가시고 안 계셨나? 한심스럽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셉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는 로얄 코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놀랍습니다. 당장은 괴롭고 답답하고 황당해 보여도 나중에 보면 모든 게 잘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일이 계속 꼬이는 것 같아도 잘 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꽈배기는 배배 꼬아서 만드는 게 아닙니까? 우리가 보기에 일이 꼬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 놀랍게 섭리하십니다. 그래서 롬8:28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4] 시험에서 승리하는 방법 : 확신, 순종, 기도, 인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힘이나 인간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방법으로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의 몇 가지를 꼭 기억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① 확신 :
본문 다시 보면 “ ... 하나님은 미쁘사 ... ” 그랬습니다.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 약속을 꼭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요16:33 (예수님의 말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도 바울도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외칩니다. 아마 그만큼 많은 시험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 그가 외친 말입니다.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② 순종 :
시험을 당할 때는 흔히 쉬운 길로 가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범죄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실수를 범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면 일이 더 망가지고, 더 큰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시험을 당할수록 흔들림 없이 굳세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도와주심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차가 흔들리고, 비바람이 불어쳐도 궤도만 이탈하지 않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궤도에서 이탈하면 당장 큰일나는 법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면 순종의 중요성을 잘 깨닫게 됩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금 신상 만들어 놓고 보든 백성에게 절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끝까지 거부합니다. 왕 앞에 끌려가서 당장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져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왕의 엄명을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납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왕이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들을 높여줌으로 오히려 유익하게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살아계신 중거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시험 만나도 하나님을 꼭 붙잡고 그분의 뜻에 절대 순종함으로 꼭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기도 :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일하면 내가 일하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렇습니다. 시험을 당해서 사방 팔방 막히고 캄캄할 때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을 허락해 주십니다. 때로는 피할 길을 주시고, 때로는 어려운 시험을 이기고도 남을만한 영적인 능력을 주십니다. 본문 13절 후반절을 보면 “ ...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특히 ‘감당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뒤나마이’(δυναμαι)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능력 혹은 권능의 의미를 가진 ‘뒤나미스’(δυναμις)와 동족어입니다. 그러니까 ‘감당한다’는 말은 능력을 ‘갖추다’ 혹은 ‘(~을) 할 수 있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 ...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는 대목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영적인 능력을 부어주셔서 시험을 넉넉히 이기게 해 주신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되, 특히 시험을 당할 때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육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④ 인내 :
시험이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래 지속되면 참 힘듭니다. 확신도 흔들리고, 게속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도 어렵습니다. 기도도 막힐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때때로 낙망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럴 때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성숙도는 인내의 여부로 측정됩니다. 인내하는 신앙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당장 이뤄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를 맞춰서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봄에 피는 꽃도 있지만 여름이나 가을에, 심지어 겨울에 피는 꽃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1960년대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패트리샤 니일이란 배우가 있습니다. 그는 영화인으로서 정상에 올라갔지만, 그 전에는 너무나 많은 시험을 겪은 분입니다. 신혼 초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데 자동차가 와서 들이받았습니다. 본인도 다치고 아이도 다쳐서 병원에 오래 입원해서 고생을 했습니다. 2년 후에는 딸 아이가 홍역에 걸려 죽었습니다. 또 몇 년 후에는 본인이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잘 인내했고 모든 게 회복되었습니다. 결국 정상까지 올라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자택에 몰려가 인터뷰를 합니다. 한 가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많은 시련이 있으셨는데, 어떻게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켰습니다. “바로 저겁니다.” 그 액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시험이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신앙으로 응답했노라. 그리고 문을 여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험이 올 때 믿음으로 인내하니까 모든 시험이 물러갔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여러분, 자동문을 아시죠? 문이 굳게 닫혀 있고, 문에는 손잡이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가가면 갑자기 짠~ 하고 열립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겁니다. 답답하고 꽈 막혀있지만 끝까지 인내하다 보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이 와도 승리의 확신을 갖고 인내함으로 오히려 더 큰 승리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은 온갖 시련들로 가득한 시험장입니다. 이런 저런 시험들이 날마다 닥쳐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시험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입니다. 오히려 시험에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 살 동안 시험이 없는 시간, 시험이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험에는 범위가 있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겪는 고난보다 더 큰 은혜, 더 큰 축복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이런 사실을 명심하시고 어떤 시험이 와도 낙심치 말고 꼭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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