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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바울서신 녹취 8

by 【고동엽】 2022. 6. 6.

바울이 자신이 사로로서 얼마나 수고하고 애써 왔는지,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예수의 길을 따르고 있는 사도임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10장부터 13장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고린도후서 전체가 자신의 사도직을 항변하는 서신인데 특별히 10장부터 13장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 10장부터 13장에서 바울은 자기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이고, 자기야말로 진정 예수 그리스도가 파송하신 사도이다, 이것을 강조하면서 바울이 내세우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은 누가 예수의 제자이냐, 예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신실하게 따라가는 자가 예수의 제자라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는 어떤 길을 걸어가셨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삶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이란 말이에요. 선고난, 후영광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누가 진정한 예수의 제자입니까? 선고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진정한 예수의 제자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실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자에게 어떤 선물을 허락하십니까? 부활의 영광을 허락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전후서에서 자신의 사도성을 인정하지 않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자기야말로 진정한 사도이다 라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항변하냐면 나야말로 예수의 그 길을 신실하게 따라 가고 있는 예수의 제자이다, 선고난, 후영광, 선십자가, 후부활의 그 길을 신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예수의 제자임을 바울은 항변을 해요. 특별히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여러 형태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린도후서 10장 10절에 나옵니다. 여기 고린도후서 10장 10절에 보게 되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어떤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냐 하면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편지는 진짜 힘이 있는데, 글은 진짜 잘 쓰는데 말이 좀 시원치 않다. 여러분, 이것 때문에 바울에 대해서 “바울이 말을 좀 못했을 것이다”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여러분 사도행전에 보시게 되면 바나바와 바울이 전도 사역을 할 때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바나바는 제우스이고 바울은 말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헤르메스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바울이 주로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말 못했던 것 아니죠. 그런데 이 말이 시원치 않다 라고 하는 것은요, 글에 비해서 그렇다는 의미도 있고, 그러니까 글을 워낙 잘 썼다는 말이죠. 그러고 또 하나는 뭐냐 하냐면, 바울은요, 한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중 언어 사용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태어난 곳이 길리기아 다소 아닙니까?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바울은 코이네-헬라어, 헬라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했을 것이고요, 그다음에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라틴어도 알았다고 봐야 되고요, 십대 초반에 예루살렘에 와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면서 히브리어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던 아람어도 알았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왜 바울이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된 거냐 하면 전 세계 누구를 만난다 하더라도 의사소통의 걸림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은 최소 4개 국어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서 조금 어눌해 보일 수는 있다 하더라도 ‘바울은 어, 말을 못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중 언어 사용자였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12장을 보시면 7절 이하에 바울이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있었다 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여기 12장 7절 이하입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냐면요, 바울은 남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에요. 다메섹 도상 사건도 그렇고요, 14년 전에 3층 하늘 체험을 했던 사람도 바울이었어요. 여러분, 이렇게 남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어떤 이적 같은 사건들을 많이 경험했다면 바울 스스로가 얼마나 오만해지기 쉽겠어요? 나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야! 나는 하나님과 1촌 관계야! 너희는 내 말 들어야 돼! 라고 하면서 보통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이 너무 교만해 지지 않도록 바울의 존재 안에, 교만해 지지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걸어놨다는 거예요. 그것이 뭡니까? 육체의 가시인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로서 그렇게 살아가도록 바울의 몸 안에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바울이 이것을 좀 가져가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세 번, 여러분 여기서 세 번이라고 하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어떤 응답이 주어진 겁니까? 네게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응답을 바울은 기도의 응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시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간절히 구할 때 야고보서 말씀에 근거해 보면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응답되어진다고 봐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요, 크게 3가지 케이스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가 아브라함과 같은 경우가 있고요, 두 번째는 여호수아 10장이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군대 같은 경험이 있고, 세 번째가 고린도후서 12장이 말하는 바울 같은 경우가 있는 거예요. 자, 아브라함은 결혼과 동시에 아들을 달라고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한 60년 지난 다음에 이삭이라고 하는 선물을 주신 거예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인내하고 기다리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선물이 주어져요. 여호수아 10장, 시간만 조금 더 있으면 아모리 백성들을 완전히 전멸시킬 수 있는데 해가 기웃기웃 저물어요. 이때 해를 멈추게 해달라고 여호수아가 기도했습니다. 즉각 이루어지죠. 여러분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군대 같은 경우에는요, 내가 구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케이스예요. 시간적인 차이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인내하게 만들거나 즉각 이루어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바울 같은 경우에는요, 나는 하나님께 A를 구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B를 허락하십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A가 나에게 있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는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A가 아니라 B가 있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다 라고 응답해주세요. 이때 우리가 구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응답이라고 생각한다면, 바울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 A를 구했지만 하나님이 B를 말씀하실 때 그것을 기꺼이 하나님의 응답으로, 아멘으로 받아들이거든요. 여러분 이런 기도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욕심을 구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면 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모든 것들은 응답되어진다는 것을 믿으셔야 돼요. 그 응답은 나로 하여금 인내하게 만드는 응답일 수도 있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응답도 있을 수 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뭡니까? 나는 A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A를 구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A가 아니라 B와 C를 우리에게 응답하실 경우도 있다, 그때 끝까지 A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이 믿음의 자세가 우리에게 요청되어진다 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자, 마지막으로 13장 13절입니다. 고린도후서는 여러분 어떻게 마무리 되냐 하냐면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축도로 마무리가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사도직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득하기를 구하면서 사도 바울이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고린도후서를 살펴보았고요, 다음 시간에는 이제 두 개의 본문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는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한 주간도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하나님의 통치 안에 신실하게 거하시는 아름다운 삶 사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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